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붉은 눈.
아직 안 보여. 허나. 5미터 앞은 빛일지도 몰라.
“아, 그렇구나! 그때 두꺼비···”
그녀는 뭔가 속으로 꿍꿍이를 만드는지 이미 시선은 자기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지. 좋아. 쿠를하가 말했던 대로라면, 그 애라도 상관없겠지. 여자친구··· 라는 거. 흥! 그 녀석 얼레리꼴레리···란 그 말은 뭐야. 유치하게 시리. 내 부하 녀석이라지만, 쿠를하는 역시 뭔가 덜떨어진 거 같아. 내 주위엔 온통 바보. 바보. 바보···’
“두꺼비? 난데없이 무슨 그런 게···”
잠시 주변 사람들의 욕을 맘속으로 해댔던 노엘, 잠시 뜨끔했을까? 애써 그것을 감추는 듯 대화 내용을 바꾼다.
“그럼, 또 언제 보기로 했어? 그 애, 세준이.”
“그때··· 대충 ‘나흘 뒤 오후 3시’라고 말했으니까. 가만~ 보자··· 바로 내일인데?”
이 둘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냥 한 번씩 다투고 헤어지는 그런 관계. 그렇다고 아주 편한 관계도 아니었다. 아직 둘 간의 오래된 기억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들도 아직 불완전하다. 언제 그것이 풀릴지는···.
“그래? 일단 그 애 순수마력에 대해서도 좀 조사해 봐. 현재 몇 퍼센트인지. 변화하는 지 등등 그런 것들. 그럼 난 바빠서.”
“나, 나도 바빠. 알았어. 일단 이 일을 맡기로 했으니까.”
*
오전 한때, 맑은 하늘, 그 아래 앞머리 칼이 약간 짧게 흩날리며 걸음을 내딛는 얼굴이 다소 햇살에 그을려 옅은 갈색빛을 내는 꼬마, 그 애가 바로 세준이었다.
세준은 막 자기 집 앞마당에 듬성듬성 난 개나리꽃 울타리를 벗어나, 집 밖으로 향했다. 준이는 봄에 맞게 가벼운 긴 팔 흰 바탕에 귤색 줄무늬 티와 그에 걸맞은 편한 스포티한 운동복 바지를 입었다.
5분여 걸음을 내디뎠을까? 저 멀리서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한 귀여운 녀석을 발견했다. 그것도 네 발로···.
“저 강아진··· 동진이네 삽살개잖아?”
언제나 그랬듯 가벼운 마음으로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히죽 웃으며 다가가는 도중, 준이는 자신의 걸음이 딱하고 정지되어 버리는 걸 발견했다.
짙은 고동색 바탕에 흰 점박이가 있는 그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걸 보면서도 왠지 모르게 준이는 그 강아지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평소엔 당연하단 듯이 준이가 그 강아지의 머릴 쓰다듬거나 맛있는 걸 건네주기도 했었기에 강아지는 믿고 있었다. 더 애교를 부리면 될 것이라고 그러나 예상은 어긋나고!
준이가 다소 겁에 질린 듯 외쳐댔다. 너무나 당당했던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였고,
“이 녀석! 언제부터 날 잡아먹을 듯이!!”
왜 그랬을까? 한없이 순박하게 보이는 강아지의 꼬리 흔들기 및 준이 주변에서 살짝 어슬렁거리기가 그리도 이상하게 보였을까?
이때, 세준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고, 뒷걸음을 조금 내딛다가 뒤쪽 바지 주머니에 끼워져 있던 새총을 오른손으로 집어 들었다. 얼른 바지 양쪽 주머니 중 왼편으로 왼손을 재빨리 넣었다가 뭔가를 잡고 다시 빼내었다. 그러는 동작도 잠시 새총은 어느새 장전!
피웅!
곧, 작은 자갈이 새총에 앉아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강아지의 몸통을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지나갔다.
깨겡~
그러자 강아지는 왜 준이가 자신에게 그러는 줄 모르고 다시 준이에게 다가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준이가 다시금 새총을 앞으로 들이대는 시늉을 해 보이자, 눈치 빠른 강아지가, 이내 종종걸음으로 다시금 돌아왔던 길로 '멍멍멍~' 짖어대며 황급히 도망가고 있었다.
좀 전 준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착각과도 같은 현실로 독수리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붉은 눈으로 물든 강아지였다. 게다가 그 고동색 털과 흰색 털이 귀신의 머리칼처럼 빳빳이 날이 서서 길게 사방을 휘젓고 있었다.
무슨 기운에 이끌리는지 강아지의 몸에서 바람이 일어나는 듯 그 털의 움직임은 꽤 괴이해 보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이제 겁을 상실한, 고양이 앞의 생쥐와 닮아있었다.
이미 자신에게 '나는 맹수닷'하고 최면을 걸어놓은 듯 그 강아지의 뒤편에 거대한 검은 오라가 번져대고 있는 걸 보았다.
세준은 이에 단지 새총만으로 대항한 것이었다.
휴으.
한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준이는 다소 뿌듯함을 느꼈다. 그 흉악한 강아지를 몰아냈다는 것에 대해···, 준이 나이 여섯, 그럴 만했다.
왜 붉은 눈으로 보였는가? 에 대해선 준이는 잘 몰랐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유랑이가 준이 집으로 놀러 왔다.
저번과는 달리 무릎까지 살짝 내려오는 살굿빛 원피스를 입고 왔다. 거기다 머리에 붉은색 머리 끈을 리본으로 왼편에 묶어 장식해 둬서 그 언뜻 보면 남자 같은 짧은 머리 스타일에 여성미를 조금 더한 듯 여겨졌다.
“준아! 나. 왔어.”
“유랑아. 어서 와.”
“있지, 준아, 나··· 오다가 강아지 봤는데. 그거 진짜 귀엽더라. 나 머리도 쓰다듬어 봤~다! 우와, 굉장히··· 굉장히~ 순했어. 도망도 안 가고 가만있었어! 우와··· 대단해!”
또 뭔가 과장된 소리를 해대는 유랑을 보며 피식 웃던 준이, 그러면서 다소 의미심장한 투로 한마디했다.
“···그런 걸로 대단해하지 마. 유랑아. 그리고 그 강아지 완전히 악에 화신이니까. 그 붉은 눈에! 그 시커먼 그림자 같은 걸 달고 있는 녀석 따윈 좋아하지 마.”
“으응? 무슨 말이야?”
“휴··· 내 눈에 보였던 게 네 눈에 안 보일 리가 없지. 아니다! 그 녀석 정말로 나빠서 널 어리둥절하게 만들려는 거야! 그 틈에 공격하려고 말야. 동진이도 조심해야 할 텐데.”
걱정하는 모습이 진심이었다. 저번 딸기 소동에서처럼 동진이는 겁이 많은 편이었고, 그걸 걱정하는 듯했다. 그런 준이를 보던 유랑은 의문 사항이 있는지 질문을 던졌고!
“왜? 동진이가···”
“동진이네 강아지거든, 그 악당! 나도 어쩔 수 없는 녀석이었어. 그냥 새총 한방에 도망가 버리긴 했지만, 음··· 지금쯤 복수를 꿈꾸고 있겠지. 휴으.”
“정말? 하지만 내 눈엔··· 그게 아닌 거 같기도! 음··· 그럼 준아! 우리 동진이 구하러 가자.”
정의감이 많은 유랑, 무조건 ‘구하러 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모양이다.
그러자 준이는 예전에 보여줬던 용기 있던 모습(예전에 두꺼비 건은 단순히 준이의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도망갈 것을 약속했었고)이 아닌 고개를 가로저어 보이는 의지력 상실의 꼬마 준이였다.
이에 실망인지 뭔지를 한 유랑, 슬픈 눈길로 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준아, 왜 안 돼? 동진이가··· 네가 말한 귀여운 강아지 악당에게··· 잡혀서 먹히면 어떡해! 그러면··· 그러면··· 주, 죽을지도···”
또 엄청난 상상을 벌이는 유랑,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울먹거렸다.
그걸 보며 준이는 ‘이걸 어째?’하며 유랑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걸음을 디디며 유랑을 끌고 갔다.
“···아. 갈 거야? 준아?”
“그냥··· 가보지 머. 유랑이 너! 네가 계속··· 그런 식이니까. 휴으”
살짝 유랑의 얼굴을 쳐다보던 준이,
‘울려고 하니까 갈 수밖에 없잖아. 마음 약해지게···’
“음? 내가 뭐? 내가 계속 뭐? 왜 그래? 준아!”
“됐어. 그러니까 가면 되잖아.”
“으응. 고마워. 준아···!”
그렇게 바로 얼굴 앞에 대고 방긋 웃어버리자, 준이 ‘아앗’하고 놀랐다가 이내 ‘뭐, 별거 아냐.’하고 답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걸음 10여 분도 안 걸어가서 동진의 집에 도착, 키가 큰 동진이가 마침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세준이하고 유랑이구나.”
“아, 안녕? 동진아···!”
먼저 유랑이 인사했다. 그리고 준이가 요목조목 주요 이야길 꺼내려는 순간! 그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유랑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유랑 옆에 있던 세준, 얼른 그 강아지를 유랑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고 온몸을 점프하듯 해서 발로 ‘쿵’하고 땅바닥에 착지해서, 강아지 앞에서 겁을 줬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외쳐댔다.
“야! 저리가! 이게! 절로 가란 말이야! 유랑아 내 뒤로 가. 그리고 동진아···”
그렇게 강아지가 신경에 쓰여 동진이를 보지 않았건만, 이제 고개를 들어 동진이를 보니, 키가 큰 동진이가 뭔가 화가 단단히 난 듯 해 보였다. 그리고는 준이에게 소리쳤다.
“세준아! 너 나쁜 애구나. 어떻게 우리 포포한테! 우리 포포 겁 많단 말이야. 이러면 밥도 안 먹고 끙끙 앓을지도 몰라. 너나 저리가!”
그러면서 동진이는 얼른 ‘포포’라 불린 고동색 바탕에 흰 점박이 삽살개를 안아 들었다. 강아지는 뭐가 좋은지 금방 놀랐다는 것도 잊고서 주인의 품속에서 버둥버둥 대며 ‘왈왈~!’하고 기분 좋게 짖고 있었다.
“아, 아니 이게! 동진아 넌 속고 있는 거야! 이 강아지가 널 보면서 씨익 웃고 있단 말야. 눈도 빨간 이 강아지! 정말 ‘악마’란 말야! 유랑아, 너도 말 좀 해봐.”
어리둥절한 유랑, 준이 말만 들으면 분명 악당 강아지, 그러나 자신이 보기엔 동진이도 멀쩡하고 강아지도 멀쩡했다. 준이가 이상한 게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다가···,
“미안, 나 잘 모르겠어.”
“아니! 유.랑.아! 내 말 못 믿겠어?”
유랑, 곤란한 듯, 잠시 생각하는 척 10초 하다가 동진이와 강아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으응, 그게··· 아! 동진아. 그 포포, 내가 안아 봐도 돼? 참 귀엽게 생겼다~ 요기 세준이네 가다가 잠깐 봤거든. 아~얘 이름이 포포였구나. 이름도 엄청 좋다. 누가 지었어? 귀엽게 잘 지었다아.”
그러자 부끄러운 듯 동진이는 유랑 앞에서 멀쑥하게 말했다.
“그거··· 그렇지! 우리 아빠도 그랬어. 자-아, 한번 안아봐. 이 녀석 보기보다 얌전해서···, 헤헤. 야! 세준아, 너 오늘 어디 아픈 거 아냐? 왜 우리 포포한테 시비 거는 거야?”
이에 세준은 몹시 놀란 듯, 그리고 유랑도 자신을 조금 배신한 듯 보여서 몹시 밉게만 느껴졌다. 머릿속 대 혼란, 세준은 어찌할 줄 모르다가도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고수했다. 동진과 유랑을 향해서 외쳐댔다.
“너,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그럼 난 몰라. 난 갈 거야!”
하고 홱 몸을 돌려서 뛰어가 버렸다. 집으로.
집으로 가는 사이··· 걸음을 줄이며 준이는 생각했다.
‘혹시··· 나만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야? 나만 저 강아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던 걸까···? 얘들이 어떻게 되든···, 날 안 믿었으니까. 배신의 대가는 크지. 흠. 하지만! 유랑인 정말 괜찮을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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