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모음집 야설(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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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0.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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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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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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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2)

DUMMY

풍어제는 작은 심방의 목이 잘리는 사고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채 중단되어 버렸다.


“바당에 괴기 잘 잡게 해달라고 제 올리는데 이 무신 숭시 일이 꽈?(바다에 고기 잘 잡게 해달라고 제 올리는데 이 무슨 괴상한 일입니까?”


“게메 마씸···앞더래 일이 왁왁하우다. (그러게 말입니다···앞으로 일이 캄캄합니다.)”



사람들은 몇 일 전 급살 맞아 죽은 큰 심방 일과 작두에 목이 잘려 죽은 작은 심방 일이 무엇인가 연관이 있다고 수근 거렸다. 하지만 재영은 작은 심방의 죽음보다 자신의 순결을 지킨 일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 했고 경찰서에서 작은 심방의 사고에 관한 간단한 조사를 받고 심방집으로 돌아왔다.


“그럼 선배님은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심방 둘이나 죽어 나갔는데?”


다혜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재영 뒤 허공을 응시하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서울에 있는 새엄마에게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되질 않아서..딱히 갈 곳도 없고.”


“그러면 나랑 같이 부산으로 가요. 모난 돌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고···괜히 우리까지 피해 올 줄 모르잖아요.”


그러나 재영은 다혜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새엄마의 허락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주저하게 한 것은 끔직한 고통의 신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재영아..해 뜨기 전 왕오름에 가서 재를 올려야 하니..어서 같이 가자.”


자정이 넘은 야심한 시각 막내 심방이 혀 짧은 애기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옆에서 자고 있는 다혜는 막내 심방이 온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저..저만요?”


재영의 말에 막내 심방은 잠깐 얼굴에 경련이 일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재영은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잠옷차림 그대로 막내 심방을 따라 나섰다.


심방집을 나선 막내 심방은 재영의 손목을 잡고 무엇에 홀린 것처럼 미친 듯이 집 근처 왕오름 방향으로 뛰어갔다. 어디선가 강한 악취가 계속해서 풍겨왔다. 어둠 속 왕오름은 마치 거대한 무덤마냥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막내 심방은 연신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가방 속에서 검은 무엇인가 한 웅큼씩 꺼내어 뒤를 향해 뿌렸다.


“막내 심방님···손이 너무 아파요..”


울먹이는 재영의 말에 막내 심방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더욱 힘을 주어 재영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심방 셋 중 그나마 자신을 살뜰히 챙기던 막내 심방이라 재영은 더욱 이 상황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재영을 끌고 가던 막내심방은 오름에 접어들자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언제부터였냐?”


“···네?”


“언제부터 베렝이(벌레)가 너에게 붙었냐고?”


“그게 무슨···”


재영은 뜬금없는 막내 심방의 말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몰랐다.


“요 며칠 전부터 혼자 중얼거리고 히죽히죽 웃길래 낌새가 수상했다만··· 베렝이가 주둥이 꽂은 줄도 모르고···”


“베렝이라뇨?”


“이년아···요 며칠 전부터 누가 사람행세하며 딱 달라 붙어 자고 있지 않아?”


“사람행세요? ···혹시 다혜 말씀이세요?”


“다혜..?”


“일주일 전 부산에서 온···저랑 같은 소미인 다혜요···”


재영의 말에 막내 심방은 끌끌 혀를 찼다.


“오긴 누가 와? 소미는 자고로 한 번에 한 명만 거두는 것이 원칙인데···다른 소미라니..”


“하지만 막내 심방님이 직접 소미 될 아이가 올 거라고...”


“···내가 그랬다고?”


재영의 말에 막내 심방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이거 나까지 베렝이에게 단단히 씌였구먼···”


순가 이름 모를 악취가 더욱 진동했다. 악취의 근원을 쫓자 막내 심방이 메고 있는 가방에서 냄새가 진동했다. 막내 심방은 다시금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어 무엇인가 꺼내어 들었다.


“막내 심방님···그건?”


재영은 막내 심방의 손에 들린 무엇인가를 보고 당황하며 뒷걸음 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인분이었다.


“이년아··· 죽고 싶지 않으면 이걸 몸에 쳐 발라. 베렝이가 오지 못하게. 너도 봤지? 큰 심방이랑 작은 심방이 골로 간 거? 그게 다 베렝이가 주둥이를 꽂아 골로 간거여···히히히”


갑자기 막내 심방이 인분을 온몸에 바르더니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바르던 인분을 입으로 가져가 맛있는 사탕 마냥 핥아 먹었다.


“선배님!! 이리 오세요. 어서요!!”


그 순간 다혜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 어둠 속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막내 심방은 다혜의 목소리에 격하게 반응하며 빠르게 재영을 향해 달려 왔다. 재영은 생각할 것도 없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전력 질주해 도망갔다.


“베렝이다!! 히히히!!!! 밟아 죽여라!!”


막내 심방은 가방에서 인분을 양 손으로 꺼내어 들고 눈을 까 뒤집은 채 재영을 쫓아 왔다. 그 모습은 흡사 악귀와 같았다. 왜 자신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재영은 눈물이 났다.


“히히히···.베렝이···.터트려 죽여···.목을 잘라 버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막내 심방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러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왕오름이라 언제 발각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선배···여기 동굴이 있어요. 이쪽에 잠깐 몸을 숨기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들리는 다혜의 목소리를 듣고 재영은 재빠르게 조그만 동굴을 향해 달려갔다. 동굴은 한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매우 작았다.


“베···렝······죽···여···히히···.”


동굴 밖으로 막내 심방의 외침이 바람에 섞여 간간히 들려왔다. 도망치느라 땀에 흠뻑 젖은 재영은 동굴 안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차차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선배···.막내 심방 왜 저런데요? 미친 거 맞죠?”



동굴 안쪽에서 다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막내 심방이 왜 저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다혜가 있어 안심이라 생각했다.


“선배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봐요. 다른 출구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어둠 속에 들리는 다혜의 말에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소미는 문득 깨달았다.


“다혜야···근데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어?”


“막내 심방이 가는 길 마다 인분을 뿌려서 그거 보고 따라 왔어요.”


“하지만.....”


“뭘 자꾸 꾸물거리세요. 선배 놔두고 저 혼자 가도 상관 없어요?”


“너는 앞을 볼 수 없잖아···”


재영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동굴 안은 적막함만이 존재했다. 재영이 동굴에 들어온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다혜가 처음 심방집을 왔을 때 재영은 그녀가 맹인인지를 미쳐 몰랐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과 자신의 입을 보며 대답하는 그녀를 보고는 누구도 그러 했으리라···한참 후 그녀가 들고 있는 맹인지팡이를 보고 비로서 그녀가 앞을 못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두운 동굴은 마치 정체를 모르는 괴물의 목구멍 같았다. 재영은 이곳에 있으면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으로 직감했다. 막내 심방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지금 서둘러 동굴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재영아···어디 있니?···베렝이가 너를 ···노리고 있어···얼른 나오렴···”


동굴 밖 넓은 벌판에서 막내 심방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찾고 있었다. 재영은 다시금 동굴 안쪽으로 몸을 숨긴 채 막내 심방을 지켜봤다.


“어둠 속 베렝이는 다른 사람을 현혹하는 능력이 있어···의심이라는 저주는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고···판단을 흐리게 하지···.어서 나오렴. 내가 너를 구해줄게···”


그녀의 두 손에는 굿을 할 때 쓰는 방울과 오방기(五方旗 )가 들려 있었다. 또한 조금 전 온 몸에 묻어 있던 인분의 흔적도 전혀 보이지를 않았고 언제나 인자하게 웃던 막내 심방 모습 그대로였다. 재영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 동굴 속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백 마리의 벌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날아오르는듯한 괴상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집중해야 들릴만한 크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며 이윽고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온 듯 맹렬한 소음을 냈다. 재영은 두려움에 동굴을 빠져 나와 밖에서 자신을 찾고 있는 막내 심방을 향해 달려갔다.


“꺄악! 막내 심방님···.동굴 속에 벌레··· 베렝이요!!!”


막내 심방은 재영을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짓다가 그녀가 무엇에 쫓기는 것을 보고는 품속에서 사람 손바닥 만한 은장도를 꺼내 들고 재영을 향해 달려왔다.


“요망한 것!!! 어둠 속 존재가 다시금 사람을 현혹하려 하다니···.”


재영은 동굴을 빠져 나왔으나 등 뒤서 들리는 벌레소리가 조만간 자신을 덮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방님···도와주세요···수백 마리 벌레예요. 베렝이예요!!!”


재영은 그녀가 얼른 다가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랬다. 그 순간이 마치 억겁의 시간 마냥 무척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근엄한 표정을 짓고 달려오던 막내 심방이 다시금 눈을 까 뒤집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히히히···베렝이가 달려온다. 찔러 죽여!!!! 돌로 쳐 죽여!!! 배를 길게 갈라 죽여!!!!”


달려 오던 막내 심방의 배가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베..렝이···.커컥···억!!”


그리고 부풀어 오른 배를 찢고 무엇인가 튀어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파리의 머리에 수십 개의 소름 끼치는 다리가 달린 괴물이었고 날개가 달려 있었다. 괴물이 날개 짓 하자 등 뒤서 들려오는 똑같은 괴상한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은 재영의 얼굴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그리고 저 멀리 맹인인 다혜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막내 심방의 잘린 머리가 들려 있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거대한 파리머리 괴물이 재영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재영은 정신을 잃었다.





재영은 눈을 떴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빠와 새엄마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영아 괜찮니?”


새엄마가 걱정스럽게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재영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익숙한 팝 가수의 포스터와 함께 눈물 나게 그리웠던 자신의 방안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엄마···아빠···.”


“악몽을 꿨나 보구나. 열 좀 내린 것 같으니 오후에 병원 다시 한번 가보자.”


재영의 아버지가 걱정스런 말투로 말을 했다. 생생하게 느껴졌던 제주도의 끔직한 기억이 모두 꿈이었다. 재영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런 재영을 따듯한 미소로 바라보던 재영의 부모님은 조용히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다행이야···.”


재영은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한껏 피며 중얼거렸다.

그때 그녀의 귀로 이명처럼 낮은 벌레 날개 소리가 들려 왔다.

모기일까? 파리일까?

재영은 서서히 자리에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식칼을 꺼내 들었다. 다시금 벌레소리가 윙 하며 들여왔다.


“정말 다행이라니까···.이번에는 속지 않아서···.”


재영은 식칼을 들고 쇼파에서 티비를 보던 엄마와 아빠 등 뒤로 살며시 걸어갔다.



재영은 너무도 길고도 생생한 악몽을 꿨다.

불행히도 재영은 그것이 악몽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재영은 누구보다 현명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악몽에서 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남자....여자···여자···..

세 번의 비명이 연이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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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레드문 19.12.09 153 0 11쪽
66 산신(山神)님 19.12.06 135 0 10쪽
» 소미(2) 19.12.06 74 0 12쪽
64 소미(1) 19.12.06 85 0 11쪽
63 집으로 가는 길 19.12.06 84 0 5쪽
62 만약에 19.12.06 79 0 10쪽
61 죽음 19.10.28 203 0 8쪽
60 그렇게 사랑은... 19.10.28 146 1 9쪽
59 무서운 이야기 19.10.24 171 0 13쪽
58 저주 19.10.24 122 0 13쪽
57 조언 19.10.23 121 0 19쪽
56 유키코 19.10.23 145 0 8쪽
55 민박 19.10.22 214 0 13쪽
54 가위 19.10.22 125 0 6쪽
53 윤씨 아저씨(2) 19.10.21 238 0 12쪽
52 윤씨 아저씨(1) 19.10.21 278 0 9쪽
51 잔인한 복수 +1 19.10.21 424 0 7쪽
50 회식 +1 19.10.18 259 0 4쪽
49 사직서 19.10.18 176 0 4쪽
48 숨은 물건 찾기 +1 19.10.18 118 0 2쪽
47 AM 4시44분 엘레베이터 +1 19.10.18 151 1 5쪽
46 4번 지방도로 공동묘지 +1 19.10.18 139 0 12쪽
45 싸이코패스 테스트 19.10.17 110 1 5쪽
44 친절한 윤성씨 +1 19.10.17 308 0 4쪽
43 열두 개울 +1 19.10.16 12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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