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병장!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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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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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병장! 1-3

DUMMY

그날 저녁 생활관에 있는 후임병들 전부 소원수리를 적었다.

강우식 상병은 그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돌아다녔다.

“너 썼냐?”

“네. 썼습니다.”

“어디 봐.”

“여기······.”

“오케이. 넌?”

“저도 썼습니다.”

“그래. 잘했다.”

강우식 상병은 매우 흡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다 죽었어.”

오상진이 중대장에게 불려가 호되게 당할 것을 생각하자 강우식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의를 마친 김현태 중대장이 오상진을 찾았다.

“오 하사 중대장실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강우식 상병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잠시 후 오상진은 중대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충성! 저 찾으셨습니까?”

김현태 중대장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오 하사,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오상진은 중대장 책상 위에 놓인 쪽지를 확인했다.

“이게 다 뭡니까?”

“오늘 아침 소원수리함에서 나온 것들이야.”

“예? 소원수리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무슨······. 혹시 제 이야기입니까?”

“그래, 전부다 오 하사에 관한 것이야.”

“이거 전부 저란 말씀이십니까?”

오상진은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르는 척했다.

김현태 중대장은 그런 오상진을 바라보다가 슬쩍 쪽지 하나를 들어 읽어 내려갔다.

“오 하사님 때문에 힘들어 죽겠습니다. 너무 잘해주십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농담이고요. 오 하사님 덕분에 군 생활이 너무너무 즐겁습니다. 오 하사님이 계속 저희 부대 부소대장님으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김현태 중대장은 쪽지를 다 읽고 난 후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떻게 된 거야?”

“네?”

“지금까지 병사들이 소원수리함에 이런 쪽지를 적었던 적이 없어. 간부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이렇듯 간부를 칭찬하는 쪽지는 거의 올라오지 않는단 말이야. 어떻게 한 거야?”

“뭐, 어떻게 한 것 없습니다.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써주고, 챙겨줬을 뿐입니다.”

“기특하네.”

김현태 중대장은 절로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맡고 있는 중대에서 간부를 칭찬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것은 그야말로 좋은 징조였다.

“역시 자넬 부소대장에 앉히길 잘했어.”

“병사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입니다.”

오상진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병사들에게 결과를 돌렸다. 그 행동이 김현태 중대장으로 하여금 오상진을 더 믿도록 하였다.

“그게 어디 말로만 해서 되는 일이야? 오 하사가 열심히 해준 덕분이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주길 바라. 응?”

“네, 중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나가봐!”

“충성.”

오상진은 돌려 중대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돌아서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강우식 상병은 중대장실에서 나오는 오상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야? 한 소리 들은 거야? 만 거야?”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곧 오상진이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라? 웃네? 왜 웃어? 소원수리를 당했는데 웃음이 나오나? 아니면 뭐지? 어떻게 된 거야?”

강우식 상병은 오상진이 최소 완전군장을 하고 구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오르니 어이가 없었다.

“강우식!”

강우식 상병이 깜짝 놀랐다.

“상병 강우식.”

“거기서 뭐 해? 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아, 아닙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안 봤습니다.”

“싱겁긴. 아, 그리고 일과 끝나면 애들 본부중대 생활관으로 집합시켜 봐.”

“본부중대 생활관 말씀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강우식 상병이 고개를 갸웃하며 작전과로 향했다.

그런 강우식 상병의 뒷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야. 인마! 내가 흘린 짬빱만 해도 니가 먹은 것보다 많겠다. 까불려면 좀 제대로 하든가.”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한편 작전과로 들어간 강우식 상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시발······.”


그날 오후일과를 마치고 본부중대 생활관에 중대원들이 다 모였다.

오상진이 중대원들을 보며 실실 웃었다.

“야, 너희는 사람 쑥스럽게 뭘 그런 걸 적고 그랬냐?”

“그냥 저희는 힘들어서 힘들다고 적었던 것뿐입니다.”

김지호 상병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어? 그럼 말을 하지! 그럼 신경 좀 덜 썼을 텐데.”

“아닙니다. 계속해서 신경 써주시지 말입니다.”

“맞습니다. 오 하사님! 하시던 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네, 오 하사님!”

강우식 상병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확실히 소원수리 적은 것 때문인 것은 맞았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좋다.

오상진 역시 실실 웃고 있다.

‘시발, 이게 뭐야? 일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건데?’

강우식 상병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오상진이 보란 듯이 지갑을 꺼냈다.

“야, 오늘 기분이다! 철승아!”

“일병 이철승!”

“오늘 중대 회식이다! PX 가서 이 돈으로 먹고 싶은 거 다 사와! 100원이라도 남기면 죽는다.”

오상진이 만 원짜리 열 장을 이철승 일병에게 줬다.

“넵! 알겠습니다!”

이철승 일병은 김희철 이병을 데리고 PX로 향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동진 병장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오 하사님, 오늘 우리 중대 무슨 좋은 일 있었습니까?”

“좋은 일? 있지! 중대원들이 소원수리를 했는데 내 이야길 했더라고.”

“네? 소원수리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무 힘들어서 죽겠단다!”

“예? 그게 무슨 말씀······.”

한동진 병장은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원수리를 했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다?

후임들이며 오상진이며 하는 행동들이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상진 역시 확답을 주지 않고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뭘 그리 궁금해하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냉동이나 먹어. 어? 너도 가서 좀 골라오든지.”

잠시 후 본부중대 생활관에 냉동식품부터 시작해 각종 과자와 음료수, 빵들을 쫙 깔았다.

“오늘 맛나게 먹고! 내일도 파이팅하자!”

“네, 알겠습니다.”

“많이들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본부중대원들은 배가 터질 정도로 과자와 음료수를 먹었다. 표정이 좋지 않은 건 강우식뿐이었다.

그때 생활관 문이 열리고 김현태 중대장이 들어왔다.

오상진은 깜짝 놀라며 경례를 했다.

“충성. 중대 회식 중.”

“뭐야. 벌써 오 하사가 쏜 거야?”

“예. 하도 기특해서 말입니다.”

“잘했다.”

김현태 중대장은 오상진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중대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중대장이 기분이 좋다. 너희들이 이렇듯 한마음 한뜻으로 있어주니, 중대장으로서 뿌듯하다. 앞으로도 여기 있는 부소대장과 잘 협력해서 멋진 본부중대를 만들어보자!”

“예! 알겠습니다!”

중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김현태 중대장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맛나게 먹고. 깨끗이 정리해라.”

“알겠습니다.”

김현태 중대장이 나가자 중대원들은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오상진은 슬쩍 고개를 돌려 강우식 상병을 보았다.

잔뜩 인상을 쓴 채 과자를 깨작깨작 먹고 있었다.

오상진이 강우식 상병에게 다가갔다.

“우식아.”

“상병 강우식.”

“왜 그래? 맛 없냐?

“저녁을 좀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부릅니다.”

“그래? 아쉽네.”

그렇게 말을 하며 강우식 상병 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식아, 짬은 그냥 괜히 먹는 게 아니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내 손바닥 안이야. 알겠냐?”

오상진이 그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강우식 상병이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06. 사격이라니



1


“하아······. 거참······.”

김현태 중대장은 책상에 앉아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를 해서는······. 어쩌지? 어떻게 하면 좋지?”

김현태 중대장은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오상진이었다.

“충성.”

“아, 오 하사. 어쩐 일이야?”

“네, 중대장님. 오늘 일과표 보고 하러 왔습니다.”

“아, 그랬지. 그래 수고했어. 거기다 두고 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일과표를 내려놓으며 슬쩍 김현태 중대장을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말은 잘 보내셨습니까?”

“주말? 뭐, 그렇지······.”

김현태 중대장은 힘없이 대답을 했다.

“중대장님, 힘이 없어 보이십니다.”

오상진이 걱정스레 묻자 김현태 중대장이 잠시 행동을 멈췄다가 기지개를 쭉 폈다. 그러더니 곧 어깨를 축 쳐졌다.

“그러게······. 오늘 따라 힘이 없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현태 중대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그게 말이야······. 사실 사고 하나 쳤다.”

“사고 말씀이십니까? 무슨 사고를?”

김현태 중대장은 잠깐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에 중대장들이랑 간단히 모임을 가졌는데······.”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충성부대 각 중대장들은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1차를 삼겹살집에서 먹고, 2차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그들만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졌다.

3중대장인 배대효 대위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아, 다음 주에 사격 있잖아.”

“그러네. 다음 주에 사격 있었지.”

“금요일입니까?”

2중대장 박효준 대위가 되물었다.

그러자 1중대장인 김진웅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금요일 맞을걸?”

여기서 김진웅 대위가 가장 선임이었다. 그 다음이 바로 3중대장, 2중대장과 본부중대장인 김현태 대위가 동기였다.

그때 3중대장인 배대효 대위가 뜻밖의 제의를 했다.

“말 나온 참에 중대끼리 사격 대결 해보는 거 어때?”

“사격 대결 말씀이십니까?”

“그래.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에이, 어차피 1중대가 이기지 않습니까?”

박효준 2중대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김진웅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럼 그러지 말고, 일병과 이등병 위주로 대결해 보는 겁니다. 그건 괜찮지 않습니까?”

“오호, 그건 괜찮겠네.”

김진웅 1중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현태 본부중대장이 나섰다.

“그럼 저희 본부중대도 참가하겠습니다.”

“에이, 됐어! 본부중대는 사격 못 하잖아! 질 게 뻔한데 참가는 무슨 참가야. 그냥 옆에서 구경이나 해. 큭큭큭큭.”

배대효 3중대장이 말에 김현태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중대 애들도 사격 잘합니다.”

“야, 다들 뻔히 아는데 이건 또 뭔 고집이야? 헛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킥킥킥.”

“그래. 어? 본부중대는 행정업무만 잘하면 되지 굳이 사격까지 잘할 필요가 있어?”

박효준 2중대장도 김현태 중대장을 슬슬 긁으니 분위기가 점점 더 김현태 중대장을 놀려 먹는 분위기로 흐르게 되었다.

“무슨 소리야. 본부중대는 뭐, 군인 아닌가? 우리도 애들도 사격 잘해! 우리 중대도 참가하겠습니다!”

김현태 본부중대장은 자존심에 약간의 스크래치를 입었는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김진웅 1중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본부중대장!”

“네.”

“무리하지 않아도 돼! 우리 다 뻔히 알고 있는데 왜 그래? 그냥 마음만 알고 있겠네. 거 괜한 내기해서 돈 잃지 말고.”

“아닙니다. 1중대장님! 상․병장이 끼면 모르겠지만 일병과 이등병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단, 저희 인원이 부족하니까 5명으로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김현태 본부중대장이 당당하게 말했다.

“에이, 괜히 호기부리지 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전투중대야. 너희는 행정병 위주고 어중이떠중이들이 있는 중대가 과연 사격을 잘할까? 상대가 안 되지!”

배대효 3중대장이 말했다.

그의 말이 김현태 본부중대장의 속을 아주 제대로 긁어놓았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않습니까?”

김현태 본부중대장도지지 않았다.

그러자 김진웅 1중대장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꼭 그래야겠나?”

“예. 저희 중대도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망신당할 텐데. 다 자네 아껴서 하는 말이야.”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 참가하도록 해! 단, 꼴찌 팀이 1위 중대원들에게 햄버거와 피자를 한 턱 쏘고, 우리들에게는 소고기 쏘는 거 어때?”

김진웅 1중대장의 제안에 다른 중대장들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좋습니다.”

“찬성입니다.”

“일병과 이등병이라면 괜찮습니다.”

김진웅 1중대장이 김현태 본부중대장에게 시선이 갔다.

“본부중대장은?”

“물론 우리 중대도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있을 사격 훈련 때다. 5명이 참가하고, 이등병 한 명은 꼭 참가시키는 거야. 총 20발을 쏘고, 5명이 맞힌 총합계로 승패를 정한다. 아, 본부중대는 상병까지 허용해 주지. 인원이 많이 부족하니까.”

“감사합니다.”

“훗, 아무튼 잘해봐!”

김진웅 1중대장이 약간 비웃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김현태 본부중대장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미쳤지! 그땐 내 정신이 아니었나봐. 부소대장, 어떻게 하냐?”

담담히 모든 것을 들은 오상진 역시 표정이 매우 심각했다.

오상진도 알고 있었다. 다른 중대보다 본부중대의 사격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점이나 제대로 잡혀 있는지, 아니, 총이나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었다.

“정말 큰일입니다.”

“내 말이······. 일단 뱉은 말이 있으니까 참가하긴 해야 하는데······ 우리 애들 사격 잘하냐?”

김현태 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병사로 있을 때 본부중대의 사격 실력은 최악이었다.

“제가 있을 때 본부중대 평균이 11발이었습니다.”

그나마 좀 쏜다는 중대원은 18발이 최고였다. 그것도 오상진이 딱 한 번 기록한 것이었다.

사실 행정업무로 매일 치이다 보니 중대 행정병은 사격할 시간이 없었다.

대대장으로부터 전 부대 사격에 참가하라고 명령이 내려오면 교대로 사격을 했었다. 그것도 영점부터 새롭게 맞추고 나서 오후에 하는 시늉만 했다.

그런데 전투중대인 1중대, 2중대, 3중대와의 사격대결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이 없었다.

“힘들······ 겠지?”

김현태 중대장이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물었다.

오상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젠장! 어떻게 하냐? 아무튼 술이 웬수야, 술이!”

오상진은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병하고 이등병 위주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그리고 우리 본부중대는 상병까지 허용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음······. 상병까지 포함한다면 5명을 뽑아낼 수 있긴 하겠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1중대나, 2중대는 중대원들이 워낙에 잘 쏘지 않습니까.”

“맞아······.”

“하아, 이거 참 힘들겠는데 말입니다.”

오상진이 생각해도 이건 안 될 것 같았다.

“후우······. 어쩔 수 없지. 내가 햄버거랑 피자 쏘는 수밖에.”

“출혈이 좀 크시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 아까운 게 아냐. 자꾸 본부중대는 사격 못 한다고 비아냥거리잖아. 그게 싫어. 그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중대장님처럼 화가 났을 겁니다. 솔직히 저도 이참에 사격도 잘해서 ‘우린 행정업무를 보면서 사격도 잘한다’라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리 된다면 여한이 없지! 내 위신도 살고 말이야.”

“으음······.”

오상진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잠깐 생각을 하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디 한번 해보는 겁니다.”

“뭐?”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상진 역시 오기가 생겨났다.

“어디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우리 중대가 1등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정말?”

“어차피 엎질러진 물 아닙니까. 부딪쳐 보긴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래, 맞아! 1등은 하지 않아도 돼. 3등만 해도 돼. 그 정도만 해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어. 그러니까, 꼴지만 하지 않게 해줘.”

“아닙니다. 반드시 1등을 해서 각 중대에게 본부중대의 위대함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저, 정말 가능할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말입니다.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시겠습니까?”

오상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김현태 중대장은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어차피 한턱낼 것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상진을 믿는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 알았어. 보고는 꼭 하고!”

“물론입니다, 중대장님.”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문 밖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누굴 데리고 갈지 고민을 해보고, 두 번째로 사격장 관리병을 만나봐야겠지?”

오상진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누굴 뽑아야 할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2


본부중대 생활관에 중대원 다섯 명이 모였다.

“다 모였냐?”

오상진이 생활관에 들어왔다. 생활관에 있던 김지호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충성. 쉬어, 쉬어.”

오상진은 생활관에 있는 인원을 확인했다. 일단 행정실에 있는 김지호 상병과 통신과에서 2명, 군수과 계원에서 1명, 작전과에서 1명 이렇게 차출되었다.

일단 작전과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등병이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등병은 김희철이었다.

통신과에서는 이철승 일병과 임도욱 일병이 왔다.

두 사람은 동기였다. 군수과에서는 한때 오상진의 부사수였던 최재욱 상병이 차출되었다.

“어디 보자······.”

오상진이 맞은편 침상에 걸터앉았다. 상병 2명에, 일병 2명 그리고 이등병 1명이었다. 그들을 찬찬히 바라보던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 여기에 왜 모였는지 모르지?”

“네, 그렇습니다.”

“너희 중대 사격 대결에 좀 나가야겠다.”

“예? 중대 사격 대결 말씀이십니까?”

김지호 상병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중대장님이 행정실 업무를 잠시 미루고 가보라고 해서 왔지만 사격이라니?

“오 하사님, 저희가 무슨 사격을 합니까?”

“그래, 놀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그렇게 되었어.”

오상진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이야기 도중에 타 중대에서 본부중대를 무시했단 사실을 적절히 섞어 주었다. 물론 김현태 중대장이 술 먹고 사고를 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병사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솔직히 저희가 좀 못 하긴 해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뭐 저흰 총 안 싸봤습니까?”

“전투 부대라고 뭐 존심 세우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힘들 텐데 진짜 너무합니다. 중대장님께선 그런 말을 듣고도 참으셨답니까?”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자 오상진이 씩 하고 웃으며 병사들을 달랬다. 투지를 한 껏 일깨웠으니 이제 달콤한 보상을 말해줄 때다.

“이번 대결에서 1등을 하면 햄버거와 피자를 먹는 거야.”

“해, 햄버거와 피자!”

“게다가 콜라까지.”

“코, 콜라!”

다섯 명의 눈이 반짝였다. 햄버거와 피자는 군대에서 거의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외박이나, 휴가 나갔을 때 빼고는 말이다.

“그래. 그러니까 중대의 자존심이 걸려 있으니 까짓 거 한번 해보자고.”

“······하지만 저희 사격을 못 하는 건 사실입니다.”

“맞습니다. 사격하면 1중대이지 말입니다.”

김지호 상병이 말을 하고, 이철승 일병이 곧바로 덧붙였다. 최재욱 상병은 고개만 끄덕였다. 김희철 이병은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알고 있어. 그래도 우리가 못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야하지 않겠냐. 분하지도 않냐? 아까 그 반응은 뭔데? 1중대나, 2중대, 3중대들에게 우리는 행정업무만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린 뭐든지 잘한다! 그런 인상을 심어줘야지. 안 그래?”

오상진의 말에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때 최재욱 상병이 물었다.

“사격 대결은 언제 합니까?”

“다음 주 금요일.”

“이제 고작 1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할 일도 산더미인데······.”

김지호 상병이 잔뜩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오상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이 시간 이후부터 모든 업무에서 열외다. 물론 낮에 하는 일과만이야. 대신, 너희가 하는 업무는 다른 사람이 하게 될 거야.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대신······.”

잠시 말을 끊은 오상진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입을 뗐다.

“당연히 너희들에게도 혜택이 있어야겠지?”

혜택이라는 말에 다들 눈이 커졌다.

“너희들 중에서 사격 1등이 나오면 중대장님의 특별 포상 휴가를 준다. 2등은 외박, 3등은 10만원 PX 이용권. 어때 이제 좀 구미가 당겨?”

포상 휴가라는 말에 모두들 표정이 밝아졌다. 2등만 해도 외박이었다.

“그리고 사격 대결이 벌어지는 10일 동안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한다. 나 오상진의 이름을 걸고 말이야. 아니,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확실하게 해줄게.”

오상진의 말에 그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지?”

“그럼 해야지 말입니다.”

“하겠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오상진이 노트를 꺼내 필기할 준비를 했다.

그때 김지호 상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 하사님.”

“왜?”

“일단 하긴 하는데 말입니다. 1등 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아, 예······.”

김지호 상병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이 고개를 들었다.

“자! 그럼, 일단은 최근에 사격을 언제 했었지?”

“아마 한 달 전일 겁니다.”

“그래? 너희도 사격 하긴 했어?”

“네. 그때도 교대로 사격은 했었습니다.”

“그럼 지호 넌 그때 몇 발 맞혔어?”

“전 12발 맞혔습니다.”

“12발······.”

오상진이 노트에 필기를 시작했다.

“재욱이는?”

“전 16발입니다.”

“오오오오!”

“대단하지 말입니다.”

“이야, 너 좀 쏜다!”

김지호 상병이 깜짝 놀라며 최재욱 상병을 보았다.

최재욱 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했다. 이철승 일병이 놀란 토끼눈으로 최재욱 상병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경이로움이 담겨져 있었다.

“최 상병님 언제 그렇게 사격을 잘하셨습니까?”

“뭐, 그때는 운이 좋았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풉!”

오상진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16발에 이렇듯 놀라고 있었다. 오상진의 웃음에 이철승 일병이 말했다.

“오 하사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뭐, 잘 쏘네. 여기서는······.”

“네?”

“20발 중에 16발이면 잘 쏘는 게 맞아. 그런데 말이야, 1중대 애들 중에 가장 못 쏜 애가 16발이야. 그 녀석들 기본적으로 18발은 그냥 쏴!”

오상진의 말에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에이, 굳이 지금 사기를 저하시키는 말씀을 꼭 하셔야 했습니까?”

이철승 일병이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일찍 감치 확신시켜줬을 뿐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철승이 넌 몇 발 맞혔어.”

“여, 덟······ 발입니다.”

이철승 일병이 시선을 외면하며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안 들려?”

“여덟 발입니다.”

“열여덟 발?”

오상진이 재차 물었다.

“아니, 여덟 발입니다.”

이철승 일병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오상진이 볼펜으로 적으며 말했다.

“자랑이다!”

“도욱이는?”

“전 14발입니다.”

“오오? 도욱이 제법이네.”

이철승 일병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언제 그렇게 맞혔냐? 내게는 별로 못 했다고 했잖아.”

“못 한 거지.”

“와, 미쳐. 14발이 못 한 거냐?”

이철승 일병이 펄쩍 뛰었다.

그 모습을 본 오상진이 한 마디 했다.

“철승아, 못 한 거야. 하긴 여덟 발에 비하면······.”

“너무하시지 말입니다.”

“너무하긴 뭘 너무해! 여덟 발은 닥치고 조용히 있어.”

이철승 일병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희철이는?”

“이병 김희철! 17발입니다.”

“오오, 그래? 여기서 희철이가 에이스였네!”

“아, 아닙니다. 그때 운이 너무 좋았습니다.”

김희철 이병이 약간 부끄러운 듯 말했다.

“운이 좋든 나쁘든 여기서 네가 제일 많이 맞힌 건 사실이잖아.”

“네, 그렇습니다.”

“아무튼 칼자루는 뽑았고, 다시 넣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제는 썩은 무라도 베어 넘겨야 할 판이야. 그러니까, 열심히 잘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다섯 명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때 이철승 일병이 손을 들었다.

“왜?”

“갑자기 음료수가 댕깁니다.”

이철승 일병의 뜬금없는 말에 김지호 상병의 눈이 커졌다.

“야, 너 뭐라는 거야?”

“아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그건 그런 뜻이······.”

“철승이 말이 맞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지.”

오상진인 지갑을 꺼내 만 원을 꺼냈다.

그걸 김희철 이병에게 건넸다.

“희철이는 가서 음료수랑 초코파이 좀 사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철승이는 총기관물대 열쇠 좀 가져오고.”

“넵, 알겠습니다!”

이철승 일병이 환한 얼굴로 생활관을 나갔다.

잠시 후 이철승 일병이 총기관물대 열쇠를 가져왔다.

“각자 자기 총 가져와.”

총기관물대에서 각자 자기 총을 꺼냈다.

“지호 총 줘 봐.”

“네.”

김지호 상병이 총을 오상진에게 건넸다.

“총번 987 429 이상입니다.”

김지호 상병의 총을 받은 오상진이 힌지를 작동시켜 열었다. 노리쇠 뭉치를 빼내 약실을 확인했다. 형광등 쪽을 향해 약실을 확인하자 시커먼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야, 김지호.”

“상병 김지호.”

“너, 개인 화기 정비 언제 했냐?”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몇 달은 된 것 같습니다.”

“너, 저번 달에 총 쏘고, 정비 안 했냐?”

“아, 그때 갑자기 중대장님께서 부르셔서 말입니다.”

김지호 상병이 당황하며 말했다.

오상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답답하네.”

“이 총 영점은 제대로 잡혀 있긴 하냐?”

“영점 사격은 했습니다.”

“그래서 잡았냐고.”

“영점 사격은······.”

“잡혔는지 모르지?”

“······.”

김지호 상병이 입을 다물었다. 오상진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알겠다. 너희들 지금부터 내가 올 때가지 총기 정비해. 약실에 먼지 하나 있으면 뒤진다!”

“알겠습니다.”

“그래.”

생활관을 빠져나온 오상진은 군수과로 향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린 후 군수과에 들어갔다. 다행히 군수장교는 자리에 없었고 주하문 상사만이 자리에 있었다.

“어? 오 하사가 어쩐 일이야?”

“네, 잠시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인데?”

“창원이에게 말입니다.”

“창원이?”

그때 구석 책상에 앉아 있던 구창원 일병이 고개를 들었다.

“창원아.”

“일병 구창원.”

구창원 일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창원 일병은 탄약계원이었다.

“난 또 나 보러 온 줄 알았네. 너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이더라?”

“네. 이것저것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좀 서운하려고 한다. 이제는 아예 군수과에 얼굴도 비치지 않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자주자주 오겠습니다. 그보다 조금 있으면 동계 훈련이 있는데 준비는 잘 되어 가십니까?”

“하아, 그것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밑에 애들이 멍청이들이라. 내가 일일이 다 하려니 미치겠어. 너 있을 때가 좋았는데.”

주하문 상사의 하소연에 오상진은 속으로 웃었다.

‘내가 얼마나 죽어났는데······. 좀 더 고생해 봐야지.’

그러곤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여기에 왔으면 도와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니야,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다시 중대장님과 얘기를 해봐야겠어.”

주하문 상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곧장 군수과를 나갔다.

오상진은 그런 주하문 상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백 날 해봐라. 들어주나.”

“잘 못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셨습니까?”

탄약계원 구창원 일병이 말했다.

“너에게 한 말이 아니야. 그보다 창원아,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이야.”

“네, 말씀하시지 말입니다.”

“혹시, 이번 분기 탄약 잔고 어떻게 되냐?”

“이번 분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다음 주 사격 때문에 그러십니까?”

구창원 일병이 서류를 빼내 확인하면서 물었다.

오상진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다음 주 사격 때문이라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고, 남는 탄환 없어? 분기별로 총알 소모량과 탄피를 신고해서 반납해야 하잖아. 나중에 총알 남아서 그거 없애야 한다고 난리였잖아.”

“아, 안 그래도 그래야 했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1중대와 2중대, 3중대에서 각각 총알이 필요하다고 해서 말입니다. 미리 빼서 가져갔습니다.”

“뭐?”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아뿔싸! 한발 늦었다!’

“이번에는 골머리 안 썩혀도 될 것 같습니다.”

구창원 일병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상진은 난감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남는 총알이 없단 말이야?”

“네. 이번 분기는 없습니다. 다음 주에 쏠 총알만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헐, 큰일 났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우리 본부중대도 총알이 좀 필요하거든. 너 머리 안 아프게 남는 총알 소비해 줄라고 했지.”

“네? 본부중대에서 총알이 필요하다고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본부중대는 사격도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구창원 일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일이 있어. 어쨌든 지금 총알이 없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정말, 하나도?”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다음 분기 거라도 빼올 방법은 없어?”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권한은 제게 없지 말입니다. 탄약고 관리장님께 물어보시지 말입니다.”

“권 상사님께?”

“네.”

오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야, 권 상사님은······.”

“어쩔 수 없지 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탄약고 관리장인데 말입니다.”

“젠장, 또 한 소리 듣게 생겼네.”

“정 필요하시다면 그러지 마시고, 고기 한번 사들고 가시지 말입니다.”

“고기?”

구창원 일병의 조언에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권 상사님 고기하면 환장하지 않습니까.”

오상진의 눈이 반짝였다.

“맞다. 고기를 엄청 좋아하시지. 고마워. 수고해, 창원아. 난중에 냉동 사줄게.”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군수과를 뛰쳐나갔다.



3


오상진은 매향에 먼저 나가 룸을 잡고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권 상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살짝 짜증이 난 얼굴로 룸 안으로 들어왔다.

“야, 인마. 넌 선배를 오라 가라 하냐? 귀찮게 시리.”

“에이, 권 상사님 좋은 곳에서 대접하고 싶어서 그랬지 말입니다.”

“뭐, 가게는 그럴싸하네.”

“고기 맛도 훌륭합니다.”

“그거야 먹어보면 아는 거고.”

권 상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오상진은 곧바로 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참. 제가 급하게 오느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이건 뭐야?”

“약소한 겁니다.”

권 상사가 약병을 집어 들었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신묘한 푸른빛이 감도는 알약이 20개쯤 담겨 있었다.

“이, 이건······!”

“이름은 좀 다르지만 생각하시는 그것 맞습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물론이지 말입니다. 내가 아는 후배 녀석이 제약회사를 다니는데 선물이라고 저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저야 뭐, 여자 친구도 없고, 쓸 데가 있어야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왜?”

권 상사가 살짝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냉큼 말을 이었다.

“그게 말입니다. 후배 놈이 이게 새로 나온 건데 약효가 세서 비실비실한 놈들은 잡아먹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받은 걸 다시 돌려주기도 뭐했는데 불현듯 권 상사님이 생각나지 뭡니까.”

“내 생각이 났다고?”

“네, 지난 체육대회 부대 씨름왕 출신이시지 않습니까.”

“어험, 뭐 그렇지······.”

권 상사는 자신의 배를 툭툭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저렇게 나왔어도 힘 하나는 장사였다.

다만 문제는 침대에서 약한 남자라는 것이었다.

이름하야 낮이밤져.

이것 때문에 거의 매일 와이프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밤에 잠드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문제는 그 스트레스를 부대에 와서 중대원들에게 푼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이 부장의 말로는 효과는 확실하다고 했다. 60대, 아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70대 할아버지도 문제없다고 했다.

“진짜 나 주는 거야?”

“당연하지 말입니다, 제가 권 상사님 생각해서 가져왔는데······. 일단 효과는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래?”

권 상사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안 그래도 권 상사는 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알아서 챙겨주니 고마웠다.

약통을 슬그머니 야상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거 부작용이 있거나 그런 거 아니지?”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우선 하루에 한 알씩만 드시면 된다고 합니다. 뭐, 약효가 오래 간다고 하니까 컨디션 좋을 때 드십시오. 뭐, 권 상사님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오상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권 상사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때 직원이 고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두툼한 소고기에 마블링이 예술이었다.

“아이고, 고기 봐라! 예술이네. 뭘 이렇게 좋은 걸 시켰어?”

“권 상사님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말입니다.”

“껄걸. 역시 오 하사가 사람 기분을 맞춰줄 줄 알아. 그동안 내 조금 서운했었는데 방금 다 풀렸어. 자, 우선 내 잔 받아!”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냉큼 술잔을 내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비워갔다. 한 병이 다 비워질 때쯤 권 상사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말했다.

“자, 이제 말해 봐. 나한테 볼일이 뭐야?”

권 상사에게 넘어간 ‘방방서그라’의 효과는 확실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오상진은 군수과로 향했다. 권 상사의 호출 때문이었다.

“충성!”

권 상사가 헬쑥해진 얼굴로 오상진을 맞이했다.

“아아, 오 하사 왔어?”

눈 밑에 다크서클에 내려와 있지만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짜고짜 오상진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오 하사!”

“궈, 권 상사님······.”

“고맙네. 고마워. 자네 때문에 난 어젯밤······ 진정한 남자였어.”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권 상사가 몸을 떼어내며 오상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참, 어제 총알 필요하다고 했지?”

“네.”

“걱정 마. 공병부대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으니까. 어차피 그 녀석들 작업 때문에 총알 소비도 못 해. 우리가 대신해 주겠다고 하니까 좋아서 난리더라.”

“감사합니다, 권 상사님!”

“뭘, 내가 더 고맙지. 하하하!”

권 상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상진은 히죽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좋았어!”

그날 바로, 오상진은 사격 대결에 출전할 다섯 명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개인화기를 가지고서 말이다.

병사들은 방탄 헬멧과 탄티를 착용하고 연병장에 모였다.

오상진 역시 장비를 갖춰 입고, 연병장에 나갔다.

“다 모였냐?”

“네, 다 모였습니다.”

김지호 상병이 대답했다. 오상진은 다섯 명을 쭉 훑어 본 후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가 할 일은 사격 훈련이다. 일단 영점부터 잡아야 하니까 영점 사격장으로 이동한다. 지호가 애들 통솔해서 이동하고, 희철이는 나랑 탄약고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김희철 이병과 함께 탄약고로 가서 탄약을 수령했다. 이미 공병대에서 우리 대대로 탄약을 넘겼다. 사격 훈련을 하며 탄알을 소비한 뒤, 탄피를 잘 챙겨서 다시 공병대로 넘겨주면 되었다.

“이거냐?”

이우종 일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져가시면 됩니다.”

“알았다. 고마워.”

“아닙니다. 탄피만 잘 챙겨주시지 말입니다.”

“그건 걱정 마.”

오상진이 총알을 챙겨서 이동했다.

영점 사격장에 도착을 한 오상진은 곧바로 중대원들을 앉혀놓고 설명을 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실탄을 가지고 쏘기 때문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일단 영점부터 잡고 시작하자. 총알은 많으니까 천천히. 알았지?”

“예.”

“무엇보다 탄착군을 빨리 찾는 게 중요해.”

“네, 알겠습니다.”

탕탕탕!

총알 세 발이 각각 발사되었다.

“노리쇠 후퇴 고정!”

“노리쇠 후퇴 고정!”

“격발!”

“격발!”

탕탕탕!

“약실 검사!”

“약실 검사!”

“이상 무!”

동시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각자 표적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흠······.”

오상진은 예상했던대로 영점이 모두 엉망이었다.

“야, 김지호! 너 왜 구멍이 두 개냐?”

“세 발 다 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왜 두 개냐고?”

“그건 모르지 말입니다.”

“하아······.”

오상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옆에 있는 이철승 일병의 표적지를 확인했다.

“철승아!”

“일병 이철승!”

“넌 왜 또 구멍이 4개냐?”

“네?”

이철승 일병이 확인했다. 총알 구멍이 4개였다. 아마도 김지호 일병이 쏜 총알이 여기에 박힌 것 같았다.

오상진이 곧바로 김지호 상병을 보았다.

“지호야.”

“상병 김지호.”

“너 눈 고자냐?”

“아닌데 말입니다.”

“그럼 철승이가 불쌍해서 네 총알을 보태준 거냐?”

“그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너 제대로 안 할래?”

“제대로 하겠습니다.”

“아 놔, 이걸. 말이나 못하면······.”

오상진은 또다시 옆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시나 총알 구멍이 춤을 췄다.

그나마 김희철 이병만이 탄착군이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희철이만 빼고 나머지는 다시 사격 준비! 희철이는 탄피 잘 확인하고!”

“넵!”

그렇게 영점을 잡는 데만 오전과 오후가 지나갔다. 거의 200발을 쏘고서야 다섯 명 모두 탄착군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병사들을 연병장에 모아놓고 오상진이 말했다.

“내일부터는 사격장으로 가서 실사격을 할 거다. 마음 단단히 먹고, 총기 점검 확실히 하고.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내일 나 확인한다. 만약에 안 되어 있으면 얼차려 각오해!”

“예! 알겠습니다!”

“좋아. 오늘 수고했다. 들어가.”

“수고하셨습니다.”

중대원들이 생활관으로 향했다.

오상진은 탄약을 들고 확인했다. 총 200발을 쐈기 때문에 탄피 역시 200개가 나와야 했고 그 숫자는 정확히 일치했다.

“오케이, 확인했고!”

오상진은 남은 탄약과 탄피를 무사히 반납한 후 부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사격장 관리병을 찾았다.

“야, 태곤이 좀 불러와라.”



4


오상진의 면담장소는 언제나 통신과였다.

똑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고 사격장 관리병인 이태곤 일병이 들어왔다.

“충성! 일병 이태곤. 통신과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태곤아. 이리 와 앉아.”

오상진은 반갑게 이태곤 일병을 맞이했다.

“너 부대에 전입 오고 이런 자리 처음일 거야.”

“네, 그렇습니다.”

오상진은 이태곤 일병과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전입을 온 뒤 이태곤은 거의 매일 사격장에 있었고, 오후에 생활관에 복귀한 뒤에도 조용히 지냈다. 오상진은 물론 주변에서도 그저 얌전한 병사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디 빠지는 법은 없었는데, 자기 할 일은 또 철저히, 성실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선임들이건 간부들이건 굳이 이태곤 일병을 터치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자리조차 이태곤에겐 의아한 일이었다.

첫 면담도 사격장에 있어서 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번이 오상진과 이태곤이 처음 독대하는 자리였다.

“요즘 생활을 어때?”

“괜찮습니다.”

이태곤 일병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태곤 일병의 첫 인상은 무뚝뚝했다.

“요즘 많이 바쁘지?”

“네. 그렇습니다.”

딱 자기 할 말만 하는 이태곤 일병 때문에 오상진은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하여 쓸데없는 이야기는 치우고 바로 본론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쩝, 좀 친해져 보려고 했더니······.’

오상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네 도움이 좀 필요해서 말이야.”

“어떤 도움 말씀이십니까?”

“사실 우리 본부중대도 사격을 해야 하거든. 지금 1, 2, 3중대들이 매일 사격을 하잖아.”

“네, 그렇습니다.”

“내일부터 우리 본부중대도 참여할 거야. 그런데 네가 좀 알려줘야 할 것이 있어.”

“뭘 말입니까?”

“어떤 사로가 좀 민감한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이, 나도 다 알고 있어. 타깃 조정시키는 거 말이야.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가는 거 있던데. 그게 몇 사로인지만 알려줘.”

순간 이태곤 일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거 없습니다. 전 언제나 일정한 감도를 맞춰 놓으려고 정비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것 없습니다.”

이태곤 일병이 딱딱하게 말했다.

“내가 전에 총 쐈을 때 파편 맞고도 넘어가던데.”

“정말 그랬습니까?”

“그래.”

“몇 사로, 몇 미터가 그랬습니까?”

“으응? 뭐?”

“방금 파편만 맞고도 넘어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사로에 몇 미터짜리 타깃이었습니까?”

“어어? 그러니까, 내 기억으로는 6사로에 100미터······.”

“아. 6사로에 100미터 말씀이십니까? 어쩐지 잘 넘어간다고 했어.”

이태곤 일병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순간 오상진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오 하사님. 꼭 제대로 정비해 놓겠습니다. 그건 명백한 제 실수입니다.”

이태곤 일병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면 일부러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걸지도 몰랐다.

이 이상 이태곤 일병과의 면담은 무의미했다.

“그래 알았다. 이만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충성!”

이태곤 일병이 통신과를 나섰다. 문을 닫은 이태곤 일병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곤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본부중대 생활관로 향했다.


그 다음날 오상진은 곧바로 다섯 명의 중대원들을 모았다.

“자, 오늘부터 사격장에서 실사격을 한다. 다들 바짝 긴장하고, 지금 다른 중대가 사격하고 있으니까 방해 안 되게 잘하고.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사격장은 부대에서 동쪽으로 능성 하나만 넘으면 나왔다.

능선을 넘자마자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탕탕탕탕!

고막을 울리는 총소리에 다섯 명의 중대원들은 더욱 바짝 긴장했다.

“자, 일단 PRI 교장에서 몸 좀 풀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사격장 한편에 마련된 PRI 교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가운데 흰 기둥에 검은색으로 사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PRI를 연습하는 장소인데 이미 2중대와 3중대가 전진무의탁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반복해서 숙달 연습하고 있었다.

“충성!”

김지호 상병이 2중대 소대장인 김 소위에게 경례했다.

“어? 김지호 너 본부중대 아니야? 너희가 여긴 왜 왔냐?”

김 소위는 마치 비웃는 듯 말했다.

김지호 상병은 ‘사격장에 사격하러 왔지. 뭐 하러 왔겠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사격하러 왔습니다.”

“사격? 아하, 너희들도 연습하려고? 책상에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하면 되겠어? 하하하하.”

순간 욱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비단 김 소위뿐만 아니라 전투 부대들은 항상 저런 식으로 본부중대를 깔보고 있었다.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지호 상병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 소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새끼, 말은 잘하네. 하긴 뭐라고 해봐야겠지. 발버둥 쳐봐, 그래도 꼴지는 정해져 있겠지만. 총 쏘는 법은 안 잊었나 몰라? 하하하하!”

“하하하.”

김 소위의 말에 2중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김지호 상병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웃고 있는 2중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순간 깜짝 놀란 2중대원들이 시선을 피하며 웃음을 멈추었다. 김지호 상병이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웃기냐? 뭐가 웃겨? 니들 눈에는 내가 개똥으로 보이냐? 야, 고동!”

“일병 박고동!”

“너, 상철이가 그렇게 가르쳤냐?”

“아닙니다.”

“그런데 타 중대 고참은 고참이 아니라고, 그러디? 막 웃어도 된다고 그렇게 가르치디?”

“아, 아닙니다.”

본래 중대가 다르면 서로 관등성명을 따지지 않지만 충성부대는 대대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대대장의 엄명으로 철저하게 선후임 관계를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상병까지 허용되는 본부 중대와 달리 2중대는 일병과 이등병만 있었다.

김지호 상병의 으름장에 박고동 일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김 소위가 나섰다.

“야, 김지호.”

“상병 김지호.”

“너 뭐야? 왜 우리 중대 애들에게 뭐라 하냐? 네 눈에는 내가 안 보이지?”

“아닙니다.”

“야, 너희 인솔자 어디 있어. 어! 너희들끼리 왔냐?”

“아닙니다. 부소대장님하고 같이 왔습니다.”

“그런데 새끼야, 너희 부소대장은 어디 가고 너희만 있어!”

“저 여기 있습니다.”

오상진이 천천히 걸어왔다.

김 소위는 오상진을 발견하고 말했다.

“중대원들만 이리 보내놓고 뭐 하시는 겁니까?”

김 소위는 오상진이 하사라는 것을 보고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잠시 1중대장님을 뵙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니, 중대원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래? 간부는 안중에도 없나? 대체 교육을 어떻게 한 겁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 녀석들이 내가 있는데 우리 애들에게 야단을 치잖아. 그래도 되는 겁니까?”

김 소위는 반말까지 섞어가며 말했다.

오상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김지호 상병이 곧장 끼어들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이 먼저 저흴 비웃었습니다.”

“비웃어? 누가?”

“2중대입니다.”

“똑바로 말해. 무슨 일 있었어.”

“2중대가 저희 본부중대가 책상 앞에서 앉아 있어 총을 제대로 쏠 수 있냐고 비웃었습니다. 총 쏘는 법도 까먹은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저 새끼들이?”

오상진이 곧바로 앉아 있는 2중대원들을 노려보았다.

2중대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모두 기상!”

오상진이 외쳤다. 그러자 2중대원들이 재빨리 일어났다.

그때 김 소위가 나섰다.

“뭐 하는 짓이야?”

“뭘 말입니까?”

“우리 중대원들에게 뭐 하는 짓이냐고.”

“정신 상태가 썩어빠져 얼차려 주려 그럽니다!”

“뭐?”

“2소대장님께 나서지 않으니까, 제가 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뭐, 뭐라고? 너 여기 있었어? 상황은 제대로 알아, 인마? 뭘 믿고 그렇게 나서? 어!”

“상황은 김지호 상병에게서 들었습니다.”

“병사 말만 듣고 이렇게 까분다고? 니가 뭔데 우리 중대원들한테 얼차려를 주냐 마냐야! 너 저 새끼가 거짓말 한 거면 어쩔 건데. 어?”

“제 소대 병사가 한 말입니다. 부소대장인 제가 못 믿으면 우리 애들 말은 누가 믿어준단 겁니까!”

“뭐, 뭐라고?”

“2중대, 너희 똑바로 말해. 우리 애들 총은 쏠 수 있냐고 했고, 웃었다던데 사실이야?”

“······.”

당연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였기에 2중대원들은 험악해지는 분위기에서 누구도 나서려 들지 않았다.

“보십쇼. 왜 말을 못 합니까? 김지호 상병처럼 왜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없냐는 겁니다. 같이 고생하며 입대했는데, 왜 우리 본부중대 애들만 무시당해야 하냔 말입니다!”

“이 새끼가 진짜!”

김 소위가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오상진 역시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기서 따지고 보면 군번은 오상진이 김 소위보다 훨씬 빨랐다. 한 마디로 짬은 오상진이 많다는 것이다. 다만 계급차이에서 밀릴 뿐이었다.

“지금 하사 나부랭이가 장교한테 개기는 거야?”

“그럼 김 소위님은 이런 부조리를 두고 방관하고 있는 겁니까?”

“오상진!”

“소리 지르지 말고 말씀하십쇼. 그전에 일단 2중대에게 사과는 받아야겠습니다.”

“야, 오 하사! 너 미쳤냐?”

김 소위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때 3중대 소대장이 나섰다.

“야, 사격장에서 무슨 소란이야!”

“충성!”

김 소위가 곧바로 경례를 붙였다.

한 중위였다. 오상진 역시 한 중위에게 경례했다.

“충성.”

“오 하사 와 있었네. 그런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러자 곧바로 김 소위가 나섰다.

“아니, 하사 나부랭이가 장교한테 개기는 거 아닙니까?”

“······뭐? 오 하사, 정말 그랬냐?”

“제가 말입니까? 한 중위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 말에 한 중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 하사가 그럴 리가 없지. 그러니 상황 설명 좀 해 봐. 어떻게 된 거야?”

오상진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한 중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김 소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넨, 그것이 중대원을 감싸는 행동이라 생각하나? 다른 중대를 깔보는 것을 그냥 두고 보는게?”

“아, 아니. 그것이 말입니다.”

“시끄러워! 어디서 변명인가? 아니면 자네도 날 비웃을 텐가?”

“무, 무슨 말씀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김 소위는 당황하며 말했다. 한 중위는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보았다.

“오 하사도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장교 아닌가. 서로 예의는 지켜야지.”

“죄송합니다.”

“둘이 이쯤에서 끝내! 그리고 김 소위, 그건 자네 중대를 감싸는 것이 아니고 욕보이는 행동이야. 단단히 알아둬!”

“······예, 알겠습니다.”

김 소위는 풀이 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오 하사도 조심하고!”

“예.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한 중위가 자신의 중대원들에게로 갔다.

오 하사 역시 김지호 상병에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서 대기해.”

“예.”

김 소위가 눈을 부라리며 오상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2중대원들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하사 나부랭이가······.”

김 소위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박고동 일병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김 소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잘했어.”

“그런데 말입니다. 본부중대도 사격을 하러 왔으면 시간이 많이 촉박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후, 과연 사격이나 할 수 있을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켜봐, 아마 본부중대는 사격 못 할 거야.”

김 소위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김 소위의 말대로 본부중대는 사격을 할 수 없었다.

1, 2, 3중대가 돌아가며 사격을 했다. 오상진이 직접 1중대장에게 말했지만 이미 짜인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본부중대원들은 PRI 교장에서 열심히 전진무의탁 동작만 연습하다가 돌아갔다.

오상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거 야단났네.”

사격 통제관은 1중대장이 맡고 있었다.

모든 사격이 1중대장의 통제 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그의 허락 없이는 사격장에 발을 내밀 수 없었다.

그렇다고 1중대장에게 따질 수도 없었기에 오상진은 반복해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기다리란 말뿐이었다.

오상진은 어쩔 수 없이 본부중대장을 만나러 갔다.

똑똑똑!

“들어와.”

“충성!”

책상에 앉아 있던 김현태 중대장이 오상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 오 하사. 어서 와.”

“예.”

“어때, 오늘 사격은?”

“그게······ 한 발도 쏘지 못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왜?”

“1중대장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뭐?”

“사격 통제관이신 1중대장님께 몇 차례 요청했지만 저희 본부중대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야, 그건 아니지! 이게 말이 돼?”

“저도 답답해 찾아왔습니다.”

“알았어. 그 일은 내가 해결할게. 그보다 넌 애들이나 잘 관리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중대장님만 믿겠습니다.”

“알았어.”

오상진이 나가고 홀로 남은 김현태 중대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1중대장님, 본부중대장입니다. 네, 잠시 시간 좀 내주십시오.”


중대장실에서 나온 오상진은 중앙 계단을 내려갔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하던 차, 중앙 뒷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공중전화 부스에 이태곤 일병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 태곤이네?”

오상진은 이태곤 일병이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이태곤 일병이 통화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 오빠 곧 일병 휴가 나가니까 걱정 말고. 울지 마! 휴가 나가서 오빠가 다 처리할게. 그보다 어머니는 좀 어떠셔? ······그래? 알았어. 울지 말라니까. 오빠가 알아서 해, 뚝 그쳐.”

오상진은 통화 내용을 듣고 뒤로 슬쩍 빠졌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뭔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오상진은 휴대폰을 꺼내 정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미 씨, 접니다.”

-네, 대표님. 말씀하세요.

“알아봐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역시 대표님께서는 제게 전화하는 것은 그런 일 말고는 없군요.

“네?”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아니에요. 이번엔 뭘 알아봐 드릴까요?

오늘따라 정 이사가 이상했다.

‘뭐지? 너무 오랜만에 전화해서 삐졌나?’

오상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는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우리 중대에 이태곤 일병이라고 있거든요. 집안 사정이 어떤지 알아봐 주세요.”

-전부요?

“네.”

-알겠습니다. 달리 말씀하실 일은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뚜뚜뚜뚜.

정 이사가 전화를 끊었다. 평소에도 차갑거나, 냉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오상진을 대하는 태도가 차가웠다.

“뭔 화나는 일이라도 있었나?”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이철승 일병이 내려왔다.

“어? 너 어디 가냐?”

“그냥 휴게실 가는데 말입니다.”

“콜라 사줄까?”

그 순간 이철승 일병이 씨익 웃었다.

“당연히 콜이지 말입니다.”

“그래! 가자.”


4.


다음 날 아침.

지이잉. 지이잉.

탁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대표님, 저예요.

“아, 유미 씨! 아침 일찍 어쩐 일이에요?”

-어제 알아보라고 하신 거 알려드릴게요.

“벌써요? 말씀해 주세요.”

오상진은 곧장 자리를 잡고 앉았다.

휴대폰 너머 정 이사의 음성이 깨끗하게 전해져 왔다.

-이름 이태곤. 나이 21살.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는 5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계셨나 봐요.

“그래요?”

-그런데 며칠 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현재 고대병원 정형외과에 계시는데 아무래도 수술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디가 많이 안 좋아요?”

-몇 달 전 빙판에서 넘어진 모양이에요. 그때 허리를 크게 다치신 모양인데 그냥 파스 하나 붙이고 일하고 다녔나 봐요. 그러다가 병을 크게 키운 모양이에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허리 아래는 마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아, 그랬군요.”

-그동안 아들이 일을 다 도와주곤 했는데, 군대에 갔으니 혼자서 하기에는 좀 많이 버거웠을 거예요. 게다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쉬지도 못했을 거구요.

“아, 그랬군요······.”

오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뭐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었다.

“수술비는 얼마정도 나오죠?”

-약 6백만 원 정도 되네요. 그리고 그동안 입원해서 일도 못하고 몇 달간은 재활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생활비도 필요할 거구요. 어림잡아 최소한 천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장사는 아는 지인이 잠시 맡아서 해주기로 한 것 같고요.

“천만 원이라. 제법 많네요.”

-네, 인공 디스크를 삽입해야 하는 수술이라서 수술비가 좀 비싼 편이에요. 문제는 어머니에요. 수술을 안 하시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계시다고 하네요.

“물론 수술비 부담 때문이겠죠.”

-네.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당장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니까요. 그나마 아들 이태곤이 군대에 갔기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줄긴 했지만요.

“흠······.”

-어떻게 할까요? 대표님 이름으로 지원할까요?

“아뇨,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수술비가 얼마 정도 드는지 정확하게 알아보시고. 그 돈을 제 통장에 따로 입금해 주세요.”

-그럼 되는 거예요?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대표님께서 따로 생각한 것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리 조치히겠습니다.

그걸로 정 이사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중대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현태 중대장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충성.”

“오 하사가 어쩐 일이야? 따로 보고할 거라도 있어?”

“네. 중대장님. 사실은······.”

오상진은 김현태 중대장에게 이태곤 일병의 가정사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아주 우연히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김현태 중대장이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태곤이가······. 녀석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더니.”

“원래 태곤이는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 말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오 하사 생각은 어때? 어떻게 하면 좋겠나?”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 말해 봐.”

“일단 중대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모금을 해서 전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이번 기회에 태곤이에게도 그렇고, 우리본부중대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아! 그래. 그게 좋겠군. 오 하사가 주도해서 진행해봐.”

“네.”

“물론 태곤이는 모르게 진행해야 해.”

“당연하지 말입니다.”

오상진이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모금함을 준비한 후 첫 번째로 사무실을 돌며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좋은 취지로 준비했기 때문에 간부들도 조금씩이지만 참여를 했다.

그 결과 본부중대원들의 모금과 각 간부들이 십시일반 모든 돈이 어느 덧 40여만원에 이르렀다. 김현태 중대장 역시 모금에 동참을 했다.

“내가 많이 내야 하지만, 이것밖에 준비 못했다.”

김현태 중대장이 하얀 봉투에 돈을 넣어 모금함에 넣었다.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지만 30만원이나 쾌척을 했다. 그 다음이 통신소대장이 10만원을 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당연히 도움을 줘야지.”

통신소대장은 술을 좋아하지만 돈을 쓸 때는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상진은 다시 군수과로 향했다.

주하문 상사가 눈을 크게 떴다.

“뭐? 모금을 한다고?”

“네. 중대 차원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부탁드리지 말입니다.”

“다들 참여했어?”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작전장교님도 해주셨습니다.”

“진짜?”

“네. 군수장교님께서도 해주시기로 했지 말입니다.”

“젠장. 그럼 해야지······.”

주하문 상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 손을 부르르 떨었다. 중대차원에서 좋은 취지로 행하는 것이기에 참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만 원짜리 지폐를 하나둘 꺼내던 주하문 상사는 눈을 찔끔 감고는 3만 원을 모금함에 넣었다.

“에잇! 가져가!”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주 상사님!”

오상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주하문 상사는 손짓을 하며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했다.

오상진은 행정실에서 모금함을 확인했다.

병사들과 간부들까지 거의 대부분 모금에 참여해서인지 약 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모였다.

“우와! 이 정도까지 모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옆에 있던 김지호 상병이 놀란 듯 말했다.

모금함을 들고 다녔던 김희철 이병 역시 환한 표정이 되었다.

“잘 됐습니다.”

“일단 총 얼마 모였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수술비까지 해서 얼마가 부족한지 계산해서 말해줘.”

오상진의 물음에 김희철이가 곧바로 말했다.

“수술비 600만 원에 현재 모금액은 107만 7천 원. 그럼 492만 3천 원이 모자랍니다.”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쳐다봤다.

“벌써 계산이 끝났냐?”

“이게 무슨 계산이라고 그러십니까. 바로 보이지 말입니다.”

김희철 이병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말했다.

“오오, 역시 똑똑해. 어? 명문대생이야.”

“감사합니다.”

김지호 상병이 끼어들었다.

“그럼 다른 중대들도 모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헌혈증이면 모르겠지만 돈이라면 다른 중대 애들은 부담스러워 할 거야. 태곤이도 마찬가지고.”

“아, 확실히 그렇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나머지라면 거의 500만 원입니다. 그걸 오 하사님이 어떻게 채우실 생각이십니까?”

“나 돈 많잖아.”

“저, 정말 로또라도 당첨되신 겁니까?”

“많이 알면 다친다.”

그날 저녁 이태곤 일병이 중대장실에 불려왔다.

“야, 인마. 집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중대장에게 얘기를 했어야지.”

“······.”

이태곤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김현태 중대장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자! 중대원들이 조금씩 모았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중대원들도 널 걱정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태곤 일병이 떨리는 손으로 그 봉투를 받았다. 두툼한 느낌이 손에 가득 전해져왔다.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 그리고 오 하사에게 고맙다고 해라. 이거 다 오 하사가 준비했어. 너 사정 알고, 이렇게 준비했다니까. 오 하사만큼 너희들을 챙겨주는 간부도 없다.”

김현태 중대장이 그 말을 남기고는 슬쩍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태곤 일병의 뜨거워진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물어봐.”

“제게 왜······.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야, 인마. 내가 너만 챙기냐? 중대 애들 다 챙기지.”

“······.”

“전부 동생 같아서 그래. 나도 군 생활을 해봤고, 이렇듯 우리를 조금만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거든.”

오상진을 말을 하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옛날 오상진이 간부였던 시절에 병사들이 힘들었던 얘기를 하면 그냥 말로만 위로했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괜찮아.’

하지만 가뜩이나 군 생활에 지친 병사들에게 말뿐인 위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땐 오상진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받은 지금은 달랐다. 누군가의 눈에는 허투루 돈을 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오상진은 더 이상 내 주변의 일을 나 몰라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어머니 빨리 수술해 드려! 그래야 너도 군 생활에 집중하지.”

“네, 알겠습니다.”

“좋아, 일단 지호, 넌 내일 바쁘지?”

“예. 일과가 조금 빠듯합니다.”

“알았어. 희철아.”

“이병 김희철!”

“너, 내일 태곤이랑 우체국가서 돈 이체하고 와.”

“네, 알겠습니다.”

다음날, 오전 김희철 이병과 이태곤 일병이 사단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태곤 일병 동생에게 돈을 송금해 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사단 우체국으로 가서 돈을 송금했다.

오상진이 휴대폰까지 빌려줘 이태곤 일병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대대로 돌아오는 길에 김희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태곤 일병님.”

“왜?”

“잘 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어머니 수술 받으실 테고 모든 것이 잘될 겁니다.”

“그래······.”

이태곤 일병은 여전히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힘내시지 말입니다.”

“어쨌든 고맙다. 이렇게 모금도 해줘서 말이야.”

“에이, 당연히 도와야지 말입니다. 저희가 모금한 것은 얼마 안 됩니다. 나머지는 전부 오 하사님이 내신 겁니다.”

“오 하사님이?”

이태곤 일병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오 하사님이 돈이 좀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마 이태곤 일병님 사정 듣고 흔쾌히 도움을 주신 것 같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최근 오 하사님께서 우리들에게 잘해주시는 것 말입니다.”

“알고는 있는데······. 왜 잘해주시지?”

“오 하사님의 말씀으로는 항상 저희들을 보면 동생 같다고 말하십니다. 힘든 것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가시겠다고 그랬습니다. 저도 처음에 오 하사님께서 잘해주실 때 살짝 의심했지 말입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거 생각 안 합니다. 그냥 오 하사님이 좋은 의미로 저에게 잘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말입니다.”

“그러냐?”

“네. 그래서 저는 나중에 제대하면 제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 하사님께 은혜 갚을 겁니다. 반드시.”

김희철 이병의 다짐하듯 말했다. 이태곤 일병도 그 말을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그래······. 잊어선 안 될 빚이지.’


그 다음날 이태곤 일병이 오상진을 찾아갔다.

“오 하사님.”

“어, 왜? 무슨 일 있어?”

“잠시 얘기 좀 나누시지 말입니다.”

“얘기? 말해!”

“어제 희철이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뭘 그걸 가지고······. 그보다 어머니 수술은?”

“조금 전에 전화했더니 수술 잘 끝났다고 합니다.”

“잘 됐네. 그리고 어머니께 꼭 전해드려. 퇴원 너무 서두르지 마시라고. 서두르다가 또 허리 다치시면 돈이 두 배, 세 배 더 들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그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처음에는 일찍 퇴원하시려고 하셨는데 군대에서 신경 써서 보내준 돈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확실하게 치료 후 일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병원 생활도 잘 버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잘 됐네.”

오상진은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태곤 일병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간부로서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태곤 일병은 오상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오 하사님. 저에게 혹시 따로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이태곤 일병의 질문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내가 너에게 따로 원하는 것이 뭐가 있겠냐? 그냥 군 생활 열심히 해. 그럼 된다.”

“아니, 혹시나 전에 말씀하셨던 사격······.”

이태곤 일병은 매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주위에 누가 없는지 확인도 하였다.

“됐어, 인마! 그땐 그냥 물어본 거야.”

“제가 사격장 관리하는 건 맞습니다. 게다가 전 본부중대 소속도 맞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존심 때문이라도 그런 걸로 장난치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오 하사님.”

“태곤아, 다른 의도로 널 도와준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리고 인마, 너 나 그런 사람으로 봤냐? 서운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그래. 그래.”

오상진이 괜찮다며 이태곤 일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이태곤 일병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짜식이 고집은 세가지고는. 태곤아.”

“일병 이태곤.”

“정 그러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부······ 탁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 신념은 확실히 알았으니까 그걸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자.”

“말씀해 주십쇼.”

“있잖아. 그 민감한 사로 1, 2, 3중대가 알아, 몰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녀석들 그걸로 점수 잘 따먹고 있지?”

“네. 잘 따먹습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난 그 사로가 어떤 건지 전혀 관심 없어. 알고 싶지도 않고.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야.”

오상진이 피식 웃으면서 이태곤 일병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다 들은 이태곤 일병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난 그거면 돼. 그 정돈 해줄 수 있지?”

“네. 당연합니다.”

“됐어, 그럼 부탁할게.”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태곤 일병이 사격장으로 뛰어갔다.

오상진은 미소 띤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 그럼 오늘도 사격하러 가볼까?”


오상진이 중대원들을 인솔하여 다시 사격장에 왔다.

“조금 있으면 우리 차례다. 긴장하고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출발 전에 일러줬던 곳만 노려.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어.”

그때 김지호 상병이 손을 들었다.

“상병 김지호, 질문 있습니다.”

“뭔데?”

“정말 그곳만 노리면 되는 겁니까?”

김지호 상병은 정말 불안했다. 왜냐하면 오상진이 알려 준 곳은 그냥 정석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100사로는 가늠자를 약간 땅 쪽으로 향해 쏘고, 200사로는 정확하게 가슴을 조준하고, 250사로는 머리 부위를 조준하라고 했다.

본래 이 조준법이 정석이었다. 자신들도 그렇게 쏘아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연습하면 꼭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너무나 자신 있게 말을 해서 놀랄 정도였다.

“맞아. 그렇게만 쏴.”

“원래부터 그렇게 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쏴야지. 그래서 내가 기본만 쏘라고 하는 거 아니야.”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넌 날 믿고 그렇게 쏘면 돼.”

“그래도······.”

김지호 상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철승 일병이 말했다.

“김 상병님, 뭘 그리 걱정 하십니까. 그냥 오 하사님이 쏘라는 데로 쏘면 되지 말입니다.”

이철승 일병은 거의 오상진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쏜다고 해도 믿을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완벽한 오상진 신봉자였다.

그때 1소대장이 소리쳤다.

“다음, 본부중대!”

“우리 차례다. 잘하고 와라.”

“넵!”

중대원들이 사격장에 들어갔고 1중대장의 통제 하에 사격을 시작했다.

탕탕탕!

결과는 역시 매우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오상진의 표정을 매우 밝았다.

“잘했어. 잘했어. 계속 그렇게만 쏴!”

“진담이십니까?”

“그렇다니까? 아무튼 내일도 모레도 마찬가지야. 너희는 항상 그곳만 노려. 무슨 일이 있어도.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본부중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1, 2, 3중대들은 그런 본부중대를 보며 웃었다.

“꼴찌는 확실히 정해졌네.”

그리고 격전의 날이 밝아왔다.


사격장에는 각 중대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중대장은 곧장 사격통제소로 올라가고, 다른 중대장들은 자신들의 중대원들 앞에 서 있었다. 본부중대장인 김현태 대위도 사격장에 나왔다.

“오 하사, 정말 괜찮은 거지?”

“지켜보시지 말입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김현태 중대장은 불안했다.

지난 3일간 들어온 연습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이 상태로는 꼴찌는 맡아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상진은 괜찮다며, 자신이 의도한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오상진을 보면 불안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지켜보자!’

김현태 중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1중대부터 사격이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1중대장이 양옆 사로에 있는 중대원들을 보았다.

“좌측 사로 이상 무?”

“이상 무!”

“우측 사로 이상 무?”

“이상 무!”

“준비된 사로로부터 사격 시작!”

전진무의탁 자세를 취하고 있던 중대원들이 사로에서 타깃이 올라오자 재빠른 동작으로 자세를 잡고 사격을 시작했다.

탕! 타타타타탕!

그런데 지켜보던 1중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제대로 넘어가는 타깃이 거의 없었다.

“이 녀석들이 긴장했나?”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한 발 한 발 총성이 울릴 때마다 표정이 굳어갔다.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하나!”

1중대장은 지금 믿기지 않은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연습 때는 잘만 넘기던 타깃을 실전에서는 제대로 맞히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것은 총을 쏘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왜 이러지? 분명히 잘 조준했는데······.”

탕!

“뭐야? 왜 안 넘어가?”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자 호흡마저 흐트러졌다.

그렇게 1중대는 20발의 사격이 끝이 났다.

1중대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노리쇠 후퇴 전진 삼 회!”

“노리쇠 후퇴 전진 삼 회!”

“격발!”

“격발!”

틱, 티티티티틱!

“이상 무!”

“노리쇠 후퇴 고정!”

“노리쇠 후퇴 고정!”

“약실 확인!”

“약실 확인! 이상 무!”

“총 어깨 위에 거!”

“총 어깨 위에 거!”

“퇴장!”

“퇴장!”

1중대원들이 나갔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좋지 않았다.

2중대, 3중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최고로 잘 나온 점수가 15발이었다.

김현태 본부중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옆에 있던 오상진이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아니, 저 녀석들 컨디션이 안 좋나? 왜 이렇게 못 쏘지?”

“못 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쏘고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쏘고 있다고? 지금 장난해? 타깃이 거의 안 넘어가잖아.”

“그건 습관 때문입니다.”

“습관?”

“네,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1, 2, 3중대 녀석들은 사격장에 몇 사로가 민감하고, 어딜 쏴야 넘어가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격 성적이 좋았던 겁니다. 연습할 때도 항상 그곳만 노리고 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않지 말입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김현태 본부중대장이 호기심 얼굴로 물었다.

오상진은 웃으며 말했다.

“실은 전에 태곤이에게 부탁 하나를 했습니다.”

“부탁? 뭔 부탁?”

“오늘 사격이 있기 전, 그 민감한 사로를 다 고쳐서 정상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말입니다.”

“뭐어?”

김현태 본부중대장의 눈이 커졌다.

오상진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정석대로 쏘지 않으면 타깃이 넘어가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원래 그것이 정상이지 말입니다. 아마 1, 2, 3중대는 연습했던 대로 엉뚱한 곳으로 노리고 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넘어가지 않지 말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 중대는?”

“후후, 우리 중대는 지난 연습동안 정석대로 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습 결과가 좋지 않았군.”

“그 성과가 오늘 나올 것입니다. 지켜보시지 말입니다. 아마 다른 중대장님들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오상진이 히죽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사이 본부중대원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탕탕탕!

역시 오상진이 예상했던 대로 1중대장을 비롯해 2중대장, 3중대장들도 놀랐다.

“뭐, 뭐야 저 녀석들······.”

그리고 20발을 다 쏜 본부중대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있었다.

오상진이 그들을 맞이했다.

“어때?”

“완전 대박입니다. 저 연습 때보다 5발은 더 맞혔습니다.”

“전 7발 더 맞혔습니다.”

“전 오늘 사격해서 처음으로 18발을 맞혔습니다.”

김지호 상병은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모두들 연습했던 때보다 더 잘나왔다.

오상진이 김희철 이병에게 갔다.

“넌 몇 발 맞혔어?”

“전······.”

김희철 이병이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이철승 일병이 대신 답해주었다.

“희철이 만발 맞췄습니다. 만발! 이 녀석 사격 신동이지 말입니다.”

“정말이냐?”

오상진이 놀라며 물었다.

김희철 이병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잘했다, 인마!”

오상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김희철 이병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본부중대원들은 모두 15발 이상씩 맞혔다.

그 결과 충성부대 사격 대결은 본부중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진짜, 이게 말이 돼? 우리가? 대박이다!”

“우오오오오! 우리가 다른 중대를 이겼어!”

“이제 우리들 사무실에 앉아 총도 못 쏜다고 무시 못 하겠지 말입니다.”

본부중대원들은 기쁨에 포효했다.

반면 그들을 지켜보는 다른 중대원들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한편 1중대장은 다짜고짜 이태곤 일병에게 가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뭔 짓을 한 거야!”

“뭐가 말입니까?”

이태곤 일병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전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이 녀석이······.”

1중대장이 눈을 부라리며 뭐라고 한마디 하려 했다.

그때 오상진이 나타났다.

“1중대장님.”

“뭐야?”

“대대장님께서 태곤이 찾는데 말입니다.”

대대장이라는 말에 1중대장은 아무 말도 못 했다.

1중대장은 이태곤을 날카롭게 째려보며 말했다.

“너 나중에 보자.”

그 길로 자신들의 중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오상진이 이태곤 일병에게 갔다.

“싹 수리했더라.”

“원래 그랬어야 했습니다.”

“잘했다. 당분간 1중대장에게 시달리겠는데, 괜찮냐?”

“상관없습니다.”

이태곤 일병은 아주 시크하게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1중대장 오면 나에게 말해. 내가 다 막아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태곤 일병이 씨익 웃었다.

“어? 너도 웃을 줄 아냐?”

오상진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김현태 본부중대장은 입술이 찢어질 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당당히 사격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본부중대원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늘 고생했다. 저녁은 중대 회식이다!”

“와아아아아아!”

“좋았어!”

본부중대원들이 기뻐했다.

김현태 중대장은 오상진에게 말했다.

“역시 자넬 믿고 있었다니까. 잘했어. 정말 잘했어. 자네가 중대장의 위신을 살려줬어.”

“과찬입니다. 저야, 뭐 할 일이 있습니까. 다, 중대원들이 잘해서 됐지 말입니다.”

“그래, 그래. 아무튼 애들 데리고 가고, 저녁에 회식 준비해 줘. 푸짐하게 알지?”

“그건 걱정 마시지 말입니다. 제가 확실히 준비해 놓겠습니다.”

“알았어. 가봐. 난 다른 중대장들 얼굴 좀 보고 갈게.”

“네, 알겠습니다. 충성!”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 중대원들을 데리고 갔다.

김현태 본부중대장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다른 중대장에게 다가갔다.


그날 저녁.

본부중대는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당연히 삼겹살일 것이라 생각했던 메뉴는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소고기였다.

“우와! 내가 군대에서 소고기를 다 먹다니.”

“이거 진짜 소고기야? 진짜?”

“미국산인가? 이거 국산 한우 아니겠지?”

“야, 한우가 얼만데 한우를 주겠어.”

중대원들이 놀란 얼굴로 다들 소란스러울 때 중대장과 통신소대장이 들어왔다. 김현태 중대장은 뿌듯한 얼굴로 들어왔다.

“다 준비 됐어?”

“예! 준비 끝났습니다!”

오상진이 말했다. 김현태 중대장이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자, 다들 맛나게 먹어라!”

“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중대원들이 신난 표정으로 불판에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중대장과 통신소대장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그 옆에 오상진도 함께했다.

차려진 상을 보고 김현태 중대장이 말했다.

“미안해, 오 하사. 내가 쏴야 하는데······.”

“아닙니다, 중대장님. 그보다 아직 갚으실 돈이······.”

“어험······.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고생해 줘. 내 오늘 일 절대 잊지 않을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대장님께서 이 자리에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말입니다.”

“역시 우리 오 하사! 이래서 내가 우리 오 하사를 좋아한다니까.”

김현태 중대장은 오상진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었다. 양손 엄지손가락까지 추켜세웠다.

“그보다 원금 삭감은 안 되냐?”

그 물음에 오상진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제가 힘이······.”

오상진은 정말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그냥 해본 말이야. 이자를 낮춰준 것만 해도 고맙지.”

“그리 생각해 주시니 역시 중대장님의 마음은 정말 넓습니다.”

“좋아.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도 없었어. 내가 중대장이 되고 난 후 최고야. 다른 중대장들에게도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게 되었어. 이 모든 것이 다 오 하사 덕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 하사, 건배사 한번 하지.”

김현태 중대장의 말에 통신소대장도 곁들였다.

“그러게. 오 하사가 고생이 많았네.”

통신소대장은 말을 하면서도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곧바로 캐치한 오상진이 말했다.

“참, 중대장님. 통신소대장님이 이번 일에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지 말입니다.”

“그래? 통신소대장 정말 그랬나?”

“그렇습니다. 회의를 위해 통신과도 빌려주시고 말입니다. 병사들 사격 훈련하는 것도 배려해 주시고 말입니다. 이것저것 신경도 많이 써주셨지 말입니다.”

“오오, 그럼 통신소대장이 건배사 해봐.”

김현태 중대장의 말에 통신소대장이 일어났다.

그때 오상진이 한마디 했다.

“자, 다들 주목! 우리에게 아낌없는 지원해 주신 우리 통신소대장님께 박수!”

짝짝짝짝짝!

통신소대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아니, 또 뭘 이런 걸 가지고. 아무튼 오늘 사격 1등한 거 축하하고, 우리 본부중대 파이팅!”

“파이팅!”

비록 술이 아니고, 음료수지만 그 어느때보다 달았다.

오상진이 일어나 말했다.

“얘들아, 많이 있으니까 마음껏 먹어라! 참고로, 이거 한우다!”

“오오오오! 저, 정녕 한우입니까?”

“어쩐지 입에서 살살 녹더라니.”

“내가 군에서 한우를 먹다니. 믿기지가 않아.”

모두들 놀라워하며 젓가락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사이에 이태곤 일병이 오상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중대 회식이 끝이 나고, 모두들 정리를 했다.

김현태 중대장도 퇴근을 하고, 통신소대장도 퇴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갔다.

“소대장님, 통신소대장님.”

오상진이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제가 깜빡 잊고 전해드리지 못한 것이 있지 말입니다.”

“뭔데?”

오상진이 품에서 양주 박스를 하나 꺼냈다.

“발렌타인 31년산입니다. 지난번 보다 좀 더 키워서 데리고 왔지 말입니다.”

“써······ 써티원?”

“저보다 형입니다.”

“오오오오!”

통신소대장은 감격에 겨워하며 31살짜리 양주를 두 손으로 고이 받았다.

“아니, 어찌 이런 것을······.”

“제가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지 말입니다.”

“자꾸 이러면 나 정말······ 오 하사 좋아서 어떻게 해!”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었다. 통신소대장은 뭔가 결심한 듯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안 되겠다. 상진아, 너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예?”

“둘이 있을 땐 형이라고 불러! 넌 그럴 자격 있어!”

“정말입니까?”

“그래, 이 녀석아!”

그렇게 오상진은 31살짜리 양주로 통신소대장과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07. 해피니스 캐피탈



1


다음 날 토요일 오후.

오상진은 퇴근 전 본부중대원들과 오랜만에 축구를 하려고 했다.

“모처럼 공 한번 찰까?”

“좋지 말입니다.”

본부중대원들 모두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활동화를 신고서 연병장으로 나갔다. 오상진 역시 추리닝 차림으로 연병장에 섰다.

그 뒤에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나타나는 강우식이 있었다.

“우식아, 넌 축구 안 해?”

“전 축구 싫어하지 말입니다.”

“그래서 안 한다고?”

“네, 안 합니다.”

“그래라, 그럼!”

오상진은 쿨하게 대답하고 연병장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에요, 대표님.

“어? 유미 씨가 어쩐 일이세요?”

-축구 재미있으세요?

“어? 내가 축구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죠.

휴대폰 너머 정 이사가 웃었다.

오상진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이곳에 왔나 해서였다. 하지만 정 이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혹시 내일 시간 있으세요?

“내일요? 네, 있어요.”

-그럼 내일 뵙도록 해요. 제가 부대 앞으로 가겠어요.

“부대로 오신다고요? 아니, 무슨 일로요?”

-이제 슬슬 사업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부대 적응도 끝내신 것 같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보죠.”

-네.

그렇게 휴대폰을 끊었다. 그리고 축구 시합을 하고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나도 같이하자!”

그때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바로 강우식이었다.

“내일 부대 밖으로 나간다 말이지?”

강우식이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황급히 사라졌다.


정 이사가 부대 앞에 도착을 했을 때는 오전 10시 정도였다. 오상진은 그녀가 타고 온 스포츠카를 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약 30분간 달렸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얘기를 하려면 조용한 곳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조용한 곳······.”

오상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 얘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없는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또다시 10여 분을 달리자 한적한 시골 펜션촌이 눈에 들어왔다.

‘페, 펜션촌?’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펜션을 잡았나? 그것도 나랑 단둘이?’

오상진은 속으로 깜짝 놀라며 정 이사를 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상진의 생각과 달리 정 이사는 펜션촌 안에 있는 허브농장으로 향했다.

허브농장 안에 예쁜 찻집이 있었다.

“여기에요. 여긴 허브차가 맛있거든요. 조용하기도 하고요.”

“아, 네에······.”

오상진이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왜요? 싫으세요?”

“아, 아닙니다. 저도 이런 곳을 좋아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들어가요.”

정 이사가 먼저 들어가고, 뒷 따라 오상진이 들어갔다. 찻집 내부는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허브향이 강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그 중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 이사가 차를 주문했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가 나오고, 두 사람은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알싸한 허브향이 입 안을 맴돌았다. 찻잔을 내려놓은 정 이사가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우선 이것부터 확인하세요.”

“이게 뭐죠?”

“그동안 제가 작정한 사업계획안이에요. 우선 쭉 읽어보세요.”

오상진이 서류를 꺼내 확인했다. 처음에는 그냥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읽다보니 해피니스 캐피탈의 구조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상진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서류를 다 읽은 오상진이 천천히 입을 뗐다.

“이제 보니 해피니스 캐피탈은 제 회사가 아니었군요.”

“아뇨, 대표님 회사는 맞습니다.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정도의 지분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온전히 제 회사가 되려면 지분을 지금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겠네요.”

“지금도 충분하지만 그 편이 해피니스 캐피탈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그럼 유미 씨가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 지분을 더 사 버리면 안 될까요?”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 사람들이 지분을 쉽게 내놓지 않거든요. 아니, 전혀 팔 생각이 없을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많은 배당금이 나오는데 이런 노다지를 놓칠 이유가 없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해피니스 캐피탈을 이용해 깔끔하게 자금세탁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쉽지 않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정확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 어느 정도예요?”

“대표님께서 가지고 계신 지분이 50% 정도 되시고요. 중도우호 지분이 10% 정도입니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40% 정도 됩니다.”

“그럼 중도우호 지분 10%가 만약에 저쪽으로 넘어가면 위험하겠네요.”

“그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중도우호 지분 10%는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들도 쉽게 적대적 M&A는 시도할 수 없어요.”

“그건 왜 그렇죠?”

“제가 대표님 옆에 있으니까요.”

“네?”

정 이사의 도발적인 멘트에 순간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정 이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께서 절 선택하셨잖아요. 그걸로 해피니스 캐피탈 경영권 방어는 할 수 있어요.”

“아, 그렇다는 것은 중도우호 지분에 유미 씨 지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뇨, 대표님께서 사장님의 업을 선택하시면서 저에게 있던 지분이 모두 대표님에게 넘어갔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50퍼센트 정도입니다. 다만 제가 대표님 옆에 있는 이상 저쪽에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걸 알려드리는 거예요. 저쪽은 제가 사장님의 업을 물려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아, 그렇군요.”

“아무튼 계속 말씀을 드리면, 우호지분을 가진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이에요. 현재까지 해피니스 캐피탈이 돈을 잘 벌고 있는데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의 싸움이에요. 그들은 그걸 원치 않아요. 해피니스 캐피탈이 공중분해가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죠. 그래서 지금 이 상태의 불편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그럼 그들을 어떻게 포섭해야 할까요? 돈으로?”

“어차피 그들 역시 많은 돈을 쥐고 있거든요. 게다가 밀어낼 수도 없어요. 10퍼센트 지분을 차지한 그들에게도 나름의 세력이 있으니까요. 그 10퍼센트 지분 때문에 전쟁을 벌이다 여차하면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그냥 이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고요.”

정 이사가 말을 했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오상진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죠?”

“사장님께서는 가급적이면 저쪽에 배당을 주는 식으로 경영했어요. 워낙에 사장님께서 일을 잘하셨기 때문에 그쪽 역시 큰 불만이 없었고요. 그런데 1년 전부터 그들이 경영권을 원하기 시작했어요. 지분으로 안 되니까 힘으로 위협하고 애꿎은 사장님 주변을 들쑤시기도 했고요.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그것 때문에 사장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요.”

정 이사가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정작 오상진은 눈 앞의 정 이사가 더 걱정되었다.

“유미 씨도 지금 힘든 거 아니에요?”

왜냐하면 지금 해피니스 캐피탈을 실질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 이사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제 걱정하시는 거예요?”

“다, 당연히 걱정되죠!”

“어머나, 기분 좋아라.”

정 이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사장님하고 일하는 동안 저도 이골이 났어요. 그리고 그 정도로 약한 여자는 아니에요.”

“아, 강한 여자셨군요.”

“왜요? 부드러운 여자를 좋아하시나 보죠?”

“아, 아뇨······.”

오상진이 당황하며 손 사레를 쳤다. 그러자 정 이사가 빙긋 웃었다.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랍니다.”

“아, 예에······.”

오상진이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라고 생각했다.

정 이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해결할 문제고요. 현재 해피니스 캐피탈의 구조는 이렇다는 것을 먼저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오상진이 서류를 내려놓고 낮게 한숨을 내셨다.

“하아, 갈 길이 머네요. 해피니스 캐피탈이 온전히 제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요.”

그 말에 정 이사가 깜짝 놀랐다.

“어? 포부가 크시네요. 해피니스 캐피탈은 대한민국 지하세계의 거대 공룡이에요. 아직까지 해피니스 캐피탈을 온전히 장악한 사람은 없어요. 창업주이신 회장님도 못 하셨고 사장님도 실패하셨어요. 그걸 대표님께서 하신다니 갑자기 존경스러워지는데요?”

“어? 얘,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설마 그냥 해보신 말은 아니죠?”

“아니요. 할아버지가 만드시고 어머니가 키우신 회사잖아요. 그렇다면 저도 꿈을 크게 꿔야죠.”

오상진의 진심에 정 이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이 남자······ 제법 멋진데?’

그러기를 잠깐 정 이사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좋아요, 그 말이 진심이라면 지금처럼 있으시면 안 돼요. 힘을 키우셔야 해요. 그런데 그 힘을 저를 통해서 키우실 생각이라면 일찍 감치 포기하세요. 아시다시피 제가 하는 모든 것은 상대편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아니, 제가 그럴 기미가 조금만 보여도 그쪽이 먼저 움직일 거예요. 그래서 전 대표님이 군대에 계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군대 안에서 뭘 하시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숨길 수 있으니까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오상진의 당찬 대답을 듣고 정 이사 역시 기분이 좋았다. 정 이사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그때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어?”

차 문이 열리고 5명의 사내가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내렸다. 정 이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뭐죠? 저 사람들은?”

정 이사의 중얼거림을 듣고 오상진의 시선 역시 바깥으로 향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네요. 혹시 상대편 조직 아닐까요?”

“잠시 만요.”

정 이사는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 부장님 지금 뭐하세요? 주변 관리 안 하세요?”

[죄,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가는 중입니다.]

정 이사가 휴대폰을 끊을 때쯤에 가게 안으로 그 녀석들이 들어왔다. 녀석들은 곧바로 오상진 앞으로 향했다.

“당신이 오상진이야?”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선두에 있던 사내가 힐끔 정 이사를 바라보았다. 예쁜 정 이사를 보고 사내가 히죽 웃었다.

“어이, 이쁜 아가씨랑 데이트하나 봐. 옆에 펜션은 미리 잡아 뒀어? 오늘 뜨거운 시간을 보내려면 필요할 텐데 말이야.”

사내가 노골적으로 집적거렸다. 순간 정 이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상진이 당황하며 정 이사를 바라봤다. 정 이사의 성격이라면 마시고 있던 찻물을 뿌려서라도 무례한 상대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작 정 이사는 얼굴이 붉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정 이사의 반응이 재미있었던지 사내가 오상진을 내버려 두고 정 이사에게 바짝 다가갔다.

“어이, 아가씨! 방에 들어가 계시쇼! 정 안 되면 우리 중 한 명 보내 줄 테니까. 이 녀석들도 나름 힘 좀 쓰거든!”

“킥킥킥!”

“에이, 형님. 하루 종일도 가능합니다.”

“저런 미인이라면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해 보겠습니다.”

“이거 아랫도리가 불끈거리는데요.”

사내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 지금 뭐하는 거죠? 여기가 어디라고 떠드시는 거예요.”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정 이사가 특유의 뾰족한 말투로 맞섰다. 하지만 이미 정 이사의 약한 모습을 봐서인지 사내들은 코웃음만 쳤다.

“옴마! 이 아가씨 앙칼진 목소리 좀 보소! 이봐, 아가씨. 눈매를 보아하니, 어디서 좀 노셨쇼?”

“좋은 말할 때 그냥 물러나세요. 다치시기 전에.”

“아이고, 무서워라. 이 아가씨가 세게 나오시네.”

“형님, 딱 제 스타일입니다. 저한테 넘겨주시죠!”

“짜식이.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거야.”

그때 밖에서 검은색 대형세단 다섯 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차 안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나와, 트렁크를 열고 야구방망이와 나무 막대기를 하나씩 챙겨 들었다.

“뭐, 뭐야?

사내가 당황하며 놀라고 있을 때 이 부장을 선두로 십여 명의 사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오상진과 정 이사를 보호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정 이사가 이 부장을 보고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부장이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두 분 오붓하게 데이트하시라고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이사님. 그런데 이 녀석들은 누굽니까?”

“그걸 지금 저한테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 부장이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다섯 명의 사내는 자신들을 둘러싼 압도적인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다.

“너, 너희들 뭐야?”

“그건 알거 없고, 피 보고 따라올래, 아니면 그냥 따라올래?”

이 부장의 아우라에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 그냥 따라가겠습니다.”

그러자 이 부장이 씨익 웃었다.

“새끼,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아네.”

이 부장은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간 후 얼마 있지 않아 사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30여분이 흐른 후 이 부장이 다시 들어왔다.

30여 분이 흐른 후 이 부장이 다시 들어왔다.

“흠, 빅보스파 애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걔네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 시간에 우릴 칠 생각은 못 하죠. 또한 이 부장님이 계시는데 제 동선이 노출될 리도 없고요. 안 그런가요?”

정 이사는 날카롭게 말했다.

이 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부장은 정 이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게다가 저쪽과의 시선도 차단시켜 줘야 했다.

정 이사가 편하게 활동하고, 누구를 만나는지도 철저히 숨기는 것이 이 부장의 역할이었다. 그런 일이 좀처럼 쉽지는 않지만 이 부장은 여태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왔었다.

“죄송합니다.”

이 부장이 곧바로 사과했다.

“이번 한 번은 없던 일로 할 테니 앞으로 경호에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누구예요?”

정 이사의 물음에 이 부장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오상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점점 표정을 굳혔다.

“또 강우식입니까?”

이 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 새끼를 진짜!”

“아무래도 그 집안이 좀 사는 모양입니다. 저런 양아치까지 돈으로 구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대체 그 녀석 아버지가 뭘 하신데요?”

“성화건설이라고 건축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주로 대형 건설업한테 하도급을 받아 운영하는 곳인데 그래서 자신들과 연결된 놈들한테 부탁을 한 모양입니다.”

“그런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저희 대표님을 노리다니, 어이가 없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저희 선에서 처리할까요?”

이 부장이 오상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 이사의 시선도 오상진에게 향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이 좋은 기회를 이 부장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아니요, 아무도 나서지 마세요.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빠득 이를 갈았다.

‘강우식 이 새끼. 들어가서 보자!’


오상진은 정 이사와 헤어지고, 자신의 관사로 가지 않았다. 곧장 충성대대로 향했는데 현재 충성대대는 일요일 오후의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상진이 대대본부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강우식이 어디 있어! 강우식!”

갑작스런 오상진의 등장에 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충성!”

김지호 상병이 경례를 했다.

“우식이는?”

“점심 먹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생활관을 나갔다. 복도에서 이철승 일병을 만났다.

“철승아.”

“충성! 안 그래도 오 하사님을 부를까 고민했지 말입니다.”

“왜?”

“강 상병이······.”

오상진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어디냐?”

“창고에 있지 말입니다.”

오상진이 재빨리 대대건물을 빠져나가 뒤쪽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


그 시각 강우식 상병은 오랜만에 김희철 이병과 단 둘이 창고에서 면담(?)을 가졌다.

“야, 김희철.”

“이병, 김희철.”

“그동안 참 편했다. 오 하사 그 개새끼가 뒤 봐주니 말이야. 똥꼬는 얼마나 빨았냐? 어?”

“······.”

“어쭈, 새끼가. 이제 대답도 하기 싫다 이거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주 기고만장해하며 같이 다니더라. 새끼야, 난 말이야. 니 그 얼굴이 싫어. 오 하사 그 새끼와 웃고 떠드는 네 얼굴이 말이야. 알아!”

강우식 상병은 잔뜩 인상을 쓰며 손가락으로 김희철 이병의 이마를 툭툭 밀었다.

김희철 이병은 인상을 굳힌 채 담담히 모든 것을 받아냈다. 강우식 상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 오 하사 그 새끼 기다리지?”

“아닙니다.”

“백날 기다려 봐라. 그 새끼가 올 수 있을지.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 그 사람들 그런 일 전문으로 하거든.”

강우식 상병의 말에 김희철 이병의 눈이 커졌다.

“바,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못 들었냐? 오 하사 그 시발 놈! 다시는 여기 못 온다고!”

그 순간 김희철 이병이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오 하사님께 무슨 짓을 하셨냐 말입니다!”

김희철 이병의 큰 소리에 강우식 상병이 눈을 부라렸다.

“이 새끼 봐라?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쳐! 너 죽고 싶어?”

“네, 죽여보시지 말입니다. 도대체 오 하사님을 어떻게 했냐 말입니다!”

김희철 이병이 눈을 부라리며 대들었다.

이에 강우식 상병 역시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이 새끼가 미쳤나!”

“오 하사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김희철 이병 역시 강하게 밀어붙였다.

강우식 상병은 어이없어 했다.

“야, 저리 안 꺼져?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나!”

그러면서 다리를 들어 김희철 이병의 배를 강하게 밀었다.

“윽!”

김희철 이병은 단말의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가 철제 다이에 쿵 하고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인해 철제 선반 위에 있던 나무 상자 하나가 김희철 이병 위로 떨어졌다.

떵!

“으윽······.”

김희철 이병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하지만 강우식은 김희철 이병이 엄살을 부리는 거라 여겼다.

“이 새끼 봐라? 얼른 안 일어나지?”

“······.”

“야! 김희철이! 빨리 일어 나, 이 새끼야!”

그때 창고 문이 벌컥 하고 열리며 오상진이 나타났다.

“야, 강우식!”

“헉!”

순간 강우식 상병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희철아. 희철아!”

그사이 오상진은 쓰러진 김희철 이병에게 다가와 머리를 받쳐 들었다. 그러다 뒤통수에서 뜨거운 뭔가가 흘러나오는 걸 느끼고는 강우식 상병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 이 새끼! 희철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내가 그런 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강우식 상병이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오 하사,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창고로 뒤늦게 연락을 받은 김현태 중대장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강우식 상병의 얼굴은 더욱더 사색이 되었다.

“희철이잖아? 뭐, 뭐야. 피야? 오 하사! 희철이 왜 그래?”

김현태 중대장 역시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김희철 이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강우식이가 희철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선은 희철이를 의무대로 데리고 가야 할 듯합니다. 머리에서 피가 멈추질 않습니다.”

“뭐? 강우식이가?”

김현태 중대장이 무서운 눈빛으로 강우식 상병을 쳐다봤다.

강우식 상병은 잔뜩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김희철 이병이 눈을 천천히 떴다.

“······오 하사님?”

그 순간 오상진이 김희철 이병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김희철 이병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중대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뗐다.

“의무대로 가서 치료받자.”

“중대장님 지금 당장 치료가 시급합니다. 게다가 주말이라 의무장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잔 말이야.”

“외부병원에서 치료하는 걸로 하시지 말입니다.”

“그건······.”

김현태 중대장이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병사가 외부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 하물며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중대장님께서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소문나지 않게 잘 처리하겠습니다.”

오상진은 중대장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걱정을 없애주겠다고 해도 김현태 중대장은 쉽사리 승낙할 수가 없었다.

“중대장님! 이렇게 시간을 지체했다가 더 큰일 날 수 있습니다.”

김현태 중대장의 시선이 김희철 이병에게 향했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 알겠다. 절대 소문나지 않게 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내 차로 가! 수시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김현태 중대장의 차 키를 받아들고, 김희철 이병을 부축했다. 주자창으로 가서 김희철 이병을 뒷좌석에 앉히고, 오상진은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정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혹시 우리 부대 근처에 아는 병원 있어요?”

-있긴 한데······ 무슨 일이죠.

오상진은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부상이 심각해요?

“머리 쪽에서 피가 나긴 하는데 다행히 의식은 있어요.

-잠시만요.

정 이사는 뭔가를 찾더니 곧바로 답해주었다.

-한 곳이 있네요. 실력 있는 의사니까 걱정 없을 거예요. 일단 문자로 주소를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그쪽에는 제가 미리 전화 넣어 놓겠어요.

“고마워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문자가 오고 오상진은 네비게이션을 찍었다.

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차로 약 30여 분만 가면 되는 곳이었다.

“희철아, 괜찮냐?”

오상진이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며 물었다. 김희철 이병이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참아. 금방 병원에 도착하니까.”

“네.”

김희철 이병은 대답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김대성 정형외과에 도착한 오상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혹시 오상진 씨 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원장님께 연락 받았어요. 지금 바로 MRI 촬영하겠습니다.”

간호사들은 대기하고 있던 이동 침대에 김희철 이병을 눕혔다. 그리고 신속하게 MRI 촬영장으로 데리고 갔다.

약 1시간이 흐른 후 오상진은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희철 이병은 우선 병실을 배정 받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김대성이 먼저 인사를 했다. 말끔하게 생겼고, 꽤 잘생긴 젊은 의사였다.

“일단 머리에 찢어진 부분은 꿰맸고요. MRI 촬영을 한 결과 특별한 내, 외상은 안 보입니다. 다만 약간 어지러움증이나 두통은 올 수 있어요.”

“진짜 별 이상은 없는 거죠?”

“네. 큰 이상은 없어요. 다만 꿰맨 부분에 흉터가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원장실을 나와 김희철 이병이 있는 병실로 갔다. 김희철 이병이 눈을 뜬 채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 예······.”

김희철 이병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냐, 됐어. 그냥 누워 있어.”

오상진은 의자를 가져와 옆에 앉았다.

“어쩌다 그런 거야?”

“그게······ 제가 좀 흥분을 했습니다.”

“네가?”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김희철 이병이 흥분했다는 말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네. ······강우식 상병이 저한테 그러는 것이라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 상병이 오 하사님을 꼭 어떻게 한 것처럼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랬냐? 자식, 너도 흥분할 줄 알고 말이야. 잘 컸네.”

“아닙니다. 그런데 오 하사님은 괜찮으십니까?”

“나야 보다시피.”

오상진이 두 팔을 벌려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김희철 이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이 김희철 이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걱정 말고 넌 푹 쉬어라. 아무튼 이참에 강우식 이놈을 그냥······. 군 생활 완전 꼬이게 만들어야겠어.”

오상진이 이를 빠득 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대장님께 보고하고 올 테니까. 얌전히 수액 맞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병실을 나가고 김희철 이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상진이 돌아왔으니 이제 안심하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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