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침략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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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진
작품등록일 :
2019.10.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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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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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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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DUMMY

제임스 게일 소령의 안내로 이동한 곳은 콜로라도 덴버의 도심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층 빌딩 상부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식사는 했나?"


전면이 유리로 되어 콜로라도주 덴버를 가로지르는 사우스 플래트 강과 주변 공원에서 한산하게 노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도태준은 메뉴판을 힐끗 쳐다보았다.


"식사하기에는 조금 모호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레스토랑 내부는 점심 식사시간이 지났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아무런 손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미 육군의 요청으로 이 레스토랑 전체를 대여했을지 모를 일이다.


"지내는 데 불편함이 있는지 알고 싶군."

"음식을 빼면 딱히 불편한 건 없습니다."


아무리 계승을 하여 이식체의 기억과 능력을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한국인으로 살아왔던 몸의 입맛은 한국식으로 길들어 있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자극적인 음식과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던 한국식 음식이 그립건만 여기 덴버에 위치한 한국식 레스토랑은 너무 미국식으로 맞춰져 있어 충족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네. LA 쪽으로 근무지 변경을 고려해보지."


신상에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현재 한국 상황의 간략한 정보도 전달받을 수 있었고 그와 관련된 미국의 입장도 전달받았다.

현재 한국에서 발생한 미국 관련 계승자들이 살해사건이 벌어지면서 남아있는 계승자들을 미국 본토로 복귀시킨 상황이고 미국은 이 사건에 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해결할 때까지 한국에 계승자 파견을 잠정 보류한 상태이다.

이것이 미국의 입장인데 딱히 감흥은 없다.


'다른 계승자들은? 은유랑 승찬이는?'


궁금한 건 이 정도인데 한국계 계승자들의 실종 관련한 내용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해 물어보지도 않았다.


"덴버에도 꽤 많은 계승자가 주둔 중이니 임무 수행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거로 생각하네. 그보다 특별 임무가 하나 있는데 해볼 생각 있나?"

"무슨 임무입니까?"


계승자에게 임무란 괴물을 잡는 거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제안은 괴물이 아닌 요인암살이나 첩보, 공작 관련 임무가 전부인데 뻔히 거절할 걸 알면서 제안한다는 건, 거절할 테지만 궁금해서 물어보는 심리와 비슷하다.


"요인경호. 러시아에서 꽤 거물이 방문하기로 되어있어. 명목상 투자 관련 초청 간담회이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러시아와 관계개선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여러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야. 그쪽에서 경호요청을 하면서 자네를 거론했는데. 가능한가?"

"그쪽에서 저를 알고 있습니까?"

"그래. 자네 이름을 분명히 말했네."


일반인들도 은근히 계승자에 대한 신상을 쉽게 접한다. 애초에 도태준은 잦은 인터뷰로 나름 세계에서 유명한 축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뜬금없이 러시아 고위직이 자신을 경호 인력으로 차출하겠다고 하니 조금 당황스럽다.


"자네 팬인 거 같더군. 백악관도 구경할 겸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냥 관광이라 생각하게."


별로 관심은 없지만, 딱히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 러시아 고위직이 팬이라고 하니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백악관을 들어가 본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큰 관심을 끌었다.


"좋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내일. 지금 당장 공항으로 가면 되네."


미리 준비된 비행기 티켓이 탁자에 올라왔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할리우드 스타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 제40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이런저런 스캔들이 있었지만, 대통령 자유 훈장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그레이트 아메리카.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워싱턴 내셔널 공항은 1998년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이름을 따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내셔널 공항이라는 기나긴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로널드 레이건은 치매를 앓고 있어 어느 공항이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도,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이유도 모른 채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93였으니 장수했다 하겠지만, 그 어느 죽음 앞에서 인생의 길고 짧음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제임스 게일 소령의 명령으로 공항에 찾은 도태준은 자신이 경호해야 할 대상의 이름을 되뇌었다.


'바실리 이바노비치.'


러시아에서 철도산업으로 부를 일구었고 러시아 물류의 반을 지배하는 진정한 부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에다가 정치권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지 도착하자마자 백악관으로 직행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다.

백악관에서도 수행 인원 넷을 파견해주었고 임무에 딱히 어려운 점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는 경호 임무보다는 외교적 접대에 비슷하다고 생각됐다.

공항의 VIP만 출입할 수 있다는 게이트에서 보기에도 러시아 같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큰 키와 슬라브계 백인. 떡 벌어진 어깨는 신체개조문명의 계승자인 자신과 비교해봐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이고, 오히려 덩치 면에서 더 크다는 느낌마저 있을 정도다.


'이 사람 계승자 아니야?'


어지간한 계승자보다 커 보이는 덩치에 꼿꼿한 자세로 인해 젊어 보이는 것인지 오십이 넘어 보이지 않은 그의 외모는 좀처럼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계승자가 되면 일반인보다 두 배는 더 노화가 늦게 진행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신경 쓰진 않았지만, 가끔 거울을 보며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건 느껴왔다.


"반갑습니다, 도태준 씨."

"아, 어?"

"바실리 이바노비치입니다. 바실리라 부르셔도 됩니다."


완벽한 한국말.

디바이스를 통한 통역기에서 한국말이 영어로 들려와 황급히 끄며 그와 악수했다.


"이번 경호를 책임지게 될 도태준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잘 하시는군요."

"필요해서 배웠습니다."


러시아 거물이 한국말이 필요할 경우가 무엇이 있을까 잠시 생각하던 도태준은 백악관에서 파견된 수행 인원들의 안내를 받아 고급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도태준 씨는 백악관이 처음이신가요?"


다시 한번 존댓말도 완벽한 한국말이 슬라브계 백인에게서 들려오니 기분이 묘하다.


"처음입니다. 워싱턴에 온 것도 처음이죠."

"그동안 한국에 있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생활이 어렵진 않으신가요?"

"음식 같은 게 조금 아쉽긴 하더군요. 그런데 이거 지금 인터뷰입니까?"


계승자들을 대상으로 스카우트를 진행하는 건 국책사업이다. 그렇다고 국가공무원들이 나서서 하는 일은 드물었고 보통은 전문 에이전시의 로비스트들이 암암리에 스카우트를 진행한다.

해당 로비스트들은 먼저 스카우트를 진행할 계승자를 먼저 만나 신상과 성향을 파악하는 데 이 과정을 인터뷰라고 불렀다.


"인터뷰라고 부를 수도 있겠군요."

"말씀 편히 하시죠.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기엔 장소가 좋지 못하네요."


차 안에는 백악관에서 보낸 수행원들이 타고 있다.

공식적으로 미군 소속인 도태준을 적대 국가나 다름없는 러시아에서 대놓고 스카우트를 진행한다는 건 국가적 관계를 떠나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말을 편히 하는 건 다음에 하도록 하지요. 반말을 들은 적은 있어도 배운 적이 없어 어색하군요. 그리고······."


자율주행 중인 차에 운전석에 앉아 가만히 전방을 응시하는 수행원을 힐끗 보며 바실리 이바노비치는 이어 말했다.


"스카우트를 진행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은 겁니다."

"한국이라."


한국인으로 태어나 계승자가 된 지금 국가소속의 개념이 모호하다. 애초에 지구인이라는 자각조차 희미하다.

어차피 멸망할 문명. 최선을 다해 싸워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의문은 언제나 머릿속을 맴돌았고 가슴속에는 회의감만 가득하다.

어쨌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건 스카우트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과 한국은 계승자 관련 협정을 통해 계승자를 공유하는 처지니 미국에 있건 한국에 있건 서류상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은 조금 특수하다고 볼 수 있다.


"갈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런데 미국에는 어떤 일로 오신 겁니까?"

"러시아에서 진행하던 사업이 한국 정세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 정부의 태도가 확실해져야 사업 진행 방향을 정할 수 있어 협상하러 왔습니다."


점점 더 모르겠다.

백악관에서 수행원을 보낼 정도에 미국 정부의 태도를 좌우할 정도의 협상력을 지닌 인물이 고작 한국 정세 때문에 사업에 지장을 받는다?

한때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주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들을 배출했으나 국가적 브랜드에서는 언제나 하위권을 맴돌았다.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여 세계 상위권의 경제와 군사력은 빛을 보지 못했고 아직도 뿌리를 뽑지 못한 부패에 정치력이나 외교력은 이미 병들었다.

그나마 문화 수출로 인해 한국을 알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한국의 국가적 위치를 올려주지 못했다.


"협상 결과가 좋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를 일부러 선택하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를 아십니까?"

"처음 뵙지만, 한국에 친구가 있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계승자치고는 꽤 괜찮은 성품이라더군요."

"하,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계승자 치고는 꽤 괜찮은 성품이라.

계승자들이 전부 정신이상에 시달리는 싸이코는 아니다. 개중에는 자신처럼 온전한 정신상태를 가진 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성품이라 불릴 것까지는 아니다.

구도자는 몸을 단련하면서 여러 상대와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태준이 계승한 파-루사 역시도 호승심이 가득하다.

정의감도 투철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불구로 만든 이들이 한둘이 아니며, 목숨을 끊어놓는데도 이유만 충분하다면 망설이지 않았다.

도태준이라는 현대인의 탈을 쓴 야수가 꽤 괜찮은 성품이라 칭찬받을 정도면 나름 성공······. 어?

툭 툭

퍽 퍽 퍽

처음엔 차를 가볍게 치는 듯한 소리가, 그리고 이어서 차에 무언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차의 전면 유리창을 보니 시커먼 무언가가 연달아 부딪히고 있는데 차의 빠른 속도에 일반인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도태준의 시야에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보였다.


'모기?'


성인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지만 그건 확실히 모기였다. 차 옆으로 스쳐 지나가듯 날아간, 아니 이제는 옆에서 같이 따라오는 모기는 그 날갯짓 소리가 차의 엔진음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맹렬했다.


차량 곳곳에 설치된 센서들이 박살 나며 자율주행상태가 급히 종료되었다. 수행원은 속도를 높이며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도로에서 곡예 운전을 하며 실력을 뽐내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곡예 운전이랄 것도 없이 정상운전을 할 만한 실력도 없는 드라이브 면허 보유자들은 자율주행상태가 끝나자 초보운전자로 전락하며 도로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도태준 씨."


바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언제든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하던 도태준은 차분한 음성과 침착한 표정을 하는 바실리 이바노비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지금 한국이 문제인가?


"미스터 이바노비치. 지금 상황이······."

"그리고 저울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대체 뭘? 이 사람 미쳤나?


"그들은 당신을 기다려줄 시간이 없습니다."














오이화는 장영우의 도움으로 이식체 댈러스 로반와 온건한 합일에 성공해 계승을 완료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힘을 되찾은 건 아니다.

달라스 로반은 이종결합문명의 5 클래스였고, 그건 바로 오이화가 결합 5레벨의 계승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거다.

그러나 현재는 그냥 3레벨 정도의 계승자들과 별 차이도 없고 신체적 훈련이 전혀 되지 않아 오히려 약한 감이 있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계승자사관학교가 있는 것인데, 사실은 심리상담이 주 업무인 정신병원이나 다름없다.

훈련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진행된다. 어차피 가지고 있던 힘을 다시 개화하는 것뿐이니 교육이라는 과정 자체가 불필요하다.


"오이화씨. 오늘은 손님이 있어요."

"아빠가 오셨나요?"


오이화의 입에서 아빠라는 정겨운 호칭이 들려온다는 건 이식체의 기억에 지배당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 정신과 의사는 매우 흡족했다. 그러나 돌려줄 답변은 오이화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울 뿐이다.


"아뇨. 부모님은 다음 달에 방문 예정이세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이에요."


한국에 있는 계승자사관학교는 국가에서 지원하고는 있지만 4레벨 이상의 계승자는 사실 미군 소속이다. 따라서 국가 정부 부처의 인사들도 함부로 드나들기 힘든 곳이다.

물론 계승자의 가족들은 상시 환영이다.

상담 의사가 말하는 특별한 손님은 대부분 한국에서 활동하는 고레벨 계승자들로 오이화의 경우엔 7레벨의 이종결합문명의 계승자들이거나 군 사령부의 고위 장군들, 혹은 국회의원들이다.


"또요?"


오이화의 입장에선 딱히 달갑지 않은 손님이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드나들기 힘들다는 한국 계승자사관학교는 사실 국회의원들이 비공식적으로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미 협정으로 계승자들이 미군 소속으로 분류되고 미국 국적까지 허용된다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한국인이 아닌 건 또 아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인맥으로 쌓아두고, 가능하다면 친분을 넘어 끈끈한 그들만의 네트워크에 넣을 수만 있다면 재선, 삼선, 그리고 국가 정상까지 치고 올라갈 인기의 상징으로 삼을 수 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엔 누구죠?"

"이미 도착하셨으니 직접 만나보시는 게 좋겠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의사가 나가고 문이 닫히기도 전에 중년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새하얀 블라우스에 붉은색 투피스 정장, 금색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는 그녀의 패션은 특색이 너무 화려해 취향이 갈릴 거 같지만 그녀에게 또 어울리기도 했다. 그보다는 정장 상의에 선명히 박혀있는 오각형 배지는 패션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휘장.

바로 국회의원의 증표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와 당당한 발걸음, 서슴없이 손부터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모습에 계승자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반가워요, 나 방희수예요."


나름 부유한 소시민의 삶을 살던 오이화는 반사적으로 방희수의 손을 양손으로 잡으며 허리까지 자연스럽게 숙어졌다.

이 악수라는 문화가 서구권에서 시작되어 한국에 정착했을 때 한국식으로 변질된 점이 있었다.

원래는 상급자가 청하는 악수를 한 손으로 응수하는 것이 마땅하나 유교 문화가 뼛속까지 침투한 한국인들은 응수하는 손에 더해 받침 손을 만들었고 거기에 허리까지 숙이는 인사는 기본이었다. 아무리 그것이 잘못된 악수 방식이라 여러 기관에서 가르친다 한들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어차피 문화는 산 넘고 물을 건너면서 여러 형태로 변질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그 나라의 실정과 문화, 인식에 맞춰져 원류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오이화라고 합니다."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자리에 앉자 방희수의 보좌관인 어느 남자가 쟁반에 차를 준비해서 들어왔다.


"아메리카노 좋아하죠? 물어보고 준비하기엔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미리 준비했어요. 양해해주세요."

"아, 괜찮아요. 아메리카노 좋아해요."


보좌관이 차를 앞에 내려놓고 목례하고 나가자 방희수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난 항상 상대방이 마시는 차와 같은 걸 마셔요. 커피면 커피, 전통차면 전통차, 술이면 술. 가끔은 마시기 어려운 것들도 있죠."

"아, 네."


다르게 이야기하면 자기가 마시는 걸 상대에게 강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이화는 그 숨겨진 뜻을 잘 이해했다.


"이화 씨는 어때요? 먹기 힘든 음식을 강제로 먹어야 했던 적이 있나요?"

"뭐, 어렸을 때 조금 그랬던 거 같아요."

"그때는 다 그렇죠. 우리 조카도 어렸을 때 어찌나 채소를 안 먹던지. 잘게 썰어도 귀신같이 알아서 골라내더라고요. 집중력 하나는 최고라고 집안에서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는지 몰라요."


잘게 웃는 미소는 천박하지 않고 친근하며, 손짓과 몸짓에서 묻어나오는 습관은 우아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방희수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와 알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인물.

그녀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삶의 질이 두세 단계 높아졌고 반대급부로 남자들의 삶은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극단적인 평가가 갈리고는 한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오이화는 그녀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었고 나름 지지하기도 했었다.


"이화 씨도 이제는 알죠? 어렸을 때 먹기 싫었던 것이 이제는 찾아서라도 먹어야 한다는 거."

"네."

"여러 제안을 받은 거로 알고 있어요. 그동안 거절한 이유가 있나요?"



오이화는 계승자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많은 정부 부처 인사들과 국회의원들을 만나왔다. 그들은 돈과 명예를 대가로 그녀가 가지게 될 명성을 담보로 요구했다.

조건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기대 레벨이 5레벨에 불과한 그녀에게 평생 부족하지 않을 돈을 약속했고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를 보장했다.

그녀가 지불해야 할 앞으로의 명성은 아주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계약 조건도 나쁘지 않았고 분에 넘친다는 것도 알아요."


그녀가 거절해야 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웠나요?"

"음, 그런 게 아니에요."

"말해주기 힘든가 보죠?"


말해줘야 하나?

어디부터?

말해주면 포기해주려나?

설명할 길이 막막하다.


"이화 씨. 괜찮으니 말해봐요. 내가 하는 일이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고 해결해주는 일이에요."

"풉."

"웃을 정도로 쉬운 일인가요? 그럼 다행인데."


방희수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지만, 눈에 띄게 굳어진 표정은 그녀의 기분이 적잖이 상했음을 알려주었다.


"좋아요. 뭐, 말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누가 그러던가요? 당신에게 지시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건 의원님께 답해드릴 수 없지만, 앞의 질문이라면 말씀드리죠."


선배들이 말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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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 19.11.30 162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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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19.11.13 217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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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19.11.10 245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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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19.10.16 1,015 13 13쪽
2 2 19.10.14 1,302 14 14쪽
1 1 19.10.09 2,119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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