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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오(As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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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고양이
작품등록일 :
2019.10.04 23:51
최근연재일 :
2019.12.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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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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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프롤로그

DUMMY

[그 날 이후 난 항상 같은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선택이라는 글자의 잔혹한 이면에 대해서.]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매번 부질없는 아쉬움을 담아 중얼거릴 뿐이다.]

['그 때, 그 소년이 선택 받았더라면.']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날, 린델 외곽에서-








*프롤로그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외곽의 한 카페.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로 한창 소란스러울 때, 창가 쪽 테이블의 두 남성은 말없이 앉아있기만 했다.

일행인 듯 하나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도 또 그렇다고 나빠 보이지도 않는 그들은, 혹여 싸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


한 명은 턱을 괸 채 멍하니 창밖으로, 다른 한 명은 검은 탄산음료를 빨대로 휘저으며 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있잖아 디크, 하늘에 있는 별에는 분명 누군가가 살고 있겠지?"


뜬금없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노력일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침묵을 음료를 휘젓던 남성이 먼저 깨트렸고, 동시에 고개를 들어 상대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반짝거리는 눈빛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정작 질문을 받은 남성은 여전히 이를 무시한 채 창밖만 응시할 뿐이었다. 상대의 질문이 단순히 분위기 전환용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묻는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후자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앞에서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성을 봐온게 벌써 수 해.

그가 약간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정도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작 그런 걸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단 말이지.'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이 여유로운 시간은 하루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저 쓸데없는 질문으로 그 시간을 허비해야 하다니. 어림도 없다.


허나, 자신에게 향해있는 상대의 시선이 시간이 흐를수록 거슬리게 느껴지자, 결국 포기하고 짜증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아~ 그러니까 피엘. 넌 뭔가 집요한 구석이 있다고. 보통 대답을 안하면 적당히 넘어가지 않아?"


"어? 내 말에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기다린건데?"


"그딴 걸 왜 고민해! 바보냐 넌?"


이런 식이다.

대놓고 면박을 줘도, 그것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속을 긁는 스타일이었다.


머리가 나쁜 것도 또 그렇다고 일부러 저러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녀석의 생각은 남들과 달리 너무나도 독특했다. 수업을 받을 때도 선생님의 설명에 이러한 괴상한 질문을 했다가 혼이 난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친구들에겐 웃음거리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녀석이다.


이런 그와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은 단순히 재미와 허세 때문. 처음에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피엘에게 호기심이 생겨서였고, 이후에는 뭔가 모자라 보이는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 스스로가 돋보이는 기분이 들어 언제부턴가 함께 다니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똑똑해 보이기는커녕 이젠 나까지 바보취급 하잖아.'


문제는 몇 년을 그렇게 붙어 다녔더니 자신을 향한 주위의 시선이 녀석을 보는 것과 같아져 버렸다. 결국 그탓에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고 말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또 한번 후회를 하며, 끈질기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는 피엘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은 건데?"


한번 꽂힌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대충이라도 상대해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귀찮게 할 것이 뻔하다. 차라리 빠르게 끝내는 것이 나을 정도니까. 그러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음료를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시선을 내려보니,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는 단순한 탄산음료만이 보일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어이없는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 애들이나 먹는 탄산음료를 보면서 어떻게 그 질문에 도달할 수 있는 거냐 넌?"


"이게 어때서? 맛있기만 한데. 먹지도 못하는 술을 흉내낸 음료보단 훨씬 학생답고 좋다고 생각해."


피엘의 예상하지 못한 지적에 당황할 법도 했으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맥주잔의 손잡이를 쥐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 안쪽이 가려울 정도로 따끔거리면서, 알싸한 보리의 향이 입안에 맴돈다.

그럼에도 찌푸리긴커녕,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을 내지으며 무시하듯 내뱉었다.


"그래서 넌 언제까지나 어린애일 뿐이야. 이제 곧 성인이 되는데 나중에 애 취급 당하고 싶은 거냐?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어차피 가짜잖아 그건···"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어. 중요한건 맛과 그리고 자세를 미리 익혀 놓는거야.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마시고 있는 것은 이 카페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특별메뉴인 맥주맛 에이드다.

실제 술은 아니었기에 합법적으로 판매가 가능하고, 본인처럼 어른이 되고 싶은 학생들이나 술을 마시고 싶어도 여러 이유로 마실 수 없는 어른들이 자주 찾는 이곳의 인기 메뉴였다.


녀석이 마시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는 일반음료일 뿐이지만, 왠지 이것으로 인해 녀석보다 조금 더 우월해지는 기분이 든다랄까? 그런 이유로 꽤나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아무튼, 그 음료와 너의 질문은 매치가 되지 않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은 거냐?"


가짜라도 맥주는 맥주였으므로, 그에 맞게 살짝 취한(?)듯한 모습으로 잔뜩 폼을 잡으며 재차 물었다. 그 모습에 피엘은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본인이 던진 질문이 먼저였는지 대충 넘기고선 대답했다.


"그냥, 이렇게 까만 음료에 올라오는 기포가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별과 비슷하게 보여서.. 그러다가 문득, 수많은 별에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가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거고."


조곤조곤 내뱉는 그 말에 곧바로 반박하려다, 연이어 들려오는 녀석의 말에 가로막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무튼, 이럴 땐 참 재빠르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것쯤은 나도 알아. 하지만, 그 누구도 가보지 않았잖아. 우리는 단지 가정에 의해서만 설립된 정의를 진실로 알고 있는게 아닐까?"


"뭐..그렇긴 하지만.."


"그 수많은 별들을 포함해 모든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만 존재한다고 결론 짓는 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해. 분명 다른 존재들이 있을것 같아."


일목요연하게 내뱉는 그 모습에 말문이 막혀 그저 멍청하게 눈만 깜박거렸다. 평소에는 맹한 모습으로 한심해 보이지만, 본인의 생각에 확고한 자신이 있을 때는 언제나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때라면 곧장 한심하단 말투로 반박했을 테지만, 녀석이 이렇게 확고할 땐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이 낫다는게 그 동안에 터득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애꿎은 음료만 한번 더 들이키며, 녀석이 한 말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반박하지 못했다는건 자신도 어느 정도는 납득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이 녀석 말도 일리는 있긴 하지. 아직 인간이 확인하지 못한 건 무궁무진하니까. 나도 예전엔 저 녀석처럼 생각한 적도 있잖아? 아! 그럼 결국 녀석과 똑같은 수준이라고 인정하는 꼴인데.. 안되지 그건. 지금은 조용히 있어야겠어.'


동의는 하지만, 언제나 자신이 더 위라는 아집 때문인지, 그런 생각을 겉으로 표출하긴 싫었다. 그랬다간 이 녀석에게 지는게 되니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오히려 '말할 가치도 없다' 라는 표정을 지어 준 후, 자연스럽게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대답을 대신했다. 이렇게 하면 어영부영 분위기를 무마시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테니 말이다.

실제로, 그 방법이 먹힌 것인지 자신의 냉정한 모습에 녀석도 더는 물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말이 오간 후 다시금 찾아온 침묵.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생각이 없는 듯 의문을 꺼낸 피엘도 더는 입을 열지 않고, 처음처럼 음료만 만지작거렸다.


‘그래, 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란 말인가. 그냥 이대로 쭉, 조용히 쉬었다가 돌아가면 되는거야’


만족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러한 생각과 함께 평온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후훗, 단순한 가로등일 뿐이랍니다."


"?" / "?"


갑작스레 들려온 타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성이 자신들의 테이블 옆에 서있었다.


언제 왔는지, 기척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다가온 그녀는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으며, 금빛 단발에 얼굴의 반은 덮은 소용돌이 안경을 쓴 조금 특이해 보이는 여성이다.


커다란 안경 때문에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대충 훑어보아도 미인일 것 같았다.


새하얗고 맑은 피부가 손에 들려있는 백색 커피잔과 어우러져 불확실을 확신으로 바꿔주었고, 엄청난 볼륨에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보이는 흰 티셔츠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정신을 내려놓고 있을 때, 여성은 청아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어두우면 잘 안보이니까 불을 켜야 하지 않겠어요? 밤이 되면 저곳에 불이 켜지는 것뿐이랍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잠시나마 넋을 잃었으나, 이내 시선이 그녀의 가슴에 향해있음을 깨닫고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당황했다지만 처음 보는 여성에게 무례를 저지를 줄이야.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자신의 시선을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죄책감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변명거리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신과 달리 피엘은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 마냥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그 어이없는 행동에 기가 찰 수 밖에 없었다.


"가로등이요? 그러니까...그.."


"네메시스라고 한답니다."


급하게 질문을 하려다 상대의 이름을 몰라 머뭇거리자, 그녀는 거리낌없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아! 네,네메시스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세히 이야기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해드릴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값은 꽤나 비싼데 괜찮겠나요?"


다짜고짜 뭔가를 요구하는 그녀의 대답. '그럼 그렇지' 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뭐가 그리 신난건지 던져진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고 말았다.


"커피 값이라면 제가 대신 내드릴게요! 전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후후, 그럼 잠시.."


피엘의 요청에 당연하단 듯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테이블 위로 우아하게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하아...이건 무슨 상황인 거야. 피엘과 똑같은 인간이 여기 또 있네.'


그녀의 황당한 말에 피엘은 본인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빛이라도 만난 기분이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선 말 그대로 쓸데없는 시간낭비였다.

녀석의 의견에 동의한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 인 것이지, '그렇다'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눈앞에 새로운 4차원의 인간을 마주하니, 잠시나마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얌마 피엘, 믿을걸 믿으라고. 백 번 양보해서 다른 별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치자. 그런데 저 수많은 별들을 단지 가로등으로 쓰고 있다라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무슨 감수성 풍만한 문학소설도 아니고 말야."


한심하단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내뱉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릴 때마다 네메시스의 가슴에 저절로 눈이 가는 바람에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일단, 정신이야 어떻든 간에 외관적으로는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는 것을 억지로 막을 길은 없었다.


결국, 더 힐끔거렸다간 정말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을까 싶어,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고선 그 말을 끝으로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겨버렸다.

그러자 자신의 그런 행동을 녀석은 다르게 받아들인 것인지 꽤나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그건, 그렇겠..지?"


떨떠름해하긴 해도 수긍은 하는걸 보니, 어느 정도 상식은 아직 남아있긴 하나보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듯, 피엘은 대답을 하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네메시스를 쳐다봤다.


시원한 해답을 달라는 표정이었다.


허나, 그러기엔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얼토당토 않는 말이라, 아무리 거짓말에 능숙하다 해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딱히, 살고 있진 않답니다? 적당히 사교의 장소랄까요. 그런 지루하고 따분한 곳에서는 저도 빠르게 퇴장하고 싶으니까요."


예상과 달리, 태연하게 대답하는 네메시스의 말에 미간에 절로 주름이 지어졌다.

아무리 이 녀석이 우습게 보인다지만, 자신까지 그런 황당한 말로 속이려 들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중간하게 대하면 끝까지 가지고 놀기 때문에, 더는 숨기지 않기로 하고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를 내비치며 시선을 돌리던 찰나,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이질적인 기운에 이유 모를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긋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화장품인지, 아니면 그녀에게서 풍기는 본연의 것인지 모를 그 향기가, 경악에 물들여진 자신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자, 그것이 여운을 남기기도 전에 앞선 향기보다 지독한 향이 전신을 휘감는다.


싸늘한 공포의 냄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흐읍!!!"


숨을 들이키며 본능적으로 그녀와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피엘이 ‘왜 그러냐’ 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지만, 이 살이 떨리는 느낌을 녀석도 받았더라면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깨문 채 다시 한 번 그녀를 쳐다보니, 변함없이 미소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처음 맡았던 향긋한 냄새가 다시 한번 코를 간지럽힌다.


'뭐였지..그건?'


아무리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봐도 조금 전 느꼈던 싸늘한 기운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여성으로만 보일 뿐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이 황당한 경험에 아무말도 못한 채 두 눈만 껌뻑였지만, 자신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피엘과 네메시스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수많은 별이 단순한 불빛대용이라면 뭔가 대단하네요. 그럼 네메시스씨가 계신 곳은 그 수많은 별보다 거대한 곳이겠네요?"


"후후, 공간의 크기는 저희들에게 큰 의미는 없답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가볍게 대답하는 모습에, 자신 또한 진실이라 착각할 정도로 그녀의 말은 자연스러웠다.


"그럼 네메시스씨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시나요?"


점점 눈을 빛내는 피엘.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묻는 녀석의 말에 그녀는 내려놓았던 커피잔에 손을 뻗으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태연하게 대답한다.


"음..지루한 존재들만 모인 곳이라 그다지 할 것은 없답니다. 그냥 본인들의 자랑과 권능의 힘을 건네준 아이에 대한 이야기 정도랄까요?"


“아, 그 이야기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이어진 대화가 어느덧 십여 분 정도.

방식은 바뀌지 않아 피엘이 질문하면 네메시스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쭉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이 의미없는 대화에서 유일한 장점을 찾아보자면 덕분에 자신의 정신이 돌아왔다는 정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어서인지, 조금 전 그녀에게서 느꼈던 극심한 공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향기에 취해 그대로 넘칠듯한 가슴에 파묻히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공포란 것은 한번 경험하고 나면 내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법.

이미 마음 한 구석에선 그녀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 생겨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더는 이 찝찝한 기분으로 자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창 대화중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입을 열었다. 외모가 아름다운걸 떠나, 꺼림직한게 더 컸으니까.


"피엘, 그녀가 말하는 자랑이라는건 적당히 금전이나 권력 등을 말하는 것일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어느 사교클럽에서 나눈 대화를 말하는 거겠지. 별만큼 큰 가로등이 있는 곳에서 지내는 고위직 자녀분 같으니, 우리랑은 어울리지 않는 분이니까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어때?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고."


자신만 적당히 둘러대고 빠지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를 붙잡은 사람은 피엘이었으니까.

허나,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해 녀석에게 함께 나갈 것을 권했으나, 잠시 후 들려온 네메시스의 대답에 그 말을 너무나도 후회했다.


"권능이란 것은 제가 관장하고 있는 감정을 뜻한답니다. 그리고 선택한 권속에게 이를 경험하게 하여 성장시키고, 또 피조물이라는 그릇에서 지니지 못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하는 일이고요. 형식 같은 건 딱히 없답니다. 그저 본인의 생각과 의지, 감정의 크기에 따라 그것의 모양과 형태 등이 정해지니까요."


"무,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이 피엘, 어서 일어나자니까? 아무리 너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기뻐도, 적정 수준이란게 있는 거야! 이 이상, 이런 이상한 여자와 얽히지 말고 빨리 나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 피엘에게 소리친 것도.

네메시스의 말을 흥분하며 받아들인 것도.

그냥 적당히, '이런 사람도 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권능이란 것에 대해 설명을 하는 순간,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싸늘함은 아까 전의 그 느낌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마음속에 가득 찼던 경계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그것은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한줄기 우정의 끈을 잘라내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누가 더 미쳤는지 알고 싶다면, 여기 남아서 토론이라도 하도록 해! 나는 갈 테니까!"


[우당탕]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자신을 어른의 세계로 한발 앞서가게 해주었던 맥주맛 에이드가 바지에 쏟아졌다.


젠장, 젠장, 젠장···젠장!!!!


질척질척하고 끈적한 느낌이 하반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짜증에 저절로 튀어나오는 욕과 함께 그것을 휴지로 대충 문지르고선 입구를 향해 빠르게 걸어나갔다. 중요한 것은 고작 이런 바지가 아니니까.


이유는 모르지만 본능이 시키는 대로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쏟아진 음료는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거렸고, 그 탓인지 생각과는 달리 자신의 걸음은 훨씬 느렸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를 인지했을 때쯤엔 그것은 이미 하반신에서 몸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에이잇!! 뭐야 이게!"


분명 바지에만 쏟았을 텐데, 전신에 퍼져 지독할 정도로 달라붙는 끈적임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고작 몇 걸음 걸었다고 이렇게 빠르게 퍼지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테이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페의 중앙쯤에서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발로 내려쳤다. 어떻게든 이 알 수 없는 끈적임을 몸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내려치고, 또 내려치며 끊임없이 이를 반복했다.


허나, 그럴수록 왠지 모를 위화감은 더욱 빠르게 몰려왔다.

다급한 마음에 더욱 역정을 내도 입구를 향해 억지로 움직이던 다리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다리가 카페 중앙에 우두커니 멈춰 서버렸고, 갑작스런 이 이상현상에 경악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느껴졌던 위화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겁에 질려 방금 까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시야에 들어온 카페내부는 이미 모든 것이 멈춰있었다.

사람들도, 음악소리도, 심지어 공기의 흐름마저도.

단 한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유일한 움직임을 보이는 테이블은 단 한곳뿐.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있었던 테이블이었다.

그곳엔 초점 없이 멈춰버린 피엘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네메시스의 뒷모습만이 이 순간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동질감이라도 느꼈을 테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네메시스뿐이라, 그 절망적인 결과에 외마디 비명조차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다.


[공포]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던 찝찝한 기분. 그리고 내면에 자리잡은 작은 싹.

그것이 순식간에 성장해 자신의 전신을 지배해버린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만 말했지 누군지는 알려드리지 않았네요. 후훗."


"!?"


공포에 짓눌려 이제는 눈도 깜빡일 수 없는 자신에게 그녀는 단정한 단발을 한번 더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겨우 눈을 굴려 쳐다보니, 그곳에선 네메시스가 처음 보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 길이며, 얼굴형이며, 분위기나 의상까지 전부 달랐다.


같은 것이라고는 지독할 정도로 싸늘한 미소만이 유일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에 잠시나마 공포를 잊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듯 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 동안만이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자세히 보이는 그녀의 본 모습은 그런 감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주었으니까.


새하얀 피부와 대조적인 짙고 공허하게 비어있는 두 눈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되자,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수준이 다른 공포가 전해져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잔인한 상황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완전히 다가올 때까지 그 싸늘함에 수없이 베이며 억지로 견딜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그녀는 풍만한 가슴 한쪽에 손을 얹은 후 다시 한번 본인의 소개를 할 뿐이었다.


"증오를 관장하는 신, 네메시스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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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장 25화 - 전조 #3 19.11.16 13 0 16쪽
25 1장 24화 - 전조 #2 19.11.13 12 0 19쪽
24 1장 23화 - 전조 #1 19.11.10 14 0 12쪽
23 1장 22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8 19.11.02 19 0 8쪽
22 1장 21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7 19.10.28 16 0 11쪽
21 1장 20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6 19.10.24 15 0 10쪽
20 1장 19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5 19.10.22 11 0 13쪽
19 1장 18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4 19.10.19 29 0 15쪽
18 1장 17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3 19.10.17 14 0 14쪽
17 1장 16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2 19.10.15 15 0 11쪽
16 1장 15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1 19.10.12 18 0 16쪽
15 1장 14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0 19.10.11 18 0 18쪽
14 1장 13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9 19.10.06 31 0 14쪽
13 1장 12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8 19.10.05 20 0 17쪽
12 1장 11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7 19.10.05 22 0 13쪽
11 1장 10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6 19.10.05 20 0 15쪽
10 1장 9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5 19.10.05 22 0 21쪽
9 1장 8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4 19.10.05 22 0 33쪽
8 1장 7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3 19.10.05 22 0 19쪽
7 1장 6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2 19.10.05 31 0 26쪽
6 1장 5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 19.10.05 31 0 17쪽
5 1장 4화 - 꿈 19.10.05 26 0 16쪽
4 1장 3화 - 아르먼 19.10.05 34 0 15쪽
3 1장 2화 - 다가오는 어둠 #2 19.10.05 33 0 15쪽
2 1장 1화 - 다가오는 어둠 #1 19.10.04 41 0 12쪽
» 프롤로그 +1 19.10.04 88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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