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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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782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03 01:31
조회
726
추천
15
글자
6쪽

3. 처신

DUMMY

“회사 분위기는 어떠냐?”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직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처신이다.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거야. 옛날에 아버지 밑에 있던 부하 하나는 어떻게 처신했는지 왕따를 당하다가 스스로 그만두고 말았어.”


그렇지 않아도 암울한 나의 앞길에 아버지의 충고는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할 짐의 무게를 더해 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팀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 업무를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어제 매뉴얼을 보는데 그동안 알바로 하던 것보다 일이 수월해 보인 것이다.


“정도씨. 이것 한번 해볼래요?”


고대리가 건넨 것을 보니 예전에 학원에 다닐 때 강사 소개로 일당을 받고 했던 것과 유사한 일이다. 이것은 고대리가 나를 테스트할 목적으로 건넨 것이 분명하다.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무용선배가 이제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너무 힘든 미션이 아니겠냐며 빙그레 웃었다. 순간, 승부욕이 발동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와! 이제 보니 정도씨 실력 있네요.”

“아닙니다. 전에 알바할 때 해봤던 겁니다.”

“그렇군요. 수고했어요.”


갑자기 팀원들의 눈길이 달라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처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퇴근을 얼마 앞두고 회의실로 들어간 유과장과 고대리의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모두를 긴장케 만들었다.


“과장님. 이 건은 회사일도 아니잖아요. 팀장님이 개인적으로 시킨 일을 왜 저희가 해야 돼요.”

“사람하곤. 그냥 모른 척 하고 하면 안 돼?”

“좋아요. 이것 하면 저희에게 개발비 주시는 거죠? 안 주시면 저 안 해요.”

“알았어. 내가 말씀드려 볼게.”


가까스로 협상이 끝나고 회의실을 나온 고대리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고 유과장은 의자에 앉아 긴 한숨을 토했다. 이때, 하루 종일 외출했던 주팀장이 돌아오자 유과장이 눈치를 보며 다가갔다. 주팀장은 유과장으로부터 몇 마디 듣고 나더니 불편한 표정으로 고대리를 바라보았다.


“나 더러워서.”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고대리 아니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알았어. 개발비 줄 테니까 당장 시작하라고 헤.”


선미로부터 들은 팀장의 성격이라면 고대리를 불러 질책을 해야 맞는데 어째서 저렇게 조용히 지나가는 것일까? 그 대답은 선배 무용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팀내에 고대리만한 프로그래머가 없었던 것이다. 고대리는 프로그램 달인이라 다른 사람이 사흘 걸리는 일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까 정도씨가 한 것 보고 놀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사실 팀장이 회사에 얘기도 안 하고 외부 일감 받아 시키는 건데 개인적인 일에 두 사람씩 투입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고대리에게 시킨 거예요. 문제는 개발비 받으면 저 혼자 독식한다는 거죠.”


어떻게 체계화된 대기업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대기업 팀장이 대단한 자리인 것은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신입사원이 눈치 없이 퇴근할 수도 없고 해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무용 선배에게 도울 일 없느냐고 물었다.


“도와주면 저야 좋죠.”


그렇게 출근한지 3일째부터 야근을 하게 됐다. 팀 전체가 야근을 하게 되면서 저녁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일을 하면서 보니 유과장은 차마 고대리만 두고 퇴근 할 수 없어 억지 야근을 해야 했고 무용 선배는 고대리가 하던 일을 물려받는 바람에 선미씨를 제외한 팀원 모두가 야근을 하게 된 것이다.


“정도씨는 역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다른 신입사원하곤 다르네요.”

“별말씀을요. 이러면서 베우는 거죠.”

“그런데 운영과 무슨 일 있나?”


무용 선배의 칭찬을 듣고 운영과 쪽을 보니 입사 동기 이중성은 사라지고 다른 팀원들만 남아 시스템실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과장이 시스템실 바닥에 앉아 손에 공구를 들고 일을 하는데 미호와 조대리는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배님. 운영과는 과장님이 일을 하네요.”

“원래 손과장님이 저래요. 과원들이 손과장을 믿고 따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중성씨는 왜 안 보이지?”


그에 비해 유과장은 손 하나 까딱 않고 고스톱에 열중하고 있었다. 두 조직의 모습을 보니 문득 운영과기 겉보기와 달리 단합이 잘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비해 우리 지원과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엉성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도씨.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그 덕에 많이 배웠습니다.”

“난 보고서 작성하고 퇴근할 테니까 그만 퇴근해요.”

“같이 퇴근가시죠. 보고서 쓰실 동안 전 운영과 일하는 것 좀 구경하고 있을 게요.”


무용이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한창 작업 중인 시스템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뭔가 뒤바뀐 것 같다. 과원들이 있는데도 손과장이 여전히 공구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손이 시커멓게 더럽혀지도록 작업을 하는 동안 조대리와 미호는 멀뚱하니 구경만 하고 있다.


“과장님. 나머진 저희들이 할 게요. 그만 쉬세요.”

“아냐. 손에 묻어. 그냥 놔두고 청소기 돌려.”

“만날 저희만 편하게 일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죄송하긴.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과원들이 청소기를 돌리는 동안 밖으로 나온 손과장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건네곤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뒤늦게 나온 조대리와 미호가 주고받는 투덜거림 속에 이중성이란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도 채 안 된 지금,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건방진 것인지 늘 칼 퇴근하는 태도가 불만인 것이다. 곧이어 그 소릴 들은 김무용이 한마디가 운영과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신입사원이 저러면 안 되지. 그러거나 말거나 정도씨 퇴근합시다. 과장님하고 대리님한텐 내가 얘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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