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승천의식
“좋은 아침.”
환상적인 밤 이후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녀의 실루엣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더 없을 행복이다. 존재만으로 사람을 불끈불끈하게 만들 수 있는 여인이 이젠 내 것이다.
그녀는 내가 반했던 오피스룩에 가까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였다. 옷으로 가리고 있어도 그녀의 매력은 모든 것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그 옷은 어디서 난 거야?”
“영감님을 보내는데 거지처럼 입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 라파엘이 신경을 좀 써주더라. 사람공부 많이 했던데?”
“진짜?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여기 와서 누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대화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영감님 곧 승천해, 곧 시작하니까. 빨리 먹고 나가자고.”
그녀는 미소를 띠며 아침으로 나온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음식을 받으면서 이마 위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 화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시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받아보자 그녀는 억지로 놀리듯이 말을 돌린다.
“두 명을 동시에 다루었던 사람이 이것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면 어떡해?”
“그 얘기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그리고 지금 얼굴 붉어진 게 누군데?”
“네가 뭔가 잘못할 때마다 쓸 건데? 그리고 나는 원래 빨간 얼굴이야.”
“네네. 인디언 나으리.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야.”
“약속 하는 거지? 완전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다른 여자한테 눈 안 돌리는 거지?”
이럴 때 보면 가끔은 어린아이 같을 때도 있다. 언제나 어른스럽던 그녀가 아이 같이 굴 때 가끔은 그 갭 차이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좀만 더 놀려볼까?
“기회가 없어서. 앞으로 미녀 두 명이 동시에 와서 관계를 제의하는 일이 있겠어?”
연신 되묻는 그녀를 키득거리면서 놀리자 그녀는 입을 쌜쭉쌜쭉하며 가자미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장난이야. 장난. 이미 난 지옥도래 이전부터 원했던 것을 얻었으니까. 더 원하는 것은 없어.”
그녀가 가져다 준 음식을 먹고 몸을 깔끔하게 한 후 천국에서 준 정장을 입는다. 이때까지 거렁뱅이 같던 사람이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 하는 것 같다.
이거 어떻게 읽는 거야? 기오르기오 아르마니? 유심히 꼬리표에 달린 상표를 보는 나에게 시계를 채워주며 나진이 말했다.
“인물이 사네. 인물이. 역시 옷이 날개야. 예전에 이런 양복 입어본 적 있어? 조르지오 알마니. 성공한 남자의 수트야. 천의무봉이라더니 진짜로 옷 솔기가 하나도 없네. 그리고 수트의 완성은 언제나 멋진 넥타이, 그리고 시계지.”
그녀는 내 목에 넥타이를 걸어주며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완벽해. 이제 메이크업 받으러 가자.”
“메이크업? 이 시대에 그런 것이 남아있어?”
“라파엘이 인간을 공부한답시고 뷰티 유튜버들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더라고.”
살아있을 때 받아본 적 없는 호사에 정신이 혼미하다. 화장이 끝난 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동시에 서른 명의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고 있지만 여기에 가장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고요? 동시에 어디선가는 밥을 해서 대접하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전 여행자와 젊은이들의 수호천사니까요.”
사진이라도 찍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면접용 사진을 따로 찍던가. 너무 괜찮은데. 내가 봐도 정말 잘생겼어. 이게 현대 화장기법의 힘인가.
그리고 화장을 하고 나온 나진의 얼굴은 정말인지. 이건 나만 볼 거다. 타인과 비교하는 것도 불허하는 수준의 아름다움이다. 키스하려다가 그녀의 화장이 지워질까봐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진짜 예쁘네. 그런 얼굴로 왜 일했어? 연예인 했어도 될 것 같은데.”
“다 사정이 있는 거야. 자 내 화장에 손댈 생각하지 말고 빨리 가자. 연회장으로.”
연회장은 마치 작은 무도회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제까지 다 꼬질꼬질하고 힘겹게 살아남은 것 같은 행색을 하고 있던 남루한 행색의 순례자들은 오늘은 마치 레드카펫 위의 연예인 마냥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 저게 그들의 마지막 모습일 텐데.
연단 위에서는 영감님을 비롯한 천국으로 올라가는 삼십 여명의 사람들이 서있다.
“라파엘이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구나. 어떻게 저렇게 다들 입었대?”
나와 밤을 보냈던 여인들은 속살을 간신히 가린 붉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며 무던히도 눈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옆에서 나진이 쏘아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착각이겠지. 착각이어야 할 텐데.
그들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은 영감님이다. 이때까지 덥수룩하게 길렀던 수염을 정갈하게 묶고 경건하게 있는 모습이 더 이상 그가 우리가 영감님이라고 부르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는 대검을 등에 메고 평생을 장벽을 지키며 산 노 변경백이 마치 장성하여 초급장교로 임관한 손자가 임지에 온 것을 보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손 흔들었다.
“와. 영감님 진짜 멋있는걸.”
“영감님도 우리를 보면서 그리 생각 하실 거야.”
나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닦아준다.
“그러다가 팬더 된다니까. 화장 다 번져.”
난 영감님이 탑을 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제물의 연단과도 같은 높은 곳에 영감님이 서자 승천의식이 시작된다. 영감님이 폼멜로 거대한 철문을 두드린다.
“천사의 인도도 없이 천국에 들어오려는 자가 누구인가? 신원을 밝혀라.”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깊은 곳에서의 목소리. 좌중을 압도하는 그 목소리가 감히 천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감히 없을 것이다.
“김덕배. 대지주이자 건물주, 수백의 사람을 거느리고 살았던 기업인이며 존경받는 어르신이었으나 형편없는 아버지였고 존경받지 못하는 할아버지.”
“우린 그를 모른다.”
“김덕배. 지옥의 하이랜더이며 몰렉의 추방자를 도와 악마들을 사출하고 소악마들을 참수했으며 추악공 보티크를 몰아내는데 기여한 자. 부산에서 대전까지 걸어서 순례해온 순례자.”
“우린 그를 모른다.”
영감님은 직감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가 하는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김덕배. 한낱 죄 많은 인간입니다.”
“들어오라.”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보며 웃었다.
“천국에서 보세. 기도하고 있겠네.”
그의 몸을 찬란한 광채가 휘감으며 그는 사라졌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그의 검뿐이었다. 땅에 떨어진 거대한 검. 그것이 그가 이 땅에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것이었다.
“잘 가요. 영감님. 위에서 봅시다.”
“김덕배씨는 그가 생전에 남긴 탈렌트들을 순례자#4136, 통칭 연해주 외 5명에게 남기기로 했습니다. 총 십만 칠천육백오 탈렌트입니다.”
라파엘이 안내하자 그를 따라 가서 검을 집어 들었다.
“그가 이 곳에 남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영감님이 행한 모든 선행, 검격, 그 고통스러운 모든 과정까지 내 몸에 기억처럼 깃든다. 그것은 단순한 스킬과 레벨을 찍는 화폐 탈렌트가 아니었다. 그의 인생, 지옥에서의 삶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괴로웠다. 그가 행했던 모든 행동을 겪으면서, 난 존재한 적 없는 딸과 손녀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동시에 기쁘면서 그가 안전하게 간 것에 안도했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흘러나온 물이 대지를 적셨다.
검이 부스러져 없어지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 다른 이들도 와서 나에게 손을 얹고 그 기분을 함께 공유한다.
“잘 했어. 우린 잘 해낸 거야.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어.”
눈물을 훔치며 난 고개를 끄덕인다. 나진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의 온기가 나를 위로해준다.
“여기도 나름대로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갈 길이 멀다고. 적당히 애정표현하고 가자.”
“분배하도록 하죠. 영감님이 주고가신 선물.”
그냥 탈렌트가 아니다. 영감님이 어제 저녁까지 사용했던 근력과 애환 모든 것이 담긴 것이었다. 탈렌트를 전달받은 그들도 그리 생각하는지 탈렌트를 전달받을 때마다 움찔움찔 움직였다.
한낱 죄 많은 인간 서른 명을 뒤로하고 우리는 탑을 내려온다. 다시 이곳에 들어올 수 있길 바라면서.
순례의 탑을 벗어나며 빛나는 벽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는 우리가 입고 있었던 옷이 다시 지옥에 구르기 적법한 옛날 옷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에 실소를 터트린다. 한 사람만 빼고.
“안돼애애애애애!! 아직 셀카 한 번도 못 찍었는데. 분위기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으아아악!! 최소한 경고는 해줘야지. 이건 너무 가혹하잖아. 여자한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고 사진 하나도 찍기 전에 벗겨버리는 것은! 복수하고 말테다 빌어먹을. 줬다 뺏는 것이 어디 있냐고!! 세상에 내가 이토록 아름다웠다는 것을 증명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야?!”
흥순이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너저분한 교복을 보고 울부짖는다. 나라 잃은 우국지사들도 그것보다는 덜 슬프게 울었을 것이다. 그 깊은 비탄에 모두가 그녀를 토닥이며 위로한다.
“괜찮아. 우리가 네 어여쁜 모습을 눈으로 담았잖니. 멋진 남자가 나타나면 내가 네가 아름다움을 네 안에 숨기고 있다고 증명해 줄게.”
프렌치가 잔뜩 흥분한 흥순이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 서울에 가서 서울이 언니랑 프렌치를 보내야 할 때가 올 거야. 그때 충분히 예쁜 옷이랑 입은 다음에 사진도 꼭 찍자. 올릴 인스타는 없지만.”
사진이라. 영감님의 남은 사진은 오직 부산을 벗어나면서 찍은 것뿐이었다. 때가 끼고 덥수룩한 수염. 가장 멋지게 차려입었을 때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나. 이제 그를 추억할 것은 이 사진 뿐이다.
“그 옷이 뭐라고. 저리 호들갑인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루스키는 한 모금 쭉 빨았다.
“루스키가 술과 담배를 사랑하듯 흥순이도 옷과 화장을 사랑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루스키가 나름대로 영감님을 보낸 것에 대한 추모를 하듯 흥순이는 같이 울면서 추모하는 걸지도 몰라요. 영감님을 보내서 슬퍼서 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성격이기도 하고요.”
“여자들의 세계는 불가해한 것 같군. 그걸 이해할 시간에 담배나 하나 더 피겠어.”
아쉬움과 눈물의 곡절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지옥을 걷는다. 보티크의 잔당은 위세가 한풀 꺾였는지 오히려 지옥생물들에게 사냥당하고 있다. 팔다리가 셀 수 없이 많은 시체 골렘이 보티크의 악마 하나를 사탕마냥 빨아먹는 것을 본다.
“그러게 마음을 곱게 썼어야지.”
우리는 마지막으로 순례의 탑과 이젠 완전히 보티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지옥이 되어가는 대전을 바라보았다. 이제 영감님은 없다. 정신을 차리라고 독려해줄 사람도 같이 서서 전열을 지킬 사람도 없지만 우린 애써 웃는다. 그게 영감님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 이제 우린 서울로 갑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요.”
- 작가의말
네. 다 아는 장례식 장면을 따왔습니다. 카푸친 수도회에서는 죽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한낱 죄인으로서 장지에 들어오게 한다고 하더군요. 감명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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