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생존한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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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렉스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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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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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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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격리

DUMMY

그녀를 넘어지게 만든 것은 너덜너덜한 창자를 질질 끄는, 상반신만 남은 놈이었다.

놈이 차 밑에서 아이의 가냘픈 발목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힘에 부쳤고, 달려오는 무리 중 선두에 섰던 놈까지 그녀와 불과 몇 걸음 사이에서 만찬을 즐기기 위해 달려들었다.


순간, 강준의 힘찬 스윙이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딱 소리와 함께 큰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공이 아니라,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흉물스러운 덩어리가 땅에 떨어졌지만, 그것은 지금 세상에서의 최고의 홈런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쟤가 고딩 때까진 방망이도 쏠쏠하게 쳤다니까!”


옥상에서 지켜보던 대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부장은 아이를 잡고 있는 놈의 머리를 렌치로 찍었다.

두개골이 박살나며 뇌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짧은 꿈틀거림으로 반 토막이 되어서까지 끈질겼던 놈의 생은 마감된 듯 했다.

그는 얼른 아이를 안아 올리고 소리쳤다.


“건물 뒤, 뒷문으로 뛰어요! 조선수도 빨리!”


아이를 업지 않아 홀가분한 몸이 된 여자는, 두 남자 못지않게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기에 무사히 마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고생 하셨어요. 다들. 어머, 이마에서 피가 좀 나네요. 잠깐만요.”


미정이 여자의 이마를 보고는 약을 챙기러 탈의실로 향했다.


“아이도 좀 다쳤어요.”


한부장이 안고 있던 아이의 손바닥이 까져 피가 배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손수건을 갖다 댔다.


“선생님이신가요?”


연주의 물음에 여자는 숨을 한번 내쉬고 말문을 열었다.


“네. 맞아요. 김민정이라고 합니다. 현준이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아이 데리러 오시는 게 가끔씩 늦긴 했어요. 그날은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그 이후로 오시지도 않고 통화도 되질 않아서 퇴근도 못하고 마냥 기다리던 상황이었죠.”


“그럼 선생님이랑 현준이. 이렇게 둘이서만 계속 지내신 건가요? 고생이 많았겠어요.”


“네. 처음에는 밥을 해먹을 수 있었는데 전기가 끊기고 며칠 지나자 먹을 수 있는 게 생쌀과 과자, 사탕 같은 간식뿐이었어요. 나중엔 그마저도 다 떨어지고······.”


“저런······ 물은 충분했나요?”


“네. 다행히 교실 안에 큰 생수통이 있어서······ 문제는 씻는 거랑 화장실이었어요. 유치원을 나가 상가 복도 끝으로 가야만 화장실이 있으니까요.”


“어머, 그럼 어떻게······?”


“민망하지만 교실에 있던 유아용 변기를 썼어요. 그게 다 차면 창밖으로 버리고······. 씻는 건 물티슈가 전부라서······ 제 몰골이 너무 그렇죠?”


김선생이 부끄러운 듯 손등으로 자신의 뺨을 쓸었다.

열흘이 넘도록 한 번도 감지 못해 기름져 엉겨 붙은 머리카락과 허옇게 버짐이 핀 얼굴이 그녀가 창문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후, 일단 상처 치료부터 하고 얼른 식사 준비해드릴게요.”


연주는 미정이 가져 온 소독약과 솜으로 김선생의 이마를 닦았다.

그리고 미정은 아이의 손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부장 앞으로 다가갔다.


“이쪽으로 아이 내려놓으세요.”


“그럴까요? 자, 여기 앉자.”


한부장이 겹겹이 쌓인 박스 위에 아이를 앉혔다.

그러자 그의 셔츠가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어머! 한부장님 옷이······.”


미정이 그의 상의를 가리키자 한부장이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약간 긁힌 손바닥에서 나온 것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한부장은 깜짝 놀라 셔츠를 들어보았지만 그의 몸은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그러자 그들의 시선이 아이로 향했다.


아이의 바짓단도 피로 물들어 있었기에, 미정이 그것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발목에 있는 이빨자국으로 보이는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또한 검푸른 핏줄이 점점 다리 위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아아, 물······ 물렸어요. 아이가.”


모두 어쩔 줄 몰라서 아이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처럼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몸을 조금씩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푸른 핏줄이 목까지 번져 올라왔다.


“이······ 이거 변하는 중이지? 맞지?”


“맞는 거 같아요. 어떡하죠?”


“애······ 애를 이걸로 칠 수도 없고, 뭐······ 이걸 어쩌지. 응?”


대식이 야구배트를 들고서 난감한 표정으로 상수와 얘길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준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탈의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앉혀 놓고 얼른 나와 문을 닫았다.


“절대 문 열어서는 안 됩니다.”


“이봐요! 아이를 혼자 방안에 가두면 어떡해요!”


김선생이 강준에게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이미 틀렸어요.”


“그게 무슨······ 아까 밖에서 구해준건 고맙지만, 이건 아니죠. 고작 일곱 살짜리를······.”


“당신 변하는 거 직접 본적 없죠? 아무것도 모르면 잠자코 있어요.”


“아뇨. 창문으로 저도 봤어요. 놈들한테 물리면 마찬가지로 변하는 거. 하지만 이 어린애가 변한다고 얼마나 큰 위협이 된다고 그래요?”


위협 운운하는 그녀의 소리에 강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도 봤다면서, 변한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맹수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간과하는 그녀의 태도가 안전 불감증을 넘어 미친 것 같다고 느껴졌기에.


“이것 봐요! 어린애라고 사람 공격 안할 것 같아요? 변한 상태로 이 안에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내버려두자는 말입니까? 우리 중 누군가가 물리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언제 그렇게까지······.”


쿵쿵!


“그만! 거 참, 그만 합시다!”


보다 못한 대식이 들고 있던 야구배트로 바닥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난 조선수 말이 맞다고 보는데. 아이가 물린 건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아. 솔직히 난 애든, 어른이든 죽어도 물리기 싫어. 아마도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거야. 안 그래? 김선생?”


“······ 하지만, 심하게 물린 것도 아니니 꼭 변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요?”


“허, 젊은 아가씨가 이리 꽉 막혀서야. 그러니깐 일단 가둬 둔 거고, 기다려보면 알겠······.”


그르르릉! 끄으으윽!


“어! 다들 들었지? 벌써 변한 거 아냐?”


탈의실에서 새어나온 소리에 대식이 문에 귀를 갖다 댔다.

그르렁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 아가야 괜찮니?”


끄으으으윽!


돌아오는 대답은커녕, 요상한 소리만 들리자 대식이 사람들을 돌아보고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비켜주시겠어요?”


강준이 다가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려 손 반 뼘 정도만큼 문을 열었다.


아이라고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창백한 피부색에 검은 눈동자가 사라진 눈으로 변해버린 아이는, 문틈으로 강준을 발견하자 이빨을 보이며 달려들었다.

강준은 얼른 문을 닫고 김선생의 눈을 마주보았다.


“후우······ 더 이상의 확인은 필요 없겠죠? 밖에서 잠글 수는 없지만 좀비가 손잡이 돌려서 문 여는 건 본적 없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 * *



연주가 급한 대로 준비한 밥 한 그릇과 컵라면에 물을 부어 김선생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고 씻으세요. 저녁에 다 같이 제대로 식사하죠.”


김선생은 탈의실이 있는 통로를 잠시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고맙습니다. 저만 이렇게 따듯한 음식을 먹게 되니 아이한테 미안하네요.”


“최선을 다했잖아요. 아이 업고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에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한테도 죄송하고요. 특히 아까 그 남자 분, 조선수라고 부르시던······.


김선생이 아까 틀린 판단을 고집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말끝을 흐리자 연주가 씽긋 웃었다.


“아, 강준씨. 좀 삐딱하고 까칠한 구석이 있지만 좋은 사람이니까 이해할거에요. 저도 그 사람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네요.”


“네? 이 안에서 위험했던 적이 있었나요?”


“아니요. 저기 사거리 약국에 다녀오느라 그랬죠. 꼭 약이 필요했거든요. 아, 그건 못 보셨군요.”


“네. 여기 마트 쪽이 보이는 교실로 옮긴 건 일주일 정도 됐어요. 그전엔 복도 반대쪽 교실에서 지내다가 다른 교실엔 간식이라도 남아 있을까 싶어서 움직였죠.”


“아, 그랬군요. 배고프실 텐데 얼른 드세요. 이제 다 익었겠어요.”



* * *



“형님, 이제 어쩐대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부장 옆으로 대식이 다가왔다.


“후우, 그러게 말입니다.”


한부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좀비처럼 머리를 아작 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저대로 그냥 탈의실에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하, 이거 참······. 저대로 사람고기 못 먹으면 굶어 죽기는 할까요?”


“글쎄요. 팔다리가 떨어져나가서도 사람한테 덤벼드는 걸 보니 며칠 굶는다고 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저 상태로 있는 건 살아있는 것도 아니니 그만 보내주는 게 아이한테도 나은 일일 것 같은데······ 또, 그렇다고······ 에이, 참.”


“아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 저는 차마 아이한테 손을 못 대겠습니다. 후우.”


한부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난간에 담배를 비벼 끄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겠죠.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는 저도 어쩌질 못하겠는데 형님이야 오죽하겠습니까.”



* * *



평소보다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두세 명씩 모여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지만 아이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난감한 문제임이 틀림없었기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그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탈의실 나무 문짝에 아이가 가끔씩 부딪치는 소리 정도만 들렸었지만, 지금은 문짝을 긁어대는 소리와 끅끅 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자리인 재고 창고에는 문이 없었기에 복도를 따라 그것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어휴, 쟤 배고파서 저런 가 봐요.”


박스와 옷가지에 기대에 잠을 청하던 상수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뭘 어쩌게? 밥상이라도 차려주게? 사람 살점이라도 챙겨다 줄 거 아니면 그냥 참고 자.”


“아, 사장님도 참······. 사람 살점을 어디서 구해요?”


상수가 대식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니깐 이러나저러나 방법이 없단 소리야.”


“죄송합니다. 저희가 여기 오는 바람에 민폐만 끼치네요.”


김선생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내 가시방석일 김선생이 안쓰러운 연주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 처음에 여기로 오시라고 한 것도 저흰데요. 다만 오는 길에 일어난 사고일 뿐이에요. 마음 쓰지 마세요.”


“그래. 거, 선생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저 아이 팔자가 저만큼 인걸······. 너 때문에 괜히 사람 난처해졌잖아. 인마!”


대식이 눈치 없는 상수에게 핀잔을 주면서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야! 아, 전 그러려던 게 아닌데······.”


“시끄러. 얼른 자!”


탈의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 거슬렸지만, 모두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잠깐씩 잠이 들었다 깨며 선잠을 자는 사이 어느 새 새벽이 되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탈의실 앞 복도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모두가 벌떡 일어나 탈의실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열린 탈의실 문, 당황해서 서 있는 김선생,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인 섬뜩한 눈의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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