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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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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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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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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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이렇게 돼 버렸어.

DUMMY

“······.”



시험을 보는 강의실은 무척이나 적막하다.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와 스윽스윽 시험지 뒷장으로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우리는 또 국문과니까, 문항이 대게 서술형인지라. 게다가 1학년 유일의 전공시험인 국문학개론이니, 다들 다른 어떤 시험보다도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실시간으로 멘탈이 깨지고 있다. 아니 이거······ 반칙이잖아. 난 당연히 서술형이니까, 소설처럼 적당히 내가 지어서 쓰면 되겠지~ 했는데. 서술형은 서술형인데, 확실하게 알고 외우고 있어야 쓸 수 있는 문항들 뿐이다. 이건 너무하잖아요 교수님! 무슨 국사 시간도 아니고!



‘스윽.’



고통스럽고 괴로운 마음으로, 나는 결국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시험지를 제출했다. 아예 못 쓴 건 아니야. 그래도 내 최대한의 지혜를 짜내서, 쓸 수 있는 건 모두 썼어. 새하얗게 불태웠다고. 썼다고······ 답안지. 노교수님은 잠깐 내 답안지를 보다니 그저 한심하다는 듯 이내 나에게서 눈을 거둔다. 강한 수치심을 느끼며, 나는 문밖으로 나왔다.



“아아.”



그렇게 열심히 모여서 공부를 하면 뭐하나. 소미가 알려주고 라나 누나한테 물어보고 하린이랑 같이 공부하고, 그게 무슨 소용이었나.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보다, 이렇게 빨리 기말고사가 다가왔다니. 이렇게 빨리 학기말이 왔다니. 그것부터가 이미 멘탈 붕괴인 느낌이다. 벽에 기대어, 내 상황을 좌절한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 기말고사 기간. 어째 기말고사는 중간고사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 같다. 게다가 기말 과제까지 함께 겹쳐서, 우리는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중간고사 때처럼 모여서 공부도 하고, 과제도 하고, 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다. 아니 내가 진짜 공부를 안 한 건 아닌데. 어떻게 교묘하게 내가 공부한 부분은 다 피해서 시험이 나왔어. 하아. 실은 핑계지. 그냥 내가 집중을 못 한 것 같다. 공부는 진짜 하기 싫고, 그냥 하린이랑 놀고만 싶고. 그래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사필귀정.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철컥’



잠깐 그렇게 좌절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곱씹는데, 강의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진다.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한다. 이런 창피한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라나 누나.



“엣······.”

“왜 뭐 왜.”

“아닙니다.”



뭔가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또 의외이기도 한지라 라나 누나를 보고 말한다. 라나 누나, 공부 열심히 했는데. 게다가 라나 누나, 성적도 꽤 괜찮은 편인 걸로 아는데. 작게 한숨을 내쉬는 라나 누나.



“하. 그래도 이게 제일 큰 산이었는데. 이제 거의 다 끝났네.”

“네 뭐 그렇죠.”



라나 누나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나. 애초에 우리 패거리(?)는 시간표가 같기도 하고. 이제 남은 시험이 본 시험보다 적다. 게다가 전공시험인 국문학개론의 부담은 다른 교양 과목보다 컸으니까. 근데 그 중요한 전공 과목 시험을 이렇게 조졌으니······ 하아. 나란 녀석. 병X같애.



“음. 하린이 기다려?”

“네.”

“안 가는 구나.”

“그쵸, 기다려야죠 남자친구인데.”



하린이는 아직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문에 살짝 달려 있는 유리로 안을 바라보면 하린이는 지금도 열심히 무언가 끄적이고 있다. 참, 나보다 어린데도 저렇게 잘 하니. 저게 제 여자친구입니다. 뿌듯하면서도 뭔가 좀 자격지심이 생기기도 하는데.



“누나는 이제 쉬시나요? 아니면 더 공부?”

“음······.”



나라면 쉬겠지만, 라나 누나라면 더 공부할 수도 있지. 아직 시험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까. 근데 나머지 두 과목이 솔직히, 크게 어렵게 낼만한 과목이 아닌지라. 이런 나조차 방심할 정도인데. 라나 누나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 잠깐 얘기나 할까.”

“얘기요?”

“어. 마침 저쪽에 적당한 의자가 있네.”

“아 네 뭐.”



라나누나 님께서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이렇게 1:1로 갑자기 얘기를 걸어오는 건 처음인지라 조금 당혹스럽다. 라나 누나 말대로 저쪽에는 의자가 있다. 3층에서 2층 내려가는 계단 앞. 애매하게 조금 넓은 공간에, 사람들 쉴 수 있게 네 명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벤치가 있다. 터벅터벅 걸어 나란히 둘이 앉는다. 앉으면 복도가 일직선으로 쭉 보이고, 우리 전공 강의실에서 누가 나오는지도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보면서 말하면 적어도 하린이를 놓치거나 할 일은 없겠군.



“무슨 얘기를······”

“아 뭐 그냥.”



나는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라나 누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낸다. 라나 누나는 평소에는 꽤 무표정해서. 뭔가 감정을 읽기가 힘들어서 무섭다. 혼낼 것 같아. 딱히 혼날 것도 없지만. 나랑 하린이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혼낼 게 있으신가.



“요즈음 하린이랑 어때.”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뭘??”

“아뇨 그냥······ 잘못한 거 같아요.”



으아악 역시나! 하린이 얘기를 꺼내는 라나 누나. 나는 얼른 사과부터 오지게 박는다. 그래도 사과하면 괜찮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그래도 마음은 누그러지겠지.



“뭘 잘못했는데?”

“그게······”

“넌 항상 그런 식이야.”

“아니 갑자기 왜 여자친구 삐친 것처럼 하시는데요.”

“그야 네가 사과하니까.”



즐거워보이는 라나 누나. 나는 즐겁지 않다. 왜 나만 맨날 당하는 역할이냐.



“너는 꽤 재미있는 변태니까.”

“······그래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 나는 변태다. 받아들이면 편하다. 라나 누나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섹X는?”

“······!”



이건 섹드립이 아니다. 드립이란 건 일종의 장난을 포함한 재치있는 말이지. 이건, 그냥 대놓고 말하는 거다. 제 성관계 여부가 궁금하십니까? 이건 아무리 누나라지만 내가 남자라지만 성희롱 아닙니까?



“아뇨······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는 의도가 뭡니까.”

“궁금하니까.”

“······네.”



나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내 개념에서 XX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두 사람만의 사랑의 결실 같은 그런 것인데. 그걸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말하는 것도 이상해. 왜 그런 걸 물어봐?!



“후후후.”

“왜요.”



누나니까 뭐라고 말은 못 하겠고, 그래서 꿍해있는 표정으로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으려니 누나는 ‘후후’ 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너는 변태긴 한데, 이상한 곳에서 수줍음이 많으니까. 섹X 얘기가 부끄러워?”

“부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누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나는 나대로 나의 신조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아 말을 꺼냈다.



“그건 두 사람만의 프라이버시잖아요. 저만이 아니라 하린이까지 함께 있는 소중한 사랑의 결실인데. 그걸 어떻게······ 유흿거리로 함부로 말하고 그럽니까.”

“후후.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미소 짓는 누나. 이번에는 누나가 대답한다.



“그것도 맞는 말인데. 너는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니까. 보수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하린이는 되게 개방적이잖아. 그런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부부관계에서.”

“······무슨 부부관계요.”

“아핫. 연인관계.”



그렇게 얘기하니까 또, 덜컥 나 때문에 하린이가 답답해하거나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나는 왈칵 누나에게 실토한다.



“그치만 하린이 여고생이잖아요!!”

“아하핫. 안 했구나.”

“네, 안 했어요! 됐어요?!”



결국엔 기어이 누나의 의도대로 실토하게 된다. 내가 정말 솔직히 하린이 여고생 아니었으면 했다. 진짜. 근데 여고생은 안 된다고! 미성년자잖아!



“잘 했어, 잘 했어. 들으니까 거의 하기 직전까지 갔었다메.”

“아니 그거 알고 계시면서 물어봤어요!? 하린이가 말했죠! 아휴, 하여튼.”

“후후······ 대단한 거야. 남자애들 보통 못 참는데. 솔직히 여고생이면 어떻고 여중생이면 어때. 여자애가 그 정도 시그널 보내면 백이면 백, 다 했을 텐데. 변태인데도 대단해. 우리 웅도.”



라나 누나한테 그런 식으로 칭찬 받으니까 기분 되게 이상하다. 게다가 ‘우리 웅도’라니. 그게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 라나 누나는 푸근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럼 뭐, 하린이 스무 살 될 때까지 기다려 줄거야? 2년이나? 네 대학생활의 절반인데?”

“······거기다 저는 군대도 가죠.”

“아하. 그것도 있네. 그럼 차라리 낫겠다. 군대 갔다 오면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다. 나는······ 라나 누나 말대로 보수적인 편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순정남인 것도 아닌지라. 지금 하린이랑 영원히 사귈 거냐 하면 또 그런 건 아니니까. 그건 그것대로 또 하린이한테 민폐다. 군대······ 아직까지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데. 2년 가까운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라고 하겠는가. 애초에 희세랑 사귈 때도, 난 그 생각 했어. 군대 가면, 희세한테 헤어지자고 해야지, 하고. 미안하니까.



“그런 지조도 좋은데, 너무 그렇게 성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가끔은 본능에 맞게 성(性)스러울 때도 필요한 거야.”

“굉장히 상스러우시네요.”

“너네 둘 다 너무 미숙해보여서 그런 거야. 하린이는 첫 남자친구라고 하고, 웅도 너는 처음 아니라는데. 하는 짓은 엄청 쑥맥에 처음 of 처음으로 보이니까.”

“아하하······.”



그럼 누나는요! 누나는 뭐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으시기에 저한테 이러십니까! 하고 항변하고 싶지만, 뭔가 그러면 성희롱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라 그냥 입 다물고 있는다.



“아, 나는 할만큼 했으니까. 궁금하면 우리 집 올래? 라면 끓여줄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저를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겁니까!?”



순간 정색하고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그랬다가 화들짝 놀랐다. 시험 보고 있어서 엄청 조용한 복도인데. 교실까지 들렸으려나. 아, 쪽팔려.



“뭐, 나는 그런 거 안 따지니까.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노는 거 아니야?”

“바람 피우는 거 조장하시는 거냐구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구~ 후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라나 누나의 가치관. 하린이를 무시하는 거? 아니면 나를 개무시하는 거? 분명 우리 둘이 사귀는 걸 알고 있는데도. 농담이겠지 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것 같구. 진심인가 하기엔 또 농담 같기도 하고. 반농반진 같은 애매한 제스쳐인지라 더 헷갈린다.



“여지는 있으니까. 너무 꽉 막혀 살지 말라구.”

“여지 없네요.”

“누구 여지 말하는 거야? 후후. 나 간당.”

“네.”



이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라나 누나는 떠나고, 나는 가만히 걸어가는 라나 누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사뿐사뿐 걸어 옆쪽 계단으로 사라질 때까지, 라나 누나를 바라본다. ······이런 말 하기 그런데, 라나 누나 뒷태 장난 아니다. 특히 골반이. 평범한 청바지 입었을 뿐인데도 어우.






“흐아앙─ 여고생쟝에겐 너무너무 어려운 것이에요!”

“걱정 마, 대학생쨩한테도 X같이 어려워서 털렸으니까.”



거의 시간 꽉 채워서 시험을 본 하린이. 나오자마자 후에엥 하는 느낌으로 나에게 와 안긴다. 나는 뭔가 머쓱하다. 오빠랍시고 가장 먼저 나와선 기다리고 있는 게 좀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 공부 잘 해야 하는데. 2살 어린 하린이보다 훨씬 못 하니. 하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는다. 뒤이어 소미도 강의실에서 나온다.



“어렵넹.”

“난 포기했어.”

“근데 웅도 되게 일찍 나가던데?”

“망했으니까.”



굉장히 일상적인 느낌으로 인문대 건물을 나선다. 아까 라나 누나랑 얘기하던 게 어째 꿈 같은 느낌이다. 그래, 라나 누나도 어쩌면 기말고사로 인한 멘탈붕괴, 스트레스로 인해 그런 이상한 말을 했을지도 몰라. 라면 먹으러 오라니······ 그거랑 엉덩이밖에 머리에 안 남았어, 솔직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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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23.04.19 17:25
    No. 1

    아 예언이 빗나감... 게스트 하우스 막장은 아니었네요...
    나 왠지 기대하고 있었던거 같은뎅...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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