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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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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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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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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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나 이제 괜찮아

DUMMY

“여행 가요 여행!”

“여행?”



하린이의 성화.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부터, 계속 여행 가자고 조르고 있다. 톡에서도 여행, 전화해도 여행, 만나서도 여행. 나는 뭐, 늘 그렇듯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확답은 내리지 않는다. 기계적 중립이랄까.



“아니, 이렇게나 귀여운 제가, 여자친구가 됐는데 한 번도 여행을 안 간다구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정고자씨!”

“아니 내가 왜 고자야!”

“그럼 뭐 대놓고 먹으라고 내놔도 못 먹는 게 고자지 남자예요?”



이제는 하린이의 이런 브레이크 없는 섹드립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냥 그러려니 넘긴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소미가 ‘푸흡─!’ 하고 놀라선 토끼눈이 되어 우리 둘을 바라본다. 정작 주위의 시선들은 아직 변하지 않았지만.



“헤에. 웅도 그 모양이구나.”

“그 모양이 뭐에요 그 모양이.”

“후훗♪”



옆에서 즐거운 표정을 짓는 라나 누나. 오늘도 과방은 이렇게나 평화롭다. 어째 점점 우리 네 명이 전세 내는 느낌인 것 같은데. 아 뭐, 우리만 있는 공강 시간대가 많아서 그래. 어째서인지 다른 애들은 과방에 잘 안 있더라고. 먼지냄새나고 낡아서 그런가. 난 이런 느낌이 더 좋은데.



“갑자기 생각이 든 건데, 다른 애들은 어디서 다 뭐한데?”

“여자애들은 여학생 휴게실도 있고. 스터디룸 빌려서 거기 있는 애들두 있고. 제2도서관 열람실 같은 데에서 수다 떠는 애들도 있구. 있을 데는 많으니까.”

“아하.”



그나마 우리 네 명 중 외부 소통(?)를 담당하는 소미가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렇구나. 남자애들은······ 우리 과, 애초에 국문과는 남자도 적은 편이지만 우리 과 남자애들은 다 개인플레이 하는 것 같다. 뭉쳐서 뭘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도 그나마 대현이 정도하고만 친한데─ 대현이는 보통 공강시간에 자기 자취방으로 걸어가서 집에서 쉬다가 온다. 난 원룸까지 걸어가는 거 자체가 귀찮아서 과방에 짱박혀 있는 편이지만.



“아아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구! 여행 가요, 여행!!”

“음······ 귀하의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런 삥~삥 돌리는 말 말구! 확실하게!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내 대답에 하린이는 분노폭발 직전이다. 나는 여전히 여유만만. 그런 나와 하린이를 보며, 라나 누나가 입을 연다.



“웅도 너는 왜 여행 안 가려고 하는 건데?”

“안 가려는 게 아닙니다. 저도 여행 좋아해요.”

“근데 왜?”

“그게─”



설명하기 귀찮은데······ 아니 사실 답이 ‘귀찮다는 거’인데······ 말하기가 귀찮네.



“저는 누가 다 계획 짜주는 여행이 좋습니다.”

“쓰레기네.”

“네, 맞습니다. 정웅도는, 쓰레기입니다.”



설명하기 귀찮아서 창조적인 대답을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쓰레기. 아니 왜 그렇게 되는건데. 여고 다니던 시절부터 그랬지만, 나 이런 거 굉장히 싫어한다. 남자라고 주어지는 의무 비슷한 것들 있잖아. 뭐, 라나 누나도 농담으로 하는 거고 소미도 웃는 걸 보면 웃자고 하는 분위기이니 여기서 정색하곤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



“요리하는 건 좋지만 그거 준비하는 과정하고 뒤에 설거지하는 과정들이 귀찮아서 안 하고 시켜먹는 느낌이랄까요. 여행 자체는 좋지만, 어디를 가고, 어떻게 가고, 뭐하고 놀고, 그럼 돈은 얼마를 쓰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아아. 귀찮죠. 솔직히.”

“너는 겉은 20대 초반인데 왜 안은 80대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야. 할아버지, 이렇게 손 주물러 드리니까 좋으시죠?”

“흫헣헣, 아이구 좋다. 아기가 손이 약손이네. 여기도 좀 주물러 줘.”



내 논리정연한 대답에, 라나 누나는 한숨 쉬며 내 곁으로 다가와 갑자기 할아버지─손녀 상황극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런 상황극에 또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얼른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하린이가 탁 내 손을 치며 말한다.



“어디 지금 여자친구 보는 앞에서 외간여자 손을 잡아요! 오빠 그런 쓰레기였어요?!”

“미, 미안······ 근데 내가 잡은 게 아니라 라나 누나가 잡은 건데.”

“변명은 죄악이라는 것도 모르나요! 그렇게 끼 부리는 것 또한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 손 잡혔을 때 ‘왜, 왜 이러세요!’ 하면서 뺏어야죠! 실은 상황극이라는 미명 하에 라나 누나 손의 부드러운 살결을 마음껏 느끼신 건 아니겠죠!?”

“뭘 거기까지······ 당신의 역겨운 상상력이 무고한 사람을 변태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뭐, 하린이의 과장 섞인 말들은 워낙 많이 들어왔는지라 이제는 익숙한 대화 패턴의 하나일 뿐이다. 그나마 예전엔 좀 져 줬는데, 지금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다 받아치니 하린이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 한 마디 꺼내려 한다.



“조심해. 방심하면 채갈 수도 있으니까♪”

“으에엑! 언니 그거 지금 드립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하거든요!? 채가긴 뭘 채가요! 이런 걸······!”



라나 누나는 재미있다는 듯 방긋 웃으며 다시금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뭐, 140% 정도 하린이 놀리기 위한 농담인 것 같지만. 하린이는 기겁을 하며 다시금 내 손을 탁 치며 라나 누나 손을 떼어내며 발악을 한다. 아니 근데 다 좋은데 왜 자꾸 내 손을 때리는데. 아프게.



“여행은, 같이 생각하고 같이 짜면 그 계획 짜는 단계도 재미있지 않을까?”

“핳! 언니는 참, 이상론자네요. 남자 여자 둘이 함께 하면 가사도 출산도 육아도 즐겁게 해쳐나갈 수 있어── 전혀 아니에요! 결국엔 누구 혼자 독박 쓰는 거예요. 연애라는 건! 분명 서열이 있고 권력의 무게가 있는 거라구요! 우리 커플의 서열 순위가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안하린이 1위, 정웅도가 2위, 그리고 라나 언니는 순위 밖이라구요!”



얌전히 의견을 말하는 소미에게까지 불꽃을 튀기는 하린이. 게다가 얼토당토않은 연애전쟁론을 펼치면서까지. 그런건가. 그럼 나랑 하린이는 둘 중에 누가 권력이 더 있는 건가. 하린이 말에 의하면 하린이 쪽인 것 같은데. 글쎄.



“어쨌든 여행 가기 귀찮다. 가지 말자.”

“아아앙! 제정신이에요!? 귀찮다고 안 가는 남자친구가 어디 있어어~~!”

“여기 있지.”



권력서열은 하린이가 1위인데 어째 내 마음대로 되는 것 같은데. 이런 게 비선실세······! 뭐, 놀리는 건 이 쯤하고, 이제 져 줄 타이밍인가.



“그래그래, 가자.”

“오 진짜요? 가기로 했어요?! 언니들도 들었어요?!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기 없기예요!”

“간다니깐. 뭐 정하는 건 네가 정해야겠지만.”

“아핫☆”



보통 여행은 가자고 보채는 사람이 계획 짜는 게 국룰이니까. 하린이도 딱히 불만 없어 보이고. 인생은 정웅도처럼─ 명분과 실리를 전부 얻게 되었잖아? 후후.



“자 그럼 이제 여행 계획 짜요!”

“갑자기?!”



기쁨도 잠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다음 단계에 진입하는 하린이. 아 뭐 그래, 여행은 같이 짜는 게 좋으니까. 나라고 전부 하린이한테 맡길 생각은 아니었어. 같이 하면 좋지, 같이 하면.



“언니들은 어디로 여행 가고 싶으세요?”

“야 잠깐만. 둘이 가자는 거 아니었어 여행?”

“우후후♡ 오빠 아닌 척 해도 은근♡♡ 바라시는군요♪”

“아니 그게 어떻게 또 그 쪽으로 가냐. 그런 말이 아니라!”



소미와 라나 누나에게 의향을 물어보는 하린이.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하여 말을 꺼냈다가 하린이의 섹드립에 본전도 못 찾는다. 딱히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대화 흐름상 당연히 남자친구 여자친구, 커플 둘이 여행 가는 그런 느낌인 줄 알았는데.



“그치. 스무 살 남자애면 당연히 여자친구랑 여행 갈 때 두 명이 가야지. 펜션 같은 데 가서. 알지? 술 좀 마시고. 말 안해도 알지? 누나가 성교육 안 해 줘도 되지?”

“아니 이 사람들은 뭐만 하면 자꾸 그 쪽으로······ 누나 하린이 여고생이예요! 18살이라구요!”

“더 좋은 거 아니야? 여고생 프리미엄?”

“뭔 프리미엄인데요 그게!!”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라나 누나. 특유의 음침하고 음험한 미소를 띠며 하린이가 쏘아 올린 작은 섹드립을 마구 키워댄다. 이제는 부끄럽다기보단 창피하다. 소미도 대강 무슨 말 하는지 눈치 채고 얼굴을 붉히고 있잖아. 제발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남겼으면 좋겠는데. 왜 모두 앞에서 조리돌림 당해야 하는데.



“당연히 둘이 가죠♡ 근데 뭐,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4인실 6인실 이런 데로 갈 거예요.”

“아 그래.”

“왜 또 실망하세요?”

“실망 안 했어.”

“헤에~”



둘이 간다는 말에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데, 하린이는 또 그걸 왜곡해선 어떻게든 섹드립 쪽으로 이어가려고 한다. 나는 동요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어차피 호텔을 잡든 펜션을 잡든 오빠는 안 할 테니까. 돈 아까워요, 그럴 거면 그냥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가는 게 낫지.”

“내가 언제······.”

“언제. 언제에에에?!”

“아닙니다.”



너무 대놓고 했네 안 했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냐. 라나 누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다. 아 제발. 소미마저 살짝 빨개진 얼굴로 힐끔 나를 바라본다. 소미 넌 또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어쨌든 그럼 한 가지는 정했네요.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오빠는 남자니까 돈에 관련된 건 오빠가 하세요.”

“그래.”



대충 목적지나 뭐 할지는 하린이가 정하고, 나머지 가격이라던가 그런 자질구레한 것은 내가 하는 구도가 되었다. 뭐, 시켜주기만 하면야 열심히 하는 나니까.



“그럼 어디 가볼까요? 아무데나 의견제시 해주세요, 언니들!”

“음.”

“어······.”



라나 누나와 소미에게는 장소 아이디어를 제공해달라는 거구나.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해야 내가 오해를 안 하지. 다같이 가는 줄 알았잖아. 가만히 있으려니 하린이가 ‘오빠도 생각해봐요! 어디로 갈지!’ 하고 보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여행지라.



“아직 여름은 아니니까 바닷가는 좀 아니겠지?”

“음~ 뭐, 봄 바다도 좋긴 하지만~ 바다는 여름방학 때로! 바다 기각!”

소미의 조심스러운 의견 제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린이. 여름에도 가는구나. 아 뭐, 연인이니까. 마음 먹으면 일주일에 한 번 여행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럼 자연스럽게 계곡 같은 곳도 탈락이겠구나.”

“그쵸! 그것도 여름으로!”



라나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린이. 얼씨구, 여름에 두 번 여행 가야겠네. 바다 한 번, 계곡 한 번.



“전주는 어때?”

“저 중학교 때 2번 갔었어요! 재미 없어요!”

“그렇긴 하지.”



나는 가본 적 없는데. 언제나 하린이 중심이니까, 나는 하린이 의견을 따른다. 그보다는 ‘난 안 갔는데······’ 하고 말 꺼내면 ‘오 그래요! 그럼 오빠가 한 번 계획 짜시죠!’ 하고 말해서 귀찮아질 것 같아서. 궁극적으로는 덜 귀찮은 쪽을 택하는 나다. 좋은 쪽이 아니라. 덜 번거로운 쪽으로. 원만하게.



“강원도는 너무 멀지.”

“오 강원도!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오빠는요?”

“나도 안 가보긴 했는데······.”



소미의 다른 의견 제시에 눈을 퍼뜩 뜨는 하린이. 아, 뭔가 귀찮음의 기운이 샘솟는데. 강원도는······ 너무 멀어. 잘 알지도 못 하겠고. 귀찮음이 한가득일 것 같은 느낌인데. 나는 잠깐동안 잔소리와 귀찮음을 저울질하다, 이내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강원도는 가지 말자.”

“왜요오!”

“제발. 거부권 발동합니다.”

“피이─ 아 뭐 그래요. 그럼 어디, 전라도 경상도 이런 쪽으로 가볼까요?”

“그래. 좀 경상도도 부산 이런 데는 가지 말고.”

“왜요?! 부산을 빼면 어디를 가요!”

“멀잖아, 부산.”

“멀기는! 가면 다 가는데! 어차피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갈 건데! 오빠 보고 차 렌트해서 운전을 하래요 뭘 하래요!”

“아니 그래도오. 난 가까운 게 좋아.”



티격태격. 여행 귀찮아하는 나와, 어디든 좋은 하린이의 다툼이니. 창과 방패의 대결이랄까. 뭐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여행지를 결정해본다. 우선은 여행지가 결정돼야 거기 가서 뭘 할 지를 정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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