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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아카데미의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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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vette
작품등록일 :
2019.10.14 07:51
최근연재일 :
2019.10.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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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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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엑스트라(4)

DUMMY

시험이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주말, 레베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와는 2주마다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


“이제 곧 시험이죠?”


“네.”


“준비는 잘 되어가나요?”


“···글쎄요.”


레이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레베카는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레이에게 캐묻는 대신 가만히 커피만 한 모금 마셨다.


아카데미 부지 내의 한 카페. 그러나 학원동과는 조금 먼 탓에 여기까지 찾아오는 생도들은 별로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시험기간. 대부분의 생도들이 수련장이나 도서관에 있을 때라 카페 내에 생도라곤 레이 한 명뿐이었다.


그보다, 애초에 가게에 손님이라곤 레이와 레베카 둘 뿐이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시간은 넉넉했고 레베카는 보채는 게 만사가 아니라는 걸 잘 아는 상담사였다.


그녀는 가만히 레이가 생각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레이가 말없이 커피잔을 들었다. 한 잔에 3천원짜리 커피. 그러나 자신이 이걸 마실 자격이 있는가?


커피를 사준 건 레베카다. 그녀는 연구를 위해 레이를 만난다. 커피는 그 대가의 일부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준 것에 대한 감사표시.


그러나 자신이 그런 감사를 받을 만한 인간인가? 자신의 시간이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는가? 이곳에서 내가 한 게 뭐가 있지? 레이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오갔다. 그는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낯선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죠?”


결국 레베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대를 기다려주는 것도 좋지만 너무 긴 침묵은 오히려 독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레이가 자신의 무례를 깨달았다. 그는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힘드네요.”


지구로 전이되고 2달이 조금 더 지났다. 그 동안 레이는 별 다른 문제조차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지냈다.


모든 전이자들이 레이같진 않았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길 힘들어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었고, 드물게는 패닉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레이처럼 순종적으로 적응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 역시 지구에 온전히 적응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전이자들은 크건 작건 간에 한 번쯤은 우울증을 경험하곤 한다. 본래 살던 세계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쫓겨나 전혀 다른 세계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졌다. 누구라도 힘들만 한 상황이다.


레베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본인도 전이자였으니까. 그녀가 레이를 전담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이유에서였다.


“동기에게 한 소리 들었어요. 저더러 재능도 없는 주제에 아카데미의 자원만 낭비한다고 하더군요. 화가 났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껴졌어요.”


레이가 유수환과의 일을 털어놓았다. 이미 며칠 전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에겐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레베카는 차분한 태도로 레이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모든 얘기를 듣고서 레베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인들은 전이자들에게 큰 기대를 걸곤 하죠. 그리고 그 기대감이 무너지면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하고요. 비단 지구인만의 문제가 아녜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죠.”


레베카는 본래 귀족이었다. 그녀는 힘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졸한 감정싸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제 잘못인가요? 저는 이 세계로 넘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2500페이지짜리 배경서를 갖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구요.”


레이가 억울함을 표했다. 레베카는 묵묵히 레이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이. 사람들이 왜 당신에게 기대를 거는지 알고 있나요?”


“2500장짜리 배경서 때문이겠죠.”


“맞아요.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배경서에 서술된 악마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레베카가 살며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모든 배경서에는 악마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배경서들의 결말에선 매번 주인공이 악마를 무찌르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죠. 하지만 이곳 지구에선 어떨까요?”


“···그 무찔러졌던 악마가 다시 출현하겠죠.”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그래서 지구인들 입장에선 배경서는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 게 더 나은 물건이에요. 그러면 적어도 그 배경서 속의 악마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레이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레베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전이자들이 배경서 속 악마의 출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뜻인가요? 기사가 되어서?”


“아뇨.”


레베카가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런 기대를 받는 것이 어느 정도 필연적이란 얘기입니다. 지구인들에게 있어 전이자들이란 그런 존재예요. 전이자에게 전이가 갑작스러운 일인 것처럼, 지구인들에게도 배경서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일인 겁니다. 이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런 상황을 이끌어낸 존재···, 즉 악마들에게나 있을까요.”


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레베카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양측 모두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죠. 만약 분노를 표출하고 싶다면, 그 방향을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악마에게로요?”


레이가 긍정을 예상하며 물었다. 그러나 의외로 레베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본인의 판단이죠.”


“지구인들을 미워해도 된다는 얘기신가요?”


“네.”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는 지구인들 역시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던가? 그래놓고 이제 와서 지구인들에게 화를 내도 괜찮다니.


그런 레이의 의문을 레베카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녀가 남은 커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유만 합당하다면, 지구인들도 얼마든지 미워할 수 있어요.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해도 돼요.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마나를 다룰 수가 있어요.”


레이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렸다. 그는 레베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나는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받아본 보고서에 따르면, 레이 당신은 지나치게 모든 면에서 순종적이었어요. 전이가 된 것에도 그냥 그렇구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 것도 그냥 그렇구나, 엑스트라 판정을 받고서도 그냥 그렇구나. 그렇게 덤덤히 받아들였죠. 그렇지 않나요?”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 교관도 레이를 보면서 이와 비슷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마나를 느끼지 못한 건 그런 레이의 성격 탓도 있을 거예요. 마나는 간절한 이에게만 발현됩니다. 간절함이란 곧 감정이죠. 여태까지의 레이에겐 바로 그 간절함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죠. 레이.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죠?”


“네.”


“그 감정을 잊지 말고 자세히 파악하세요. 꾹 눌러 속으로 삼키지 말고 섬세하게 이해하세요. 그러면 금방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나를 느낀다면, 지금 레이가 처한 억울함도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겠죠. 적어도 식충이 취급은 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레이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레베카의 조언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선배 기사로서 후배 기사에게 마나에 대한 조언을 해준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레이의 고민은 상당수 해소될 터였다.


“교관님께선 이런 건 전혀 안 알려주셨는데···.”


레이의 말에 레베카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야 그렇겠죠. 보통, 기사에게 굳이 분노하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면 분노가 마나의 원천인 건가요?”


“그보다는, 강렬한 감정이 원천이라고 봐야겠죠. 다만 대부분의 감정이 그렇듯, 부정적인 감정이 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레이는 뭔가를 새롭게 깨달은 기분이 들었다.


“뭘요. 당연한 일인데요.”


이후 레이는 레베카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왔다. 레베카는 레이에게 자신의 분노에 집중하라고 했다. 레이는 자신의 방에서 가만히 유수환과의 일을 되짚어보았다.


‘내가 유수환이었다면.’


레이는 유수환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았다. 그의 분노에도 이유가 있었을까?


그 다음엔 유수환이 아닌 지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2500페이지의 배경서가 나타나고, 그 안엔 마신이라는 공전절후의 압도적인 악마가 기록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 나타난 전이자가 고작 마나조차 다룰 줄 모르는 빼빼장이 소년이라면.


‘나라도 실망할 거야. 아니, 화가 나겠지. 하지만 나라면··· 전이자 개인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해 분노할 거야.’


유수환의 분노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방향성이 조금 타당하지 못했다. 다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다. 레이는 유수환을 이해했다.


레이는 감았던 눈을 떴다. 새삼스럽게 마나가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대신 레이는 가슴을 갑갑하게 채우던 분노와 짜증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내 적은 마신인가?’


자신이 대적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이 세계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먹어 있었다. 레이는 새삼스럽게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이 세계는 이렇게 된 것일까?’


지금 당장은 아무리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레이는 망망한 생각을 접어두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4시. 토요일.


아직 주말은 넉넉하게 남았고, 레이에겐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내야할 의무가 있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레이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


사서가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린 레이를 흘낏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내 시선을 다시 보던 책으로 내렸다.


레이는 도서관 안쪽, 역사서가 비치된 곳으로 향했다.


시험이 코앞인지라 열람실엔 생도들이 잔뜩 있었다. 레이는 평소보다 훨씬 북적이는 열람실을 가로질러 늘 앉던 구석자리에 앉았다.


챙겨온 역사서를 펼쳐 첫 장부터 읽었다. 이 세계는 레이가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레이는 그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배울 필요가 있었다.


‘이 세계의 구조를 알아야 해.’


레이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페이지를 읽어 내렸다. 아직 모르는 단어들도 많았다. 이젠 제법 사용이 익숙해진 핸드폰으로 단어를 검색해가며 레이는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겼다.


인류의 역사는 길었다. 배경서와 전이자, 그리고 악마의 등장은 그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겨우 빠끔 머리를 내밀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여파는 대단히 컸다. 레이는 한 장의 참혹한 사진을 마주하고선 침묵을 삼켰다.


[마왕 아르간테의 강림]


흑백으로 남겨진 사진에서는 비릿한 피냄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사진 속의 장면은 이미 20여 년 전의 일이었지만, 레이의 감수성은 그 때 인류가 느꼈을 절망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사진 속의 무고한 시민들이 느꼈을 고통.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고통 속에서, 그저 역사책의 한 귀퉁이, 흑백사진 한 장으로 끝맺어지리란 것을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들의 고통 앞에서, 고작해야 동기생에게 식충이 소리 한 번 들었다고 징징거리는 건 인간된 도리로서 못할 짓이었다.


‘지구인들도, 아니 지구인들이야말로 진정한 피해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지? 악마? 아니면···.’


레이의 손끝이 페이지를 넘겼다. 신을 부르짖는 인류의 모습이 그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신은 응답한 적이 없었다. 역사서는 그 점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신성부재(神聖不在)의 세계. 신학자들은 배경서 속 세계와 지구를 구분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쓰고는 했다.


이 세계에 최초로 강림한 마왕의 토벌은 신성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차와 포탄, 그리고 수많은 불신자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통해 이루어졌다.


레이는 역사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열람실도 한적해져 있었다.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더니 오히려 분노가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럴 땐 어쩌면 좋은지 레이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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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화. 엑스트라(3) 19.10.30 25 1 14쪽
6 2화. 엑스트라(2) 19.10.19 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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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화. 전이된 소년(2) 19.10.14 41 0 12쪽
2 1화. 전이된 소년(1) 19.10.14 7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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