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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19.10.01 20:45
최근연재일 :
2019.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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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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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5화

DUMMY

수호와 수하가 짐을 들고 씻고 정리를 위해 2층으로 올라간 후.


“크흠... 우리 막둥이 알고 보니 남자네.”


한수용은 ‘그런데 조금 너무 어려보이긴 하더라...’는 사족은 붙이지 않았다. 어차피 수용에게는 10살 차이가 나는 한수호도 충분히 어렸으니까.


“오빠가 보기에는 어때? 예쁘긴 하지?”


수연에게 중요한 건 막둥이의 여자 친구(?)에 대한 감상.


“어... 굳이 따지자면?”


아직 너무 어려 보여서 예쁘다 아니다 말하기에도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예쁘기는 참 예뻤다.


“아니야! 예뽀! 공듀님이야!”


다만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어른들과는 달리 어린 서윤은 직설적으로 솔직했다.


“응? 윤아 눈에는 어땠어?”

“공듀님! 완전 예뻐! 꼬모보다 이~~~만끔 더 예뻐!”


참고로 ‘꼬모’라는 캐릭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호의 누나인 한수연 고모를 일컫는 말이었다.


“......”


잠깐 배신감에 사로잡힌 한수연.

얼마 전까지는 엄마 다음으로 내가 제일 예쁘다고 했었잖아?


“헤헤헤.”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한다며 묘한 자부심이 있었던 한수연은 서윤의 해맑은 웃음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공주님 맞네... 칫.”

“괜차나~ 꼬모도 예뽀.”

“아 예~. 감사합니다.”


수연은 장난스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천만에여.”


그리고 능청스런 서윤의 대답에 한수연마저도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푸하하하하!”

“호호호호호!”

“큭큭큭큭큭!”


그렇게 시끌벅적한 가족들 사이로 옷을 갈아입은 수호와 수하가 다시 내려왔다.


“밤중에 뭐 그렇게 재미들이 있어? 다들 안자?”

“자야지.”

“응. 우리도 인사하고 자러 갈려고.”


그런데 오늘은 세 남매가 모두 집에 있으므로 당장에 수호의 집에 남는 방은 없었다.


“자, 자러 간다고...?”


수연이 뭘 잘못 들었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왜?”

“너 지금... 방금...”

“뭐가?”

“너는 거실에서 자야지? 응? 아니면 엄마 아빠랑 같이 안방에서 자던가. 맞지?”


그렇게 수연은 수호가 말을 잘못 했을 거라 믿었다.


“아니, 그냥 우리 같이 자ㄷ...”


수호는 아무 생각없이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여기가 판타지 삼국지 세상이었으면 같이 자도 괜찮았을 텐데...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무서워서 수호는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그럼 이제 모두 자러 갈까?”


이미 밤도 많이 늦은 시간.

어차피 두 사람이 씻고 나온 순간에 바로 인사만 하고 자러가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아직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럼 서윤아~! 이모 잘 자세요 해.”


다만 5살 서윤이만 합의가 되지 않았다.


“으아아앙! 시러어~ 윤이는 공듀님하고 잘 거야!”

“어머? 서윤이 너! 누가 떼쓰래.”

“시러어!”

“한서윤! 엄마 화낸다!”

“아아! 윤이 시러! 공듀님! 공듀니이임!”


마치 악당의 손에서 구해달라는 것처럼 애타게 수하를 찾는 서윤의 목소리에 엄마 유지애만을 빼고 모두들 빵 터져버렸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애절하게 우는 서윤의 엄마만 난처할 뿐.


“흐아아앙! 윤이! 공듀님! 흐아앙!”


아무튼 독립투사 같은 서윤의 울음소리에 수하가 슬쩍 나섰다.

수하는 18살의 대한민국 소녀 이전에 28살의 중 대륙의 트롤 마법사 양수였으니까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가 있었다. 부모를 잃어서, 배가 고파서, 아파서, 무섭고 슬퍼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은 일.


“어... 저기, 언니... 제가 서윤이 데리고 자도 될까요?”

“네?”

“저 아기들 좋아하거든요. 헤헤. 언니만 괜찮으시면 제가 데리고 잘게요.”

“아, 아니에요.”

“헤헤, 정말 괜찮아요. 저 아기들 참 좋아하거든요. 정말요. 그리고 혼자 자기 무섭기도 하고요.”


수하가 슬쩍 수호에게 눈치를 줬다.

지원사격을 해달라는 말.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을까?


‘어머? 애를 가지고 싶다고?’

‘애가 애를...?’

‘혼자 자기 무섭다면서 왜 수호를 봐?’

‘아니... 혹시 설마 벌써 사고 친 건...’


아무튼 그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 없는 수호가 나서서 말을 했다.


“그래요. 형수님, 얘 애도 잘 봐요. 적어도 애기한테는 화 안 낼 걸요? 그리고 잘 때 몸부림 안 치고. 아... 좀 코는 골던가? 뭐 피곤하면 골기는 한데... 괜찮아요. 그리고 애가 좀 밋밋해서 그렇... 억!”


다급한 정수하가 발을 콱 밟았다.


‘몸부림을 안 쳐?’

‘코를 곤다면 같이 잠을 잤단?’

‘밋밋? 뭐가?’

‘이 놈 자식이 벌써?’

‘피곤? 설마 쟤들 벌써 그렇고 그런?’

‘신고해야 하나? 내 동생이... 우리 막둥이가...’


그리고 그런 묘한 분위기를 다행히 5살 한서윤이 살려냈다. 서윤은 엄마의 품을 탈출해서 도도도 달려와 덥석 수하 공주님의 품에 안겨버렸다. 갑작스런 서윤의 몸통 박치기에 곤란했던 수하는 동앗줄을 쥐어진 느낌으로 와락 안았다.


“공듀님! 헤헤헤!”

“으응. 서윤아, 이모랑 같이 잘까?”

“네!”


사람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서윤!”


다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유지애가 딸을 불러봤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이었다.

원래 한 씨 집안 고집이 보통이었던가?

아무튼 덕분에 수하는 좀 더 다른 면모로 수호네 집 식구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가 있었다. 원래 배우자감으로는 가정적인 매력도 필수. 특히나 아이가 잘 따르는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좋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럼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늦은 밤에 갑작스레 찾아왔는데, 반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어머? 아니야~. 괜찮아.”

“허허허,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허험.”

“네. 그러면 내일 다시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올라가서 죄송합니다.”

“아유~ 별 말을 다해 정말... 어서 가봐. 윤이도 졸리고, 수하 너도 졸려 보이네. 눈치 보지 말고 푹 쉬어. 한수호! 너 뭐해? 가서 안내해야 할 거 아냐.”


수호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어? 어... 그래야지...?”


그렇지만 이상한 건 이상한 것이고 지금은 양수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재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윤아! 이모 힘드니까 일루와.”


서윤은 아직 수하에게 안겨 있었다.


“시러!”

“야 삼촌이랑 계단만 올라가자. 이리와! 얍!”


수호는 자연스럽게 수하에게서 서윤을 뺏어 안아 들었다.


“아! 시러어어!”


서윤이 아등바등 거려봤지만, 수호는 까딱 않았다.

수인족 애기들이 얼마나 힘이 좋았는데 고작 인간족 어린이 하나 감당 못할까. 특히나 표범족 수인족 축융과 호랑이족 수인족 손상향은 날 때부터 천인天人이라 정말로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으아아! 삼춘! 놔 줘어!”

“큭큭, 싫지롱~! 그리고 윤아, 우리 저기 이모랑 같이 올라갈 거야.”

“웅? 이모 아니야. 공듀님!”

“그래. 공주님. 큭, 아무튼 얌전히 가야 예쁜 아기지?”

“공듀님도 같이 가?”

“응. 당연하지.”

“알았떠. 윤이 예쁜 아기 할 거야.”


수호가 먼저 서윤을 안아들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고, 수하는 뒤에서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를 한 후에 따라 올라갔다.


“엄마~ 안뇽~!”


서윤이가 해맑게 손을 흔드는 사이에 남겨진 가족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와... 뭐야 이게...”

“어... 쟤들 애 잘 보네...”

“그, 그러게... 원래 수호가 서윤이 저렇게 잘 봤었나? 이상하다.”

“그, 그렇지? 분명 얼마 전에 설날에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수하의 등장도 충격적인데다가 막둥이의 낯선 변화까지, 가족들은 당연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 *



수호의 방은 정갈하고 깔끔했다.

침대와 옷장, 책장 하나, 책상과 의자, 컴퓨터, 창문에는 심플한 남색 암막커튼이 전부였다.

딱히 남자의 방에 또 뭐가 필요하겠냐마는.


“자~ 서윤이는 여기 누울까?”


수하가 침대를 가리켰다.


“네! 공듀님!”


서윤이 도도도 달려서 침대로 폴짝 뛰어 올라 누웠다. 서윤이를 재우느라 매일 밤 고생하는 유지애가 본다면 기가 찰 노릇이리라.


“공듀님은 여기! 여기!”


서윤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수하를 불렀다.


“큭큭, 서윤아~ 삼촌은?”

“삼춘은 가!”

“헐! 한서윤! 너 안고오기는 삼촌이 안고 왔는데 이럴 거야?”

“윤이는 공듀님이랑 잘꼬야! 삼춘은 빨리 가!”


삼촌인 나도 이리 배신감이 드는데 그 부모는 어땠을까? 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묘한 배신감에 어린 조카를 한 번 째려봤다.


“킥킥. 와~ 오빠, 그런데 예상외로 깔끔하다.”

“무슨 의미야?”

“아니, 칭찬이잖아.”

“칭찬? 이상하게 기분 나쁘네... 도대체 뭐가 예상외야. 얌마! 나는 막 지저분할 줄 알았냐?”

“흥! 오빠는 여자한테 자꾸 인마라고 할 거야? 완전 저질.”

“저, 저질? 너 저질이랑 뜻은 알고...”


다행히 두 사람의 투닥거림은 서윤의 앙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후우, 할 말이 많은데... 내일 합시다. 알았지?”

“응. 알았어.”

“너 불 끄는 법은... 아... 알겠네.”

“삼춘 잘 가!”

“아니, 이때는 잘 자라고 해야지.”

“응. 삼춘 잘 자!”

“참 나... 갑자기 말 엄청 잘 듣네. 그래. 서윤이도 잘 자라. 아! 그리고 수리 너 혹시 윤이 때문에 문제 생기면 내 폰으로 연락해. 알았지?”

“응. 걱정 마.”


어차피 요새는 같이 따라만 가주면 화장실도 가릴 수 있고, 2층에도 화장실이 있으니 똑똑한 양수가 알아서 할 터였다.


“그럼... 아침에 보자.”

“응. 오빠두.”

“그래... 흐흐, 푹 자.”


두 사람은 다 부서진 집이나 동굴이나 마물의 둥지에서도 막 잠을 자던 것에 비해서 이렇게 안전하고 안락한 곳에서 취침 전 인사를 나누는 것이 조금 어색했다.


“헤헤헤. 오빠 잘 자.”

“흐흐흐. 그래. 너두.”

“히히히. 서윤이도 잘 자!”


비록 그 내막을 모르는 서윤이 끼어들어 웃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두 사람에게는 모두 우스운 일이었다.


‘이게 왜 이렇게 웃기지? 그나저나 수리가 우리 조카랑도 잘 지내서 다행이다. 야아... 우리 양수리 많이 컸네?’


‘나도 오빠랑 이런 아이를 낳는다면...? 어머어머... 꺅!’


물론 아직은 각자의 속마음은 달랐다.



* * *



수호의 가족들은 이제 모두 자러가자고 했지만 얌전히 자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25세까지 모태솔로인 집안의 귀염둥이 막둥이가 하루아침에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것도 한 달 넘게 갑자기 무기력으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심지어 그 소녀가 상당한 미모에 아직은 18살의 어린 소녀라면? 게다가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는 흡사 오랜 연인을 지나 심지어 신혼부부 같은 모습이라면...

충격?

압도적인 충격이었다.

그런 상황에 과연 막둥이 러버인 엄마와 형, 누나, 형수님과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엄마... 나 꿈은 아니지?”


이집에서 막둥이 사랑으로는 첫째가라면 진짜 서러워 할 한수연이 침묵을 깨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얘는...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윤이도 데리고 올라갔으니 막 이상한 짓은 안 하겠지?”


엄마 이미연이 토스를 받았고.


“이상한 짓? 뭐?”


첫째이자 든든한 장남 한수용이 솔깃해서 반응했다.


“어머... 얘 좀 봐. 너는 꼭 말로 해야 하니.”

“아니! 그럼 지금 둘이... 악!”

“여, 여보! 쉿!”

“아... 미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갑자기 눈치 없어진 한수용을 아내 유지애가 컨트롤 하는 동안에 다시 한수연이 턴을 잡았다.


“아 거 참. 이봐요. 오빠는 좀 낄끼빠빠 좀 하라고. 그런데 진짜 웬일이래. 우리 막둥이가 이럴 줄이야. 엄마는 진짜 몰랐어?”

“응. 전혀...”

“와 우리 막둥이가 이런 구석이 다 있었네.”

“그러게 나두 막 배신감 들고 그런다. 저 눔 시키, 엄마를 감쪽같이 속이고 말이야.”

“진짜... 대박. 그런데 엄마... 아, 아니야.”


수연은 잽싸게 자신의 말을 끊었다.

어쩌다보니 쟤네들이 어디까지 진도를 뺐을지 궁금해졌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상황에서는 불건전한 주제였다.


“그런데 뭐...? 왜?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냐 아냐. 아 맞다. 그런데 서윤이가 저러는 거 나 처음 봐. 언니, 그렇죠?”

“네. 아가씨... 진짜... 저도 서윤이가 저런 모습 하는 건 처음이에요. 어린이 집 선생님들도 서윤이가 고집은 조금 있어도 말은 잘 듣는다고 했었는데요.”

“그렇지? 아니, 아까도 딱 보자마자 공주님, 공주님 하면서... 와... 나는 우리 딸랭이가 그렇게 인싸인줄은 처음 알았다니까.”

“그러게... 그런데 윤이가 좋아하면 나쁜 애는 아닌 거 같아. 그치?”

“응. 우리 윤이가 또...”


그렇게 수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수호가 털레털레 걸어 내려왔다.


“......”


일제히 침묵 마법에라도 걸린 듯 조용한 가족들을 향해 수호는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까는 시끌벅적 웃더니 이번에는 조용하네?


“응? 뭐해? 자러들 안 가?”


너 같으면 자러 갈 수 있겠니?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수호는 그 무언의 메시지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양수를 만나고 다른 이들의 안녕을 확인한 수호의 머릿속은 현재 행복 반에 양수의 수명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나머지 반을 꽉 채우고 있었기에 너무나도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의 수호는 이 정도까지 눈치가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른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눈치를 차릴 수가 없었다.


“뭐야~? 설마 손님 왔다고 내외하는 거야?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내 동생이라 생각하고 편히 생각해. 아! 엄마, 나 내일 맛있는 거 좀 해줘. 우리 닭고기 좀 있나? 닭볶음탕 안 돼? 양... 아니, 수하! 그래. 우리 수하, 쟤 좀 잘 먹여야 할 것 같은데... 응? 아니면 내일 마트 문 여나?”


안 그래도 타오르던 장작에 수호가 기름을 끼얹었다. 수호는 전혀 의도치 않았지만 수호의 발언 하나 하나가 휘발유 못지않은 발화성 소재였다.


‘우리 수하?’


언제부터 다른 사람에게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니? 참다못한 한수연이 출동했다.


“억... 누나 왜?”

“쉿! 2층에 들릴라... 막둥이 너~.”

“응? 왜?”

“너 진짜 그 아가씨랑 무슨 사이야.”

“엥? 무슨 사이기는... 말했잖아. 그냥... 어... 오빠 동생 사이인데?”

“오빠~ 동~생?”

“응. 리얼.”

“흥흥. 오빠? 그렇지. 오빠가 자기되고, 자기가 아빠 되고... 아주 그냥 좋으시겠슴다.”

“아니! 뭔 소리야.”

“야! 뭔 소리긴. 누나가 인생의 진리를 얘기하고 있는데... 봐. 봐봐!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수호는 그제야 다른 가족들을 쳐다보았다.

억? 다들 왜?

야심한 밤에 졸리지도 않는지 모두들 밤하늘의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 아니라고!”


말이 나온 김에 딸이 깔아준 길에 이미연도 한 발을 내딛었다.


“야! 수호 너~! 진짜 사고 친 건 아니지?”

“사, 사고?”

“그래. 혹시 막! 어?! 그런 거면 미리 말해. 나중에 돼서 말하면 너 진짜 혼난다.”

“사, 사고...?”


사고가 마비된 수호를 상대로 한수연이 냉큼 말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래. 나 조카 새로... 어머?”


혹시 지금 이 사람들이 임신, 아니, 나를 인신공격하는 건가? 수호의 사고가 다시 삐거덕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나를...!”


다만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내려던 수호의 말에 앞서 이미연이 먼저 허락을 해버렸다.


“됐어! 아무튼 엄마는 괜찮아.”


아니, 뭘 괜찮아? 겨우 사고가 수습되는 도중에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흠... 남자라면 책임질 줄도 알아야지.”


게다가 집에서 과묵 포지션을 맡고 있던 부친 한동욱도 갑자기 허락을 해버렸고.


“막둥, 누나는 알지? 항상 네 편이야. 그러니까 믿을게.”


그런데 뭘 믿는다는 거지?


“얌마... 크흠... 그 저번에 결혼을 늦게 하라는 말은 취소할... 악.”

“당신은 그 말이 왜 여기서 나와요.”

“그래! 오빠는 좀 빠져!”


아니, 결, 결, 결혼? 수호의 머릿속이 낯선 단어에 팽글팽글 돌아갔다. 뭐야? 지금 나랑 양수랑 결혼 어쩌고저쩌고 한 거야?


“아... 아하하.”


그렇게 사고가 마비된 한수호는 어이가 없어서 실없이 웃고 말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일까?

다만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믿고 보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 되는 법. 수호가 어이없어 웃는 그 모습이 다른 가족들에게는 행복한 얼굴에 부끄러워 웃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었다.


“아, 아니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라고!”


그렇게 아래에서 수호가 열심히 수하와의 사이를 부인하는 동안에 수하에게 딱 붙어서 재잘재잘 거리던 서윤이 잠이 들었고, 수하는 그제야 깜깜한 수호의 방 침대위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사실 양수도 28년 모태솔로 외길이니 그런 오해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그렇지만 수하는 수호와는 달랐다.

비록 정사와 연의에서의 트롤링으로 트롤 종족이 되었지만, 그것이 수호처럼 ‘눈없찐(*눈치 없는 찐따)’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어땠을까? 나 그래도 예쁘게 보인 거 맞겠지?’


수하는 수호의 가족들의 반응을 떠올렸다.

원래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예민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으면 더 잘 알고 싶고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수호의 일거수일투족 못지않게 수하는 수호의 가족들의 반응도 유심히 살폈었다.


“나쁘진... 않았지?”


수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잘 하고 있는 거 맞겠지? 후아... 제발 잘 됐으면... 후우.”


그리고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하는 뒤늦게야 자기가 어디에 누워있는지 깨달았다.


‘앗... 맞다. 여기 오빠 침대구나?’


그래서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아래층과는 달리 수하는 아주 조용히 굳어버렸다.


쩌저저적.


마치 물 속성 빙결 마법에 걸린 듯이 수하는 딱딱하게 굳은 채로 조용히 깊게 심호흡만 반복했다.

냄새가 났다.

수호의 침대에서는 낯선 섬유유연제의 향기와 함께 익숙한 한수호의 냄새가 났다.


‘이거... 오빠 냄새다.’


참 익숙한 냄새였다.

수호의 등에 업혔을 때도, 옆에 함께 잠이 들었을 때도, 장난을 치느라 목덜미를 깨물었을 때도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많이 긴장하고 날이 서 있었던 수하였다. 비록 정수하의 기억도 가지고 있긴 했지만, 3년 이란 시간동안 병상에 누워있었기에 양수에게나 정수하에게나 지금은 너무나 낯선 세상이었다. 그리고 수호를 찾지 못해 불안한 세상이었었다.


“킁킁... 좋다. 오빠 냄새.”


불안이 사르르 사라지고 있었다.

수호의 냄새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이 익숙하고 편안한 수호의 냄새에 수하도 스르르 편히 잠이 들었다.


‘흥! 큭큭, 오빠는 내 꼬야... 흠냐.’


편안히 잠든 수하는 좋은 꿈을 꾸는지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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