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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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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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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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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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 공학자는 옛 일을 떠올린다

DUMMY

"네가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망상 같은 이야기니까. 마왕 토벌 이후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혈석에 대해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겠지.


최근에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가 용사 일행을 노렸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아. 오히려 개인적으론 그 혈석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군. 그런 게 진짜로 있는 거야?"


그리니언은 테이트의 질문에 대답하고는 하쉬를 향해 물었다.


"인간이 먹으면 불로불사가 된다는 사실은 저도 처음 듣지만, 즉위식에서 전대 마왕의 혈석을 넘겨받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가장 강한 마족이 마왕에게 혈석을 넘겨받는 것으로 새로운 마왕이 된다.' 마족들 사이에선 꽤나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니까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마족들은 힘과 관련된 것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러니 혈석의 건도 틀림없겠죠. 다만, 저도 즉위식에 참석한 적은 없으니 혈석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해지는지는 모르겠군요"


하쉬의 말을 들은 테이트는 머릿속으로 '진짜로 마족이었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조사한 내용을 공유하기 전 그리니언으로부터 하쉬가 마족이라는 언질을 받긴 했지만, 내심 장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테이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가설을 세워보죠. 마왕을 죽인 용사 일행은 혈석을 보관하던 도중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범인에게 살해당했다. 범인은 혈석을 가지고 서쪽 평원으로 도주했고, 그 사실을 눈치챈 강경파 마족들은 새로운 마왕을 세우기 위해 범인과 혈석을 찾고 있다.


음... 얼핏 보기엔 말이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혈석의 진위여부는 잠시 미뤄두더라도 강경파 마족들이 찾는 것이 정말로 혈석인지부터 미심쩍군요. 애초에 마왕이 죽은 지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새로운 마왕을 세우려고 한다는 점도 이상하지만, 혈석을 찾기 위해 서쪽 평원을 수색한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니까요.


끼워 맞추기 위해 혈석의 소유자인 용사 일행을 죽인 범인이 서쪽 평원으로 도주했다고 했지만 그런 편리한 우연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겠죠.


게다가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혈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용사 일행이어야 하는데, 그 용사들은 가짜였습니다. 혈석이 실존한다면 가짜 용사가 아니라 진짜로 마왕을 죽인 사람에게 있겠죠. 소문이라곤 하지만 불로불사를 얻게 되는 물건을 남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만약 강경파 마족들이 찾는 것이 진짜 혈석이라면 마왕을 죽인 '진짜'가 서쪽 평원에 숨어있고, 강경파 마족들이 그 꼬리를 드디어 잡아 수색 중이다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강경파 마족의 서쪽 평원 수색과 용사 일행의 죽음은 별개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테이트의 가설을 듣던 그리니언은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강경파 녀석들과 용사 일행의 죽음은 별개일지 몰라도 혈석 자체가 용사 일행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겠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대외적으로 마왕을 죽인 것은 용사 일행이니까. 혈석 같은 이야기를 믿는 황당한 녀석이라면 혈석의 행방을 찾기 위해 일부러 세 사람이 한 곳에 모일 때를 노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잖아?"


침대에 누운 그리니언을 바라보던 하쉬와 테이트는 각자 자신들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테이트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무례한 꼬마 용병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정보를 공유할수록 뭔가 미심쩍은 부분만 늘어나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한편 하쉬는 혈석의 존재를 알고 있을 만한 용의자를 생각해보는 중이었다.


'마족들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라는 이야기니까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지만, 인간들 중에서 혈석에 대해 알고 있을 만한 건 제국의 수뇌들이나 마왕 토벌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 아니면 특수경찰 정도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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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럼은 허술하게 걸려있는 자물쇠를 총으로 쏴 부수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탓에 이웃들도 고개만 갸웃거릴 뿐 위병을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클린트의 대장간은 4년 동안 영업을 했던 것에 비해 꽤나 단출했다.


"쯧. 용병 놈들은 잘도 이런 대장간에 칼을 맡기는군."


용병들의 직업정신에 대해 혀를 찬 레드럼은 구석에 놓인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내뱉은 레드럼은 4년 전, 루브린 관문 앞에서 클린트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레드럼이 아직 붉은 공학자라고 불리기 전. 매개를 구하기 위해 무턱대고 서쪽 평원으로 가던 레드럼은 관문 앞에서 병사들에게 끌려 나오는 클린트를 발견했다. 뭔가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레드럼이 병사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병사는 한숨을 쉬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주정책이 시작된 후 많은 부랑자들이나 신원 미상자들이 루브린에 오긴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용병단에 입단하는 형식으로 최소한의 신원을 보장받았다. 수도에 루브린 이주정책의 실적을 보고해야 하는 병사들 사이에선 그 정도 꼼수는 눈을 감아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클린트는 용병단 가입 제의도 거절하고 이름을 제외하곤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조차 말하지 않다가 결국 끌려 나온 것이었다. 병사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레드럼은 클린트에게 다가가 자신이 신원을 보장해 줄 테니 대신 루브린에 대장간을 하나 만들 수 있냐고 제안했다.


클린트는 레드럼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레드럼은 유명 귀족의 보증서에 클린트의 이름을 써 병사에게 건네주고는 관문을 통과했다. 클린트는 신원을 보장받아 루브린에 정착했지만, 레드럼은 그 이후 한동안 클린트를 찾아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붉은 공학자의 처형이 불발된 직후였다. 클린트는 갑작스레 찾아온 레드럼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불쏘시개로 땅에 글씨를 썼다.


'대장간 안은 감시당하고 있으니 말을 가려서 하시오.'


클린트가 쓴 글을 본 레드럼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아닌 건가? 피해망상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만! 이런 시골 대장간에 감시는 무슨!"


클린트는 큰 소리로 말하는 레드럼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레드럼은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 정신이 이상하든 말든 알바 아니군. 어쨌든 영감은 내 덕에 루브린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앞으로 종종 도움을 받으러 오겠소! "


당당하게 선언하는 레드럼을 바라보던 클린트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뭔가?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레드럼 로렙므. 공학자요. 딱히 영감한테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걸 만드려면 대장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거든. 앞으로 종종 신세 좀 집시다. 영감."


레드럼은 담배를 땅에 던져 밟아 끄고, 과거의 기억을 털어냈다.


"드디어 보은을 좀 받아볼까 하는 참에 부재중이라니!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둬봐야 소용이... 음.. 그 영감의 경우엔 머리 하얀 노인이겠군! 아무튼 소용이 없다니까!"


그렇게 한참을 궁시렁거리던 레드럼은 주머니에 있는 카키의 반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반지를 바라보는 눈빛은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찼던 평상시와 조금 달랐다.


'신성 마법과 용언이라... 이걸로 그 녀석을 죽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한쪽에 올려두고 레드럼은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상대는 불사자니까.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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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1화 - 공작은 마공작의 안위를 걱정한다 20.04.16 34 2 7쪽
80 80화 - 용병은 뒤늦게 알아차린다 20.04.14 44 1 7쪽
79 79화 - 마족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20.04.13 41 2 7쪽
78 78화 - 가명은 대개 유치한 것들이 많다 +1 20.04.11 46 2 6쪽
77 77화 - 경찰은 수사자료를 넘긴다 20.04.08 51 2 5쪽
76 76화 - 그는 나지막이 말한다 +1 20.04.07 67 1 8쪽
75 75화 - 대장장이는 버릇처럼 수사한다 20.03.31 69 2 7쪽
74 74화 -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20.03.30 59 2 7쪽
73 73화 - 그들은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난다 20.03.27 62 1 7쪽
72 72화 - 용병은 마왕을 떠올리며 전율한다 +1 20.03.24 62 2 7쪽
71 71화 - 철마는 어둠을 뚫고 달린다 20.03.23 123 2 7쪽
70 70화 - 공학자는 간단한 사실에 감탄한다 20.03.20 60 2 8쪽
69 69화 -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1 20.03.18 76 2 6쪽
68 68화 - 용의자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20.03.17 72 3 7쪽
67 67화 - 마족은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20.03.16 67 5 7쪽
66 66화 - 여관주인의 방 문은 거칠게 열린다 +1 20.03.13 86 2 8쪽
65 65화 - 배신자는 애써 외면했다 20.03.12 160 3 7쪽
64 64화 - 용병단의 아지트는 2층 가정집이다 20.03.11 64 3 8쪽
63 63화 - 여관주인은 옛 지인과 조우한다 +1 20.03.09 100 4 8쪽
62 62화 - 마녀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2 20.03.06 83 3 8쪽
61 61화 - 소식지는 대개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있다 20.03.05 85 3 8쪽
60 60화 - 범죄자는 최신 기술에 감탄한다 +1 20.03.03 79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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