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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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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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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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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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7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87화




동굴 오크의 소굴로 혼자 들어선 광개토는 곧 난관에 부딪혔다.

“이 오크 새끼들은 조명이 필요 없나 보지? 그 흔한 횃불 하나 없잖아.”

어두운 동굴 길을 양손으로 더듬어가며 전진하던 광개토는 ‘동굴 오크 녀석들은 혹시 심해어처럼 두 눈이 퇴화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두 눈을 감고 다니는 게 낫겠어.’

이 생각을 떠올린 순간 광개토는 스스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말았다.

‘그렇게 하면 되잖아!’

이미 지난 삼 주간 맹인 흉내를 내며 지냈던 광개토였다. 항상 쓰던 천을 꺼내 두 눈을 질끈 묶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리하게 날이 선 감각이 천천히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쿵-

예고 없이 튀어나온 바위덩이에 머리를 부딪힌 광개토가 억지로 비명을 참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이~ 씨발!!’

바람이 없으니 공기의 움직임이 적고, 그러다 보니 가만히 있는 지형지물 같은 경우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일어선 광개토는 이번에는 팔을 머리 높이로 들고, 혹시나 생겨날 충돌 사고에 대비했다. 그렇게 광개토는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깊숙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제자놈이 위험하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천마가 갑자기 한마디 툭 내뱉자, 일행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개토가 위험하다고, 정말?”

역시나 생긴 것 답지 않게 슬기가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무자비해 보이는 외모로 저렇게 걱정하는 모습이라니, 빌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떻게 위험한데? 안 도와줘도 돼?”슬기의 질문에 천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험하군, 위험해. 참으로 위험하도다...저런 식으로 하다간 저녁을 못 먹을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본좌가 도와줘야겠느니라.”

천마는 진지했다. 제자 놈의 굼벵이같이 느려터진 행동 때문에 일행이, 특히 자신이 저녁을 못 먹는다? 그에게 이건 정말 심각한 위기였다.

말을 마친 천마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동굴 속으로 날아들어 간 것이다. 빌은 궁수로 단련된 시각 덕분에 겨우 그 움직임의 잔상을 쫓아갈 수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저런 속도와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천마는 언제나 그랬듯 일직선을 선호했다.

쿠콰콰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일직선으로 벽을 뚫으며 전진한 천마는 순식간에 광개토 앞에 이르렀다.

애써 기도비닉(조용히 들키지 않게 움직임)을 유지하던 광개토는 그딴 거 개나 줘버리라는 듯한 천마의 요란한 움직임에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어헉, 사부님!! 너무 소리가 큽니다!!”

하지만 그건 정확하게 천마가 의도한 바였다.

“이 놈이 수련을 하랬더니, 어디서 숨바꼭질 같은 장난질을 하고 있느냐. 냉큼 뛰어 들어가지 못할까?”

그리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광개토에게 천마가 조건을 걸었다.

“앞으로 세 시간 안에 여길 청소하지 못한다면, 네 녀석에게 오늘 저녁은 없다. 네놈만 저녁이 없고, 우리는 저녁을 먹겠다는 말이니라.”

제자의 느려터진 행동에 자신의 식사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천마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아..빨리 진행하라고 오신 거였습니까?”

“그리고 이 말도 하려고 왔지.”

천마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그려졌다. 언젠가부터 천마에게 생겨난 변화였다.

살짝 심호흡을 한 천마가 갑자기 동굴 안쪽을 향해 천둥 같은 큰 소리로 외쳤다.

“힘내라, 제자놈아!!”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천마는 왔던 길로 쌩하니 사라져버렸다.

“이..뭐..(병)”

홀로 남아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광개토의 뒤로 오크들의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낱같은 천마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광개토의 귓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중요한 말을 빠뜨렸구나. 네 놈의 신체는 지금 진원기와 천마기가 겨우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로 자칫 죽었다가는 그 균형을 깨질지도 모를 일이니라. 그러니 절.대.로.죽.으.면.안.된.다, 제자놈아.

천마의 전음에 광개토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죽지 말라면서 죽을 상황을 만들어주는 사부였다.

그런 와중에도 오크들의 괴성과 발소리들이 점점 다가왔다. 광개토는 자신의 기구한 신세를 한탄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


동굴에서 오크들의 괴성이 은은하게 울려 나온지도 몇 십 분이 흘렀다.

천마가 팔짱 낀 자세로 미동도 없이 서 있는데, 슬기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랑 꼬맹이는 저녁거리나 구하러 가볼게.”

그렇게 실리엔의 손을 잡은 슬기가 빌을 쳐다봤다.

“빌씨는 어떡할래요? 우리 아저씨하고 단둘이 있을래요?”

빌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무시무시한 인간과 단둘이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천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있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 자는 생각보다 생각이 없었고, 생각 이상으로 폭력적인 기질이 다분했다.

‘그래, 먼저 주변인들에게서 정보를 얻자.’

빌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한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이래뵈도 사냥에 도가 튼 사람이거든, 내가. 한 번 믿어줘!”

발걸음을 떼려는 슬기와 실리엔 곁으로 빌이 냉큼 따라 붙었다. 곧 그들은 동굴 앞에 천마 혼자 남겨두고 그곳을 벗어났다.

빌이 허리춤에 걸려있던 활을 꺼내들자, 접혀 있던 활대가 펼쳐지며 그럴듯한 활의 형상이 갖추어졌다. 허리춤에 걸린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낸 빌이 활대에 활을 걸며 슬기와 실리엔에게 물었다.

“내가 오면서 보니까 말이지. 이 근방 몹들 레벨이 대략 200대 이상이던데, 단 둘이 다녀도 괜찮아? 우리 일행들은 레벨이 어느 정도지?”

물으면서 빌이 슬그머니 파티창의 정보를 띄웠다.


등 급

이름

계열

LEVEL

파티장:

슬기

???

Lv. ???

파티원:

천마

???

Lv. ???


광개토

???

Lv. ???


실리엔

???

Lv. ???

객 원:

빌헬름 텔

???

Lv. ???



빌이 볼 수 있는 파티창의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슬기가 그에게 ‘손님’의 자격으로 파티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정작 궁금한 정보들은 모두 ???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빌은 아쉬운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일단 객원 멤버로나마 일행에 합류하였으니 특유의 친화력을 잘 살려낸다면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정식으로 일행 대접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이 주변 몹들 상대할 정도는 돼요. 여차하면 아저씨 부르면 되고.”

슬기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자 빌은 조금 전에 봤던 천마의 무시무시한 이동 속도를 떠올렸다.

‘귓말로 부르면 금방 달려오긴 하겠네.’

“빌씨는 레벨이 어마어마하시네요? 321렙이면 하이 랭커 아닌가요?”

파티창을 살펴본 슬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등 급

이름

계열

LEVEL

파티장:

슬기

전사-오행의 권사

Lv. 251

파티원:

천마

천마

Lv. 999


광개토

사제-천마의 종

Lv. 152


실리엔

뱀파이어-엘더

Lv. 300

객 원:

빌헬름 텔

궁수-유성우의 인도자

Lv. 321



슬기는 파티장이라서 빌이 공개 허용한 만큼의 정보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빌 또한 일행의 호감을 사기 위해 대부분의 신상을 공개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슬기가 파티창을 들여다보다 궁금한 점을 물었다.

“빌씨, 근데 말이죠. 유성우의 인도자라는 게 뭔가요?”

직업 옆으로 ‘-’이하의 내용은 직업에 대한 부연 설명, 혹은 전문화나 심화 계열에 대한 것이었다. 슬기는 빌의 직업에 나와 있는 그 문장의 의미가 궁금했다.

“하하하, 보았구나. 그게 말이지. 일단 유성우가 뭔지를 알아야 하는데. 유성우라는 게 말이야..”

저도 모르게 밝아진 얼굴로 빌이 입을 열었다. 자랑이라는 건 아무리 하고 또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알아요. 그게 뭔지. 유성들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거잖아요.”

슬기가 쓸데없이 잘 아는 바람에 빌은 자랑의 도입부를 놓쳐 버렸다.

“잘 아네!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가 유성우처럼 빠르고 위력적인 활 솜씨를 가지고 계시다는 거군요.”

“..빠르고..그렇지. 그러니까..”

슬기가 특유의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로 앞서 나가자 빌은 자랑은커녕 따라가기 급급했다.

“그래서 내가..”

“유성우 같은 화살들을 이끄니깐 인도자?”

“..아...”

주도적으로 이끌어갔어야 할 자랑타임이 씁쓸한 뒷맛만 남기고 끝나버렸다. 내심 입맛을 다시며 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당한 몬스터로 한 마리만 걸리라는 눈빛이었다.

“저는 권사고, 꼬맹이, 그러니까 실리엔은, 음... 역시나 맨손으로 싸우니까 권사라고 하는게 맞겠네요.”

실망한 와중에도 빌은 슬기의 미묘한 표현을 놓치지 않았다.

‘권사면 권사고, 아니면 아닌거지 권사라고 하는게 맞겠다는 건 또 무슨 소리지? 권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권사가 아니라는 말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빌은 자신의 실력을 어필할 기회를 찾고자 주변을 뒤져나갔다.

그의 애타는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곧 그의 감각에 몹의 기척이 잡혔다. 모든 궁수는 모두 뛰어난 사냥꾼이기도 한 법. 사냥꾼 특유의 추적 감각에 포착된 것은 ‘붉은 그리즐리 베어’였다.

270랩대의 대형 야수형 몬스터로 특유의 강력한 공격력과 어울리지 않게 민첩한 몸놀림을 갖춰 웬만한 파티들도 슬금슬금 피하기 일쑤인 녀석인 터라 빌이 실력을 뽐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상대였다.

빌이 기척을 따라 앞장서 수풀을 가로지르며 나아가자 두 여자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나무들 사이로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뚱이를 우뚝 세운 녀석의 무시무시한 위용이 드러났다. 몸을 곧추 세운 녀석은 나무 윗동을 툭툭 치고 있는 게 거기에 벌집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장난스레 나무를 건드리고 있는 저 앞발로 사람을 공격했다간 단 한방에 몸뚱이가 쪼개질 것이었다.

붉은 그리즐리 베어를 보자마자 빌은 오른 손을 들어 주먹을 쥐며 정지 신호를 보냈다. 뒤따라오던 슬기와 실리엔이 곰을 발견하고, 입을 벌렸다.

빌이 보기에 슬기의 표정은 마치 ‘저 무서운 놈을 잡겠다고요?’라고 묻는 것 같았다. 빌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활시위를 힘껏 당기더니, 슬기가 “잠깐...” 이라고 말하는 순간 활시위를 놓았다.

스스스스

공간을 뚫고 날아간 화살은 순식간에 일곱 개로 분열되었고, 그 일곱 발의 화살은 줄지어 날아가더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똑같이 정확히 곰의 목덜미 일점에 박혀 들어갔다.

퍼퍼퍼퍼퍼퍼퍽!

크와아아앙-

곰은 산이 떠나갈 듯한 괴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비록 강력한 몬스터라고는 하나 270렙대에 불과한 몬스터가 321렙 궁수가 벼르고 별러 쏜 ‘칠살 연발사’, 일명 ‘유성우’를 버텨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강력한 몬스터가 죽어 버렸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빌이 슬기와 실리엔을 돌아보자, 슬기가 처음 보는 문제를 맞닥뜨린 학생처럼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곰 요리는 할 줄 모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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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196화 +3 20.01.15 35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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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193화 20.01.14 337 4 12쪽
192 192화 20.01.14 334 4 13쪽
191 191화 20.01.14 34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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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186화 20.01.12 362 4 12쪽
185 185화 20.01.12 35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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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182화 20.01.11 38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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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174화 20.01.08 35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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