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미아가 되어버렸다.
아직 안 보여. 허나. 5미터 앞은 빛일지도 몰라.
“앗! 이거야!”
어느덧 그녀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찾은 모양이었다. 노스엘던은 곧 입가가 양쪽 모두 쭈욱 올라가서는 히죽거렸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순수한 동심으로 빠져든 한 어리고 여린 꼬마 같았다.
‘쳇··· 별에 별꼴을 다 보는 구만···’하고 참쑤에는 눈치껏 이렇게 생각 중이었고, 노스엘던은 자기 손에 붉은 비단결 느낌이 나는, 기이한 한자를 닮은 듯한 문양이 가득 새겨진 반지를 끼고는 아직도 ‘헤벌레’ 입을 벌리며, 반지의 감상에 취해있었다.
“야! 참쑤에··· 이제 네게 볼일은 끝났어! 잘 가라구.”
언제 흘렸는지 눈가에 서러움의 눈물자국을 묻힌 채 자기 조명용 연꽃 소품과 같이 스르륵 물에 반쯤 잠기던 중이었다. 하지만 잠기는 척만 하다가 수면에 닿을 듯 멈춰 서는 산신령은 직업정신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다.
손을 꼭 어느‘불상’에서 본 것처럼 한 손은 손가락 두 개를 오므려서는 ‘땡콩 맞을래’ 다른 한 손은 펴서는 ‘돈 낼래’ 포즈를 잡고 있었다.
그때, 신령은 누군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뒤가 따끔하던 노스엘던은 참쑤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뭐냐! 돈 내란 말이냐!”
“제 직업상··· 저도 살아가려면··· 돈을 받게 되어있는데요.”
“흥. 젠장!”
그녀는 콧방귀를 끼더니, 왼쪽 손을 앞으로 하고는 뭔가를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3초도 안 되어서 왼쪽 손엔 커다란 바위로 추정되는 것이 만들어졌고 그 후, 참쑤에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거의 순식간에 왠지 많이 던져본 멋진 포즈로 거대 돌덩이를 날리던 그녀였다. 그 모습에 참쑤에는 물론이고 루자이데 역시 ‘경~악!’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 돌덩이가 정말 내게로 내던져진 것이 맞나? 하는 착각을 일으키며 참쑤에는 그 돌덩이에 머리를 맞고서 깔린 모습으로 긴급 잠수 됐다. 이어 아주 급속도로 하얀 물보라가 하늘 높이 치솟다가 물회오리를 끝으로 호수는 그렇게 잠잠해졌다. 물 회오리는 아마 참쑤에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급조해 낸 것 같았다.
“이만하면, 더 이상 나에게 덤빌 힘도 없겠지···.”
노스엘던은 조그맣게 쏙닥거리다가 ‘루자이데’를 쳐다보았다. 소년은 ‘굳었다’, ‘얼었다’, ‘화석 됐다’ 이런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걸 느꼈던지 그녀는···,
“제 발로 얌자쿨에 온 녀석이 겨우 이런 일로···”
라고 말하며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자 루자이데는 아예 ‘약한 자 강자에게~ 바짝 들러붙기’ 작전에 돌입한 듯 감탄에 감탄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엄~청나요. 노스엘던님.”
역시 칭찬이라서 그런지 조금 허술해진 그녀, 다소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그리 나쁜 종류의 아부성 발언이 아닌 듯했기에 좋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좀 더 잔소릴 하려고 몇몇 단어를 머릿속에 심어두었으나 그건 이내 사르르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조금 멀쑥해하며,
“···어쨌거나 내 반지를 찾았으니까, 소원 말해볼래?”
“소원이라···, 그럼 전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여긴 제가 아는 분이라곤 노스엘던님 뿐이잖아요.”
“그래? 가령 여자친구?”
핵심을 찔렸던 걸까? 소년은 이내 당혹감에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왜 얼굴이 붉어질까.
“아··· 그게,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전 괜, 괜찮아요!”
그 모습에 그녀 자신도 예전 그런 또래였을 때를 잠시 오랫동안 생각해 보며-그러나 그 기억은 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기억의 파편이 제법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은근히 장난을 쳤다.
“하! 하! 하! 난 어때?”
“예···에?(‘···그건 안 돼요! 절대로-요!’)”
더 이상 무슨 말을 꺼낼 수 없을 만큼 이상해져서 머릴 푹 숙이는 소년, 그와는 달리 아주 심한 망상을 굴리고 있던 그녀는 ‘감히 네가 날 넘봐?’하며 과도한 자화자찬으로 마무리 하며,
“농담이다. 농담! 녀석 부끄러워하긴, 하! 하! 하!”
‘무서운 여자친구는 절대 안 돼! 그리고 정체불명의 저 사람도···’
그 소년은 절대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다만 공포에 질린 것뿐이었다. 그 증거로 얼굴에 붉은 기운보다는 푸른 기운이 대체로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여자친구라··· 그건 꽤 쉬운 일이지. 아참! 그러고 보니 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구나. 원래 첫 방문자들은 대개들 이러니까. 그럼, 다음에 보자구나. 그때 네 여자친구 하나는 확실하게 데려오지!”
그 말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지만, ‘갈 시간~’이란 말에 조금은 섭섭해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어디로 가는 거죠? 노스엘던님은?”
그러자 퉁명스레,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음. 그렇다면 전 어떡하나요? 전 이제 어디로 가요? 어떻게 돌아가죠?”
“몰라! 방문자들이란. (‘얜 얌자쿨의 문을 동화시켜 버린 주제에 아는 게 너무 없군.’)더 이상···, 재미없군.”
그 소년이 자신의 의문점을 풀 대화가 다 끝내기도 전에, 자기 말만 하고 그녀는 무책임할 정도로 가버렸다. 처음엔 거의 안내자를 자청하듯이 말하더니 말이다.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일까? 그것도 소년의 착각인 걸까? 소년은 이제 혼자 이곳에 내버려졌다. 미아가 된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막막할 따름이었다.
“저기··· 노스엘던님!”
이라고 불러봤자, 고개 한번 뒤로 안 돌려주는 그녀였다. 이내 포기를 하는 루자이데, 마냥 탄식했다. 소년은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그나마 여기 얌자쿨에서 만난 두 번째 사람이 생각났고, 그 호수 근처로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니, 좀 전에 보았던 숲~신령 '참쑤에'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 앞에는 글씨가 적힌 나무판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글씨는 처음부터 아는 것처럼 소년에겐 잘도 읽혔다.
『내부 수리 중-이상하고 난폭한 여자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음-(추신: 돌덩이가 호수 바닥을 포함한 나의 보금자릴 휘젓고 다님. 돌덩이 주인이 누군지 알만하다고 알만해! 거기다 엄청 무식할걸!)』이라고 적혀있었다.
그곳의 푯말을 읽다가 웃음이 키득 나오려 했지만 루자이데는 입을 가리며 꾹 참고는, 호숫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오자마자 더는 참지 못한다는 듯이 막 키득거렸다.
그러면서 좀 더 걸어가다 보니 그 호숫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갔던 곳, 그 노스엘던님이 나왔던 곳으로 갔다. 자신이 처음 정신을 차렸던 곳 그 근처로 갔다.
그 숲에서 첫 번째 만남이 이뤄졌기에 그다음도 가능하리란 묘한 확신이 들었고, 정처 없이 ‘언젠간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시간이 다 됐다는 말과 자신이 돌아가야 한다는 걸 제대로 알려줄 사람’이 나타나겠지 하고 생각하며 좀 더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는 와중에 그 초록 숲 사이로 작은 동물이 한 마리 뛰어나오고 있었다. 마침 거기로 걷고 있던 '루자이데'는 뭔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나 오랜만에 만난 생물인가!? 하여간 그 소년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었구나!’ 하는 것을 오늘 또다시 깨닫게 되었다.
깡총 깡총.
샛노랗고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앞발과 뒷발을 앙증맞게 땅을 굴리며, 조금씩 소년에게로 다가왔다. 너무 심심했던 소년에게 웬 토끼가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토실토실한 얼굴을 하고는 길쭉한 귀를 살짝 움직이며 다가오는 그 토끼가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와아··· 너 정말! 귀여워.”
소년이 손을 뻗어 내밀자, 그 토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짝 달려와, 소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포옥 안긴 토끼는 너무 부드럽고 따스해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외로움 끝에 온 반가움에 토끼를 꽈악 안아주었다.
“얘! 토끼야. 넌 이름이 뭐야? 이름 없어? 음··· 그럼 내가 지어볼까?”
몇 마디 말을 나누면서, 그렇게 안고 있는 동작으로 소년은 토끼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음, 뭐가 좋을까? 노란색이니까. 병아리! 훗 이건··· 좀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토끼 이름을 생각 중이던 소년, 그러기를 잠시 소년이 쓰다듬기를 그만두고 손을 토끼의 머리에 올려놓은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귀여워 보였던 토끼가 소년 몰래 날카로운 '송곳니'를 화악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드라큘라 백작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로 소년의 어깨를 향해 몸을 던지듯 그 반동으로 세차게 물어 버렸다.
“아앗! ···너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처 방어할 틈도 없이 그 토끼에게 물어 뜯겼다.
‘토끼가? 토끼가··· 날 물었어!?’
그 귀엽던 토끼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좀 전의 그 날카로운 송곳니는 맛보기였다는 듯이 그 소년은 어느새 그 작은 토끼의 변한 얼굴에 끔찍한 공포가 밀려왔다.
순식간에 처참하게 일그러져 가는 토끼 얼굴하며, 곧 토끼 몸 전체는 샛노란 털색 대신에 칙칙하고 뻣뻣한 회색 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야생 고양이처럼 찢어질 듯이 번뜩이는 눈빛을 한 채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년은 막 눈이 빨갛게 변해가며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토끼를 일단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고, 막 잡으려는 순간!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소년은 그 토끼의 눈빛을 보는 순간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계속 굳어오는 몸은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토끼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눈을 깊이 질끈 감아버렸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몸이 편해지는 듯했다. 그 물린 고통은 그대로인 듯했지만, 몸에 힘이 순식간에 빠져버리는 듯 기운이 없었다.
엄청난 혼란과 어둠, 그 어둠 속으로 한 아이는 빨려 들어갔다. 기억이 아득해졌다. 그 끔찍한 영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갔다.
그렇게 한순간을··· 또 다른 기억과의 만남이 시도된 것 같았다.
‘나는 대체 누구지?’
그러다 까마득한 어둠을 몰아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하지만··· 가까이에서 무슨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그 언어는 바로 알아차리기엔 어려웠지만 서서히 그 단어와 말소리 등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픈 것 같은 통증도 어깨 부근의 통증도 모두 다 사라지고 '청각'만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
아직도 잠에서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 꼬마는 어느 순간 귀를 쫑긋거리며 그 목소리를 잘 들으려고 애썼다.
“준아, 준아?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으···음.”
“준아. 얘가 너무 깊이 잠들었나?”
서서히 그 아이의 눈앞에 밝은 빛 한줄기가 보였다. 익숙하고 정다운 목소리도 들려왔다. 안심이 되었던지··· 준이는 불안한 기분을 떨쳐내며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와암. 아침이다.”
“이 녀석 이제 일어나니? 어제 그렇게 일찍 잤으면서··· 지금 일어나!?”
준이는 눈을 비비며 자기 앞에 있는 누군가를 쳐다봤다.
‘엄마구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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