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월리 사냥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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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이가넷
작품등록일 :
2019.10.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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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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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0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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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4)

DUMMY

장춘삼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NO.1 고객 고동석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다짜고짜 할 말이 없냐고 물어보는 건 또 뭐야. 할 말이야 많지. 너무 많아서 문제지. 쌀도 더 사고 싶고. 교관도 갈아치우고 싶고. 던전초는 왜 안 파는지도 알고 싶고. 어떻게 생각해?”


“제가 보기엔 태양광과 VR 시스템 둘 중 하나를 묻는 것 같습니다. 태양광 시설은 내일 준공 예정이고, VR 시스템은 한창 건축 중이니까요. 어쩌면 둘 모두를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춘삼의 손가락이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사소한 몇 가지가 걸렸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게 걸렸다.


“일단 가지. 가서 이야기해봐야지.”


***


장춘삼이 동석을 찾았을 때 동석은 박달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볼트를 깎고 있었다. 기억이 났다. 첫 거래 때 구해다 준 박달나무 묘목이었다.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수령 10년은 되는 나무처럼 자라있었다.


“왔나?”


“하하. 잘 계셨습니까? 조각에도 조예가 깊으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동석은 형태가 어느 정도 잡혀가는 볼트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조예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 조각을 잘 하는 것 같잖아.”


“하하하!”


장춘삼은 속으로 찔끔했다. 그렇다고 조각 솜씨가 별로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지부장. 나는 말이야. 솔직한 사람이 좋아. 그러니까 나에게는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했으면 좋겠어. 숨.기.지. 말.고.”


동석의 시선은 여전히 나무토막을 향해 있었다. 동석의 손은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쉬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나무를 벗겨내고 있었다.


장춘삼은 한기를 느꼈다. 초고수가 내보내는 기운이다. 일반인인 장춘삼이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가끔 장춘삼은 고동석이 초고수임을 망각하곤 했다.


4대세가의 전 가주들에게선 포스, 아우라 또는 카리스마가 상시 흘러넘친다. 하지만 고동석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가끔 한 번씩 이렇게 기운을 흘릴 때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실감을 하곤 했다.


“태양광 시설 때문에 그러십니까?”


스윽스윽.


동석은 말없이 조각에 열중했다. 동석의 대검을 싸고 있는 막은 더 얇아졌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마나로 덧씌워져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일본에 마사토 가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작년쯤 저희에게 주문이 들어왔었습니다. 디자인까지 직접 해서 주문했었지요. 공정 70%쯤 완성했을 무렵 사달이 생겼습니다. 3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쿠로네코. 그러니까 흑묘가 나타나 인근 지역 전체가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마사토 가문 역시 멸문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잔금을 납입하지 못했지요. 자연스레 계약은 파기되었고, 저희에게는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악성 재고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동석님이 모듈 교체를 원하시고, 저희야 악성 재고를 털어낼 수 있으니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죠. 용량은 기존 태양광보다 훨씬 많지만, 가격은 충분히 조정을 해드렸습니다. 생전 처음 밑지고 팔아봤습니다. 정말입니다. 계월리 입장에선 조금도 손해 볼 것이 없는 거래였습니다. 서운하게 생각하실 내용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 숨겼지?”


“숨겼다기 보다는 그저...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왜 숨겼냐고 물었네.”


“굳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마사토 가문이 멸문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찝찝해하실까 싶어서,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니까요.”


“우릴 위해서 숨겼다?”


“어차피 물건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팔려고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마사토 가문에게 판매를 했던 제품도 아니고 단지 만드는 과정에 있었던 신제품입니다. 마사토 가문이 조금이라도 소유를 했었다면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선수금은 얼마나 받았나?”


“규모가 큰 주문생산은 보통 기성고에 따라 자금을 받습니다. 공정률이 70%였으니 70%를 받았어야 하지만, 실제로 받은 금액은 절반 정도 됩니다.”


“나머지 절반을 우리에게 판매하고 받은 셈이네?”


“...맞습니다.”


“그럼 손해 본 건 아니잖아.”


“계월리도 손해 본 건 아니지요.”


“이봐. 장지부장. 말 이상하게 하지 마. 손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밑지고 팔았다고 그래? 오히려 이득은 이득대로 다 챙겼잖아.”


“마사토 가문이 깔끔하게 멸문했다면 동석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생존 확인이 어렵습니다. 사실은 마사토 가문에 위약금을 제하고도 돌려줘야 할 금액이 좀 남아있습니다. 계약 내용이 그렇습니다. 물론 청구를 해야 돌려주지만요. 청구를 하지 않아도 저희는 충당금 설정을 해놔야 하고요. 아무튼 이득 챙기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


“이봐 장지부장. 상인이 물건을 팔면 이득을 남겨야지. 그걸 나무라면 안 되지. 내 말은! 숨기지 말라는 거야. 난 누가 내 뒤통수치는 거 굉장히 싫어해. 기분이 좋지 않아. VR 시스템도 누가 주문했다가 취소한 거 같잖아. 절반 가까이 디스카운트해준 건데 괜히 의심하게 되잖아.”


장춘삼은 우물쭈물 말이 없었다.


“설마··· 태양광이랑 세트였어?”


“네. 죄송합니다.”


“이사람 이거. 그래놓고 5천만 골드를 다 받으려고 했었어?”


장춘삼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3천만 골드 받으려고 했었습니다. 무이자할부는 의외의 일격이었지만요.”


“정말이야?”


“맞습니다. 그 정도 되는 규모면, 사실 제 재량을 넘습니다. 이미 본회에서 인가를 받아온 거죠. 단지 그렇게 할인해주는 협상 과정이 있어야 받는 사람도 기분 좋고, 저희도 생색내고.”


“말 안 하면 안 깎아주고?”


“그거야 당연···.히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맞구먼 뭘.”


탁탁.


동석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어느새 나무토막은 볼트 세 개로 변해 있었다. 한나절에 하나 만들기도 힘들었는데 어느새 실력이 이렇게 늘었다. 한나절에 세 개나 되는 볼트를 만든 것이다. 실력이 쑥쑥 늘어나니 만드는 재미도 있었다.


“장춘삼이. 너무 심하게 해먹지 마. 적당히 해. 상련쯤 되는 조직이 농민들 등쳐먹어야 되겠어?”


“저야 항상 계월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숨기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말은 잘하지.”


“정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


“이건 다음에 깜짝 놀래드리려고 한 건데, 사실 거기에는···”


"음. 선물은 됐고."


"네? 아니 일단 들어보시면..."


"그거말고. 석벽에 고압선이나 좀 설치해 줘."


"고압선요?"


"전력이 남아 돌잖아. 혹시 몬스터 놈들이 벽을 넘어올지도 모르니 이참에 고압선을 설치하자고."


"그거야 뭐. 어렵지 않은데요. 위쪽에만 고압전류가 흐르면 석벽을 무너뜨리고 들어오는 놈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텐데요."


"그렇다고 전체를 다 두를 순 없잖아."


"이건 어떻습니까? 석벽 옆에 쇠기둥을 몇 개 박는 거죠. 그리고 쇠기둥에다가 여기 이런 걸 설치하는 거죠."


장춘삼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하나의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 영상 안에 있는 장치는 동석의 마음에 쏙 들었다.


"좋아. 아주 좋아. 그걸로 하지. 그리고 하나 더. VR 시스템 센터 옆에 쉘터같은 것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쉘터요?"


"만에 하나, 마을이 위험해졌을 때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넉넉히 백 명쯤 수용할 수 있는 규모면 좋겠어."


"네. 뭐 그것도 어렵지 않습니다만."


장춘삼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동석이 피식 웃으며 준비한 선물이 뭐냐고 물었다.


장춘삼의 말이 이어지고 동석이 놀란 눈으로 장춘삼을 바라보았다. 장춘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


싹둑.


가위질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긴 천이 조각조각 갈라졌다. 오늘은 태양광 시설의 준공식이 있는 날. 이희연과 동석을 필두로 마을을 이끄는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테이프 절단식을 진행했다. 이희연이 조각난 테이프를 들고 이경천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딸칵.


이경천이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켰다. 독수리가 눈을 떴다. 정말로 눈을 떴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두 개의 눈은 환하게 빛을 뿜었다.


우우우웅!


부드러운 소음과 함께 웅크린 독수리가 기지개를 켜고, 날개를 들어 올렸다.


촤르륵.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펼쳐지고 수많은 모듈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동시에 태양을 향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장관이었다.


우와아!


짝짝짝.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와··· 멋지다.”


“참말로 이것이 태양광이여?”


“세상 참 좋아졌네. 우와!”


동석과 희연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좌중의 반응이 기꺼웠다.


“정말 멋지네요. 이건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이희연이 독수리 조형물을 눈에 담으며 감탄했다.


“상상했던 모습 이상이네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비싼 이유가 있었네요. 하기를 잘 했습니다. 천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처..천명이요?”


“네. 천명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얼마든지 늘어나도 전력 수급에 지장이 없습니다.”


“허. 거기까지 내다보셨습니까? 잘하셨습니다. 조만간 아이들을 더 데려올 예정인데, 아무렴! 그 정도는 되어야지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동석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되었다. 굳이 나서서 이희연의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은 물론 없었다.


“이장님. 우리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습니다.”


“하하. 많이 벌어야지요. 쓸 곳이 자꾸 생기네요. 할부도 갚아야 하고요.”


“VR 시스템 말씀이군요.”


“네. 할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한두 푼도 아니고 3천 골드라니요.”


이희연은 평생 빚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왔다. 난데없이 발생한 3천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부채에 어깨가 무거웠다. 동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별일 없으면 무난히 갚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건 꼭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알아보니 조금 특별한 기능이 있더라고요. 아주 유용한 기능이.”


“어떤 기능 말씀입니까?”


“다음에 직접 경험해보시지요. 이장님도 경험해 보시면 3천 골드가 아깝다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희연은 조바심이 났지만 더 묻지 않았다. 동석은 태양을 향해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독수리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계월리에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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