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안 움직여*로느.
아직 안 보여. 허나. 5미터 앞은 빛일지도 몰라.
‘하지만! 내게도 아직 히든카드는 있어! 그걸 믿는 수밖에 없어!’
쥬드는 양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앞으로 뻗으며 다소 박력 있는 몸짓으로 쫙 폈다. 그러자 그 즉시 손바닥 앞쪽으로 단번에 생겨나고 있는 자그마하지만 무척 많은 개수의 은백색의 세잎 클로버가 20여 미터를 고속 주파해나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앗!!”
이렇게 괴성을 질러대던 쥬드, 그와 동시에 쥬드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나가는 클로버들의 충격파를 흡수하려는 듯 흙먼지를 일으키며 몸이 살짝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함께 뒤로 1미터쯤 지-익 밀려나갔다.
그렇게 수십 여 개의 작은 은백색의 클로버가 마구잡이로 회전을 하며 공중을 날아 직선코스로 ‘남색머리칼의 그 사람’과 다람쥐 무리에게 쏟아졌다.
은백색 클로버 비가 챤과 몽령귀로 변신해버린 괴물 다람쥐에게 내리고 있었다. 그 클로버들은 각각 챤과 몽령귀의 온몸에 들러붙었고 클로버의 윤곽선이 드러나며 거기서부터 금빛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그 와중에도 쥬드는 20미터 주파에 힘쓰는 것이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현재 열심히 달리는 그는 남색 머리칼 남자-갑작스레 넘어지다가 굳어버린 포즈처럼 보이는, 한쪽 다리는 무릎을 굽힌 상태고 다른 한쪽은 아주 살짝 구부려진 상태인데다 한 손으로 그나마 땅을 짚고 있으며 얼굴은 아래로 숙여진 상태로 땅 쪽을 바라보는- 즉 챤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어서! 도망쳐요!”
“나도 그러고 싶다만··· 몸이 안 움직인다니깐!!”
“네에? 어째서!!”
왠지 달리고 있는 두 다리가 두 발이 힘을 잃을 듯 휘청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휩싸이던 쥬드는 기운이 온몸에서 와락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 순간 자신의 도움이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에 실망해버린 것이었다.
그때 몽령귀 몸에 붙은 금빛의 광채로 번뜩이던 클로버는 몽령귀들을 바닥에서 대략 50cm정도 공중에 둥둥 뜨게 만드는 효과를 발하고 있었다. 그 핏빛 붉은 눈동자며 날카로운 송곳니며 칙칙하고 뻣뻣한 회색 털을 걸친 그 녀석들이 버둥대고 있다는 게 다소 우습게 느껴졌지만 그런 광경에도 챤은 여전히 짜증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도 모른다고! 나도 답답해죽겠거든?”
평소 같으면 그냥 잘~ 해치워버렸을 낮은 레벨들에게 지금 챤이 포위당하다니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지나가던 지원군으로 인해 괴물 다람쥐 아니 그 몽령귀들이 붕~ 공중에 떠 있는 걸보고는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곤 하지만 어째서일까?
저 은발의 청소년이 꽤 힘에 부쳐 보여서 불행이 닥쳐올 것만 같은 예감이 서서히 챤의 심장을 옭매고 있었다. 지금 그 은발 녀석이 달려오고 있긴 했는데··· 역시나 기분 나쁜 말을 내뱉는 듯 했다.
“그런데 어째서 말을 할 순 있는 거죠? 하, 하여간! 이제 1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게 무, 무슨 말이지? 야! 넌 날 못 구한단 말이야?”
“네. 그래요. 저는 ‘야’가 아니지만 이 상황에선 ‘저’조차도 못 구합니다.”
“뭐···야?”
“하-아, 어쩔 수 없지요.”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는 기운이 완전 빠져버린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던 쥬드, 거의 챤 앞에 다 온 상태로 ‘이 사람 나 혼자 못 들겠어.’라는 속마음의 나약한 푸념만을 하고 있다가 이내 조금 찌푸려진 난처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아직도 공중에서 버둥대던 끔찍한 녀석들의 쇼를 보고 있으면서 그대로 서 있었다.
‘으앗! 맞아! 이런 잠시··· 까먹고 있었다!’
그때 쥬드는, 이제 강렬히 금빛을 계속 이어 발하기보다 그저 신호등 불빛 마냥 깜빡거리기 시작한 클로버의 광채를 눈치 챘다. 역시 자신이 너무 여유자작 느긋하게 있었음에 약간 부끄러워하면서도 힘을 내려는 듯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어떻게든 시도를 해보자’라고 애써 생각하고는 건장한 남성 챤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애는 쓰지만 잘 되지 않는 가운데,
“이름이 뭐죠? 전 쥬클가드 롤 웨이, ‘쥬드’라고 불러주세요.”
“난 챠크얀 세아클이야. ‘챤’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화를 해도 되는 걸까?”
“아, 뭐 괜찮아요. 저흰 몽령귀 밥밖에 더 되겠어요? 하하하.”
왠지 더 이상 말을 잇기 싫어진 챤, 게다가 그 순간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에코처럼 이어져오고 그 누군가는 이내 정체를 밝히는 듯 바람처럼 휙~ 하고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쥬드의 뒤통수에 대해 뭐라고 했다.
“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쓰냐?”
옅은 갈색머리칼에 작은 회색빛이 섞인 검정 깃털 장식이 있는 데다 그의 목걸이에도 작은 깃털과 함께 있는 작은 녹색 구슬이 보였다. 게다가 그는 벨트애호가인 사람처럼 벨트를 얼키설키 엮은 의상에 두 손목마저도 가만히 여백의 미를 발하지 않고서 자잘한 깃털들이 촘촘히 일렬종대로 누워 팔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쥬드는 쭉 훑어보고 그에게 물었다.
“아··· 저기 누구시죠? 저를 혹시 아십니까?”
“난 바람의 가문사람이지. 이름은 로로피느 실론테, 그냥 ‘로느’라고 불러. 아-아 당신의 이름은 알고 있어. 쥬클가드 롤 웨이, 웨이 가문, 왕족이겠지? 그 은발머리칼은 왕족이 거의 대부분이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뭐 이런 단순한 몽령귀 때문에 당황하시나!”
“아··· 그래도 전 이런 덴 약하거든요. 혼자만 도망가기도 그렇고··· 뭐 여긴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답니다.”
대체 시간은 자꾸만 가고 있는데 이제 겨우 7초? 아니 6초? 어쨌든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계속 이런 순간에 이야길 느긋이 나눌 건가?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분명히 챤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 어쨌거나 챤은 나 홀로 초조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자신조차 너무나 바보 같아서 살고 보자는 생각에!
“5초 밖에 안 남았을 텐데!”
“아···! 이제 4초입니다!”
챤이 말하고 나자 쥬드도 말했고, 여전히 여유 작작 섞인 태도를 치우지 않은 그, 로느였다.
“에이 이런 건 2초도 오케이라고! 아니 그냥 얘네들 움직이기 시작하면 죽여줄까? 여기 미끼도 있고 말이야.”
그러며 챤을 힐끔 봐주는 것도 잊지 않은 로느였다.
이미 0초!
막 지나가는 상황, 지상에서 50cm 쯤 공중에 머물러 있던 다람쥐형 몽령귀들도 몸을 추스르고 지금이라도 중력의 힘을 빌려 아래로 내려와 곧장 땅을 지그시 밟고서 힘껏 점프해서 ‘에잇 내 독 발린 이빨을 받아랏!’하고 공격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면 챤에겐 한껏 기분 나쁜 상대인 ‘로느’씨가 자신만 홀로 이곳에 나두고서 ‘쥬드’만을 데려가면서 그와 동시에 몽령귀를 적당히 공격해대다가 그 틈에 챤 자신마저도 ‘앗! 몽령귀로 오인해 죽여 버렸다!’라고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격한 상상이 머릴 떠나지 않는 패닉상태였다.
아! 다시 0초 그 직후로 돌아와서,
몽령귀들은 로느가 ‘미끼는 이 녀석 챤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어차피 공격은 들어갈 셈이었다. 그 공격의 대상은 그 몽령귀들이 머릴 굴릴 사이도 없이 그 셋 모두였다.
그러나 로느씨의 공격이 한 수 ‘위’인데다 한 수 먼저였다.
휙-휙휙! 씌이우우웅! 홱-휙휙!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던 로느씨의 양 손목에서 어느덧 뽑히는 동작도 무척 빨라서 보이진 않았지만 여러 개의 깃털 등등이었다.
그것은 로느씨의 유연한 손목스냅과 팔 동작과 이어 재빠르게 발을 놀리며 괴물 다람쥐의 움직임을 포착해 적합한 장소에 정확히도 찔러 넣고 있었다.
그 찔린 직후 몽령귀들은 그곳이 급소라도 되는 듯 ‘으힉’하는 대강 그런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죽음을 선고받은 동시에 공중에서 바닥으로 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터져 버려서 자잘한 고깃덩어리를 뿌리는 녀석 내지는 땅으로 내리꽂히는 동시에 흙먼지를 대량 일으키며 거무죽죽한 핏물을 튀기며 땅에 깊이 처박히는 녀석 등등 모두 죽어나갔다.
퍼버벅-퍽퍽!!
단 세 번의 공격 중 마지막 공격에 의해 희생된 몽령귀 녀석들은 다섯 마리였다. 그 녀석들의 시체와 그 시체가 고깃덩어리로 변해 가는 소릴 들으며 이제야 챤은 ‘안심’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무척 기분이 상한 것도 있었기에!
공격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열다섯 마리를 한 놈도 놓치지 않고 해치운 장본인 로느씨에게 큰소리로 외쳐댔다.
“왜 내가 미끼란 거야? 큰 처남씨!”
“으흠. 그래도 몽령귀가 맛을 본 후에 슬슬 나서서 구해줄걸 그랬어. 나~참. 나란 인간은 몹시도! 인정조차도! 두둑하다니까. 이 좋은 성격으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잘도 살아가는지. 역시 난 근사하다니까. 아하하.”
이때 간간이 그건 아니란 듯이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해주던 쥬드,
“글쎄요.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요.”
“쥬드도 사람 볼 줄 아는군. 음음! 큰 처남이야말로 성격파탄 그 자체야!”
역시나 뭐든 당당하며,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듯한 로느, 고개 숙인 모양새로 챤이 짜증에 들뜨던 분노에 들뜨던 그 시선 그 외침조차도 깊이 음미하며 충분히 만끽하고 있었다.
“아. 괜찮아. 저 녀석은 내버려둬. 제멋대로 떠들게 말이야. 쥬드, 근데 애네들 독은 있었나?”
“물론이죠. 아마 몽령귀가 저 분의 맛을 보려고 살짝 베어 물기라도 했다면 꽤 골치 아팠을 거예요. 아무리 작은 몽령귀라도 레벨이 낮다하더라도 독은 독이라 위험하거든요.”
“이런! 위험했었나? 뭐, 그래도 저건 독도 약해서 물려도 죽진 않겠지. 전쟁 시에만 몽령귀들이 굉장히 세지는 거잖아. 그래서 그 시기에만 사람들이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저기··· 제가 알기론 그런 것도 아닐걸요. 물린 상처엔 이상하게도 출혈이 심해져서 그러니까.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일찍 발견되지 않는다면 과다출혈로 인해 죽어버리는 게 다반사이니까요.”
챤과 쥬드가 말한 직후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로느가 중얼댔다.
“아쉽군. 이거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후회가 드는군. 하하하. 뭐~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았을걸. 저 녀석!”
그 자신을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자에 말로 바보 중의 바보! 따라서 챤은 반박하는 듯 외쳐댈 준비를 하기 전에 그 녀석은 은인이긴 하다~란 생각이 들긴 했다지만 아니꼬운 것은 아니꼬운 것이었다.
“어쨌든 고맙긴 해. 로로.”
로로, 그 말을 하는 챤의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얼굴 근육만은 생생했기에 웃음 짓는 묘한 미소마저도 고개를 숙인 상태임에도 그 기운은 범상치 않았고, 로느는 누가 뭐래도 ‘모렌’에 속하는 자였기에 그 기운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로로, 그 이름, 너무 여자애 이름 같지 않은가!!
그 단어만으로 싸늘해져버린 로느, 어느새 천천히 깃털을 순식간에 잡아 던져서 보이지 않는 깃털의 개수, 그것들을 살벌한 몸짓과 표정으로 챤의 정지된 육체를 향해 던진다.
“에잇! 에잇! 에잇! 너 같은 녀석이! 너 같은 녀석이!!”
휙!~휙! 거리는 소리가 서너 번 들리는 듯 했으나 날아간 5~6개 정도의 긴 깃털은 무척 뾰족한 대다 날이 선 칼이 깃털 앞 편에 붙어있었고 이미 챤의 안 그래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 몸체 주변에 스치듯 포진하는 것은 어쩌면 로로 아니 로느씨의 아주 세심한 배려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챤은 자신의 가장 사랑스런 여동생의 남편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부러 배려하지 못한 3~4개의 무기 깃털은 챤의 뺨과 목에 혈선을 그렸고 동시에 챤의 옆구리와 어깨에 얄팍하게 붙어있던 겉옷을 찢겨 나가게 했다.
“훗. 그런데 어쩌지? 통증이 없네. 이거 배 아파서 어쩌나? 로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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