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인데 다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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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ra
작품등록일 :
2019.11.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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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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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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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인데 다 죽임 4화

DUMMY

파이트 리그의 이름이 그러한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능력을 지닌 각성자든 신체와 기예를 단련하여 투쟁한다.

주먹이든 냉병기든 피 튀기는 싸움이 있기에 파이터라 불렸다.

지금 보니 기본적인 전제부터 고쳐야 했다.


“솔직히 정말로 기본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황당한 쪽으로 빗나가네요.”


몸으로 싸우는 행위 자체는 여전히 중요하겠지.

비유하자면 장르가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AOS 요소가 가미된 격투 스포츠였다면 지금은 AOS 그 자체.

격투든 능력이든 팀의 승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개인 기량으로 리그 평균을 웃돌면 웃돌았지 절대로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그게 사실일 것 같아서 고민하는 중이에요.”


실은 어느 정도 암시된 일이었다.

재활 교관이 폼이 완전히 죽은 자신더러 리그를 씹어먹을 거라 평가한 이유.

몸으로 싸우는 것만큼이나 치유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면 성립하는 이야기다.

치유를 겸비한 ‘파이터’가 아니라, 근접전도 잘하는 ‘힐러’로 봤다면 말이 된다.


‘안 그러면 근육도 부실한 아가씨랑 고딩 얼라가 어떻게 파이터를 하겠어.’


뭘 하든 몸부터 부딪히는 것이 기본 전제였던 과거.

그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메타가 도래했다.

5년이나 지났으니 변할 거라 예상했지만 아예 다른 장르가 될 줄은.

상정 외의 상황에 두뇌를 풀가동한다.


“계약 조건을 다시 써야겠네요.”

“저희 클럽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건 알겠지만, 이우신 님 기준에는 어떤 클럽도 맞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뇨. 그 얘기가 아니라요. 제가 너무 5년 전 기준으로만 생각했네요.”


돈이 필요 없다고 해도 정당한 대우는 받아야 한다.

메타가 달라졌으니 곤란하다고? 오히려 반대다.

실전 감각이 바닥임을 감안하여 일부러 계약 조건을 낮춘 것인데.

싸움 실력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면 자신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클럽에 힐러 있어요?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없습니다만, 인원 구성의 문제로 루키 리그에서 전담 힐러를 쓰는 곳은 없습니다.”

“제가 힐러 역할도 같이 맡을 수 있거든요. 이러면 조건 다시 쓸 만 하죠?”

“그런 능력이 있다고는 전혀······.”


그야 파이터로만 어필할 생각이었으니까.

많이 떨떠름한지 단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말을 흐린다.

능력을 여러 개 지닌 각성자가 무척 드물기는 하다.


“말로 해도 실감이 안 되실 것 같고 바로 보여 드릴게요. 저기 팔 다친 파이터분 불러와 주실래요?”


훈련을 마치고 부상으로 끙끙대는 파이터들이 보였다.

팀 닥터에게 보내기 전에 상처가 눈에 띄는 한 명을 불러왔다.

체격이 부실한, 고등학생 또래로 보였던 남자애다.

옷 왼쪽은 전부 흰색, 오른쪽은 검은색인 독특한 패션을 하고 있다.

저런데도 훈련장에 있는 파이터들 중에서는 수수한 편이라 더 놀랍다.


“도훈아. 팔 내밀고 이분께 한번 치료 받아 봐라.”

“어! 새로운 팀 닥터세요? 푸흐흐, 되게 떡대가 좋으신데.”


얼굴을 봐도 신규 채용된 스태프인 줄 안다.

5년 전에 은퇴했으니 못 알아봐도 이상할 것 없다.

그런 것치곤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고딩이면 모를 만하다.

지금과 메타도 전혀 다르니 교육 영상으로도 접하지 못했을 거다.


“치료할 테니 잘 보세요.”

‘그는 우리 생명을 보존하시고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신다.’


따스한 햇살이 경건하게 느껴지고 은총 서린 빛가루가 상처에 내려앉는다.

모든 천사가 탄생과 함께 허락받는 권능. 치유의 증명이 이루어졌다.

천사였을 때와 동일하게 타인에게도 회복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상처는 아물고 피부는 깨끗해지며 피가 다시 돌기 시작한다.


“우와 개쩔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낫지? 흉터도 없네. 단장님, 어떻게 이런 분을 모셨어요? 이런 인맥이 있었으면 진작 쓰셨어야죠!”

“모신 게 아니라 찾아오신 거다. 그리고 팀 닥터 아니라 입단 예정인 파이터시고.”

“파이터? 이 능력으로? 상상도 못했네. 저야 좋기는 한데 대학병원에서도 엎드려서 모셔갈 것 같은데요. 전에 설대병원에서 저희 엄마 수술하고 나서 힐러가 상처 봉합해 놓은 것도 봤는데 막 수술자국 남고 그러던데요. 혹시 회복 횟수 제한이라도 있으세요? 아니면 부작용이······”


어려서 그런지 초면인 사람을 두고 할 말도 참 많다.

단장이 수다를 적당히 끊고 훈련장으로 돌려보냈다.


“보여 주신 치유 능력은 다른 일반적 치유 능력과 다른 특수한 제한이 있습니까?”

“전혀요.”

“그렇다면 인정합니다. 이우신 님의 가치를 잘못 계산했습니다. 기존 안에서 계약금과 보장 주급을 50% 이상 높이는 방침을 기본으로 하겠습니다.”


기존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한다.

치유까지 본 단장은 눈이 뒤집혀 절대로 그를 놓치지 않을 마음뿐이었다.

걱정 안 해도 이곳이 그의 요구에 가장 부합한다.


“어쨌거나 클럽에 입단하는 건 나쁘지 않아요. 대신 제대로 대우를 못 받으면 그만큼 덜 열심히 하겠죠.”

“이해했습니다. 그럼 협상은 내일 이어서 하더라도, 지금부터 예비 팀원으로 소개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려고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서 스태프와 소속 파이터들 전원을 모아 인사를 나눴다.

이쪽이 부천 디펜더즈를 통해 리그로 복귀하겠다고 하니 다들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사실 인사라기엔 다소 민망한 자리였다.

팀원들의 반응이 각별했기 때문이다.


단장 : 두 유 노 이우신?

팀원 : 와우! 코리안 수퍼스타! 아이 러브 우신 리!


소개식은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아까 팔 치료받은 고딩도 얼굴을 몰랐을 뿐 이름은 익히 들었다고 했다.

팬들뿐 아니라 현역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기억되고 있으니 뿌듯했다.

소개식은 그대로 훈훈하게 끝날 뻔했다.


“그래 봤자 퇴물 아니여?”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는.


근육이 불룩하고 대검을 든, 30대로 보이는 검사가 그렇게 주절였다.

작게 읊조리는 소리였지만 귀에 선명히 박혔다.

일부러 조용할 때 말했으니 다들 똑똑히 들었다.

주의가 끌렸음을 알고 목소리가 한층 기세등등해진다.


“맞잖어. 현역 생활 2년도 못 하고 은퇴한 사람이잖어. 이제 와서 돌아온들 뭐가 있겠어? 왕년 팬들 모아서 입장권 팔이나 하려는 거 아니냐고.”

“아재. 아까도 말했는데 저분 치유 능력이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힐러 출전시키는 팀이 리그에 있어?”


고딩이 나서서 감싸려 하지만 씨도 안 먹힌다.

검사가 딴에는 합리적으로 논박한다.


“힐만 잘한다고 1인분이 가능한 것도 아니지. 팀에 부담밖에 더 돼? 그리고 복귀한다는 말도 마뜩찮어. 몇 년이 지났는데 이제 나았으니 복귀한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지 않어? 몸이 성한지도 의문인데, 예전 파이터랑 지금 파이터가 같냐 이거지.”

“제가 건강한 척 사기라도 친다고 생각하세요? 현역으로 뛸 상태가 아니라고?”


저 검사가 왜 저렇게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짐작이 가긴 하는데 어차피 납득할 마음도 없다.

인성 말아먹은 파이터가 한둘도 아닌데 일일이 논해 봐야 지친다.

좋은 주먹 두고 말로 할 이유가 없다.


“단장 님. 저 분이랑 대련 잠깐 해도 될까요?”

“지금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계약 조건에 있었잖아요. 팀원들이 수준 미달이면 서명 안 한다고.”

“아, 그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겠지만 틀렸다.

여기 아니어도 괜찮은 클럽은 있다.

개인적인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긴 한데 다른 선택지도 있다.

단장은 반박하지 못하고 대련을 허락한다.


‘요즘 파이터들이 다 저렇지는 않겠지? 설마.’


업계 선배에 대한 공경. 동료 사이에서의 배려. 타인에 대한 예의.

다 필요 없는데 최소한 사람답게만 굴었으면 좋겠다.

훈련장 안에 1대1 대련용 세팅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치유 능력 안 쓸 테니 제대로 덤벼 보세요.”

“충고하는데 어디 크게 부러져도 난 모르는 일이여?”

“요즘 파이터는 입으로 딜해요? 몰랐네.”


보호용 아티팩트를 차고 주먹을 쥔다.

5년 전에 쓰던 보호구보다 훨씬 편안한 착용감이 몸을 감싼다.

깡통 따위와 연습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실전에 가까운 그리운 감각이 몸 한구석을 간지럽힌다.


“퇴물이 기세만 살아서는!”


검사는 전신에서 황금빛 기운을 분출하며 격앙했다.

단순한 신체강화와는 다른 종합적 자기강화 계열의 능력.

탐색전 따위 버리고 과감히 그를 노리며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탄탄한 움직임에 초인적인 빠르기로. 육중한 대검이 도끼처럼 내려찍힌다.


쏴아악!


내리꽂히는 궤적이 작은 회피로 틀어진다.

대검이 묵직한 바람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른다.

예상했다는 듯 기민하게 칼을 회수하고 다시 겨누는 공수 전환.

겉보기에는 완벽하지만 빈틈이 드러난다.


‘칼 겨눈다고 못 들어갈 줄 아나?’


내리친 대검을 회수하는 허릿심은 준수하다.

허나 앞뒤로 힘을 준 반동으로 균형에 약간 균열이 생긴 상태.

견제하듯 내밀어진 검을 무시하며 무심하게 간격 안으로 진입한다.

균열이 커지며 자세가 비틀리는 게 보인다.


툭!


반쯤 무너진 자세로 나온 검격은 유효타가 되지 못한다.

어깨로 빗겨 받으면서 손목을 비튼다.

챙그랑 소리가 나도록 칼을 떨어뜨린다.

검사가 검을 놓쳤으니 이견 없이 패배.


고작 1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 어어? 누나, 뭘 어떻게 한 건지 봤어요?”

“네가 본 거랑 똑같아. 방법은 알겠는데 판단 근거랑 타이밍은 짐작도 안 돼······!”

“전성기 끝난 거 아니었어? 수준 차이가 이렇게 나?”

“아재가 근접전 하나는 알아주는데 진짜 말도 안 되네.”


외야에서 뭐라 뭐라 떠드는 것 같은데 관심 밖이다.


‘이건 싸움도 아니야.’


그저 예상 이상으로 시시했다.

루키 리그라고 해도 투쟁의 최전선에 선 현역 싸움꾼들.

그래야 하는데 움직임에서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난다.

검사가 떨어진 검을 망연히 쳐다보고 있다.


“납득이 안 되세요? 제가 더 납득이 안 돼요.”

“······.”

“대검을 들었으면 상대를 죽일 마음으로 일격에 걸든가. 천천히 간 보면서 한방 들어가길 바랄 거면 무기를 바꿔야죠.”


대검을 찍고 바로 회수하여 겨눌 힘이 있다.

그렇다면 한손검에 방패를 드는 편이 본인 성향에 어울린다.

그저 파괴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더 무거운 무기를 들 힘이 있어서.

그래서 대검을 들고 싸우는 건 싸움을 우습게 보는 짓이다.


‘하지만 이게 당연한 시대라 이거지.’


목숨 걸 줄 모르는 이들이 파이터를 하는 시대.

무대 위에서 싸움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시대.

가장 합리적으로 선수들을 도구로 삼아 팀의 승리를 쟁취한다.

게임이라면 백번 맞지만 뭔가 중요한 게 빠졌다.


팬들이 자신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이제 알았다.

승리를 위해 치밀하게 이득을 계산하고 누적하는 현재의 리그.

분명 재밌겠지만 동시에 과거의 투박하고 거친 싸움이 그리워진다.


‘팬들이 지닌 로망을 자극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우신 자신이라면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다.

루키 리그를 씹어먹을 거라 평가했다면 그대로 해 준다.

한물 간 과거의 망령이 현재의 싸움터에 되살아나게 한다.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은 힐러가 아니라 싸움꾼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명성을 쌓는 길.

천사로서의 선업을 쌓을 길이라는 걸 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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