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월리 사냥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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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이가넷
작품등록일 :
2019.10.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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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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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웨어울프 (2)

DUMMY

놈은 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있었음에도 동석보다 한참 컸다. 놈의 팔뚝은 동석의 허리보다 굵었으며 불거진 힘줄은 뱀처럼 꿈틀거렸다. 가슴은 갈색 털로 빼곡하게 뒤덮여 있었고, 주둥이가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길고 날카로운 이빨은 무엇이든 물어뜯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놈은 애꾸였다. 한쪽 눈에 오래된 흉터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검상 같아 보였는데, 그래서 더 흉측했다.


'웨어울프?'


일견하기에도 강한 전사의 냄새가 솔솔 풍겼다. 동석은 조심스럽게 스캔을 해보았다.


“염병!”


놈은 뱃속에 달걀을 하나 키우고 있었다. 동석의 메추리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이즈다. 곰 가족에 이어서 두 번째 마주하는 커다란 달걀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르르르.


진돌이가 으르렁거리며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저 죽을지 모르고 웨어울프를 상대로 이빨을 보이고 있었다.


동석은 진돌이 목덜미를 몇 차례 쓸어 다독여줬다.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고 엉덩이를 툭 쳤다.


“아서라. 네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위험하니까 멀리 피해있거라.”


진돌이는 망설이다가 울창한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여전히 꼬리는 바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쓸데없이 영리한 녀석.’


동석은 군자검을 꺼내들었다. 웨어울프는 동석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자로 살아온 존재의 여유가 느껴졌다.


까닥.


동석은 그 여유가 아니꼬웠다. 검 끝을 위아래로 흔들어 도발했다. 순간 웨어울프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잔상?’


깡!


놀랍도록 빠른 놈이었다. 속도만 놓고 보면 천영감보다도 한수 위였다. 알고 막은 것이 아니었다. 감각. 순전히 감각에 의지해 검을 가져다 댔다.


우웨에엑.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놈의 공격에는 무지막지한 거력이 담겨있었다. 단 한 번의 충돌에 내부가 진탕 되었다.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올라왔으나 꾹 눌러 참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와 파괴력이었다.


동석이 시선을 들자 놈이 고개를 모로 꺾었다. ‘그걸 막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촤라라락.


첫 공격은 맛보기였다는 듯,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웨어울프의 손끝에서 손톱 열 개가 튀어나왔다. 하나하나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베이는 순간 열 토막이 날 것이요, 찔리는 순간 열 개의 바람구멍이 날 것 같았다. 웨어울프의 눈매가 웃는 듯 휘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신형이 흐릿해졌다.


깡.


엉겁결에 갖다 댄 검에 손톱이 부딪혔다. 검신이 두텁고 날이 없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런 식의 무식한 공격을 낭창낭창한 일반 검으로 막기는 더 어려웠으리라.


깡! 깡! 깡!


웨어울프는 한번 막아보라는 듯 정신없이 두들겼다. 기교도 없고 변초도, 허초도 없는 공격이었다. 대장장이가 쇠를 다루듯 우직하고 정직하게 계속 두들겼다.


막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막아 봐야 얻어맞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였다. 충격은 고스란히 검을 타고 전달되어 속을 뒤집어 놓았다.


팔이 부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었다. 전봇대로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우웨에엑.


결국 동석은 피를 한 사발이나 게워내야 했다. 아팠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지만, 그전에 마음이 아팠다. 놈은 전투가 아니라 유희를 하는 중이었다. 몬스터 주제에 인간인 자신을, 2성 헌터인 자신을 갖고 놀고 있었다.


딱 막을 만큼만 때리고 있었다. 맞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막은 것이 아니라, 놈이 막게 해주었음을.


“망할!”


더 가슴이 아픈 것은 그마저도 막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상대가 봐주면서 싸우고 있음에도 버거웠다.


지금 놈은 동석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동석이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추스를 때까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놈에게는 시종일관 강자의 여유가 있었다.


‘망할 놈! 일어나라는 거냐?’


화가 났다. 분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취급을 당해본 적이 있었던가. 숲에서 검기를 구사할 수 있게 된 이후 이렇다 할 적을 만나지 못했다. 계월리에 들어와 실력도 부쩍 늘었다. 이제는 내심 천영감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장난감 취급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깡! 깡! 깡!


어찌어찌 세 번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동석은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하늘이 노래졌다. 정신력으로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절대적인 속도와 힘의 차이는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까닥.


웨어울프가 손톱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동석이 했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놈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수가 고수, 그것도 초고수를 도발한 셈이다.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젠장할!’


다시 한바탕 속을 게워냈다.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동석이 정신을 차리고 웨어울프를 보았을 때,


'반항하지 않는 적은 재미없다는 거냐?'


놈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감정은 따분함이었다.


저벅저벅.


웨어울프가 천천히 걸어왔다. 동석은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놈이 한 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두려움도 한 걸음씩 다가왔다. 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꼿꼿이 서서 버텨냈다.


놈은 동석이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놈이다. 그런 놈을 상대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맞아죽을 때 죽더라도 딱 한 대만, 더도 말고 딱 한 대만 때려주고 싶었다.


웨어울프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검을 덥석 잡았다. 날이 없는 검이다. 조금 납작한 몽둥이와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명색이 검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동석은 힘을 주어 검을 빼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웨어울프가 잡아채자, 검은 무 뽑히듯 가볍게 동석의 손을 벗어났다. 놈은 검을 등 뒤로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손톱을 집어넣었다.


두두두둑!


놈은 양아치마냥 손가락뼈마디를 꺾어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끝이 없는 '구타'는 시작되었다. 오뉴월 개 패듯 두들겨 팼다. 동석의 자존감은 바닥도 모자라 지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갔다. 놈은 동석을 때려죽일 심산이었다.


퍽퍽퍽퍽!


그야말로 찰지게 얻어맞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로 신나게 얻어맞았다. 동석은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새우처럼 둥글게 말았다. 맞기 좋은 자세였다.


한참을 두들겨 패던 웨어울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이 왜 안 죽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웨어울프는 잠시 하늘을 보더니 다시 두들겼다. 이번에는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서,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두들겼다.


한편 동석은 이상한 체험을 하는 중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맞을수록 덜 아팠다. 놈이 처음에 때릴 때보다 덜 아팠다. 참을만했다. 내성이 생겨서 그런 건지, 놈이 때리다가 힘이 빠져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마나가 스스로 반응하고 있음을.


타격 부위에 마나가 자연스럽게 몰렸다. 충격을 흡수하고 있었다. 놈이 아무리 빨리 때려도, 아무리 강하게 때려도 마나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동석을 보호하고 있었다. 고통이 덜어지자, 동석에게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런게... 호신강기일까?’


물론 호신강기는 아니지만 효과는 비슷했다. 호신강기가 별건가. 아프지 않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동석은 앞으로 이것을 호신강기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웨어울프는 때리던 걸 잠시 멈추고 동석에게서 떨어졌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한번 하늘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이놈은 왜 자꾸 하늘을 보는 거야?’


동석은 놈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보았다. 기울어져 가는 달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달? 달이 진다고?’


퍽!


잠시 한눈을 판 대가는 컸다. 몸통 박치기 한 번에 온몸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동석은 스위트스폿에 제대로 얻어걸린 야구공처럼 훨훨 날아갔다. 마나가 상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듯, 고통이 여과되지 않았다.


쐐애애액.


한참을 날아가 뒹굴뒹굴하고 있는 동석을 향해 웨어울프가 다시 한번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퍽!


동석은 또다시 야구공이 되었다. 연타석 홈런이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어서 충격이 덜했다.  동석은 최대한 많이 굴렀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떨어뜨리고 싶었다. 그게 비록 아무 의미도 없을지라도 그러고 싶었다.


동석은 잔뜩 긴장한 채 3차 몸통 박치기를 대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놈이 사라지고 없었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석은 눈을 비비고 살피다가 자리에 누웠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살았다는 안도감.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자괴감. 세 번째 드는 생각이 도대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포션을 콜라 마시듯 들이켰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봤을 때 알았다. 날이 밝았다. 달이 지고 없었다. 그리고 웨어울프도 이제 없다.


끼잉 끼잉.


진돌이가 기어 나와 누워있는 동석의 뺨을 핥았다. 포션을 마신 덕분에 그래도 기운이 났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얻어맞은 정신적 대미지는 고스란히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살만했다.


'다음에 만나면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찾았다. 호신강기. 어쩌다가 체득한 호신강기를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면, 힘과 스피드를 늘린다면 다음에는 오늘처럼 맥없이 쥐어 터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숙제가 생겼다.


터덜터덜 걸어서 마을로 돌아왔다. 웨어울프를 만난 이가 동석뿐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몇 명이나 죽임을 당했을지 걱정이 되었다.


동석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입구 공터에 모여 있었다. 데자뷔 같았다. 동석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도 이랬다. 다만 그때와 분위기는 천양지차였다.


"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희연이었다. 두 손을 꼭 잡고 연신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동석의 옷은 죄다 뜯어지고 흙범벅이어서 난민을 방불케했다. 딱 봐도 험난한 전투를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못난 놈. 행색이 그게 무어냐. 미물 따위에게 얻어맞기나 하고."


천영감은 혀를 끌끌 찼다. 말은 저리 해도 동석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준 사람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아저씨··· 흑흑."


진진은 이미 눈물범벅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 부어올랐다. 동석은 진진을 안아주고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긴 시간 걱정해주고 기다려준 사람들이다. 고마웠다. 어쩌면 앞으로는 이방인으로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혹시···"


유독 슬퍼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동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돌아오지 않은 이들의 행적을 묻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가족이리라.


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없는 사람은 웨어울프에게 당한 것이다.


"흑흑."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실낱같은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동석의 귀환을 기뻐하는 것은 잠깐이었다.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자리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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