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아카데미의 성기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corvette
작품등록일 :
2019.10.14 07:51
최근연재일 :
2019.10.31 15:30
연재수 :
8 회
조회수 :
363
추천수 :
4
글자수 :
40,239

작성
19.10.14 08:10
조회
79
추천
0
글자
12쪽

1화. 전이된 소년(1)

DUMMY

TV는 소리가 작게 켜져 있었다. 24인치의 자그마한 화면. 그러나 그 속에는 마치 온 세상이 담겨있는 듯했다.


소년, 레이는 그 신기한 장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곳 ‘지구’라는 세계로 전이된 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레이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레이는 소위 말하는 ‘전이자’였다. 그는 다른 세상의 인간이었고, 전이를 통해 지구로 넘어오게 되었다.


지구인들은 그 사실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태연하게 전이자 수습 절차를 진행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레이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기실 지구인들에게 있어 전이란 건 일상의 한부분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미 레이 말고도 수백 명의 전이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기사로서, 혹은 마법사나 초능력자로서 세계를 악으로부터 지키고 있었다.


레이 역시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터였다. 전이자들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성기사 율렌]


자그마치 2500페이지로 구성된 대서사시다. 그리고 그것이 레이가 살았던 세계를 증명하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성기사 율렌]은 레이가 살았던 세계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어낸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결말에서, 주인공인 성기사 율렌은 마신을 쓰러트리고 그 자신도 모든 힘을 다하여 죽는다.


지구인들에게 그것은 한 편의 소설이었지만, 레이에게 그것은 역사였다. 레이는 어릴 적부터 고결한 기사 율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곤 했었다.


지구인들은 [성기사 율렌]을 완결이 난 이야기라 칭했다. 그리고 이런 완결난 이야기들은 때때로 ‘책’의 형태로 화하여 전이자와 함께 지구에 나타나곤 했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하나의 세계, 그리고 한 명의 전이자.


레이는 율렌이 살던 세계의 전이자였다.


그리고 [성기사 율렌]은 레이의 ‘배경서’였다.


배경서와 전이자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선 지구인들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다만 지구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전이된 배경서 속 ‘악마’들이 지구를 침략하러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악마들을 막아내는 데에 전이자들의 힘이 도움이 된다는 것 정도였다. 그들은 그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요컨대 레이의 출현은 곧 성기사 율렌이 쓰러트린 ‘마신’이 언젠가 지구에도 출현하리라는 의미였다. 마찬가지로 그 마신의 퇴치에, 레이의 힘도 보태질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런 지구인들의 설명에 레이는 의문을 품었을 따름이다.


‘고작 나 따위가 마신을?’


레이는 그저 평범한 촌동네 소년에 불과했다. 그 또래의 사내라면 누구나 그렇듯 레이도 율렌을 존경했고 그처럼 뛰어난 기사가 되길 바라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는 소박한 농민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지구인들의 요구는 지나치게 갑작스러울뿐더러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영웅이 되어 지구를 지켜달라니.’


기사가 되어 악마로부터 세계를 구원하는 것은 뭇 소년들의 꿈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이자 바람일 뿐, 현실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레이는 자신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농부로서도 그리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다. 생김새만 보아도 레이는 호리호리한 인상이라 차라리 수도대학에서 공부나 하는 학자에 어울렸다. 하얀 피부는 햇빛에 달아올라도 며칠만 일을 쉬면 그 건강한 구릿빛을 잃곤 했다.


그러나 지구인들은 그가 검을 들기를 바랐다. 마나를 수련하여 기사가 되길 바랐다. 소설 속의 율렌처럼 고결한 기사가 되어 세계를 구원하는데 이바지하기를 바랐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레이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구인들은 착실하게 일을 진행했다. 지구의 연구자들은 배경서 [성기사 율렌]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레이의 출신성분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아마 내일 중으로 그 결과가 통보될 것이었다.


전이자들의 능력은 대체로 그와 함께 나타난 배경서의 페이지수와 비례했다. [성기사 율렌]은 장장 2500페이지에 달하는 대서사시인 만큼, 그 전이자인 레이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큼 컸다.


“휴우.”


낮은 한숨이 레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짝이는 금발이 살며시 흔들렸다.


지금 그는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영웅육성기관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카데미 ‘템플나이츠’.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며 오러가 휘감긴 검을 휘두르는 기사를 주력으로 육성하는 기관이었다. [성기사 율렌]의 주인공이 기사이다보니 레이가 기사육성기관에 배정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마나.’


레이는 마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뛰어난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이 마나라는 특별한 힘을 다루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만 알았다. 그마저 소설로 읽어본 게 전부고 실제로 마나 유저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 지구에선 마나 유저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장 지금 레이를 전담해 돌보고 있는 이연 교관도 익스퍼트 하급에 해당하는 기사였다. 레이가 살던 세계였다면 왕국기사단 수준의 실력자겠지만 지구에선 일개 아카데미 교관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연 교관은 젊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이라고 했다. 스물다섯에 익스퍼트 하급이라면 레이가 읽었던 웬만한 소설 속의 주연급 재능이었다. 열심히 훈련한다면 언젠가는 익스퍼트 상급을 넘어 마스터에 도달할지도 몰랐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대접해주는 게 레이는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는 평민이었고, 그가 살던 세계의 익스퍼트급 기사들은 최소 준귀족의 대우를 받았다.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차가 조금 말썽을 부려서요.”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문이 열리며 이연 교관이 들어섰다. 매끈한 흑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상당한 미녀였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출발하죠.”


레이가 우물쭈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키가 이제 겨우 170cm 언저리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합쳐지니 얼핏 보기엔 소년이 아니라 소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뭐 전이자니까 알아서 쑥쑥 크거나 하겠지. 다들 그랬으니까. 배경서도 2500페이지나 되고···. 어쩌면 새로운 소드마스터가 될 수도 있어.’


레이를 흘낏 바라보며 이연 교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쫄래쫄래 뒤를 따르는 레이를 이끌고 자가용 앞에 섰다.


현대문물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레이를 배려해 그녀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레이와 이연 교관을 태운 국산 경차 ‘REI’가 탈탈거리며 아카데미 부지를 가로질렀다. 템플나이츠의 부지는 대단히 넓어 거의 도시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지는 부지 바깥이었다.


“햐. 사회로 나오니 좋다.”


운전대를 잡은 이연 교관이 흥얼거렸다. 사회라고 해봐야 아카데미 부지 근처는 농경지가 대부분인 촌이었다. 발전한 시내까지 나가려면 차로 20분은 이동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연 교관은 부지를 빠져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마냥 즐거웠다.


“노래 좀 틀게요. 괜찮죠?”


“네? 아, 넵. 괜찮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장르 생기셨어요? 있으시면 그걸로 틀게요.”


“아, 아뇨. 음악은 딱히 안 가립니다.”


레이는 이연 교관을 대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은 가만히 있어도 남다른 기세가 흘러나왔다. 레이 같은 약골에게 그 기세는 압박감으로 느껴졌다.


결국 이연 교관은 적당히 자기 취향의 노래를 틀었다. 경차에 달린 싸구려 스피커가 쿵짝거리며 비트를 흘렸다. 그 비트 위에 래퍼가 펀치라인을 얹어 랩을 했다.


‘몇 번을 들어도 정말 해괴한 노래다.’


힙합이나 랩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레이에겐 랩도 그저 주술사가 웅얼거리는 주문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30분정도 지났을 무렵 차량은 시내에 진입했다. 이연 교관은 영화관 근처에서 차를 세웠다.


“저기예요. 영화관.”


지구에는 연극이 심화 발달되어 만들어진 영화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이연 교관은 주말을 빌어 레이에게 그 새로운 문화를 경험시켜주려고 했고 그 결과로 지금 두 사람이 영화관 앞에 서게 된 것이었다.


경험. 레이는 아직 지구라는 세계에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해지려면 자주 접해야하고, 자주 접하기엔 일단 재밌는 게 최고였다.


이연 교관이 고른 영화의 제목은 ‘나이트 퍼시발’이었다. 실존하는 전이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 영화였다.


낯선 세계에 떨어진 기사 지망생 퍼시발이 차츰 지구에 적응하며, 나중엔 본인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대악마 ‘아오카와’를 무찌른다는, 그런 다소 뻔한 스토리였지만,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지라 결코 그 무게감이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본 레이는 오히려 더 기가 죽어버렸다. 이연 교관은 레이가 퍼시발에 자신을 이입하길 기대했지만 레이 입장에선 그저 부담감만 더 늘었을 뿐이었다.


영화를 보곤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구경했다.


레이는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어차피 알아서 잘 적응하겠지. 다른 전이자들도 다 그랬으니까.’


이연 교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레이 또래의 소년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법이다.


밤이 너무 늦기 전, 그들은 다시 REI를 타고 아카데미 부지로 돌아갔다. 돌아갈 때에도 이연 교관은 힙합을 틀었다.


다음 날 점심 무렵. 레이 앞으로 ‘시나리오 연구소’에서 보낸 우편이 도착했다.


[배경서 상 연관 있는 인물을 발견하지 못함. 추가연구를 진행 후 차후 재답변 예정.]


우편의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연구소는 레이의 출신성분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이연 교관은 이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여간 문과쟁이들. 딱 봐도 주인공 자식 아니냐구. 잘생긴 얼굴만 봐도 딱 율렌 후손인 거 알겠는데.”


이연 교관이 보고서를 보며 툴툴거렸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보던 레이가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율렌경은 짙은 흑발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네?”


“저, 저는 금발이구요. 이렇게 천박한 금발은 대륙 남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율렌경은 고귀한 흑발이셨죠. 그런 머리색은 북부에서나 극히 드물게···.”


레이는 말을 하다 말았다. 이연 교관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쩝.”


이연 교관이 무어라 말은 못하고 입맛만 다셨다. 어차피 그녀의 역할은 레이가 지구에 적응하는 걸 돕는 것이었다. 그의 출신성분을 따지는 건 그녀의 소관이 아니었다.


“아 귀찮다. 치킨이나 드실래요?”


“치킨요?”


드물게 레이의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치킨을 시킬 때였다. 레이는 간장소스를 바른 치킨을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다.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보았다.


“양념반간장반으로. 괜찮죠?”


“물론이죠!”


레이가 신나서 대답했다. 이연 교관이 피식 웃었다. 전이자들은 대체로 미남미녀였다. 예외는 드물었다. 그 중에서도 레이는 특히 미모가 빛났다.


‘저렇게 미친 미모인데 그냥 평범한 촌동네 소년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딱 봐도 출생의 비밀이 있겠구만.’


그녀는 권한이 없었던 탓에 [성기사 율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건 대략적인 스토리 흐름, 그리고 마지막에 마신과 율렌이 동귀어진한다는 엔딩 정도였다.


일주일 후 또 연구소에서 우편이 날아왔다.


[연관인물 발견하지 못함. 출신성분 불분명.]


이전 보고서와 딱히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이연 교관의 반응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보고서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의 성기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2화. 엑스트라(4) 19.10.31 24 2 12쪽
7 2화. 엑스트라(3) 19.10.30 25 1 14쪽
6 2화. 엑스트라(2) 19.10.19 28 0 13쪽
5 2화. 엑스트라(1) 19.10.16 34 0 12쪽
4 1화. 전이된 소년(3) 19.10.15 36 0 13쪽
3 1화. 전이된 소년(2) 19.10.14 41 0 12쪽
» 1화. 전이된 소년(1) 19.10.14 80 0 12쪽
1 프롤로그 19.10.14 96 1 1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corvette'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