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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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마구로킹
작품등록일 :
2019.11.03 08:56
최근연재일 :
2020.04.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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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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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0. 프롤로그 : 하루를 찾아

DUMMY

하루의 가출 - 하루를 찾아



마구로 킹



[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 않을까. ]



먹구름이 스멀스멀 느리게 움직였다.


기분 나쁜 움직임이었다.


먹구름 속은 무언가 들어있기라도 하듯 꿈틀거렸다.


곧 먹구름 속이 번쩍였고 천둥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의 얼굴도 번쩍 빛이 스쳤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괜히 좋지 않은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날씨였다.


그가 이마를 스윽 만지더니 손바닥을 펼쳐 허공 위에 놓았다.


무언가를 감지하려는 것처럼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후두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방이 빗물에 젖었고 그도 젖어 들어갔다.



쏴아-



빗줄기가 굵어졌다.


소나기가 그의 발등을 툭툭 성가시게 건드렸다.


신발을 신었음에도 빗줄기의 강도가 그대로 느껴졌다.


빗물이 그의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이윽고 흙길은 진창이 되어갔다.


마치 그의 앞길을 막는 것처럼. 끈적끈적한 진흙이 그의 걸음을 더디게 했다.


빗물에 나뭇잎들이 쓸려 떠내려갔다. 썩어 빠진 낙엽이었다.


그의 몸이 크게 한쪽으로 휘청거렸다.


발아래가 움푹 파였다. 굵은 빗줄기 때문이었다.





0. 프롤로그




폭풍우 치는 날.



우레와 같은 폭우를 뚫고 길을 나서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의 오른 발목 아래는 진흙투성이였다.


왠지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처럼 지저분했고 흠뻑 젖었다. 진창에 빠진 듯 했다.


그는 자기암시를 거는 신자처럼 혼잣말을 되뇌었다.



“빗줄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빗줄기 때문이라고. 빗줄기. 아니! 고년 때문에..!”



폭풍우 속에서도 그의 단발마가 울렸다.


그의 손에는 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바구니 안에는 갖은 음식물로 가득해 보였다.


그의 표정은 매우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 남자는 손에 들린 바구니가 걸리적거렸는지 대충 팔에 걸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언제라도 바구니를 진탕에 처박아 버리거나 아니면 숲에 내팽개쳐도 전혀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빵가게 톰이라 불렀고 그가 배달을 친히 가는 곳의 소녀는 그를 그저 빵집 아저씨라 불렀다.


소녀에 대한 생각이 치밀어 오르니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빵가게 톰이었다.


물론 그는 소녀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마음에 안 든 다기보단 소녀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



퉷-



“재수 없는 년. 뒈지지도 않고.”



빵가게 톰에겐 나쁜 습관이 있었다. 바로 침을 뱉는 행위였다.


말을 할 때마다 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마을 사내들은 우스갯소리로 반죽에 침이 섞여 들어가 빵이 더 맛있는 거라는 지저분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했고, 그럴 때마다 마을 아낙네들은 아이들의 귀를 막아 버리고는 악을 버럭 질렀다.



“퉷. 부모의 유언만 아니었어도. 퉷. 내가 이 고생은 안하고 있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열이 받았는지 그가 가던 길을 멈추고는 우뚝 섰다.


한줄기 번개가 내려쳤고 톰이 하늘로 주먹을 높이 쳐들어 흔들며 방언이 터진 마냥 무어라 고래고래 악을 질러댔다.



“유언만 아니었어도. 재수없게시리.”


천둥에 먹혔던 그의 말의 마지막 부분만 또렷하게 울려왔다.



퉷-



“남긴 유산이 뭐라고! 내가 미쳤지. 괜히 저 빌어먹을 년을 맡는다 해서!”


그가 푸념 섞인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길을 재촉하다 말고 또다시 멈춰 섰다.



“어디가서 콱. 그냥.”


그는 여전히 분이 삭히지 않은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렸다. 그 음영은 창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틱-

틱-

틱틱-

틱틱틱틱-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요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어림잡아 열다섯살에서 열일곱살로 보이는 소녀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으로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쾅-

쾅-

쾅-

갑작스런 굉음을 내며 문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몹시 지치고 화난 목소리. 소녀는 잠긴 문의 걸쇠를 슬며시 풀었다.


걸쇠가 풀리자마자 거칠게 문이 확 젖혔다. 매섭게 쏟아지는 비가 현관문 앞까지 적셔왔다.


현관문 앞 무식해 보이는 작업용 신발의 앞코가 보였다.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 우뚝 서 있는 건 빵가게 톰이었다.


톰은 소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카아악 퉷-



침을 시원스레 뱉은 그는 소녀의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바구니를 성가신 물건처럼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그 바람에 바구니를 감싼 천이 거두어지면서 바구니 안의 과일이 바닥을 굴렀다.


누군가 한 입 베어 물거나, 검고 푸르게 한 부분이 썩은 과일이었다.


소녀가 바구니 안을 들여다 보았다.


소녀는 역시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바구니 안에는 곰팡이 핀 식빵, 벌레나 쥐가 파 먹은 것만 같은 치즈조각, 이빨 자국이 선명한 고깃덩이와 몇일 지난 모습의 상한 음식들 투성이었다.


소녀가 한 숨을 쉬었다.


“땅이 꺼질 듯 한데.”


소녀의 한 숨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투로 빵가게 톰이 비아냥거렸다.


“빵집 아저씨..”


기가 죽은 듯 소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뭘 그렇게 노려봐! 노려보면 어쩔 건데.”


소녀는 그저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는 음성을 낮게 으르렁 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어쭈. 이게 그래도. 넌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그는 소녀의 눈빛이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듯 소녀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퉷-



“부모를 잡아먹고 태어난 마녀 주제에.”


그의 말에 소녀는 정말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마녀.”


치가 떨린다는 듯 톰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뭐. 왜. 마법이나 저주를 부려서 날 어떻게 해보려고?”


그가 침을 거칠게 뱉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날 골탕 먹이려고? 아니면 날 망하게 하려고? 그것도 아니면 네 부모처럼 날 죽이게?”


연달아 말을 퍼부으며 그는 언성을 높여 갔다.


안 그래도 마을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마녀의 빵가게라느니, 마녀의 비전을 전수 받은 빵이라느니 그런 헛소문이 아이들에 의해 퍼지고 있었다.


빵가게 톰은 그 소문이 항상 골칫덩이였다. 소녀를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네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올라. 먹을 걸 가져다 준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라고.”


그가 으름장을 놓으며 끝말을 더 확실히 소녀에게 각인해 주었다.


“이.마.녀.야.”


검지를 똑바로 세운 톰은 소녀의 이마를 한 음절마다 쿡 쿡 찍어 눌렀다.


혼자 산지 십이년이 조금 넘은 내성 덕분일까. 소녀는 빵집 아저씨에게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신 같은 년.”


퉷-


“넌 마녀인 게 분명해. 혼자서도 이렇게 버텨 오다니. 마녀임이 틀림없다고.”


퉷-


“악착같이 버티는 년. 바퀴벌레 같은 년.”


소녀는 큰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봤다. 톰이 소녀의 뺨을 후려쳤다.


세차게 고개가 돌아가며 소녀의 몸이 옆으로 파도처럼 쏠렸다.


그는 소녀의 눈앞 미간 쪽에 손가락을 똑바로 대며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저 치켜 뜬 눈을 보라고. 독기만 가득 품어 가지고.”


퉷-


“혼자 살다 뒈질 줄 알았는데. 지긋지긋하게 지금까지 연명하는구만.”


퉷-


“끈질긴 년.”


그가 침을 거하게 뱉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톰이 몇 걸음 집을 나섰을 때.


쾅-


거센 바람에 의해 의도치 않게 집 문이 몹시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닫혔다.


“더러운 마녀.”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빵가게 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로 향했다.


폭풍우는 그치지 않고.


소녀의 집을 두드렸다.

표지_하루의가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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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5. 호수 밑에서 (1) 20.03.20 75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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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4. 검은 기운 (5) 20.03.18 65 1 6쪽
101 14. 검은 기운 (4) 20.03.17 26 1 8쪽
100 14. 검은 기운 (3) 20.03.16 2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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