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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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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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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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9화

DUMMY

(79편)


고등학생.

이 평범한 단어, 평범한 집단은 특수한 상황과 어우러졌을 때 가장 상대하기 싫은 대상으로 바뀌어버린다.

바로 일반 성인이 이들과 시비가 붙은 상황이다.

흔히들 조폭이나 양아치가 더 무섭지 않냐고들 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는 소리.

일반 성인의 입장에서는 미성년자인 이들과의 시비가 왠만한 조폭들 과의 다툼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었다.

애초에 일반인이 조폭과 시비가 붙을 일도 거의 없겠지만, 일단 시비가 붙게 되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냥 몇 대 맞아주기만 하면 꽤나 괜찮은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생과의 시비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시비가 붙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고등학생들을 힘으로 제압해버렸다가는 금전적 손실과 함께 전과 기록이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고 져버렸다가는 그야말로 고등학생한테도 못이기는 모자란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체면이든 물질이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손해 보는 것이 바로 고등학생과의 시비였다.

그래서 성인 대부분은 고등학생과의 다툼을 적극적으로 피했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득보다는 손해가 압도적으로 높은 다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만 가복과 일학년들이 그 무시무시한 고등학생들과 시비가 붙고 말았다.


“야, 니들 고등학교 몇학년들이야?!”

재빨리 머리를 굴린 강성근이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혹여나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유급생이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성인이 끼어있다면 성인 대 성인의 시비로 몰고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녀석들은 성근의 계산을 간파했다.

“글쎄, 그냥 너보다는 좀 어려. 니 동생보다도 어릴걸?”

낯짝 상태로 봐서는 성근과 오십보백보인 녀석들이 자기들이 어리다는 걸 강조했다.

기가 차서 혀를 차는 성근을 보며 고등학생 중 한 녀석이 일어나서 옆으로 나왔다. 건들거리며 나오는 행동거지에서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지는 녀석이었다.

대장같은 포스를 풍기며 나온 녀석이 삐딱한 자세로 서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좀 조용히 처먹지. 왜 이 동생님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형놈 주제에 그렇게 시끄럽게 나불거리냐고. 병신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생이라걸 강조하면서도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는 녀석의 행태에 성근의 꼭지가 살짝 돌아버렸다. 성근이 역시 고등학생 때, 나름 잘 나갔었기에 불의를 참지 못하고서 거친 동작으로 의자를 밀쳤다.

쿠당탕.

“성근아, 하지마!”

“하지마, 참아!”

대식이를 비롯한 주변의 여학우들이 손을 뻗어 말리려 했지만, 가끔 왕년에 권투를 좀 했었노라고 자랑질 하던 성근이 답게 거침없이 그 손길들을 뿌리치고, 튀어 나갔다. 그리고 마주 나와 있는 고등학생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간 성근은 녀석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챘다.

“이 쪼꼬만 것들이 미쳤나?! 야, 뒤질래?”

멱살을 잡힌 고등학생이 갑자기 멱살 잡힌 부분을 손으로 감싸며 컥컥거렸다.

“아, 아파. 멱살을 잡으면서 주먹으로 목을 치네. 아야, 너무 아프잖아요.”

고등학생의 엄살에 어리둥절했지만, 살짝 술이 된 성근은 사고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게, 어린 것들아. 조용히 술이나 처먹을 것이지.”

이제야 이놈의 고삐리가 동생다워졌다고 생각한 성근이 으르렁거리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멱살 잡힌 녀석이 크게 말했다.

“그렇지? 분명히 니가 먼저 친 거지?”

그러면서 녀석이 제 멱살을 잡은 성근의 손을 손가락질하면서 어딘가를 쳐다봤다. 그 행동을 놓치지 않은 병태가 녀석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보니 천장에 달린 조그마한 CCTV가 보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가복과의 여학우들이나 고등학생들 무리의 몇 명이 스마트폰을 꺼내 둘의 다툼상황을 열심히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멱살 잡힌 녀석이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느물거렸다.

“일단 그쪽이 먼저 손을 댔으니 정당방위는 성립한거지?”

“뭐, 정당방위? 그래. 학교에서 주먹질 좀 하나 보지? 정당방위도 성립되었겠다, 이제 치겠다? 무섭네, 이 새끼. 무섭다고. 응?”

뒷말을 하며 성근이 고삐리 녀석의 머리 통을 몇차례 두들겼다. 가뜩이나 남자다운 인상이던 성근이 벌개진 얼굴로 화를 내자,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멀리 떨어진 병태가 보기에도 살벌한 분위기였다. 마치 사부님 같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사부님에 비하면 저놈들의 분노는 그저 갓난아기들의 짜증 정도에 불과해.’

아무리 위협적인 척 해봤자, 무심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머리통이나 사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발기고, 위협만으로 공간 자체를 얼려버리는 사부님의 분노에 비하면 큰 손색이 있었다.

역시 성근의 위협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을까, 성근이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멱살을 잡혀 있던 고등학생이 갑자기 성근의 면상을 향해 번개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취기 탓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서 단 한방에 얼굴을 제대로 격중당한 성근은 나무통처럼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고, 일격을 성공시킨 녀석이 쓰러지는 성근을 쫓아가며 주먹을 두세 번 더 휘둘렀다.

“꺄악!!”

“역시 근호다!!”

여학우들의 비명과 고삐리들의 환호가 동시에 튀어나온 가운데, 급히 대식이와 다른 남학우 한 명이 뛰쳐나가 성근이를 보호하려했지만, 동시에 튀어나온 남자 고삐리들 무리에 의해 행동을 저지당했다.

고등학생이라지만 이미 다 커버린 남자 여섯이 둘러서자, 대식과 다른 남학우, 박정우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쪽수에서 형편 없이 밀려버리자, 대식과 정우의 기세가 빠르게 사그러들었다.

“왜, 형님들도 처 맞고 싶어?”

어느새 성근을 마구 패버렸던 근호라는 녀석이 제 무리들 사이를 비집고 대식과 정우 앞으로 나왔다.

손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남자들이 침만 삼킬뿐 아무말도 못하는데, 여대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야, 너네들. 아무 못돼 처먹었구나!”

이지수의 발언에 고등학생들이 히죽거리며 웃어댔다.

“웃어? 신고하고서도 그렇게 웃나 보자!”

지수를 비롯한 몇몇 여대생이 따지는 동안, 한 여학우가 폰을 들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네, 경찰서죠? 여기..”

“어짜피 폭력은 그쪽이 먼저 시작했으니 정당방위인데다가, 우리는 고삐린데? 괜찮겠어, 신고해도?”

“우리는 기껏해야 훈방일텐데, 그쪽은 어찌 되실지 모르겠네. 어짜피 쌍방폭행이라서 말이야.”

“신고 같은건 그만 두고 그냥 우리한테 용서를 구하면 우리가 용서해줄게. 몇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말이야.”

고삐리들의 발언에 이은 근호의 마지막 말에 경찰과 통화하려던 여학우가 폰을 슬그머니 내렸다. 역시나 신고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 모습에 그 녀석이 능글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일단 다들 폰카는 껐으면 좋겠는데?”

번들거리는 녀석의 눈동자에 여기저기 들려 있던 폰 들이 모두 내려졌다. 고등학생에 불과한 주제에 녀석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다들 은연중에 근호의 말에 따라 행동을 제약당하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터라 남자들이 뛰쳐나갈 때 미처 같이 달려나가지 못했던 병태는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중고시절부터 대학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를 괴롭혀대던 성근을 한방에 잠들게 한 것 하며, 비록 쪽수에서 밀렸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대학생인 가복과의 남자 둘의 행동을 제약했던 건 고등학생들 무리가 아니라 바로 저 한 놈이었다.

녀석이 조건을 말했다.

“뭐 별건 아니고, 보시다시피 우리 쪽에 여자가 너무 부족하거든. 그쪽 누님들이 우리랑 조금만 같이 놀아주면 될 거 같은데.”

“워, 근호야. 그건 좀.”

“역시 미친놈답다, 이게 근호지!”

“대학생 누님들이니까 아무래도 손맛이 더 있겠지?”

가복과에서 반응하기도 전에 고삐리들끼리 먼저 환호를 질러댔다. 말리는 듯한 목소리도 정말로 말리려는 건 아니었다.

“야, 니네. 우리들로 부족해?”

고등학생 무리에 있던 여고생 세 명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쫑알거렸지만, 남학생들은 연신 여대생들의 몸을 훑어보기 바빴다.

가복과의 일학년들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고등학생들의 하는 짓거리가 조폭, 양아치들보다 더할 수가 있는 건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폭력 앞에 이미 한번 기가 눌린 대학생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항변 한마디 하지 못했다.

아까 경찰에 신고하려다 말았던 여학우가 다시 폰을 들어 보려고 했지만, 이미 한번 마음이 꺾여서 그런지 재시도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이, 이게 고등학생이야?’

앞쪽으로 나섰던 이지수는 그녀를 훝어보는 고등학생들의 시선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작년만 해도 그녀 역시 고등학생이었던 지수는 일 년 새에 너무나도 달라진 고등학생들의 분위기에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다들 그렇게 긴장으로 굳어가는 가운데, 정작 병태만이 홀로 자유로웠다. 초중고 12년간 일진들의 괴롭힘을 받아왔던 그였기에 더 굳었으면 굳었지, 절대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을 그였지만, 지난 약 두 달 간의 천마와의 동행은 그를 극적으로 변화시켜 버렸다.

‘이야,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이런 폭력은 이제 게임에서나 볼 수 있을거 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세상은 여전하구나.’

병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씩 학우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병태는 문득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나, 왜 도망가지 않는거지? 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싸지 않는거지? 왜 하나도 안 무섭지?’

십수 년 간 폭력적인 상황만 벌어졌다하면 잔뜩 웅크리고서 그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왔던 그였기에, 아무런 두려움도 공포도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아니, 마음속에 차오르는 이 기분은 사실 설렘에 가까웠다.

‘마음이 설레? 이 상황이?’

앞으로 나온 병태를 돌아보며 대식이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야, 변태. 니가 왜 나와? 뒤로 꺼져. 옛날처럼 대가리 붙들고 처박혀 있으라고!”

대식은 저기 서 있는 고삐리한테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병태에게는 여전히 강자인척 했다.

하지만 병태는 그런 대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폭력만이 이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상황. 이것은 그에게 있어 더도 덜도 아닌 시온에서 몬스터를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혹은 사부님과의 대련 상황이기도 했다. 폭력은 외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피해가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병태로서는 지난 두어 달 간 무던히도 겪어왔던 상황이었다.

병태가 상대할 것은 눈앞의 폭력적인 생명체, 그러니까 고등학생처럼 생긴 일종의 몹이었다. 물론 현실과 게임을 분간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이놈은 경험치를 얼마나 주지 말입니까?”

병태가 이 상황을 게임처럼 인식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광개토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뭐라는거야, 이 어리버리한 형님은? 미친..!”

근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비꼬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순식간에 날아온 병태의 주먹이 이미 그의 얼굴 옆을 지나 기둥을 강타해버린 것이었다.

쾅!

“..놈 아냐? 으헉!”

단언컨대 근호가 평생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엄청난 주먹질이었다. 그저 주먹이 옆으로 살짝 지나갔을 뿐인데도, 오른쪽 뺨에 가득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화들짝 놀란 근호는 옆으로 풀쩍 뛰며 재빨리 두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포즈만 취했을 뿐 천천히 주먹을 거둬들이는 병태에게 감히 덤벼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와..저거..저거 좀 봐.”

“헐, 대박!”

병태가 때린 기둥을 본 고등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궁금해진 근호는 파이팅 포즈를 풀지 않은채로 슬그머니 걸음을 옮겨 기둥을 쳐다보았다.

“헉!!”

근호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그의 입에서는 참을 수 없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믿을 수 없게도 벽기둥에는 대략 2센티미터의 깊이로 선명하게 주먹모양의 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놔, 역시 이상하네. 내 몸이 내 것 같지가 않지 말입니다.”

병태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가볍게 녀석의 어깨를 만져주려고 했는데, 의도와 다르게 팔이 뜨는 바람에 어깨를 지나쳐 기둥을 치고 말았다.

이런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병태가 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때려줄게.”

“아닙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느새 두 팔을 내린 근호가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어디 조직에 몸담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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