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에 빙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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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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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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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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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천마 감옥에 갇히다

DUMMY

겨울임에도 가끔은 햇볕이 따뜻한 날이 있다. 순도 100% 초식남 천마는 허공에 떠서 몸을 돌리며 광합성을 즐겼다.


"사부, 사부."


용답답 품에 안긴 인마가 멀리서부터 애타게 부르짖는다.


"무슨 일이지?"

"사부. 이놈이 몹시 이상합니다."


인마의 작은 손엔 어느새 거위 크기로 자란 아비 신조의 목이 잡혀있었다.


"왜?"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요."


흥분으로 얼굴이 빨개진 인마가 콧김을 씩씩 뿜으며 고자질한다. 무림으로 돌아오고 한동안 심심하게 보내던 차에 잘됐네.


제길. 난 왜 무림이 고향도 아닌데 돌아온다는 표현이 이렇게 자연스럽지?


"과수대에서 실수로 목초지에 화골산을 쏟았습니다. 거기 풀은 당분간 먹으면 안 되거든요. 화골산이 스며든 흙도 전부 파서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아비 신조가 안전하다고 우기면서 먹어서 응원하자고 소와 양들에게 강요해요."


과수대(果樹隊).

과수원을 관리하는 부대로 목초지 관리도 겸한다. 아마 누군가가 실수로 화골산을 비료로 알았던 모양이다.


화골산은 소량만 섭취해도 두고두고 후환이 된다. 뼈를 삭게 하거든.


"신조한테는 얘기해 봤니?"


신조는 개뿔. 딱 봐도 마조더구만.


"저런 자식 둔 적도 없다면서 선 긋더군요."


"네 생각엔 어떻게 처리했으면 하지?"


"산채로 아비 신조의 털을 뽑고 배를 가른 다음 내장을 꺼내야 합니다. 물에 깨끗이 씻은 후 칼집을 넉넉히 내고 꼬챙이에 꿰어 모닥불 위에 올려 한 시진 정도 약한 불로 구우면 기름이 적당히 빠지고 양념도 잘 스며들어 맛있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인마가 침을 꼴깍 삼킨다.


"그리하거라."


###


- 만수로의 사부. 전대 개방 방주가 살아있어.

- 갑자기?


배후와 배임이 죽고 유치원 무력 부대도 사라진 후, 개방은 약속대로 전경련을 탈퇴했다. 목적을 이뤘다는 생각에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천마는 아직도 사업권 욕심이 있나 보다. 사부 유물까지 찾아주면 사업권을 마교에 준다고 만수로가 말했었다.


- 진짜 불상이 빼돌려진 것처럼 만수로 사부도 죽은 게 아니야.


비약이 너무 심한 거 같은데.


- 근거가 고작 그거야?

- 지금까지 빙의는 다 의미가 있었어. 이번 빙의 역시 마찬가지야.


- 그럼 전에 빙의는?

- 박순녀 덕분에 흥칫뿡을 무공으로 승화했다.

- 강아지 빙의는?

- 네가 내 몸에 적응한 덕분에 개세 수련에 박차를 가했지. 덕분에 박순녀 때 네가 내공을 충분히 모아서 전설의 무대를 만들었잖아.


의문스러운 부분은 미혼술이 덜 풀린 무대 감독이 자기 역작이라고 나서는 바람에 잘 넘어갔다. 지르기도 힘들고 수습은 더 힘든 무대다. 왜 굳이 망나니 천마를 불러냈는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나나 모범생 천마라면 일을 저지르더라도 수습은 제대로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말이 잠깐 샜는데, 나한테 빙의한 건 뭔 도움이 됐지?


- 덕분에 네가 왔잖아. 네가 끼어들면 망나니가 함부로 튀어나오지 못하니 천마신공 수련을 예전보다 훨씬 자주 할 수 있고.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빙의마다 천마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 그런데 어디 있을까? 무림을 벗어난 건 아닐까?


10만이 넘은 거지들이 방주의 유품을 찾는다고 무림 전역을 들쑤시고 다녔다. 무림에 있다면 못 찾아냈을 리 만무하다.


- 거지들이 절대 못 가는 곳에 있겠지.

- 황궁?

- 거긴 보는 눈이 많고 나불대는 입도 많아.

- 그럼 어디지?


천마는 대답하지 않고 금감원으로 갔다.


"금감원 원주 석호필이 교주를 뵙습니다."

"석 원주. 거지는 절대 못 들어갈 감옥이 천하에 몇 개 있지?"


아. VIP 감옥은 거지 따위를 수감하지 않지. 거긴 최소 자격이 금수저니까.


"무림맹 감옥은 무공 수준에 따라 분류합니다. 그리고 전대 방주의 부재가 무림맹에도 큰 타격이었습니다. 개방이 무림맹과 멀어진 계기니깐요. 그러니까 무림맹 세력권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마교는?"


"우린 돈이 안 되는 거지는 그냥 석방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하루 세끼 배불리 먹기 힘든데 범죄자 따위를 공짜로 먹여 살릴 여력이 없습니다."


- 범죄자를 그냥 풀어주면 어떡해?

- 풀어줄 만해서 풀어주는 거야. 풀어줘선 안 되겠다 싶으면 죽이거든.


"그럼 황궁밖에 없군."

"황궁 비밀감옥인 금고(禁固)는 누가 갇혔는지조차 비밀로 합니다. 개방이 거지 무리라고 해도 다른 감옥이라면 작은 소문이 나마 들었을 겁니다."


"거기서 사람 하나 빼내고 싶은데. 석 원주 자신 있나?"

"거긴 탈옥에 성공했던 곳이어서. 다시 들어가는 건 제 원칙에 어긋납니다."


"용 호위. 사대호법과 함께 인마를 지켜라. 감옥은 내가 직접 가야겠구나."


###


"간 공자님. 여기 계신 동안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황궁 비밀 감옥 금고의 소장은 정3품 관리다. 그러나 국사에 관심이 전혀 없는 말종 대신 조정을 쥐락펴락하는 재상의 아들한테는 허리가 자동으로 굽는다.


"방 소장. 내 여기서 나가면 꼭 부친께 자네를 언급하겠네."

"가문의 영광입니다."


소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을 싹싹 비빈다.


방목형(方牧型).

정3품의 고위직 주제에 5품 관리 앞에서도 기를 제대로 못 펴는 대가 약한 자다. 품계만 높고 실질적인 권력이 없는 탓이다.


인맥 쌓기 좋은 곳인 줄 알고 자원했던 방목형은 몇 년째 시름에 절어 살았다. 소문과 달리 진정한 고위층은 금고에 오지 않았다. 가택 연금이라는 훌륭한 형벌이 있기 때문이다.


금고에 갇힌 사람은 고위층의 비리와 연관된 인물이 대부분이다. 죽이자니 몰래 숨긴 증거가 있을 것 같고 풀어놓자니 언제 뇌물 장부를 터뜨려 발목을 잡을지 모를 놈들이다. 그런 자들을 가둬놓고 잘 입히고 먹이는 곳이 금고다.


그런 방목형에게 몇 년 만에 높은 곳에 향하는 줄이 돼줄 인물이 나타났다.


재상 간신배(簡臣背)의 장자 간자장(簡子長).


간신배는 이름 짓기 귀찮아서 장자는 간자장, 차자는 간자차, 삼자는 간자삼으로 지었다. 모두 아비를 닮아 나쁜 짓 하는 데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장자 간자장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망나니다.


"방 소장. 전화 한 통 써도 되겠지?"


전화(傳話). 감옥 밖으로 말을 전해주는 걸 말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분부만 하십시오."

"광한루의 성춘향이한테 당분간 못 찾아간다고 전해주게."


간자장은 선대 황제와 형제를 죽인 말종을 황위에서 쫓아내고 내각제를 실행해야 한다는 급진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죄로 금고에 갇혔다.


물론, 진짜 간자장은 석호필이 잡아뒀고 금고에 들어온 간자장은 천마다. 역용술과 축골공으로 얼굴과 체형을 바꿨는데 아비인 간신배도 눈치 못 챌 정도였다.


금고는 1인 1실이 원칙이다. 방목형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을 간자장에게 내줬다.


- 제길. 내가 살던 집보다 백 배는 나은데?


커다란 2인용 침대. 비단 이불. 장인의 솜씨가 분명한 고급 향목으로 만든 탁자와 걸상. 측간이 침실하고 30미터 거리에 있다.


무슨 말이냐고? 방 길이가 30미터 넘는다는 뜻이지.


- 어쭈. 바닥에 대리석도 깔았네?


"여기 한계입니다. 이런 검소한 곳에 모셔서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뭐 어쩌겠나. 방 소장 마음은 내가 다 이해하네. 여기서 생활하는 데 내가 굳이 알아둬야 할 규정 같은 거 있나?"


- 너 지금 설마 망나니 천마야?

- 아니. 망나니가 나왔으면 여기 갑갑하다고 다 부수고 나갔겠지.


천마의 침실이 무척 넓은 것도, 천장을 붉은 비단으로 치장한 것도 망나니 천마가 나왔을 때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라고 한 짓이다.


"없는 게 맞긴 한데, 여기 미친놈 몇이 있습니다. 그런 놈들은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조심하지. 방 열쇠나 주게."


방목형이 양손으로 커다란 열쇠를 공손히 올린다.


"저녁 식사는 뭐로 할까요?"


"짜장면 잘 만드는 집 혹시 있나?"

"그럼요. 배달하면 면이 불을 거니까 요리사를 불러서 여기서 신선한 재료로 만들게 하겠습니다."


헐. 대한민국인 줄.


"그렇다면 광한루에 가서 이몽롱이라는 요리사 불러오게. 그놈이 내 입맛에 꼭 맞거든."


방목형이 주저주저 대답을 못 한다. 확실히 검증을 마친 요리사만 안으로 들이는데 간자장이 말한 이몽롱이라는 자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리 알고 눈 좀 붙이겠네. 요리사 오면 깨워주게."

"분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꿀잠 되십시오."


방목형이 허리를 공손하게 숙이고 뒷걸음질로 나간다. 저런 새끼가 감옥 소장이라니. 역시 세상은 썩었어.


- 야. 이 꼴인데 나라가 안 망해?

- 나라가 그렇게 쉽게 망하나.


제길. 그럼 군대 얘기랑 간통죄 폐지 땐 왜 그랬어?


작가의말

감옥에서 몇 편 지내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2.02 22:49
    No. 1

    감옥 보고 오늘의 댓글은
    저러고도 나라가 안 망해? 하려고 했는데...;;

    아 참. 아비신조는 골수부터 腎 까지 다 썩어서 먹으면 탈 납니다. 안전하니까 네가 쳐먹어 하고 화골산을 주식으로 주시는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8 글쇠
    작성일
    19.12.03 10:01
    No. 2

    그럼 분가루 먹으며 화골산 먹는 척하겠죠. 화골산은 해롭지 않습니다 하면서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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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0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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