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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성간거리만큼의 시간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윤시소
작품등록일 :
2019.09.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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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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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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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 2

DUMMY

발전소를 지키는 경비인원은 생각보다 적었다. 거기다 이들은 전문 군인들이 아니었고 심지어 용병조차 아닌, 그저 민간 기업의 경비원들이었다. 무장이라고 해 봤자 겨우 권총이었고 예비 탄알집 마저 보이지 않았다.


디나야드의 위장막 안에서 숨죽이며 이동 중이던 저스트먼의 조는 안전하고 빠르게 발전소로 진입했다. 딱히 잠긴 문도 없고 발전소 직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저스트먼의 조는 발전소 건물의 아래에서 위로, 쿠미야의 조는 건물의 위에서 아래로 모든 방을 훑으며 쓸만한 정보를 모아 중간층에서 만나는 것이 작전이었는데, 정보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버려진 발전기와 사용법은 모르겠지만 군용은 아닌 것 같은 기계들.. 저스트먼은 조사를 할 수록 더 의아해했다.


주변에 CCTV도, 경비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대원들에게 정지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대원들은 기껏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아무런 저항도, 어려움도 없자 꽤나 김이 빠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안도하는 이도 있었다.



“쿠미야.. 쿠미야 중위.”


[네, 대장.]


“그쪽 상황은 어떤가?”


[평범합니다. 연구원은커녕 연구실 비스무리한 것도 없네요··· 이 발전소 아예 버려진 거 같은데.. 정말 여기가 반란군의 실험실 맞습니까?]


“··· 거기도 그렇군. 알겠다. 그럼 작전대로 계속 수색하다 6층에서 만나기로 하지.”


[예, 대장. 거기서 뵙죠.]



저스트먼은 쿠미야와의 짧은 통신을 마쳤다. 그는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아님 걱정해야 할지 몰랐다. 쿠미야에게 6층에서 만나자고는 했지만 이미 그의 조는 5층까지 다 수색을 마친 상태였다.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버려진, 그것도 급하게 버려져 어지럽혀진 발전소일 뿐인데, 왜 정보부에선 이곳에서 수상한 활동이 발견되었다고 한 걸까.



** ** **



“드디어 능력자들이 모습을 나타냈소.”



한 어두캄캄한 방, 단 한 줄기 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곳엔 음성변조된 목소리만이 들렸다. 너무 어두워 이곳이 방인지도 알 수 없지만 기계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리는걸 보니 방음이 확실한 곳이 분명했다.



“어떤 부대가 도착했소?”


“카우프먼의 지진함이니, 505 아니면 808 아니겠소?”


“지진함? 지진함이 왜 8번에 가있다는 거요? 카스토르에서 제압하기로 했던 거 아닙니까?”



제 각기 다른 톤의 기계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이 곳은 외부에서 연결된 통신을 틀어주는 곳인 듯하다.



“카우프먼이 독단적인 행동을 했소.”


“빌어먹을 늙은 여우 같으니.”


“그러길래 내가 그냥 암살하자고 하지 않았소!”


“그럴 수는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잖소?”


“그만들 하시오. 결과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됐으니···”


“아니, 808인지 505인지도 모르는데 대체 뭐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됐다는 거요?”


“어허, 그 사람 참! 뭐가 그렇게 불만스러운 거요? 505이든 808이든 둘 중 하나를 없앨 수 있게 됐으니 된 거 아니오!”


“자, 그만들 하시오.”



이들의 의미 없는 설전이 계속되자 또 다른 목소리가 그들을 말렸다. 이번엔 기계음이 섞이지 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예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쩌면 더 잘 된 일 일수 있소.”



이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또렷했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잡아먹을 듯 다투던 기계음은 거짓말같이 멈췄다.



“그곳의 바이오 해저드들을 풀어놓는 게 좋겠소. 그것들의 전투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고.. 또 눈엣가시 같던 지진함의 특임대를 해치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


“바이오 해저드를요?! 아직 양산이 안되지 않았습니까?”


“중간 중간 검사를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 싫으시오?”


“아··· 아니, 싫다라기보단.. 어렵게 얻은 8번행성이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뭐..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이 남자의 말에는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반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 ** **



“대장!”



쿠미야와 그녀의 조원들은 저스트먼의 조를 발견하곤 그들에게 뛰어갔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없어요. 이 발전소인 거 확실합니까?”


“우리도 발견한 게 없다. 혹시나 주변에 다른 발전소가 있나 GPS를 확인 해봤지만 근방 수십 킬로미터 안에는 여기가 유일한 발전소야. 정보부에서 그 정도로 심한 오차를 만들었을 리 없어.”



저스트먼은 바닥에 앉아 지도를 보며 대답했다. 반은 다시 한 번 이 남자의 몸집에 놀랐다. 그리고 왜 그가 굳이 정문을 통해서 진입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정문이 아니고는 들어올 만한 공간이 없었을 것이다.



“탤벗, 뭐 감지되는 것 없나?”


“예, 사실 아까 진입 때부터 계속해 사람들을 감지하려 했지만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구조적으로는 어때? 이 시설 구조 말이야.”


“어··· 그건 안 해봐서..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녀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합장 자세를 취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 일반적인 구조의 건축물입니다··· 복도와 방··· 화장실··· 콘크리트···”


“후··· 알겠다. 좋아, 대원들, 수색하느라 고생했다. 이제 이곳을 폭파하···”


“잠깐만요! 지하 층이 있습니다!”



저스트먼은 이 곳이 그저 평범한 건물이라는 게 확인되자 작전대로 폭파를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탤벗 중위가 급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잘랐다.



“지하층? 설계도엔 지하층이 없는데?”



대위는 위틀락이 가지고 있던 설계도를 서둘러 펴며 물었다.



“건물의 기초 구조물들과 헷갈리는 게 아닌가?”


“아닙니다! 분명히 공간이 있습니다.. 일반 층계는 아니고.. 무슨 통로 같아보입니다... 꽤나 긴 통로 같습니다. 제 감지 범위를 벗어날 정도니까.. 못해도 1킬로미터는 넘습니다.”



탤벗은 집중을 마치고 일어나 저스트먼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펼쳐진 설계도에서 건물의 1층 하단부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이 곳, 설계도엔 그저 배수로라고 나와있는 이곳에 사람이 지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가진 문이 있습니다. 뭐 그냥 문은 아니고··· 많이 두꺼운 금속으로 되어있는··· 금고문 같았습니다! 그 뒤로 통로가 있습니다.”



그녀는 짚은 손가락을 옆으로 움직이며 주장했다.



“···.”



저스트먼은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탤벗이 거짓을 보고할 리는 없지만 설계도엔 나와있지 않은 통로였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통로 반대편엔 무언가 매우 중요한 것이 있기에 금고문같이 두꺼운 철문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설계도도 없이 정체도 모르는 지하 통로에 들어간다는 건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 보이트 소위라는 친구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저스트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로파틴 중령이 505부대원들 몇을 데려가라고 한 제안을 거절한 것이 이렇게 아쉬운 상황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좋아 이동하겠다. 내가 선두에 설 테니 잘 따라오도록. 가운데엔 탤벗이 위치하고 맨 뒤에는 쿠미야가 위치한다. 위틀락은 쿠미야를 잘 따라다니도록. 그리고···”


“아.. 저 근데, 대장.”



탤벗이 다시 한 번 저스트먼의 말을 끊었다. 대위는 조금 짜증이 난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대장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2미터 정도 높이의 통로에요. 폭은··· 일마즈조차 좁을 수 있는 정도고요···”


탤벗이 일마즈를 보며 말하자 일마즈는 그녀가 자신보고 뚱뚱하다고 하는 것 같이 생각됐는지 당황해했다. 저스트먼 역시 상상도 못한 장애물에 당황해 했다. 하긴, 그 같은 거구가 지하통로를 마음껏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 ** **



저스트먼은 탤벗 중위가 말한 비밀통로에 진입하기에 앞서 먼저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그녀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작전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아주 가끔 그의 큰 몸집이 작전에 방해가 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참여조차 못할 상황은 한 번도 없었기에 저스트먼이 느낀 황당함은 생각보다 컸다.


깜깜한 밤이 되자 부대원들은 새로운 작전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탤벗이 말한 1층 배수로에 도착하자 그곳은 눈으로 보기엔 평범한 콘크리트 벽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이 벽 뒤에 철문이 있다고 계속해 주장했다.



“그럼 벽을 허물어야 하는 건가?”



저스트먼은 고민했다. 디나야드의 은폐능력은 뛰어났지만 소리는 숨기지 못했기에 이 벽을 허문다면 경비원들이 알아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일 가까운 경비원은 어디에 있지?”


“건물 입구에 두 명이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졸고 있긴 하지만요.”


“좋아. 그 정도면 괜찮겠군.”



저스트먼은 뭐가 할 듯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전원, 뒤로 물러선다.”



그는 콘크리트 벽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얼마 안되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벽이 용암으로 변하고 있던 것이다! 반은 그제야 그의 얼음을 녹인 능력이 누구의 힘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콘크리트를 녹일 정도라면 얼음 따위야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저스트먼은 탤벗의 말에 따라 문을 가리고 있는 벽을 슥슥 문질렀다. 그의 손길이 닿은 곳은 용암으로 변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얼음으로 식힐까요 대장?”


“아니, 그럼 수증기가 만들어지면서 소음을 발생시킬 거다.”



그가 벽을 녹이니, 정말 탤벗의 말대로 거기엔 원형 모양의 철문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꽤 크게 느꼈을 문이지만 저스트먼에겐 기껏해야 어깨 정도 밖엔 오지 않는 높이였다. 저스트먼은 녹아 내린 용암에 손을 담갔다. 그러자 용암은 순식간에 열을 잃으며 굳기 시작했다.



“흠··· 통로의 높이가 이 문보다 낮다면 내가 진입하는 건 확실히 어렵겠군···”



저스트먼은 고민했다. 사실 고민했다기 보단 그가 부대원들과 함께 갈 수 없음을 불안해했다. 그들의 작전 수행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명색이 대장인데 제일 위험해 보이는 작전에서 빠져야만 한다는 것을 그의 책임감이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딱히 별다른 도리도 없었다.



“좋다, 디나야드, 소렌슨 그리고 난 여기에 남아 이곳을 은폐시키고 사수하겠다. 나머지 대원들은 통로에 진입한다. 쿠미야가 이번 작전을 이끌어.”


“네? 아, 저는 왜 남습니까? 저도 갈랍니다!”



소렌슨 중위는 대위의 갑작스런 명령에 당황한 듯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본다. 하지만 저스트먼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네, 대장.”



쿠미야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아야 하는 저스트먼에겐 미안해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임시 대장이 되어 작전을 이끌 수 있게 됐음에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너와 나의 통신 가능 거리는 길어야 1.6킬로미터 정도란 걸 명심해. 그리고 혹시 위험요소가 있다고 판단돼도 섣불리 교전하지는 마. 위험요소는 조용히 처리하던가, 그럴 수 없다면 피해서 가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장.”


“···”



침착하게 명령을 내리는 저스트먼이었지만 여전히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조심해야 해, 알겠나?”


“맡겨줘요, 대장. 대장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작전 성공률이나 작전 투입률 모두 뛰어난 편입니다.”



쿠미야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저스트먼은 그녀에게 진입을 허락했다. 그녀는 틈 하나 없이 완전 밀폐된 철문에 다가가더니 문 위에 주먹을 대었다. 그녀가 주먹에 힘을 주어 문을 밀자, 주먹이 닿았던 부분이 쑤욱하고 파여 들어갔다. 그녀는 파인 부분을 잡곤 이 두꺼운 철문을 마치 종이 말듯이 둘둘 말기 시작했다. 반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능력이 사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꺼운 철문은 금방 열렸다··· 열렸다기 보단 찢어졌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탤벗의 말대로 통로 같은 게 있긴 있었다. 찌그러진 원형 모양의 통로는 알 수 없는 비릿하고 축축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축축한 흙냄새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로는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이사넨, 밝힐 수 있겠어?”



쿠미야가 바이사넨이라는 중위에게 묻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통로의 벽을 살피며 만져보았다.



“이건 완전히 흙인데···”



바이사넨 중위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통로 벽을 훅하고 불었다. 그러자 벽에 작은 불씨가 붙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불씨를 가리키곤 벽을 따라 빙글 한 바퀴 돌리자 불씨는 그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퍼졌다. 하지만 그녀가 손을 떼자 불길은 금방 사라져버린다.



“안될 것 같습니다. 이 벽은 완전 흙이에요, 그것도 적당히 축축한.”


“어쩔 수 없군. 모두 야간 투시경을 쓴다. 작동시간은 기껏해야 세시간 정도니 빨리 수색하고 돌아오자고.”



쿠미야와 부대원들은 뒷주머니에서 투시경을 꺼내 착용했다. 초록빛의 작은 렌즈가 눈이 위치할 곳에 각각 세 개씩 있고, 미간 부분에선 미세한 빛을 내는 투시경이었다. 저스트먼은 이 모든 걸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것이 그가 부대원들을 깊이 믿고 있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 ** **



지진함은 심우주에서 잠시 정거하고 있는 중이었다. 8번 행성의 아비규환에선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수송선의 호위를 맡았던 75전투비행단은 거의 괴멸 수준이었고 그들 전에 출격한 61전투비행단도 전력의 40% 이상을 잃었다. 비상 구명선까지 동원해서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6000명 이상으로 파악된 88사단 병력 중 절반도 되지 않는 2800여명만을 구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기갑전력은 피해가 적었지만 그렇다고 8번행성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거듭 이어졌던 혈투 끝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들이었지만 모두 침울해 했다. 지진함의 선원들은 코루스에서 죽어간 전우들이 생각나 비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고 88사단의 방위군들도 어쩔 수 없이 코루스에 남겨진 전우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의 실상을 처음 경험해보는 젊은이들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지코우는 깊은 무력감을 애써 이겨내며 자신의 중대원들을 향해 따뜻한 말을 해주고 있었다. 그 역시 지휘관으로써 너무나 많은 부하를 잃었다는 책임감과 상실감에 마음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의 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으로써의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이미 전쟁을 한 번 경험해본 소립은 그런 중대장이 안쓰러웠는지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구조받은 대부분의 인원은 코루스의 최전방을 맡고 있던 초급 지휘관들이나 부사관, 병사들이었다. 카우프먼이 이들의 구조를 최우선순위로 두었기에 나타난 결과였다. 88 사단장은 물론 여단장들과 많은 대대장들까지 코루스에 남겨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카우프먼의 독단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88사단의 지휘부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미래를 젊은 군인들에게 맡기겠다는 선택이었다. 거듭 패배를 하던 방위군에게도 뜨거운 전우애는, 그리고 부하를 아끼는 마음은 강했던 것이다.



“동력은 언제쯤 복구가 될 것 같나?”



동력실과 통신 중인 카우프먼은 녹초가 된 채로 질문했다. 동력실을 책임지는 이름 모를 정비반장의 모습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3시간이고, 넉넉잡으면 12시간도 걸릴 수 있습니다. 동력의 과부하 상태를 너무 오래 유지했습니다. 메인 엔진 하나가 완전히 방전돼버렸습니다. 이건 여기서 고칠 수가 없는데··· 화성으로 가야만 합니다.”


“알겠네··· 정말 고생했네. 조금만 더 노력해주게.”


“물론입니다, 함장님. Virtus.”



동력실과의 통신이 끊겼다. 카우프먼은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만큼의 순발력도, 체력도 이미 사라진 지 수십 년이었지만 어떻게든 스스로를 쥐어짜내 전투를 이끌었으니 그의 늙은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슬슬 은퇴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관, 아직 소식이 없는가?”


“예, 하지만 그들이 예정시간에 맞춰 온다면··· 4분 이내에 저희 레이더 망에 잡힐 겁니다.”


“그래. 화성의 우주군은 믿을 수 있는 이들이지. 미안하네만, 난 좀 쉬어야겠네. 잠시 함교를 맡아주게.”


“예. 함장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벡 중령은 진심을 담아 카우프먼에게 감사의 표현을 했다.



“··· 피벡 중령.”


“네, 함장님.”


“카우프먼이라는 늙은이는 ‘20년전쟁’의 영웅이지, 지금 일어나는 전쟁의 영웅이 아니야. 내 이번 전투로써 확실히 느꼈지. '아, 이제 늙었구나.' 라고 말이야. 자네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장군님께선 영원히 저희의 영웅이십니다.”



갑작스런 카우프먼의 말에 피벡은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카우프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벡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8번행성에서 죽었을 것이야. 고맙네, 자네는 정말 훌륭한 지휘관이야.”



상관의 진심 어린 인정에 피벡은 울컥했다.



“난 자네를 믿네. 그러니 자네도 스스로를 믿게. 새로운 전쟁은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네.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을 말이야. 수고했네.”



카우프먼은 부관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곤 함교를 떠났다. 노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피벡의 눈은 붉어져있었다.



“···Virtus.. 함장님···!”



** ** ** 12화 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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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투 준비 19.10.12 20 0 19쪽
8 808부대 19.10.11 25 0 16쪽
7 예상밖의 마찰 19.10.10 23 0 15쪽
6 8번 행성 19.10.09 25 0 17쪽
5 차출 19.10.05 55 0 18쪽
4 H.C.S.F. Earthquake 19.10.03 36 1 19쪽
3 빛과 얼음 19.09.30 53 2 16쪽
2 뜻밖의 소식 19.09.27 74 2 17쪽
1 생도 1332 +2 19.09.24 163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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