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강한 산장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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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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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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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 거짓된 성군 3

DUMMY

젊은 귀족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중년 귀족은 핀지 포도주인지 모를 붉은 웅덩이에 고개를 박고 쓰러져있었다.


분명한 건 방금 전과 같이 마시기 위함은 아니었다.


“충성...충언...그래. 다 좋은 말이지. 방금 말도 제법 훌륭했다.”


왕은 상대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얼거렸다.


“시의적절한 충신의 말은 나라를 일으키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는 양팔을 벌리며 천장을 보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가장 충언을 필요로 할 때, 나의 보물을 잃었을 때, 그대들은 뭘 했지?”


왕의 귀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을 옥죄는 것 같은 음산한 목소리에 젊은 귀족은 몸을 떨었다.


왕은 숨김없는 원망을, 절망을 자신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 쉽게 받아들여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만...이렇게 될 줄이야...’


젊은 귀족이 고개를 조아린 채 있는 것을 보고 왕은 말을 쏟아 부었다.


“그녀가 죽은 이유, 과인은 듣고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 사실도 모른 채 이 나라를 좀 먹는 자들로 왕도가 채워지고 있을 때, 그대들은 무얼 했던가!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며 필사적으로 평생을 선조들이 물려주신 나라를 위해 헌신했거늘 지금 과인이 얻은 건 무엇인가! 임금이 국가의 아비라? 그렇다면 그대들은 죄다 제 아비를 잡아먹는 독사로다! 내 살을 뜯어먹고 배를 불린 자들과 그걸 방관한 자네들이 다를 게 뭔가!”


왕은 광분하며 바닥을 구르던 술병을 들어 남은 것을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동안 과인이 한 일들은 다 무엇이었나? 무엇을 위해 매일 같이 국정을 돌보았나? 백성을 지켜? 제 가족 하나도 못 지키는 자가 어찌 백성들을 지킨단 말이냐? 아까 한 말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이 왕좌를 누군가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왕은 병을 내던졌다. 비어버린 병이 다시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이토록 더럽고 추악한! 모든 것을 앗아가는 저주로 안겨주는 왕좌를 누가 가져가겠다는 것 아니냐! 내 소중한 아이에게 이딴 것을 물려줄 바에야 차라리 빼앗기는 것이 낫지! 겸사겸사 내 목도 가져갔으면 좋겠구나!”


왕의 치기 어린 말에 젊은 귀족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들었다.


“전하!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하! 그놈의 통촉! 또 통촉! 네놈들은 빚이라도 재촉하듯이 통촉거리지! 앵무새들도 그보다 말을 잘 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저희의 뜻을 헤아려주시어 그 말만큼은 말아 주십시오! 전하! 이 왕국의 유구한 역사 이래 최고의 성군이라고 불리시던 분 아니십니까...반역자들의 흉계가 성공하던 순간 평화로운 나라가 지옥도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니...”

“시끄럽다!”

“전하!”

“또 전하! 전하! 닥쳐라! 그놈의 왕관만 쓰면 듣는 이름 때문에 내가 왜 고통받아야하는 거냐! 하! 그래! 네놈도 이 자리가 탐나는 것이냐?”


왕은 미친 듯 웃으며 앉아있던 자리로 갔다. 창부의 옆에 굴러다니던 자신의 왕관을 들었다. 그리고 벽에 걸린 호화로운 장검을 칼집에서 뽑아 다시 돌아왔다.


“자! 가져라! 옷도 왕관도 걸치지 않은 미치광이보다야 네놈이 더욱 잘 어울리는구나!”


왕이 미친 것처럼 웃으며 왕관을 멋대로 씌우려들자 젊은 귀족은 입을 열어 거부하려했다.


“가만히 있어라.”


이성을 압도하는 왕의 스킬. 왕의 말에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윽...”

“크흐흐...그래! 아는 것이 많은 머리라도 크라는 법은 없구나. 과인의 머리보다 좀 작은 것 같군. 왕관이 커! 크흐흐!”


원래 이마를 다 가리기 전에 멈춰 있어야할 왕관이 흘러 젊은 귀족의 눈에 걸린 안경을 밀어냈다.


흐트러진 안경이 눈꺼풀을 찌르자 젊은 귀족이 신음했지만 왕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드는지 크게 웃어댔다.


“재상! 어떻소? 어울리지 않소?”

“그...저, 전하보다야 위엄이 떨어지지만 웃기는 광대의 꼴이라면...”


재상은 아부를 하면서도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왕이 희롱하고 있는 자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었기에 그도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광대...크흐흐! 그래! 광대라! 네놈은 광대의 왕이로구나! 어떠냐? 미치광이 왕에 이어 즉위한 광대의 왕이다.”


왕이 들고 있던 검이 바닥에 박히며 슬쩍 비뚤어졌다. 기울어지며 서늘한 날이 젊은 귀족의 목을 건드렸다.


“이대로 죽는다라...근사하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냐? 충성을 표하다 왕에게 죽는 충신...훗날 역사가들이 아주 좋아라하겠구나. 비록 망국의 역사겠지만 말이다!”


젊은 귀족은 왕의 말에 안색이 새파래졌다. 왕은 처음 그들을 모르는 채했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꿈. 어렸을 때도 군부에 들어가라는 부모의 말도 거슬러가며 내무부에 아득바득 임관한 것은 그의 꿈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아버지와 같은 재상이 되어 나라를 부흥시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후대에 이르러 그의 이름이 잊히지 않아 불멸의 생명을 갖겠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었다.


그는 임관했을 때 아버지의 소개로 왕을 알현한 기억을 떠올렸다.


하급 관리로 임관했지만 자신의 포부를 당당히 밝히던 젊은 귀족을 칭찬했던 왕. 왕은 그 당시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그리 떨지 말라. 이 몸도 광대이니! 십 수 년 동안 얼굴을 숨기고 연기를 해왔느니라. 어떠냐? 이 몸이야말로 진정한 광대가 아니겠느냐?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 응?”

“전하...”


젊은 귀족은 침통하지만 단호한 의지를 담아 다시 간언했다.


“전하께서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시는 게 두렵지 않으십니까? 제 아무리 패왕이라도 역사 앞에서는 무력하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허허...용감한 건지...어리석은 건지.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왕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더욱 검이 기울어지며 젊은 귀족의 목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흐르자 젊은 귀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대로 목이 잘려도 그 잘난 입이 움직일까 궁금하구나.”

“저를 죽이신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죽어도 이 나라에 충성을 바치겠다는 말이냐?”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해 태어난 목숨이옵니다.”

“하...하하! 나보다 더 미쳐있구나! 아니지! 나라꼴이 이 꼴인데 이게 정상인 건가!”


흔들리지 않는 젊은 귀족의 눈을 보고 왕은 광소를 다시 터트렸다. 꽂힌 검을 빼어들었다.


얕은 피보라가 튀었다. 젊은 귀족이 손으로 상처를 가리지도 않고 자세를 지키고 있자 왕은 싱긋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보시오 재상. 자네의 가정교육이 참으로 마음에 드네.”

“과찬이십니다! 전하!”

“그래. 내 몸소 그 상을 내려주려고 하네. 이리 오도록.”

“예!”


왕이 그리 말하자 헐벗은 재상이 허겁지겁 그쪽으로 달려왔다. 왕은 재상에게 검을 내밀었다.


“마지막 가정교육의 기회는 자네에게 하사하지.”

“저, 전하!”

“뭐하는가? 자식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리고 과인에게 이런 무례를 끼쳤는데 그대로 둘 생각인가? 자식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서도 꾸짖을 수 있는 이런 훌륭한 일을 만들어주었네! 아! 기쁘구나! 이 현명함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다니 말일세!”


왕의 말에 재상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왕은 더욱 검을 그에게 내밀며 재촉했다.


“어서 받게! 오랜 시간 과인의 곁을 섬겨온 것에 대한 조촐한 보상이네.”

“저...전하...제, 제가 받기에는 너무 과한 상이 아닌지...”


재상은 검과 자신의 아들을 번갈아보았다. 왕의 눈이 단숨에 싸늘하게 식었다.


“그대가 지금 내 선물을 거절하려는 겐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으로 검을 향할 것 같은 왕의 살기에 재상은 서둘러 두 손을 떠받쳐 검을 받았다.


떨리는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는 재상을 보고 왕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진작 받지 그랬나? 자! 과인의 오랜 벗이여! 상을 마음껏 만끽하도록 하게. 엄한 꾸짖음이야말로 부모의 의무. 자비를 담아 한 번에 내리 쳐 주게나!”


왕의 싸늘한 눈빛이 젊은 귀족의 뒷목에 닿았다.


“...”


젊은 귀족은 절망을 담은 눈으로 앞에 선 왕을 보았다. 여태 이토록 잔인한 왕은 본적이 없었다.


신하에게 제 자식의 목을 치라고 종용하는 왕. 그것보다도 그를 더욱 절망하게 하는 것은 망설이면서도 검을 하늘로 높이 든 자신의 아버지였다.


과거 자신이 올려다 본, 성군을 보좌하는 재상은 그곳에 없었다.


“축하한다. 못난 내 자식아. 적어도 네 꿈은 이루고 가는 구나.”


‘그렇게도 권력을 포기할 수 없는 건가.’


젊은 귀족의 눈이 먼 곳을 향했다. 흐트러진 왕관과 안경으로 흐려진 시야에 그의 아버지가 담겨져 있지 않았다.


재상은 그걸 눈치 채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후회 하는 것이냐?”

“...후회...말입니까.”


젊은 귀족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와중에 생각나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노을과 같이 아름다운 머리칼과 자비로운 목소리로 자신을 대해준 여성. 덧없는 그녀의 미소가 눈에 떠올랐다.


“오기 전에 한 번 더 고백이라도 해볼 것 그랬군요.”


사모하는 이와 닮은 덧없는 미소를 짓는 젊은 귀족.


‘그리 하였다면 그대 기억에라도 살아있었을 텐데.’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저리 같은 놈.”


재상은 뇌까리며 검을 아래로 거리낌 없이 내리그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젊은 귀족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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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28화 - 뒤엉킨 실 7 20.03.16 144 1 14쪽
128 127화 - 뒤엉킨 실 6 20.03.11 138 1 14쪽
127 126화 - 뒤엉킨 실 5 +1 20.03.09 175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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