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생존한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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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렉스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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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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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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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2)

DUMMY

분유를 얻어갔던 그 남자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트 옥상을 재빨리 돌아보았다.

그리고 권총을 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후려치고는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마지막 한 발 남은걸 고작 여자애 하나 잡는데 쓰면 어쩌자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해? 놈들은 내 동생을 좀비한테 던져줬는데, 난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는데? 그깟 총이나 총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시체가 되거나, 좀비가 되어버린 경찰은 넘쳐나니까. 그런데, 내 동생은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동생의 몸이 파헤쳐지는 것을 보고 피눈물을 삼켰던 그가, 눈을 부릅뜨며 대들었다.


그리고 방에서 막 뛰어나온 나머지 한 남자가, 으르렁거리는 그 둘 사이에 서서 상황을 수습하려 애를 썼다.


쩌렁쩌렁했던 총소리에 이끌린 좀비들은 담장으로 몰려가 빈틈이 없을 만큼 다닥다닥 붙었고, 옥상에서는 소현이 그들 쪽을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연주가 허겁지겁 달려와 그녀의 정면으로 돌아섰다.

곰돌이가 그려진 베이지색 후드 티의 오른쪽 주머니 근처에서 시뻘건 피가 꿀럭꿀럭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에 스르륵 힘이 풀리면서 연주의 품에 안기면서 미끄러져 내렸다.


“아, 아! 소현아! 아아아! 아아아아악!”


갈라지는 비명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할 수도 없었다.


“연주야! 무슨 일이야?”


계단을 미처 다 올라오지도 못한, 강준의 다급한 목소리부터 먼저 들려왔다.

그리고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


“세상에 이런······.”


“연주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 어어어······ 누, 누나, 소현이 왜 이래요? 네? 왜 얘가 피를 흘리고 있는 건데요?”


경악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정신이 혼미했다.

그리고 연주가 무슨 말을 하려고 애를 써도, 입에서 나오는 건 울부짖음뿐이었다.


“아아아악! 아흑, 아아, 아아아!”


“연주씨, 정신 차려. 잠깐만, 빨리 이것으로라도······.”


미정이 부리나케 1층에 가서 가져온 수건으로 출혈부위를 눌렀다.

그러나 몇 장의 수건을 덧대어도 순식간에 피로 흠뻑 젖을 만큼 상처는 심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소현의 입에서도 새빨간 그것이 쏟아져 나와 턱과 목으로 흘러내렸다.


컥! 커헉! ······ 끅!


소현이 안간힘을 내어 힘든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점점 초점이 흐려져 가는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담아두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이내 멈추고 말았다.


순간, 모두의 세상도 함께 멈췄다.

어떠한 말도, 움직임도 없는 정지 화면처럼, 비탄의 숨소리만 증폭되어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을 찢을 듯 한 상수의 통곡과 함께, 비극의 필름은 다시 재생되었다.


“아니야! 안 돼! 어흐흐흐흑! 아아아아아!”


강준이 그런 상수의 머리를 한 팔로 감싸 안았고, 한부장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정은 떨리는 손을 천천히 소현에게 뻗어 눈꺼풀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미 떠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온기가 가득한 뺨을 어루만졌다.

그런 그녀의 손등 위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쳐 죽여도 시원찮을 쌍노무새끼들.”


대식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옥상 구석에 놓인 화염병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여러 개에 한꺼번에 불을 붙이더니, 연달아 자신의 집과 가게로 던졌다.

마치 피칭머신이 공을 쏘아대듯, 다 불살라 버리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멈추지 않았다.

대식의 오랜 사연이 담긴 그곳에 여기저기 불길이 치솟았고, 운 좋게도 한 개는 방아쇠를 당겼던 남자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는, 세상에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듯이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그리고 결국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난간 밖으로 떨어져, 좀비들의 격한 환영을 받는 신세로 대가를 치렀다.


남은 두 남자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챙겨 탈출을 시도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입구를 막기 위해 세워둔 차에도,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길이 번져 있었기에, 남은 유일한 탈출로인 담장 위로 올라갔다.

왼쪽은 불구덩이, 마트가 있는 오른쪽은 좀비 구덩이였다.


좀비들이 뻗은 손끝이 살짝 씩 그들의 발에 스칠 만큼 좁은 담장 위를, 평균대 걷듯이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며 도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이번엔 강준이 화염병을 집어 들었다.

어린 소녀의 목숨을 허망하게 앗아간데 대한 분노를 가득담은 그 병은, 한 남자의 다리에 맞아 폭발했고, 그는 중심을 잃은 나머지, 활활 타고 있는 그들의 승합차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유일하게 마트 안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 만이 남았다.

그는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그의 동료들보다, 몸놀림이 민첩하고 유연했다.

담장을 따라 좀비들도 그를 향해 몰려가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가 먼저 도로에 도착해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도 있을 듯 보였다.


강준이 놈을 향해 화염병을 더 던졌으나, 얄밉게 잘도 피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되어 그 남자를 노려보던 상수는, 캔을 무더기로 집어 들어 도로 쪽으로 왕창 던졌다.

그리고 야구배트를 집어 들더니, 난간에서 지상으로 사다리를 걸쳤다.


“야! 짱깨! 너 뭐하려는 거야?”


그것을 본 대식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상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사다리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이번엔 강준이 달려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상수야! 어딜 나가려는 거야? 미쳤어? 너무 위험해!”


“형, 제발 말리지 마세요. 저 이대로는 못 살아요. 살기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 보내주세요. 금방 올게요.”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또렷하고, 단호했다.

강준은 그의 어깨에서 손을 치울 수밖에 없었고, 그는 뒷문 앞에 내려서자마자 남아 있던 좀비 한 놈의 머리를 박살냈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 타고 왔던 오토바이로 다가가, 뒤에 있는 노란 바구니에 야구배트를 던져 넣고 시동을 걸었다.


이미 도로에 뛰어내린 남자를 향해 이동하는, 수많은 좀비들의 뒷모습이 상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너덜너덜한 그들의 사이사이로 유연하게 빠져나가며 그를 쫓았다.


‘절대로 용서 못해! 네놈들만 아니었으면 아무 일 없이 지금 이 시간에 밥을 먹고, 웃고, 떠들고 있을지도 모를 아이였어. 하루하루 갈수록 점점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런 아이를. 단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가게 하진 않을 거야. 내 목숨을 걸고 라도.’


남자는 대규모 좀비 떼를 뒤에 달고 죽어라 뜀박질을 해서, 이미 사거리 근처까지 가까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해도, 오토바이의 추격까지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불과 몇 미터 차이로 간격은 좁혀졌고, 상수는 뒤에 있는 바구니로 손을 뻗어 야구배트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속력을 높여 그를 바짝 스치듯이 지나면서, 그들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그랬듯이, 온 힘과 속도를 실어 뒤통수를 가격했다.


빡!


엄청난 충격에, 그의 몸이 십여 미터나 데굴데굴 굴렀다.

상수는 그보다 조금 더 앞에 가서 멈춰 섰고, 뒤를 돌아보았다.


경련을 일으키는 모양인지, 다리가 까딱까딱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 위로는 굵은 핏줄기가 뻗어나갔다.


이제 그대로 방치만 해도 뒤따르는 놈들의 제물이 될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상수는 그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야구배트를 수직으로 높이 들어, 다시 한 번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야 말았다.

박살난 머리에서 내용물이 질척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나서야,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좀비들을 뒤로 한 채,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굉음을 내며 멀어져갔다.



* * *



대식의 집과 가게가 전소되고, 잔 불씨만 남았다.

시커먼 그을음과 연기로 그 일대가 온통 뒤덮였다.


미정은 1층으로 옮겨진 소현의 시신을 담요로 정성껏 감싸주고, 옆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연주가 계속해서 숨이 넘어갈 듯 흐느끼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왔어. 다행이다.”


대식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상수가 계단을 내려와 창고로 들어섰다.


“상수야,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강준이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현 가까이로 다가가더니, 그녀를 감싼 담요 끝자락에 머리를 파묻고 다시 통곡하기 시작했다.


“일어나! 아저씨라고 불러도 좋고, 뭐라고 불러도 좋으니까 일어만 나라고! 응? 어흐흐흐흑. 아아아아! 일어나라고!”


한부장이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쓸어주었지만, 창고 안에 울려 퍼지는 애통한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 * *



마트 뒤쪽 담장 앞에 있는 붉은 벽돌로 된 화단. 그곳에서 상수가 마지막 나무뿌리를 잡아 뽑았다.

한 시간이 넘도록 미친 사람처럼 쉬지 않고 삽질을 한 끝에, 간신히 소현을 쉬게 할 공간을 만든 것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뒷문을 막아두었던 진열대를 치워내고, 그곳에서 소현을 안고 나왔다.

차갑고 축축한 흙바닥에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혔다.


“너무 춥겠다. 어쩌면 좋아, 얼어붙은 가슴이 다 녹기도 전에 다시 이렇게 추운데 있게 되었으니······.”


미정이 다시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리고 대식은 주머니에서 껌 한통을 꺼내, 빈 가방과 함께 담요 위에 잘 올려놓았다.


“네가 즐겨 씹던 거랑 똑같은 거다. 아무래도 담배 넣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이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훈계 한번 했다 치고 용서해 주렴.”


상수는 화단 끝에 놓인 국화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아까 화단을 파헤칠 때 챙겨둔 것이었다.

그것을 그녀에게 잘 올려두고 눈을 감자,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눈을 감았다.


기도했다.

추악한 인간들의 탐욕으로, 다시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이 꺾여나가지 않기를.

그곳에서는 부디 열여덟의 알록달록한 색으로 빛을 발하기를.

그리고 늘 기억해 줄 모두가 있으니 외로워하지 말기를.

마지막으로 행여나 누군가가 그곳으로 가게 된다면, 그때도 우연이든 필연이든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 * *



4시간 전.

한부장, 대식, 미정이 내려오고, 연주와 소현이 옥상에 막 올라간 그때.


“와 많다! 언니, 제가 좀비들 더 모아도 돼요?”


소현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캔을 집어 들었다.


“그럼, 좋지.”


연주는 흔쾌히 대답하고는, 난간 한쪽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참! 근데 언니, 그 오빠랑 사귀는 거 정말 아니에요?”


“응? 어떤 오빠?”


“에이, 알면서 왜 그러실까. 당연히 강준 오빠죠.”


“호호! 아깐 상수한테도 오빠라고 부르기에.”


“아, 그거요? 너무 한쪽으로만 계속 놀리면 둔감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그랬어요.”


“어머, 그럼 나중에 또 놀려먹으려고 그런 거였어?”


“네. 재밌잖아요. 삐진 티도 팍팍 나고. 놀리면 파르르 하는 게 귀여워서.”


“소현아, 너 혹시······.”


“아! 언니, 잠깐만요. 저기 한 놈 있어요.”


소현이 연주의 말을 끊고는 멀리 캔을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 떨어져 굴렀고, 소현은 다시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연주를 돌아보고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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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다른 세상(2) 19.12.27 339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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