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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19.10.01 20:45
최근연재일 :
2019.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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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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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DUMMY

조연출 이형식이 급하게 주태석 PD를 찾았다.


“PD님! PD님!”

“왜? 왜 촬영장에 소란이야. 뭔데?”

“말! 말!”

“뭐?”

“허억허억... 말이 난동을 부려서 스턴트 배우 하나가 크게 다쳤습니다.”


낙마사고落馬事故.

현대극에 비해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사극에서는 비교적 흔한 사고였다. 그리고 반드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 중에 하나였다. 보통 낙마사고는 다른 사고에 비해서 부상 정도가 중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뭐?”


PD는 촬영현장의 총 책임자.

주태석은 허겁지겁 달려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 어~! 위, 위험...?!”


그때 주태석 PD가 발견한 이가 바로 한수호였다.



* * *



수호에게 말을 다루는 것은 참으로 익숙한 일이었다.


“워~! 괜찮아. 뭐 때문에 그렇게 화났어?”


수호는 난동을 부리는 말의 정면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말했다.

마치 안부 인사라도 물어보듯 평안했다.

물론 말보다는 켄타우로스나 늑대, 드레이크를 좀 더 많이 타봤고, 말을 진정시키는 것보다는 수인족 아이들을 재우는 것을 좀 더 많이 하긴 했었지만 자신 있었다.

어차피 고작 해봐야 그냥 말 아닌가? 양수의 표현을 빌자면 망나니 망아지 같은 마초를 다루는 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히히히히힝!”


말은 덩치와는 달리 매우 예민한 동물.

바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은 그 동안 유순하다는 평을 받아 이렇게 일찍 촬영현장에 투입되었지만, 다른 말들보다 무던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겁이 많았을 뿐이었다. 그 눈치로 조교사들의 말을 잘 들었을 뿐 이렇게 돌발 상황에서는 도리어 통제에 따르지 않는 난폭한 말이 되어버렸다.


“위, 위험해요!”


말은 도리어 정면을 잘 보지 못하므로 수호는 비스듬히 말이 자신을 잘 보게끔 얼굴을 향해 걸어갔다.


“히히힝!”


마치 “오지 마!”라고 하는 듯 말이 펄쩍 앞 다리를 들었다가 바닥을 쿵 찍었지만, 수호는 가볍게 그걸 무시하고 가까이 한 걸음 더 걸어갔다. 어느새 수호는 손만 뻗으면 말의 머리에 닿을 거리까지 이동했다. 그 말은 반대로 말이 다리에 수호가 맞을 수도 있다는 말.


“엇! 저기요! 위험하다니까!”

“저, 저 사람 뭐야?”

“누구야? 처음 보는데?”


불안한 목소리와 고함 소리가 도리어 더 말을 자극하고 있단 걸 모르고 있을까? 수호는 여유롭게 손을 들어 손바닥을 말의 눈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보이고는 천천히 말을 불렀다.


“바람이라고 하는 구나. 좋은 이름이네. 괜찮아.”


그리고 천천히 걸어간 수호는 말의 콧잔등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회복.’


꼭 아픈 것을 치유해주려고 사용했다기보다는 빛 속성의 마력의 가진 따스함을 전하고파 사용한 스킬이었다.


“히히힝.”


말이 크게 울었다.


“그래. 그래. 아이 착하다.”


수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머리와 갈기 부분을 툭툭 쓰다듬어주며 말을 달랬다.


“푸히히힝~!”


그리고 놀랍게도 말이 진정했고, 그제야 놀랐던 사람들도 같이 진정하여 말을 잊고 조용해졌다.


“응. 보자. 아까 놀랐더니 어디 아픈데 없어?”

“푸히잉~!”

“응. 일단 보기만 하자. 괜찮아.”


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발의 부상.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게끔 말의 다리는 튼튼하면서도 은근히 예민한 부위였다.

수호는 자연스럽게 말의 발을 하나씩 들어가며 발이 괜찮은지 확인했고, 오늘 처음 수호와 만난 말도 자연스레 발을 하나씩 들어주면서 협조했다.


“어... 어... 어떻게? 아니, 누구세요?”


대여업체에서 나온 관리인이 더듬거리며 수호의 정체를 물었다.


“네? 아. 저... 매니저인데요? 민아 역에 정수리, 아니, 정수하 배우 매니저입니다. 아하하.”


그리고 그때야 주태석 PD가 수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 * *



수호에게 감사를 표한 후에 주태석 PD는 양해를 구하고 연출진 회의를 거쳤다.


“하아...”


다행히 병원에 이송된 스턴트 배우는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세골절이 있어서 지금 당장 연기를 하는 것은 무리. 그렇다면 대체 배우를 구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하필 이번 시즌에 사극 배경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많이 제작 중이라서 능숙하게 고난이도의 승마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스턴트 배우가 없었다.


“거기 대여업체에는 사람이 없답니까?”

“하아... 오늘 관리자로 온 사람도 부상으로 은퇴해서 말을 탈 수는 없고...”


그리고 이번에는 승마 실력뿐만 아니라 스턴트 실력도 동시에 필요했기에 더더욱 대체 인력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미치겠네...”


드라마 촬영장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

‘망자의 시간’의 경우에는 아직 방영일자는 여유가 있지만 문제는 제작비. 차라리 다른 신을 당겨 촬영할 수 있는 일정이면 모를까 여기 야외촬영장은 초반부 신들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수백 명이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루가 딜레이되는 것만으로도 수천만 원의 손해는 기본이었다.


그래서 연출진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버렸다.


“응? 무슨 일인데요?”


연출진의 소란은 연기를 준비 중이던 배우들에게도 전해졌고, 분장실에서 양반가의 딸 민아로 재탄생 중이던 수하와 수연에게도 전해졌다. 물론 한수호가 말의 난동을 제압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수, 수호가요?”


수연은 놀랐고.


“아... 처음에 떨어진 사람은 괜찮으시대요?”


수하는 다른 사람을 먼저 걱정했다.

사실 이미지 관리.

그렇게 수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켄타우로스도 후리는(?) 남자가 고작 지구의 말에 다칠까. 그리고 처음 지구에 갓 도착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마피아 게임을 거치며 [무력]이 50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수하야...?”


수연은 얼굴로서 어떻게 수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다.


“헤헤, 언니~ 오빠는 괜찮아요.”

“......”

“수호 오라버니가 말을 얼마나 잘 다루시는데요.”

“어... 걔가?”

“네.”

“걔가 어디서 말을 타봤어...?”

“아... 그, 그게...”


다행히 말문이 막혀버린 수하를 구원해준 것은 주태석 PD였다.



* * *



한수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주태석의 뒤를 따라 촬영장 외곽으로 왔다.


따각따각.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동네 산보를 나온 양 한가롭게 말에 올라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이는 정말 자신의 동생 한수호가 맞았다.


‘리얼루?’


말을 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수연은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절친이자 대표님인 김소현 대표도 과거에 낙마사고로 크게 다쳤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수호의 모습은?


“워~. 바람아 여기서 스탑. 오케이~ 잘 했어.”


마치 말 주인 같았다.

수호는 수연이 과거에 승마클럽에 따라가서 보았던 승마클럽의 코치보다 더 자연스럽게 말을 다루고 있었다. 보통의 배우들이 보일 법한 경직된 자세는 하나도 없었고, 여유가 가득한 모습은 도리어 땅 위보다 더 편해보일 정도였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어? 아... 얘가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아서... 그냥 바람 좀 쐬어주고 왔어. 바람이 관리자한테는 허락 받았는데? 아까 PD님도 허락하셨고. 맞죠?”

“네. 허허허.”


그래서 주태석 PD가 수연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주태석은 수호와 수연에게 제안을 했다. 아까 다친 배우를 대신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었다.


“네?!”

“네?!”


대여업체의 직원들과 스턴트 감독과 사극을 다수 경험한 베테랑 촬영 감독이 모두 하나같이 평가했다. 낙마사고로 다친 스턴트 배우보다 한수호의 말 다루는 실력이 더 낫다고. 보조기구 없이 훌쩍 말에 타 오르는 동작부터 시작하여 승마 중에 말의 뒷머리를 긁어주는 것까지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수호가 훨씬 더 여유롭고 잘 해보였다.


“하하하. 뭘 놀라십니까. 제가 수하 씨에게 들었는데 수호 씨가 꽤나 운동도 잘 하신다고...”

“네? PD님, 얘가요?”

“모르셨어요?”

“어... 야! 막둥아? 네가 언제부터 운동을 했다고 그래!”


수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10년 전 판타지 삼국지 세상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유도선출인 수용의 잔소리에도 항상 도망만 다녔었기 때문이었다.


“크흠... 누나 몰래 했지... 흠흠. PD님 왜요? 혹시... 저 뭐 필요해요?”


수호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네.”

“진짜로요?”

“네. 혹시 위험하다고 판단되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수호 씨의 의향만 여쭤보겠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수호는 거절하려고 했다.

방송을 타는 것은 부담스러웠으니까.

다만 수연에게 드라마 제작의 사정을 듣고, 수하의 촬영까지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얼굴도 별로 안 나오고 대사도 딱히 없고... 전령이야 그냥 딱히 어려울 건 없는데...’


어려운 것이라면 모를까 수호에게는 숨 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작들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는 돈을 벌기 위해 종합격투기까지 할 생각을 품지 않았었던가. 상체 노출도 각오했었는데 고작 드라마 엑스트라 출연도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출연료도 성의껏 많이 챙겨준다고 했으니까 용돈 벌이로 나쁠 것 같진 않았다.


“뭐... 그럼 할게요.”

“뭐?! 진짜?!”

“하하하. 고맙습니다. 일단 그러면 수호 씨는 여기 조연출이 안내해줄 겁니다. 일정이 바빠서.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안 그래도 일정이 바쁜 주태석 PD는 함박웃음과 함께 서둘러 총총 사라졌다.


“앗! PD님! 잠깐만... 아... 수호 너 어떻게...”


그리고 할 말이 많은 수연을 남겨두고 수호도 조연출을 따라 스턴트 감독에게로 이동했다.



* * *



스턴트 감독이자 무술 감독인 정용철은 깜짝 놀랐다.


‘이 친구 말만 기가 막히게 잘 타는 것이 아니라... 몸 쓰는 법도 제대로 알고 있잖아?’


다만 실전 무술로서의 동작과 촬영을 위한 동작은 달랐으므로 정용철은 급하게 어떤 동작들을 펼쳐야 하는지를 위주로 설명했다.


“이거 이렇게 하면 되죠?”

“네. 그런데 정말 뭐하시는 분이세요?”

“매니저인데요.”

“아니, 그 이전에요.”

“어... 대학생인데요. 그리고... 게임회사 대표입니다. 흐흐.”


한때는 웹소설 작가이기도 했고, 실제 직업은 현직 [기획자]이자 전직 [치유사]이기도 했다. 물론 전자는 굳이 말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후자의 직업들은 비밀이라 말을 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하... 진짜 세상은 넓다니까... 어디서 이런 인재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인재가 이러할까? 물론 정용철의 눈에 한수호는 자신도 범접하기 힘든 무술 고수쯤으로 추정되니 이해를 못할 법도 아니지만, 실은 한수호는 남들에게 배운 경험이 참 많았다. 스승만 해도 마초부터 시작해서, 여포, 관우, 장비, 유비, 조운, 손책... 그리고 양수까지. 수많은 스승들에게 각자의 한수를 전수받았던 애제자였기에 배우고 익히는 것도 수호에게는 나름 익숙한 일이었다.


“아 감독님. 그런데 이 동작은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심지어 용철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위험하고 힘든 동작이라 감히 짤 수 없는 동선과 동작을 수호는 자처했다.


“허어... 그거 너무 위험...”

“아뇨. 할 수 있는데요. 어렵지 않아요.”


[무력]이라 함은 힘과 민첩을 전반적으로 상승시켜주는 것이고 한수호는 10년을 전장에서 굴렀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좀비 월드에서 몸도 거하게 풀어두었기에 이 정도 동작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수호가 전혀 어렵지 않다고 가볍게 얘기한 동작들은...


“네? 설마 그게 되겠어요?”

“아니,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제가 한 번 얘기해보겠습니다.”


주태석 PD는 놀이동산에서의 인연도 있고 갑자기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기에 수호가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네? 진짜 별 거 아닌데요?”

“아니, 수호 씨.”

“아~ 그러면 제가 한 번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보고 결정하세요.”


비록 [매력]은 10일 뿐이지만 수호의 말은 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이 바닥에 발을 담근 자 중에 PD 말을 개똥으로 듣는 사람도 처음이었고. 주태석 PD가 어버버 하는 동안에 수호는 세팅을 끝마쳤다.


“자 바람아. 너는 여기서 저까지 쭉 달려가는 거야. 알았지?”

“히히힝~!”

“아이구 착하다. 그럼 한 번 달려 보자.”


뒤늦게야 주태석이 말리려 했지만 정용철 무술감독의 얼굴을 보고 참았다.


“감독님.”

“네.”

“진짜 안전한 거 맞습니까?”

“허허허. 걱정 마시고 지켜보시죠. 제가 지금까지 이쪽 바닥에서 일을 하면서 처음 보는 천재입니다.”


그제야 주태석은 살짝 안심하면서도 놀랐다. 정용철 무술감독이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탑스타도 못 하는 이에게는 잘 한다고 칭찬을 한 적이 없는 정용철 감독이었고, 항상 자신의 팀에 매우 엄격한 것을 알고 있기에 주태석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요?”

“네.”

“저 친구가요?”

“네. 제가 지금껏 본 이들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근력, 유연성, 민첩성, 담력과 자신감. 그리고 특히나...”

“......”

“습득력 만큼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태권도 국가 대표들도 제가 상대해본 적이 있잖습니까. 그 사람들보다 수호 군이 더 낫습니다. 확실히요. 무술도 상당히 실력자일 듯 하고요. 일단 저보다는 고수입니다.”


주태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저 친구도 뭔가 특별한 점이 있으니까 수하 양이 그렇게 좋아하는 거였겠지... 그럼 수하 양이 얼굴 천재에 분위기 천재이면... 수호 군은 무술 천재 쯤 되려나?’


갑자기 생뚱맞게 여포와 초선이 생각난 주태석은 자신의 유치한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 동안.


한수호는 말에 올라타 스턴트를 할 준비를 끝마쳤다.



* * *



카메라 기사 유지환은 침을 꼴깍 삼키며 영상을 돌려보는 중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이걸 맨몸으로 한 방에 해낸다고? 존나 멋있네 진짜... 대박! 머박!”


카메라 촬영 기사 중에서는 막내라서 한수호의 시범 액션 촬영을 맡은 유지환은 선배들의 짬처리가 감사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얌마... 촬영장에 누가 시끄럽게 떠들래.”


그리고 이때 카메라 감독들 중에서는 총책임자 촬영감독 정연복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감, 감독님.”

“야 찍어 온 거 좀 보자. 그 친구가 그렇게 대단해?”

“네? 아 넵. 여기 있습니다.”


영상 속의 사내는 말을 타고 달리더니 커다란 나뭇가지 앞에서 몸을 세웠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잡고 먼저 말만 보낸 후에 본인은 철봉에서 체조 연기를 하듯 빙글 돌더니 나뭇가지 위에 바로 섰다. 성인 남성도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굵은 나뭇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바로 서서 활을 쏘는 시늉까지 하는 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행위.


“와...”


물론 여러 장치를 더하고 CG로 떡칠이 된 현재의 액션들에 비하자면 살짝 밋밋한 영상처럼도 보이겠지만, 아무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찍은 영상이라고 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정말 대단한 스턴트 액션이었다.


“이거 진짜 네가 오늘 찍은 거 맞지?”

“네. 감독님.”

“이야... 진짜 우리나라도 참 대단해... 어디서 또 이런 인재가 툭 튀어나왔냐... 야! 이 사람 어딨어?”

“네? 왜 그러세요?”

“내 친구가 이번에 영화 찍잖아. 거기 이런 친구 필요하다고 했거든.”

“아! 혹시...”

“그래. 그 돌대가리 감독 있잖아.”


정연복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지만 듣고 있던 유지환은 입을 쩍 벌렸다. 그 돌대가리 감독이라 함은 김석도라고 두 번이나 천만 영화를 제작한 엄청 유명한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김, 김석도 감독님 영화요?”

“걔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 석두. 그 자식이 요즘 징징거리더라고. 야 아까 그 사람 어디 있어?”

“네? 아! 그 분 지금 분장실에 가 있습니다.”


출연하기로 한 이상 수호 역시 분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 *



수호는 분장을 받으러 가는 길에 수하에게 들렸다.


“앗! 수호 너!”


일단 분장을 받고 있던 수하를 대신해서 수연이 황급히 달려왔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진짜 하기로 한 거야?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지?”

“괜찮아. 그런데 수리는 분장이 참 길다?”

“원래 사극 분장이 좀 오래 걸려. 머리를 새로 해야 하니까. 아니! 너 어떻게 된 거냐고!”


수연에게는 수하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수하는 그럴 거라 생각했다.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이었기에 한수연 본인부터가 아이돌 제의를 했었지 않았던가. 보통 나쁜 의미로 쓰이긴 했지만 얼굴값이라는 단어 그대로 수하는 그럴 거라고 보였다.


그런데 한수호는?


비록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수연에게 수호는 그래도 20년 넘게 항상 지켜봐온 동생이었다. 심지어 기저귀도 갈아주었고, 목욕도 시켜주었으며, 한때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진학상담을 해준 적도 있었다.

잘 안다고 충분히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동생이 갑자기 어디서 말 타는 법은 배웠으며, 무술 감독으로부터 극찬을 받을 정도의 운동 실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수연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심지어 혹시나 동생이 군대에서 비밀 특수부대에 있었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물론 수연은 면회를 10번이나 갔었기에 그곳이 평범한 GOP 부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너 빨리 말 안 해?!”

“어... 누나 여기 다른 분들도 계신데...”


여기는 야외 촬영장의 분장을 위한 특수 차량 안. 방송국의 대기실이 아니라 수하와 수연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과 다른 연기자들도 존재했다. 수연은 움찔 눈치를 보고 급히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너 나중에 진짜 두고 봐.”


물론 수호에게 협박도 잊지는 않았다.


“언니, 죄송한데... 저 잠시만 시간 좀 낼 수 있을까요? 헤헤.”


수하는 분장사에게 공손히 양해를 구한 뒤에 수호와 잠깐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뭘 어떻게 되긴 돼. 나 무사 역 캐스팅 됨. 배우 별 거 아니네. 하긴 수리 너도 배우를 하는데 내가 못 하겠냐? 흐흐흐.”

“......”

“왱?”


너 왜 그렇게 쳐다보냐. 수하가 자신을 이성으로 좋아한다는 눈치는 없지만 수하의 기분이 좋고 나쁨은 누구보다 잘 알아차리는 수호였다. 지금의 수하는 어딘가 매우 불만스러워 보였다.


“오빠가 배우를 한다고? 설마 계속 할 거야?”

“응?”

“그때 종합격투기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배우냐고. 설마 이쪽으로 계속 하려는 건 아니지?”


수하의 불만은 자꾸 수호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 일단 도장이라도 쿡 찍어놓은 뒤라면 모를까. 지금의 수호는 관람차를 같이 타도 무덤덤한 남자라서 함부로 밖으로 내두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그래. 아니다.”

“후우... 그런데 이번에는 왜 한다고 했어?”

“야 네가 우리 누나야? 뭐 그렇게 따져. 이게 다 너 때문인데. 내가 땜빵 안 해주면 너도 일정 꼬인데. 이거 안 그래도 너 때문에 일정 빡빡하게 잡힌 거라는데 이러다가 제작일정 꼬이고 드라마 망치면 기껏 홍보하는데 효율 떨어지는 거잖아. 어?”

“......”

“들어보니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나야 어차피 너 따라온 김에 그냥 노느니 용돈 벌이라도 하는 거지 뭐. 불만 있어?”


수호가 툴툴거린 이유는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배우를 한다는 게 그렇게나 믿기 힘든 일인가? 이래서 사람은 [매력]을 찍어야 하는 법인데... 이번에도 스턴트 액션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남은 수호는 살짝 서러워졌다.


“한수호 님!”

“어? 나 찾는다. 네에~! 나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하아... 어서 가봐.”

“응. 그럼 나중에 보자. 우리 같이 연기하는 신도 있다니까. 큭큭큭.”


다른 스태프의 부름에 사라지는 수호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하는 어쩐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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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2 19.10.30 61 1 22쪽
35 35화 19.10.29 64 1 22쪽
34 34화 19.10.28 61 0 23쪽
33 33화 19.10.26 72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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