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영혼의 문제.
아직 안 보여. 허나. 5미터 앞은 빛일지도 몰라.
“훗. 그런데 어쩌지? 통증이 없네. 이거 배 아파서 어쩌나? 로로.”
“뭐라고? 챠크얀 세아클씨?”
“뭐야. 로로. 로로? 로로가 아니야? 나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리에피느’도 ‘리에’인걸. 어째서 ‘로로피느’가 ‘로로’가 아니라고 우길 거야!?”
좀 더 불행한 상황에 빠질 것을 애써 염려하는 듯 보이는 쥬드,
“아, 저기 그런 건 자신이 원하는 단어만을 조합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저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저기 다들 화를 푸시길, 그-그러니까 말이죠오······ 아니 됐습니다.”
라고 마지막 멘트를 날릴 수밖에 없었던 쥬드는 그 이유인 즉 로로 아니 로느씨가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감히 너라도 날 어쩔 수 없어! 나의 분노는 이놈으로부터 기인해서··· 어쩌구저쩌구··· 그러니까 넌 빠져···!’라고 하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로느의 눈빛으로부터 읽혀졌기 때문이었다.
이내 로느의 행동이 이어졌다.
결심에 찬 눈빛은 보았으니 이제 유치한 행동차례일지도, 본능적인 유치함이 섞인 감정적인 반응에 모두들 발끈 하곤 한다는 것이 로느의 정론이었기에 발을 들어 챤을 적당히 차서 자신의 다음 동작이 좀 더 편한 자세로 하기 위한 초기단계를 시작으로 다시 좋은 포즈로 발랑~ 누워있는 굳어있는 챤의 얼굴 상태변화까지 포착 가능한 포즈로 만든 다음 다시 로느는 챤의 배에 대고 발길질을 리듬감 있게 한 방! 이어 두 방! 세 방! 신나게 날려주었다.
“이 녀석 좀 봐! 아하하!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런 무책임한 상태로··· 나의 큐트(cute)하고 원더풀(wonderful)하고 뷰티~풀(beautiful)한데다 스페샬(special)하고 러블리(lovely)하기까지 한 마이 시스터(my sister) ‘리에’를 데려가다니 정말 짜증나는 녀석이야.
이번에 아예 널 매장해버려야지. 안 되겠어. 더는! 더 이상은! 리에가 너 따위 생각지도 못하게 말이야. 하하하하! 으음. 어디가 좋을까나? 쥬드. 어디가 좋을까? 이런 악독한 자를 삼킬만한 땅덩어리를 얼른 찾고 싶은데 말이야!”
“예. 뭐. 저도 상관은 않고 싶지만, 그렇지만! ‘매장’만은 그만두세요.”
그러나 그런 말을 씨알도 안 먹혀서, 로느는 그저 ‘어느 자리가 좋은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지 자릴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손으로 땅을 탁탁~ 두들겨보는 건 왜인지, 땅은 수박이 아닌 것을. 어쨌거나 발로 슥슥 문질러보기도 하면서 세차게 발을 굴려도 보면서~
“아-아. 여기가 좋은가? 으흠. 마침 이곳에 몽령귀 시체들도 꽤 죽어있군.”
너무나 심각한 당신, 그는 바로 로느였다. 그랬기에 약간은 걱정이 되던 챤은 은근슬쩍 말을 흘린다.
“그건 당신이 그랬다고! 로로! 정말 날 묻진 못할 텐데···?”
여전히 무념무상, 아니 ‘로로’건에 무척이나 맘이 상해있었기에 ‘로로’건은 맘속 깊숙이 묻어두고서 ‘매장’만을 깊이 무아지경에 이르러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이런! 이렇게 나둬 버리면 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으니까··· 몽땅 몰아다가 매장을 해버리는 것이 좋겠다! 아···차! 그리고 오늘 새롭게 발견된 신종 멍청이 몽령귀 놈도 같이 적당히 생매장시키는 거지. 아하하! 역시 난 최고야. 더 이상은 괴이한 녀석의 주문에 걸려들지 않겠다! 쥬드! 너도 조심해! 저 녀석은 원래 변태니까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해!”
“내가 무슨 변태란 거야! 로로양~ 따윈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다! 쳇! 묻든지 말든지!”
이제 막~가는 챤, 정말로 그 로느가 반드시 자신을 생매장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욱~하는 기분은 막을 수 없었다. 이때 여전히 말리는 쪽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셋 중 가장 선량한 시민 쥬드가 나섰다.
“생매장은 안 된다니까요. 로느씨.”
*
기분 나쁜 듯 대놓고 부릅뜬 두 눈으로 항의하는 로느, 뭔가 시꺼멓고 암울한 뭔가가 폭발적으로 그의 등 뒤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내뿜게 된 그것은 그 옆에 있던 쥬드를 향해 번져가고 있었다. 로느 삐딱 선을 상당히 탄 듯.
“왜? 왜냐. 왜 안 되냐! 쥬드! 저 녀석은 내게 모욕을 주었다. 고로 저 녀석은 죽어 마땅한 거다. 아니냐? 넌 왜 아니라고 말할 테냐? 그 근거를 천 개 이상 대라.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이 놈을 제대로 처단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
“웃기고 있네. 쳇! 저승사자랑 친척도 아니면서!”
불타는 로느의 기운에 기름을 확 들이붓는 챤, 곧이어 활활 화염을 내뿜을 듯한 이미지로 변하려하는 로느를 무슨 일인지 예전보단 확실히 심각한 듯 이 상황의 진전을 말리고 있는 쥬드였고, 단호한 눈빛으로 그들을 제압하려 했다!
“그건 아니지요. 아니라구요. 챤씨도 그만두세요. 로느씨도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땅히 떠오른 진실은 없었지요. 하지만 이젠 알겠어요. 이제는 챤씨의 그 자유롭지 못한 움직임에 대한 판단도 제대로 선다-구요. 게다가 통증조차 없다는 것도 말이지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로느씨. 당신도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챤씨의 상황은 ‘악조건’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뭐? 악조건!? 그게 무슨 소리지? 쥬드?”
누워서 입만 벙긋대던 챤, 자신에게 진정 안 좋은 일이 또 닥치고 있음에 당황해하고 있던 차, 약간은 미안함을 담았으나 그다지 그런 내색은 하지 않던 로느는,
“음음. 그런 거였나? 나는 미처··· 저런 사소한 것까진 생각지 못했군. 그것도 그런 것이. 네가 여기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던가. 나 참. 나도 어리석군!”
“야! 로···느? 사소한 거? 내, 내가 말이냐!?”
“챤씨. 이제부터 로느씨를 자극하지 않도록 하세요! 챤씨를 살려줄 수 있다-없다는 아마도 이 분에게 달린 듯 하니까요. 그리고 로느씨? 저를 봐서라도 저 분을 살려주십시오!”
“근···데 대체 내가 뭐가 어떻다는 건지···? 아니 그럼 내 몸이 꿈쩍도 안 한다는 것이 문제? 그게 무엇 때문이지? 나도 놀랐다니까! 그 몽령귀한테 물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독이나 최면 같은 건 아닐 거 아니야? 물리기 한참 전에 공격도 못하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럼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그건 아마도 챤씨가 넘어온 저쪽 차원에서 뭔가가 당신을 데려오기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서 머무는 것을 점점 방해하고 있으니까요.
그 증거가 바로 이렇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얼굴근육’과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거 그 정도라고 할까요? 이건 ‘정신체’의 문제보단 육체와 연계된 영혼의 문제인 것이로군요!”
“에? 영혼? 정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역시 두뇌가 없는 듯한 이 녀석은 어쩔 수 없는 바보라니까~ 란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로느는 또 다시 몇 마디 툭 내뱉는다.
“물론 상관이 있겠지. 이런 무식쟁이를 데리고 어떤 이야길 해봤자 라고 쥬드. 일단은 보내버려.”
“그럼··· 혹시 몸이 굳는 이 현상이 점점 퍼져서 그나마 제대로 구실을 하고 있는 영역까지도 번져간다는 말인가? 쥬드?”
이제 뭔가를 이해한 듯한 챤의 말에 진중히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는 쥬드, 이내 뜨아~ 하는 챤의 얼굴 표정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그건 표정을 만드는 얼굴 근육마저 점차 굳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걸 막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역시 ‘재 이동’뿐이겠지요.”
“그래. 그렇지. 허나 너 같은 케이스는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고 있는 데다 ‘풍전’을 이용한다지? 그래서 그것에 습관이 되어있는 네 몸에 그 누군가의 명령 따윈 하나도 듣질 않아! 허나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샤망’이란 존재가 네 옆에 떡~하니 나타난다면~야 또 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그들은 바빠! 이렇게 되면 너는 결국!!”
“결국!? 결국에··· 뭐?”
그 답변을 다시 쥬드가 이어서,
“챤씨는 점점 얼굴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마저 낼 수 없게 되면서 흐음··· 결국엔 ‘강제소환’ 당해버립니다. 그러면 지금 그 몸으로 표현된 ‘정신체’ 또한 꽤··· 강한 충격을 받게 되어 한국으로 가서도 많은 시간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게 그러니까 그리 좋지 않은 현상이··· 으음··· 그게 그러니까···”
그러나 도무지 그 말이 입에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 입안에만 맴돌다가 쥬드는 시간이 다급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절대로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 그런지 16세의 청소년 쥬드는 여전히 어물정~어물정 시간을 끌고 있었기에 이때 로느가 나서기로 했다.
“왜 그렇게 머뭇대는 거냐! 쥬드. 넌 장차 이 나라를 이끌 사람이 되어야 하잖냐! 이런 건 환자에게 좋지 않아! 정확한 진실을 말하는 편이 좋지!”
“아니 그것보다··· 전 의사가 아닌걸요. 보통 이런 자세한 이야긴 하지 않는~다구요. 로노씨~~~! 이런 말을 꼭 제 입으로··· 해야만··· 하나요? 꼭 듣고 싶으세요? 챤씨?”
“아, 아니 저··· 그게 어려운 거라면 안 들어도 되긴 하지. 그치만 이건 내 일이고··· 해서 그러니까 일단은···”
억지로 듣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으면서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맘이었다. 그러나 무척이나 착한 인상에 속해보이는 쥬드한테 듣기엔 약간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로로양(로느)에게 듣기는 무척 싫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보통 들어맞았고! 챤은 뚫린 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에 당장에 직면하고 말았다. 챤의 머뭇거림을 가차 없이 짓밟아 뭉개버리던 로느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치며 말하는 사이사이에 걸리는 중요단어는 무척이나 격양된 어조로 악센트(accent)를 주고 있었다.
“그렇지! 나도 리에의 남편인 챠크얀 세아클로서 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이야기해도 되겠지. 챤! 네게는 ‘생명력 고갈’! 그거다! 바로! 수명 단축이라는 쥬드 말로는 ‘그리 좋은 않은 현상’이 일어나는 거지! 음음! 자세히 말해서 아~~~주 위험한 현상! 아··· 아··· 그런 것이지-이!!”
“에-에? 그, 그···런!”
무척 실망한 모양새인 챤, 그래서 무척 고소한 표정을 짓던 로느··· 그 순간 악마의 미소가 금세 휙 지나가다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혹 로느 그에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그보다 쥬드는 무척이나 괴로운 듯한 인상을 짓고 있었다.
치명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거대한 비밀을 알려버린 의사의 심정이랄까? 아니면 무자비한 언어적 구타를 가하던 로느를 막지 못함에 대한 자책감일까~?
이때, 또 다시 심심한 듯 이어지는 지루하지 않는 어조의 오히려 경쾌하기까지 한 로느의 목소리가 챤의 귓가를 잠식해 들어갔다.
“아? 왜 그래? 챤아? 단지 수명이 줄어들 뿐이잖아!? 이게 무슨 충격 받을 일인가!? 흐음. 아니, 아니, 네겐 꽤 충격 받을 일인가 보군. 아~ 이런 어쩌나! 내가 말해버리고 만 모양이군! 나~참. 난 솔선수범의 제왕이라니까. 아하하!”
그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쥬드 역시도 로느의 지금부터 시작되는 그 말이 ‘확인 사살’쯤 된다고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쥬드는 맘속으로 ‘로느씨는 악마다~~!’하고 외쳐댔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지금 확실히 로느의 상태는 대악마 그 자체였다. 악랄하고 치사하고 비열한 인상으로 갑자기 환영이라도 보는 듯 로느에게 생겨난 그의 뾰족한 치아를 자랑하듯이 입을 쩍 벌리고 챤을 향해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어 챤의 허탈하면서도 속이 베베~꼬여버린 음성이 들린다.
“아~네. 그러시겠지.”
*
로느의 광소가 계속 혼자 이어지는 옵션이 배경음악으로 깔린 가운데 쥬드를 향해 챤이 물었다.
“아까 말하려던 영혼의 문제란 건 뭐지?”
“네, 그건 영혼과 정신은 보통 같다는 식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좀 더 파고들어 따진다면 그 둘은 각각의 독립된 개체로 나눠서 보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챤씨는 얌자쿨에서 ‘정신체’로 표현되고 있는 건 아실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그곳의 육체와 이곳의 정신을 긴밀히 이어주고 있다는 것은 ‘영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지금 챤씨의 상태는 정신체의 기능을 점점 줄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다간 강제소환이 일어난다고 말한 겁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그··· 생명력 고갈이란 것도 100%를 다 말하는 게 아니니 염려 마십시오. 또한 생명력을 뜻하는 수명, 그 수명이 다했다는 말은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갔다는 것과 같답니다.
즉, 영혼의 일부가 정신체에게 이런 식으로 위험을 알리기 위해 쓰였단 말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생명력이 조금 쓰였다는 말을 로느씨는 과격하게도 생명력 ‘고갈’이라고 하셨군요. 하-아, 아참! 이런! 제 말이 저도 모르게 길어졌군요. 어서 풍전이란 걸 보여주세요! 어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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