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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오(As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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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고양이
작품등록일 :
2019.10.04 23:51
최근연재일 :
2019.11.1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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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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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6화 - 시작되는 것, 끝나는 것 #12

DUMMY

*약한자의 정의 #2



더 이상 도망치지 말자.

자신은 지금 수없이 떨어지고 있는 저 하루살이들처럼 강한 이들에게 뒤쳐진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지킬 수 없었고, 고통 받았을 뿐인데 스스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다.

한 때 실수를 범했고, 그것이 자신의 정의에 반하는 행동이었음에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숱한 핑계와 변명으로 회피해 왔던 것이다.


"난..비겁한 인간일 뿐이야."


스스로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했다.

정의라는 말은 애당초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

처음부터 약한 인간이었는데, 억지로 정의라는 말을 앞세워 그것을 지키려고 무리하다 보니 모두에게 생채기를 남기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이 정의란 말인가?

약한자를 보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눈앞에서 고통 받는 이를 구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의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행동의 지표를 설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다.

정의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타인이 말하는 정의는 저것들 중 하나이거나 전부일수도..

또, 그 이상의 것 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수단이며, 회피 수단일 뿐이다.


자신은 약하다.

약하기 때문에 싸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강자 앞에서 무조건 무릎 꿇을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가 정한 한계선에서 본능적인 방어를 취하는 방법으로 정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보고서도 그것을 힘으로 찍어 누를 수가 없기에, 얄팍한 논리를 내세우며 다른 약한 이들을 모으고, 그들의 힘을 빌려 끈질기게 반항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약함에도 불구하고 강한자를 넘어설 때도 있었고, 다른 약한자들의 대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아무리 힘을 모아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존재한 적도, 강자에게 굴복해 처음부터 약한 자들의 그 작은 힘조차도 모으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자신의 정의는 싸우기만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며 회피하고 도망쳐도 명분은 충분했다.

약했으니까.

자신은 약한 존재이므로 이렇게 행동해도 정의에 반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언제나 정당화 되었다.


그랬던 자신에게 지켜주고 싶은 빛이 생겼다.

너무나도 눈부신 빛이 말이다.

분에 넘칠 정도로 사랑스러운 그 사람만큼은 세상 누구에게서라도 보호하고 싶었고, 그녀 앞에서만큼은 스스로의 정의에 반하더라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용기가 생겼다.

그 강렬한 감정의 덩어리가 약한 자신을 부추긴 것인지, 어떠한 강한 힘 앞에서도 그녀의 빛만큼은 꺼트리지 않게 할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억지로 새로운 정의를 내세우며 불의에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때였고, 자신이 강하게 나서면 세상이 모두 굴복할 정도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두렵던 강자마저 자신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모든게 좋았다.

그녀의 빛이 자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신념마저 모두 바꿔주어, 약하고 비겁한 정의 따윈 더 이상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자만에 세상이 벌을 내린 것일까?

순탄할 것 같았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정의를 내세웠지만 돌아온 것은 지옥 같은 시간들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강한척도, 허세도...그 모든 것이 압도적인 강자 앞에서는 하찮은 만용일 뿐이었다.


오로지 허락 된 것은 단 하나, 눈 앞에서 꺼져가는 자신의 빛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는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 대신 공포와 두려움이 피어 올랐고, 그것은 잊고 있었던 나약한 자신을 되찾아 주었다.


그들은 강했고 자신은 혼자였으니 회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누구에게도 손을 뻗지 못하는 상황에서 드리워진 은빛의 광채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약한자의 정의는 인생에서 꼽을만한 위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역할을 제대로 실행해 자신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빛은 꺼졌다.


약자인 자신에겐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를 바꿔준 빛은 짙은 어둠에 삼켜지고 만 것이다.


힘이 없다는 이유를 무기로 삼아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놓아서였을까?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빛을 잃어 가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했었던 것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 순간에 그녀의 눈빛에서 전해진 감정은 싸늘함, 그리고 지독한 원망이었음은 분명했다.


슬펐다.

언제나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주던 빛은 그 날 이후 생명 없는 인형의 눈처럼 차갑고 딱딱해져 버렸으니까..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역시나 이 정의는 잘못된 것이다! 약자는 옳지 않다!!

그녀의 빛이 꺼진 것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비록, 약자의 정의가 자신을 살렸을지라도 그 정의로 인해 가장 지키고 싶었던 그녀는 잃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시 숨기기로 했다.

약한 정의 따윈 답이 아니었으므로 영원히 꺼내지 않고, 자신의 의식 한 구석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도록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그녀로 있어 강해질 수 있었던 자신을, 이번에는 거짓으로라도 스스로 만들기로 결심 한 것이다.


강한척, 허세가 아닌 진심으로 부딪치고 또 부딪쳐 그로 인해 상처를 입더라도.

더 이상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약해지지 않으며,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강한 정의를 내세우겠다고 그렇게 마음 먹었다.

강해진 자신의 빛으로 그녀의 죽어버린 눈빛을 되살리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다.



[위선자]



그렇다. 위선자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었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짓으로 살아 갈 수 있었다.

그것만이 빛을 꺼트린 죄에 대한 속죄가 된다면 수천 번이고 이 거짓된 정의를 말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강한 의지를 꺾지 못한 본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색이 옅어졌고, 언제부턴가는 거짓된 정의가 진실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약하지 않았다.

어떠한 강함 앞에서도 그저 끝까지 나의 정의를 관철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덧 자신은 강한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강한 빛에 이끌려서일까?

영원히 어둠에 묻혀 있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눈에 자그마한 빛이 돌아왔다.


기뻤다.


이것이 비록 거짓일지라도 그녀의 빛을 되살린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으니까..

그저 자신은 이 빛이 두 번 다시 꺼지지 않게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가끔씩, 내면의 진실이 위선자라고 비난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더욱 깊은 곳으로 밀어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약함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크윽...제기랄..."



과거라는 저주와 기억이라는 칼날이 이렇게 자신을 갈기 갈기 찢어놓았다.


약자의 정의는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언젠가 다시 나타날 때를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뿐, 절대 자신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넴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처음 떠오른 감정은 자신의 본능이라는 말.

지극히 공감하는 말이다.

그 본능이라는 것 때문에 억지로 지우며 살았던 자신의 약한 정의가 되살아났으니까.


그것을 증명하듯 엔트록스의 행동에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 그것은 스스로의 약함이 내보낸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공포]


지난 과오가 떠올라서였는지, 아니면 약함이 다시 자신을 지배할까 두려워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은 분명히 공포였다.


흔들렸다.

그래서 그것을 지우기 위해 모두의 만류를 무시한 채 정의롭게 행동 했지만, 결과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왔을 뿐.

더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부정 당한 거짓 정의는 결국, 아픈 기억의 파도 속에서 지우고 싶은 약점을 꺼내 자신을 괴롭혔고, 그렇게 몇 번의 정신이 무너진 사이 약한 정의는 어느새 이렇게 자신의 안에서 또 다시 자리 잡고 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 지독할 정도로 약한 정의가.


스스로가 나약함을 인정한 지금, 더 이상의 거짓된 정의는 있을 수는 없다.

처음부터 약함을 감추기 위한 거짓이었으니 이미 그것이 드러난 이상 이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앞으로의 삶을 지배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삶에 맞추어 살아가다 또 다시 빛을 잃게 되는 순간을 마주할지도...


허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거짓으로 세운 정의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단지, 처음과 달리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니 뭔가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뿐이다.


약한게 나쁜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약하기 때문에 발버둥칠 수 있는 것이다.

약하기 때문에 더욱더 강한 의지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신은 이 거짓된 정의를 끝까지 내세울 것이다.

불의에 맞서고,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누구의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짓눌리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더욱더..더욱더 말이다.


왜냐면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니까!


그를 살게 하는 것은 그녀의 빛이고 그 빛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강함을 가장한 정의든, 약한자의 정의든 상관없이 내세울 것이다.

이것이 자신이 깨달은 새로운 정의이며, 더 이상 흔들림은 없었다.


고개를 들어 조금 전의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깜빡이고 있는 그 불빛으로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약한 하루살이들이 이제는 강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끈질긴 그들의 의지가 전해진 것일까?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뒤에서 그들을 밀어주는 것 같았고, 홀로 끝까지 싸우던 거대한 가로등은 몇 번의 깜빡임을 반복하다 결국 빛을 꺼트리고 말았다.


거리를 비추던 불 빛 하나가 사라지자 조금 더 어두워졌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어둠도 자신의 앞날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저 나약한 하루살이들이니까.


굳은 의지로 결론을 내리자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고민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아직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한참 남았지만, 그것조차 이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라면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개운함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멈춰 있던 발걸음을 다시 내디디며 아르먼은 이미 꺼져버린 가로등 앞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약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고.


다음 불빛을 향해 가볍게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오늘 하루 중 가장 가벼워 보였다.

새로운 정의를 깨달은 그는 지금보다 더욱 강하게 살아갈테니 말이다.







다만, 그가 지나친 가로등 아래로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은 하루살이들이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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