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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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777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03 01:30
조회
822
추천
19
글자
6쪽

2. 가시밭길

DUMMY

“정도씨. 벌써 출근했어요?”

“네. 대리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그럼요. 덕분에 잘 갔죠. 참 선미씨 봤어요?”

“대리님 오시기 조금 전에 옷 갈아입고 관리팀에 다녀온다고 나갔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선미씨가 지각할 리가 없지.”


잠시 후, 아직 숙취가 풀리지 않았는지 유과장과 무용이 초췌한 얼굴로 모습을 나타냈다. 유과장은 우리 팀에 주신(酒神)이 왕림했다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띠웠다. 하긴,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도 아니다. 잠시 후, 손에 숙취해소 음료 몇 병을 들고 나타난 선미의 순발력으로 화기애애한 하루가 시작됐다.


“그런데 저 집은 왜 초상집이야?”


유과장의 너스레 같은 소리에 슬쩍 돌아보니 운영과는 왠지 무거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선미의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란다. 어제 운영과도 다른 곳에서 회식을 했지만 그곳의 회식 분위기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운영팀은 회식을 해도 2차 안 가요.”

“술들을 많이 안 드시나 보죠?”

“아뇨. 운영과 술은 사내에서 이길 팀이 없을 정도에요. 그런데 지금 맡은 일이 늘 긴장해야 되는 일이다 보니까 손과장님이 다음날을 위해서 자제하는 거죠.”

“팀원들은 좀 아쉽겠네요.”

“그렇긴 하죠.”


반면, 그와는 정반대인 유과장 덕에 오전은 고대리가 건넨 업무매뉴얼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보냈다. 점심은 속 풀이 해장이 필요한 유과장 덕에 생각지 않은 팀 회식으로 속을 채웠다.


“아이고. 이제 좀 살 것 같네. 고대리 그거 오늘까지였지?”

“네. 안 그래도 오전에 영업부에 넘겼어요.”

“그래? 난 못 봤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 퇴근 전에 직접 결재까지 하시고선?”

“아, 그랬나? 숙취 때문에 정신이 없었나 보네.”


바로 이때, 오전에 출근하지 않았던 주팀장이 들어오자마자 유과장을 불렀다. 고대리가 건네준 매뉴얼을 보는 동안 얼핏 보니 어제 손과장과 마주했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유과장은 주팀장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굽실거렸고 주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하는 대화가 계속됐다.


“모두 회의실로 집합해.”


주팀장과 한참 동안 얘기를 하던 유과장이 돌아오자마자 선미와 나를 제외한 고대리와 무용을 회의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런데 모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 안에서 고대리의 소프라노가 새어나오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팀장이 들어가면서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이 감지됐다.


“선미씨. 저 안에 무슨 일 있어요?”

“고대리님 열 받으셨나 봐요. 이런 날은 조심해야 돼요.”


잠시 후, 주팀장이 나오면서 회의실 안이 조용해 졌다. 그러나 곧이어 나온 고대리의 표정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고대리는 잠시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화가 단단히 났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굳어진 유과장의 표정이 분명 즐겁지 않았던 회의실 분위기를 대신했다.


“저 놈의 성질하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걸. 무용씨. 거기 전화해서 일단 데이터부터 넘겨달라고 해.”

“진짜 하는 거 에요?”

“해야지. 별수 없잖아. 팀장님 지시인데.”


그런데 이런 광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운영과 손과장이었다. 그는 잠시 우리 쪽을 바라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곤 슬며시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그 사이 유과장이 시킨 대로 통화를 끝낸 김무용은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참. 제가 깜빡했네요. 여기 진정도씨 출입증 나왔어요.”

“아. 네. 고마워요. 선미씨.”


사진이 박힌 출입증을 보니 갑자기 지난 2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흐른다. 이것을 얻기까지 그 많은 날들을 힘겹게 보내야 했다. 그래도 청년 실업자 100만 시대에 이게 어디야? 갑자기 목에 힘이 들어간다.


“무용씨. 데이터 받았어?”

“네.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만 퇴근해. 그런데. 고대리 아직 안 들어왔어?”

“네.”

“그 성질만 죽이면 좋으련만. 진정도씨하고 선미씨도 그만 퇴근해.”

“과장님은요?”

“난 기다렸다가 고대리 오면 얘기 좀 하고 갈 테니까. 먼저들 가.”


이런 날은 일찍 사라지는 게 상책이라는 선미의 말을 듣고 웃음기 사라진 유과장을 뒤로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회사 밖으로 나오자 김무용은 약속이 있다면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선미가 붙잡는다.


“혹시 시간 되세요?”

“네.”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미리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얘기 좀 해드리려고요.”


아직 회사 인근 지리에 익숙지 않아 선미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20분 정도 걸어가 도착한 곳은 회사에서 제법 떨어진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선미가 회사 근방에도 비슷한 장소가 있는데도 먼 곳으로 온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오시느라 힘드셨죠? 회사 근처는 보는 눈이 많아서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녁을 먹으며 들은 얘기는 어제 가졌던 직장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어긋나게 하는 것들이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두 조직 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정의와 불의가 공존하면서 생겨나는 충돌, 앞으로 같은 시공을 공유해야 할 상사들의 성향에 관한 것들이다.


“윗분들만 그렇지 팀원들끼린 아주 친해요. 가끔 윗분들 모르게 팀원들끼리 치맥도 하고 그러거든요. 같이 어울리시다 보면 많이 알게 될 거에요.”

“그렇군요. 전 운이 좋네요.”

“네?”

“선미씨 같은 좋은 선배가 있잖아요.”


선미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가는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옛날에 직장에 다니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직장생활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이 뭐라고 하던 나만 잘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 선미의 애기는 그런 나의 철학이 얼마나 순진했던 것인가를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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