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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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마구로킹
작품등록일 :
2019.11.03 08:56
최근연재일 :
2020.04.30 16: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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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45
글자수 :
46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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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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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8. 창공의 고독한 여행자 (6)

DUMMY

‘기관실이야.’



하루가 아드나를 올려봤다.


‘신기하니? 자세히 봐도 괜찮아. 잠깐 들어가 볼까.’



그 메시지가 끝나기 무섭게 하루가 기관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아드나가 하루의 뒤를 따랐다.


기계들이 들어찬 방안으로 소란스러운 광경을 마주했다.


그리고 소음만이 머리가 깨질듯이 울렸다.


그 기계들은 정말이지 쉬지 않고 들썩거렸다.


혹은 고정된 자리에서만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다.


혹은 박자를 맞추듯 여러 기계들이 일사분란하게 거동했다.


가령 일번 기계가 움직이면 이번 기계가 움직이고 이번 기계가 움직이면 삼번 기계가 삼번 기계가 움직이면 사번 기계가 그리고 오번 기계가...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형식이다.


각자 맡은 일이 정해져 있고 각자의 세분화된 일은 서로 간에 연결되어 있다.


그렇듯 분업화된 작업은 하나의 거대한 작업의 부품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무한히 도는 궤도에서 기계들의 태동은 요란하면서도 거창했다.


그리고 어지러웠다.


귓구멍을 막고서 하루는 발을 더듬더듬 옮겨갔다.



갑자기 기계를 향해 하루가 손을 뻗는 찰나였다.


“조심해!“


아드나의 외침에 하루가 급히 손을 뒤로 뺐다.


그리고는 고요 속의 외침처럼 아드나의 메시지가 또렷이 하루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잘못하면 다쳐! 그건 기계라고 하는 장치야. 이 비공선을 움직이게 해주는 동력원이지.’


딱 보기에도 기계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기계를 이루는 여러 부품이 그랬다.


지저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장비에서 튀어나온 가늘거나 굵은 선들이 길게 서로가 서로를 꼬아 놓았다.


불균일하게 배열된 실린더들이 요동치듯 펌프질 했다.


펌프질을 할 때면 하얀 증기가 새어 나오곤 했다.



콜록- 콜록-


그런데 그걸 실수로 들이마신 하루가 마른기침을 연거푸 토해냈다.


눈가에서 눈물이 찔끔 났고 헛구역질을 연발했다.


눈이 매운지 하루의 눈 주변이 벌게졌다.


하루는 그 텁텁하고 매캐한 쓴맛을 다시며 얼굴을 구겼다.


아드나가 하루의 등짝을 두드리며 밖으로 이끌고 나왔다.


끌려 나가듯 복도로 나오자 하루는 코도 매웠는지 연신 코를 훌쩍였고 코끝을 자주 손으로 훑었다.


자칫 잘못하여 낭패를 볼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계에 혼쭐이 났음에도 새로운 문물과 접촉하여 신선한 충격을 받은 하루는 복도를 걸으면서도 몇 번씩 뒤돌아 기관실을 보았다.



잠시 복도에서 휴식을 취한 후 아드나가 어떤 방을 가리켰다.


복도의 모퉁이 넓적한 문을 지닌 방이었다.


문의 겉 표면은 푹신푹신해 보이는 가죽으로 마감처리가 돼 있었다.


하루는 멀뚱멀뚱 그 문을 쳐다봤다.


외관상 묵직한 문에서부터 풍겨오는 엄숙하면서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보여줄게 있어.’


그 말을 남기곤 아드나가 먼저 자리를 나섰다.


그리곤 그 방의 어둠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하루도 아드나를 급히 뒤따랐다.


하루의 뒷모습도 그 방의 어둠으로 삼켜졌다.


캄캄한 방이었다.


하루가 허공을 더듬으며 앞으로 천천히 발을 디뎠다.


층계가 나왔고 하루는 더더욱 조심히 그 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발에 무언가가 걸리거나 무릎을 부딪치거나 했지만 걸음을 내딛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비로소 하루는 빙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눈앞으로 크고 긴 검은 장막이 덮쳐올 듯 펼쳐져 있었다.



위이이잉-


인위적인 기계음이 났다.


그건 커튼이었다.


커튼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자동으로 거둬지고 있었다.


정면으로 비치는 흰 천이 빳빳하게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리뻗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하루의 뒤편으로 한줄기의 빛이 강하게 뻗쳐 나왔다.


천장에 설치 된 기계의 동그랗고 널따란 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뿜어져 나온 그 빛은 흰 천에 투영되었다.


아드나가 잠시 빛에 비췄다가 기우뚱 사라졌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어두운 육신이 바닥을 길게 훑고 지나가는 중이다.


하루가 뒤를 돌아봤다.


그림자의 근원지를 찾아 하루의 시선이 올라가니 그곳에 아드나가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서 하루를 내려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빛에 가려져 더 거뭇거뭇하게 보였다.


하루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아드나가 빛을 통과했다.


아드나의 형상이 흰 천에 드리워졌다가 하루에게 다가갈수록 그건 작아지듯 사그라졌다.



흰 천이 지글지글 거렸다.


빛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 비춰진 탓이었다.


약간씩 흔들리기도 하고 불안정한 장면처럼 진동하기도 했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가 다시 흰색으로 변했다.


꾸불꾸불한 검은 실 같은 것들이 화면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움직였다 사라졌다.


곧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흘겨 갈긴 글씨체의 문장이 등장했다.



‘저건 자막이라고 하는 거야. 우리 세계에서 쓰는 언어를 글로 표현해서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뒤편의 빛이 나오는 기계는 영사기고, 앞의 백색 막은 그걸 투영 시켜주는 스크린이고, 그리고 또.’



아드나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하루가 궁금해 할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잊어버렸다가 번쩍 기억이라도 난 듯 정신없이 말이다.


그때였다.


하루가 툭 메시지를 던졌다.



‘저건 무어라 쓰여 있는 거예요?’


그리고 긴 자막이 을씨년스럽게 나타났다.


스크린 전면을 메운 한 문단이었다.


장문의 글은 장시간동안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박혀 있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의 아드나는 딱딱한 발음으로 자국의 자막을 읽어 나갔다.




산업화 선언

우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흘린 땀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은 적 있는가. ‘지금까진 없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마침내 이 답으로써 질문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에 수반한 권리를 누리고 그에 따른 값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사회. ‘그렇다. 가능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에게 기만당해왔다. 부정론자들에게 불안을 세뇌 당해왔다. 계급주의자들에게 착취 당해왔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아이디어들을 거부한다. 이제는 개개인 모두가 자립할 것이다. 우리는 불가능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이 아니었다. 노동과 기계는, 모든 게 가능케 했다. 우리의 시대가 도래 했다. 산업화! 그건 영원불멸한 유토피아! 그건······.



아드나의 입이 뚝 끊기듯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메시지를 전해 받던 하루는 의아한 눈빛으로 아드나를 한 번 스윽 쳐다봤다가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켰다.


아드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막이 몇 초간 보였다가 사라진 뒤 곧바로 흑백 화면이 나왔다.


그림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이 화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활동하고 있었다.



‘이 속에 사람이 있는 건가요?’

표지_하루의가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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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8. 차원을 달리는 거품마차 20.04.24 29 1 9쪽
123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7) 20.04.23 23 1 9쪽
122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6) 20.04.22 15 1 10쪽
121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5) 20.04.21 19 1 7쪽
120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4) 20.04.20 21 1 7쪽
119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3) 20.04.17 19 1 8쪽
118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2) 20.04.16 24 1 7쪽
117 17.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것 (1) 20.04.15 34 1 7쪽
116 16. 초원의 하루 (10) 20.04.10 20 1 9쪽
115 16. 초원의 하루 (9) 20.04.09 16 1 7쪽
114 16. 초원의 하루 (8) 20.04.08 29 1 7쪽
113 16. 초원의 하루 (7) 20.04.07 21 1 7쪽
112 16. 초원의 하루 (6) 20.04.06 38 1 7쪽
111 16. 초원의 하루 (5) 20.03.31 16 1 8쪽
110 16. 초원의 하루 (4) 20.03.30 65 1 7쪽
109 16. 초원의 하루 (3) 20.03.27 15 1 7쪽
108 16. 초원의 하루 (2) 20.03.26 33 1 7쪽
107 16. 초원의 하루 (1) 20.03.25 62 1 7쪽
106 15. 호수 밑에서 (3) 20.03.24 13 1 11쪽
105 15. 호수 밑에서 (2) 20.03.23 15 1 8쪽
104 15. 호수 밑에서 (1) 20.03.20 75 1 8쪽
103 14. 검은 기운 (6) 20.03.19 21 1 7쪽
102 14. 검은 기운 (5) 20.03.18 65 1 6쪽
101 14. 검은 기운 (4) 20.03.17 26 1 8쪽
100 14. 검은 기운 (3) 20.03.16 20 1 8쪽
99 14. 검은 기운 (2) 20.03.13 2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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