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가 될 수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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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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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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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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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헌터 협회 관리자 필기 시험

DUMMY

‘직접 겪어보니 어마어마하네.’


새삼 반성했다.

과거 나를 상대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왜 그따위였는지 실제로 경험해보자 너무도 잘 알 수 있는 기분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생각 없이 내뱉는 직설화법.

진심으로 남의 기분 따위는 개의치 않는 캐릭터.

이 녀석은 그 시절의 나를 정확하게 표방하고 있다.


척.


내가 그리 결론 내리는 동안 다가온 녀석이 내 어깨에 손을 얹혔다. 그리고는 제가 알아서 결론까지 내렸다.


-그래 앞으로 멍청이라고 하자. 네가 나인 것은 맞지만 지금 행동들을 보면 나랑 너는 급이 좀 다른 존재인 것 같거든. 탑을 오르다 보면 복제되는 층도 있잖아. 거기서 네 녀석이 복사본이라면 나는 진본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주자면 내가 치즈 토핑이 잔뜩 들어간 크러스트 피자라면 너는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단팥빵 같거든.


울컥.


나는 갑자기 등장한 과거의 나에게 놀라울 정도로 감탄했다.

등장과 동시에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정이 떨어지게 만드는 녀석이라니.

첫인상에서 정떨어지기 스킬이 있다면 녀석은 EX등급을 찍었을 만한 머저리다.


‘그런데 저놈이 나란 말이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녀석을 마주했다.


“이봐. 확인할 것이 있는데.”


말을 걸자 한껏 거들먹거리는 자세를 취한 녀석이 휙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팔짱을 꼈다.


-뭐? 그보다 이봐 하고 부르지 마. 흑룡제 강철 님이라고 불러!


다시금 울컥했지만 차분히 냉정을 되찾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태연하게 지시하는 태도와 남을 자연스럽게 깔보고 무시하는 자만, 녀석의 행동, 말투, 모든 것을 보았을 때 아마 확실하겠지만···


“너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흑룡제 강철이냐?”


-언제긴 언제야! 뼈저린 치욕의 순간을 겪었던 때의 나지. 성화! 고년한테 잡혀서 재판을 받았다고! 그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나를! 흑룡제 강철을!


“그렇군.”


녀석은 독방에 들어가기 전의 나다.

한참 복수를 곱씹으며 오만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시절의 나.


‘가만 보자. 내가 감옥에 갇혀서 보낸 세월이 대충 계산해도 5년 이상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답이 바로 나왔다.


‘개과천선은 절대 불가.’


한번 죽지 않는 이상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귀에 경 읽기다.

분명 들어 먹지 않겠지만 적어도 상황을 주지시키기 위해서 한 가지는 확실히 짚어둘 생각이었다.


“나는 복수 같은 안 해. 오히려 그들에게 한 죗값을 갚을거다.”


-뭐라고? 아까부터 말하지만 너 진짜 미쳤냐? 넌 나야! 흑룡제 강철이라고! 위대한 용이 들판의 떨거지들에게 추락당했는데 고작 하는 말이 복수가 아니라 죗값을 갚아야 한다고?


내 말을 들은 녀석이 예상대로 붕붕 다리를 굴렸다.

녀석에게 있어서는 어이가 없는 소리라 소란을 피우는 것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몸의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미친 건 네가 미쳤지.”


태연한 대답에 녀석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들은 모욕적인 언사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기야 흑룡제 강철이 된 이후 감히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있을까.


-야이 개~XXXX! 너 내가 본신이었으면 삐XX! 지금이라도 나한테 굽히지 않으면 너는 XXXX! 이런 멍청한 녀석이 지금 누구한테!


“아주. 시끄럽네.”


또 다른 나에게 하는 것인데도 믿기지 않을 욕설을 따발총처럼 뿜어내는 녀석을 가볍게 무시하곤 침대에 털썩 누웠다.


5년 만에 느끼는 푹신한 감각이 포근했다. 그 와중에도 녀석의 욕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자장가 삼아 듣고 있던 나는 녀석의 말 중 일정 지점에서 잠시 인정했다.


“그래. 나 멍청이 맞아. 뭐 그 호칭하나는 맞는 것 같네. 나는 정말 멍청한 놈이었으니까.”


-그래! 네놈은 진짜 멍청이다. 복수를 포기한다니 어디서 그런 미친 생각을···


“대신 너의 호칭은 머저리로 하자.”


-그래! 내 말대로 하면··· 뭐, 뭣? 이 자식이 미쳤어!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구긴.

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 뒤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녀석이 나라는 것에 자괴감이 느껴진다.’


-야! 이봐! 이 멍청아! 썩을 놈! XX야! 진짜 XX같이 한번 다뤄줄까? 어쭈? 대답 안 해?


5년간 감옥에 있어서여서 일까? 녀석의 시끄러운 욕설이 의외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나는 녀석의 욕을 자장가 삼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세계대전과 대격변에 관해서 서술하시오]


세계대전 : 2020년 미국동맹, 중국과 러시아 동맹의 패권 전쟁으로 핵전쟁을 의미함. 이로 인하여 대륙의 축소와 인류의 4분의 3이 사망하였으며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대격변 : 2030년 갑작스럽게 생성된 탑의 등장을 의미. 탑의 등장은 인류의 발전과 생존에 밀접한 연관을 지닌 일로써 최초 탑 1층은 최대의 도시로 발전하여···


쓱쓱.


‘음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다음은 듣기시험입니다. 문제를 듣고 오류를 고르세요]


[17층 독무덤입니다. 보유한 조합은 넷. 검사와 기사. 그리고 성기사 및 사제의 조합입니다. 일행은 독무덤의 시작지점을 돌파하기 위해서 해독제를 사용한 뒤 전진하였습니다. 이때 눈앞에는···]


기사와 성기사. 거기에 사제?

독무덤에서는 이런 조합이 이뤄질 수 없으니 오류고···

으음, 해독제를 사용하고 전진?

독무덤이라는 곳은 특성상 독의 종류가 각기 다른데 중독을 되었을 때 사용하기 위해 구비해둔 각종 해독제를 선 흡입하는 것도 오류. 그리고 사제가 있는데 기초 저항력을 올리는 블레싱과 내성 강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나?

틀린 내용을 정리하며 나는 쓱쓱 시험지에 답을 써 내려갔다.


‘틀린 곳이 세 곳이나 되네?’


내가 문제에 답을 적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녀석이 제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맞았다. 애초에 문제의 수준하고는··· 협회의 수준이 고만고만하네. 내가 냈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내지 않을 거다. 넌 잘 모르겠지만 과거 내가 탑 등반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했을 때 냈던 시험이 아주 제대로 된 난이도를 자랑했거든?


“미안하지만 네가 바로 나거든?”


나는 극히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작게 소곤거리고는 다시금 시험에 집중했다.


[다음 문제입니다. 탑의 등반 중 던전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경우 던전의 등급이···]


“흐음!”

“아오!”


문제가 이어질수록 주변에서 앓는 소리가 세어 나왔다.

물론,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최고층 등반가.

최고의 헌터.

라는 칭호는 강하기만 해서는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방식의 도전 경험을 보유하고 그것을 응용할 수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칭호.


훅훅 문제를 풀어나가던 나는 오히려 가끔은 한 두 문제는 틀려줘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며 여유를 부렸다.

그 사이 컨닝이 있을까 싶어 눈을 부릅뜨고 있던 감독관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자 앞으로 20분 남았습니다. 듣기와 함께 다른 문제들도 슬슬 마무리하세요.”

“아! 거짓말! 감독관님의 시계가 고장 난 거 아냐?”

“이, 이렇게 빨리? 겨우 10문제 풀었는데!”

“아으! 옛날에는 시험 시간이 2시간이었잖아! 갑자기 1시간으로 줄이면···”


“정숙! 한 번만 더 떠들면 즉시 퇴출시키겠습니다. 이 시험이 어떤 시험인 줄 모르고 응시했나요? 시험 시간부터 과정이 매번 다르게 진행되는 시험이에요!”


응시자들의 앓는 소리에 시험관이 크게 소리쳤다.

헌터협회 1급 관리자 시험.

최고의 인재를 뽑는 시험답게 감독관의 태도도 극히 냉정했다.


-호오? 제법 단호한데? 하기야 협회 녀석들 다른 시험은 몰라도 1급 관리자 시험만큼은 제대로 준비하곤 했지. 물론 거기서 뽑힌 병아리들이 이상한 지휘를 해대는 바람에 결국 없어졌지만 말이야.


최고의 엘리트를 뽑는 시험을 무시하며 녀석이 빈정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녀석의 말에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나도 빠듯해진 시간에 맞춰 시험지를 작성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15분 남았습니다.”


시간이 빠뜻했지만 오히려 여유가 남았다.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의외로 녀석의 지원이 도움이 됐거든.


-얼래? 야 26번 문제 답은 그렇게 쓰면 안 돼. 그건 1년 뒤에 밝혀지는 방법이고 지금은 옛날 방식의 이중 트랩으로 정답을 써야 해.


틀리지 않았지만, 시간상으로 정답이 될 수 없는 문제를 짚어내거나,


-야 40번 문제는 학익진이다. 너 같은 멍청이보다 내가 푸는 게 압도적으로 빠르지?


가끔은 뒤쪽을 문제들을 먼저 풀면서 잘난 척을 하는 덕분에 내 생각보다 시험을 치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슬쩍 녀석을 훔쳐보았다.


저번의 발작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의외로 협조적이다.

복수를 주제로 녀석과 대화를 나눌 때는 절대로 협조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몸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나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설득하거나 지배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모양이었다.

뭐, 나쁠 것이 없었다.


“5분 남았습니다.”

“먼저 제출하겠습니다.”


덕분에 나는 감독관의 놀라는 표정을 바라보며 1등으로 시험지를 제출하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으니까.


“어어? 네?”

“이후는 신체검사죠?”

“아··· 네. 전용 검사실로 향하시면 됩니다.”


-풋! 저 여자 놀라는 거 봐라. 너의 점수가 만점인 걸 알면 눈에 하트가 뿅뿅 거릴걸? 야 어떠냐? 저 여자 오늘 데리고 한번 노는 건?


‘신체 등급이 일반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차일걸?’


은근히 떠보는 녀석에게 한숨어린 대꾸를 해준 뒤 헌터협회 신체 검사실로 들어섰다. 온몸을 전기로 스캔하는 장비가 펼쳐져서 은은한 전류를 뿜어내고 있었다.


“자, 신체 등급을 확인하기 전에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혹시 각성하셨습니까?”

“아니요.”

“각성은 겪지 않았지만 혹시 특성이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거나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특성과 스킬은 있지만 말할 수 없었다.

특성은 말할 필요가 없는 쓰레기 특성이고 스킬은 특유의 성격상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내 대답에 담당 직원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시군요. 자 올라가시죠.”


파직!


흐르는 전류가 내 몸을 훑었지만, 통증은 없었다.


“헌터등급. 무 등급입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결과는 예측한 대로의 결과에 나는 담담하게 직원의 통보를 받아들였다. 위를 슬쩍 보자 녀석이 참담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흑룡제 강철이 D등급도 아니고 무 등급이라니···


그 육체를 쓰고 있는 것은 나인데 정작 탄식은 녀석이 지르고 있다. 물론 그 탄식이 나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분명 나와 함께하는 자신의 암울함을 표하는 것 일테지.


“수고하십시오.”


깔끔하게 검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필기시험 수석 합격.

헌터등급 무 등급.

극과 극이라는 인상적인 평가를 가지고 나는 그날 헌터협회 관리자 1차 시험을 여유 있게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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