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검(劍)을 손에 쥐고. (3)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Ⅲ
황제의 포고가 있은 다음 날, 불과 하룻밤 사이에 군 복귀원이 줄을 이었다. 못해도 80만 명 이상으로, 전부 황제의 휘하에서 싸우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총재가 전한 소식에 황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80만 이상이라고? 그 정도나?”
“네. 그리고 더 늘어날 겁니다. 분명히...”
참가하는 병력이 많을수록 무인함대의 비율은 줄어든다. 전투력 증강 차원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죽게 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전부 아샤르 사람들이니,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유가 뭔가. 설마하니, 적도 살려주겠다는 황제의 성은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서는 아니겠지.”
“그런 것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폐하 자신을 너무 비하하지 마십시오.”
총재는 빙긋 웃었다. 유능하고 관료 사회에서 두루 인망이 두터운 그이니, 정부의 동요는 최소한일 것이다.
“그럼, 주된 이유가 뭔가?”
“인질을 구하겠다는 거죠. 지금 브루에 있는 300만의 병사들은, 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연인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무인함대가 아니라 스스로의 손으로 구하고 싶다는 겁니다.”
“죽을지도 모르네.”
“가족이 걸린 일입니다. 이것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이유도 드물죠. 그리고... 미래의 문제도 있습니다.”
비로소 심하게 찌푸린 총재가 말을 이었다.
“사망자 중 최연소가 다섯 살입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다. 황제는 심장이 아파왔다.
“아이들은 나라의 보물. 단순 갈취도 중형이고, 하물며 성범죄나 고의살인은 반역에 필적하는 것. 그런데 그 아이들까지 죽었음이 아주 크죠. 관련되어, 조정 게시판에 하루만에 8만 표를 얻은 글이 있습니다.”
사태가 긴박하니 그곳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다 적히고 있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8만이라면...?
“글이라...? 내용은?”
“...직접 보시지요.”
...황제 폐하. 저희는 그리 많이 배우지는 못했고, 그리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도 않으며, 또한 그저 저 자신과 주변에만 사랑과 관심을 쏟는, 그런 부족한 자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폐하께서 시행하신 정책은 물론, 이어진 반란과 그들의 성토... 그런 것은 저희가 잘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경우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쉬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의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희 부부도 세 살 난 아이가 있습니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괴로울 정도로 사랑스럽고, 아무리 작은 말과 행위도 애써 의미를 부여할 만큼 소중한 아이입니다. 부디 무사히 자라서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그 행복을 대대로 이어주길 바랍니다.
따라서 저는 전장에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도 나가고자 하는 것을 아이를 맡기고 말렸습니다. 군복을 입고 짐을 싸는 지금, 비록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다시 안아보지 못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왕자든 왕녀든,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어른들의 다툼 탓에 죄 없는 두 아이가 우주공간에 내던져져 죽었습니다. 이게 현실이지만, 결코 현실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겪었을 괴로움과 공포도 충분히 아프지만,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죽음의 그 순간, 그 아이들이 느꼈을 의문입니다.
왜 자신이 죽어야 했느냐고, 왜 이리 아파야 했느냐고 물어올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들은 분노를 표출합니다.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어리석고 못난 자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우리들 스스로를 향한 분노일 겁니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자책감. 그것은 죄인에 대한 분노보다 더욱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 아픔의 무게는, 삶과 미래에 대한 욕구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생각합니다.
저는 말단 병사입니다. 살아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기꺼이 싸우러 나가는 것은, 바로 제 아이에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네 부모는 너와 같은 시대를 살아갈 한 아이가, 그렇게 죽은 것을 차마 눈감으며 용납하지 못한다고, 이 폭거를 그냥 넘기면 다음에는 네 차례가 된다고.
죽은 아이에게도 답하고 싶은 겁니다. 네 죽음은 잘못 되었다고. 그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살아서 숨 쉬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그러니, 너를 죽인 자들을 잡아 반드시 속죄하게 만들겠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해주러 가는 겁니다.
아마도 제 이 마음은, 전장에 기꺼이 나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좀 뭉클하더군요...”
황제가 글을 다 읽기를 기다려 총재가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존심입니다. 자녀에게 부끄러운 부모는 되기 싫다는 거죠.”
“...짐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신민이구만.”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 어디에나 제대로 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이 있으며, 남을 위하는 착한 이와 자기만 아는 이도 공존한다.
황제의 눈에는 사회에 못마땅한 부분도 많았지만, 이렇듯 개별로 따져보면 선량한 이도 넘쳐난다.
...시간이 많았다면 그들을 규합할 수 있었겠지만...
“이탈자는 없던가? 반란 참가자 말일세.”
“약 2천 명. 전부 우주항을 개방하여 보냈습니다.”
“예상보단 적군. 적어도 만 단위는 예상했었다. 막지는 않았겠지?”
“칙명이므로 대놓고 욕하거나 막는 자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반란분자들의 일가이거나 그 추종자 정도죠. 일반 국민 중에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정부에서도 이탈자는 거의 없었다. 어차피 베라에는 친위기사를 위시하여 영자력 능력자들이 버티고 있으므로 내부 지원은 아무 의미가 없다.
때문에 군부는 정부 인사를 전혀 포섭하지 않았고, 정부 내 황제 반대파였던 이들은 바로 사직서를 내고 자택에 은거했다.
“그러면, 경에게는 오늘의 내용을 미리 말하겠네.”
이야기를 들은 총재는 다시금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칼스 전하께서는 연세가 겨우 스물 하나입니다.”
“그러면 짐이 친정(親征)한다고 해도, 짐의 나이가 스물 하나라면 거부하겠나?”
“아뇨, 그건...”
“그러니 이 직위까지 덧붙여주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정무궁의 모임은 조촐했다.
정부에서는 상서 이상은 다 참여했지만, 군에서는 군령본부차장인 젠토르 디아네 상제독(上提督) 및 통합지원본부 부본부장인 가르트 엔트랑 상제독을 포함한 몇 명이 고작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식전에서 체포되어 버린 삼군사령본부는 말 그대로 궤멸이었다.
눈에 띄게 한산해진 광경에 망연자실했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자니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화면 속의 황제와, 황제 대리로 나와 있는 황태녀는 그렇다 치고, 새로운 두 사람에 그 탄식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좌현왕세자 칼스와 우현왕녀 유키나. 두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은 제국 문장원이 지정한 현왕의 예복이다.
황제가 사정을 설명했다.
“이렇게 됐으니... 두 황족에게 각자의 자리를 승계시킨다. 이의는 없을 것이라 본다.”
연령이 지나치게 낮다. 칼스조차도 스물하나, 유키나는 열여섯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안이 없음에, 전원이 새로운 현왕들에게 축하의 뜻으로 절을 했다.
황제가 말했다.
“사태는 비록 중대하나, 병석의 짐이 친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세 명의 황족 중에 군 지휘경험이 있는 칼스에게, 영격 및 토벌을 위한 군을 위임할까 한다.”
“그런...?!”
몇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왕세자, 아니 좌현왕 전하께선 실전경험이 거의 없으십니다.”
“그렇습니다. 현왕이시므로 대제독 위계는 어쩔 수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함대지휘권이라니요.”
“그럼 묻겠는데 토벌군, 그 모두를 지휘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가?”
군령본부와 통합지원본부 모두 평소에 실전과 거리가 멀다. 몇 안 되는 삼군사령본부 소속 장성들도 다 부제독 이하다. 수백 척과 수만 척은 이야기가 다르다.
반란군도 바로 이것을 노리고, 정부군의 고급 지휘관을 모두 구금했던 것이다.
군령본부차장 젠토르 상제독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아나이트 아미에의 문제군,”
황제는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짐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제국의 법은 개인의 존엄과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가담하지도 않았는데 혈족이란 이유만으로 차별,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좌현왕 전하의..., 그리고 아나이트 원수의...”
“좌현왕이 이미 마음을 굳혔다. 짐을 도와 싸우기로 한 이상, 그 문제는 현왕 개인의 가정사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호명했다.
“좌현왕 세라비 칼스 카이. 앞으로 나오라.”
단상에서 내려온 칼스가 황제의 화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이라도 직위를 받을 때는 궤례로 대해야 한다.
“그대에게 요격 및 토벌 임무를 맡긴다. 전력으로 책무를 다하여 짐과 국민의 기대에 보답하도록.”
“존명...!”
“그럼...”
일동의 놀라움을 예상한 황제는 가볍게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평상시 같으면 절대 내리지 않았을 칙명이며, 비상시임을 생각하더라도 너무 파격적이다.
“좌현왕 세라비 칼스 카이에게 삼군사령장관을 제수한다. 또한 원수계급으로 실전부대를 통괄하라.”
“원수...?”
몇 사람들이 조금 웅성거렸다.
삼군사령장관의 위계는 원수다. 위계를 생각하니 직위가 차고 넘치고, 직위를 생각하면 위계가 모자란다.
하지만 요격 책임을 맡은 이상, 계급부여는 어쩔 수 없음은 대부분 납득했다.
황제는 다시금 놀라움을 더했다.
“또한 공석이 된 군령본부총장, 그리고 통합지원본부장도 같이 제수한다.”
“...삼대장군을... ...전부?!”
“이런... 이것은 전례가 없습니다...!”
신하들의 경악이 이미 뜨거워진 공기를 타고 흐른다. 하지만 황제는 태연스레 말했다.
“비상시이니 군권을 집중하는 것이 맞다. 모두들 스물 한 살짜리 원수가 아니라, 젊은 왕의 지휘를 받는다 생각하고 충심으로 보좌하라.”
아직 놀랄 것은 더 남았다. 한 박자 쉰 황제는 다시,
“더불어 제국군 최고사령관도 겸임하라. 인사권과 상벌권도 모두 가져가라. 일개 병사를 장성으로 승진시켜도, 장성을 해임하여 군권을 박탈해도 그대의 재량이다. 즉, 군권에 대해서는 짐과 동일한 권한을 가진다.”
경악 속 침묵 일변도였던 칼스가 비로소 반문했다.
“불가합니다. 최고사령관은 대대로 황제만 가졌던 직함. 황태자라고 해도 대리 정도였고요. 감히 현왕이 가질 것이 아닙니다.”
“아픈 짐에게 일일이 재가를 받으려느냐? 그런 짓을 하면 권위가 살겠느냐. 대리 딱지를 달고 뭘 하겠단 말이냐. 이는 칙명이다...!”
전 군권을 위임한,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경한, 그 모든 표정을 살핀 황제가 쓴웃음으로 말했다.
“만약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짐의 대리인 좌현왕에게 짐을 대하듯이 할 수 없다면, 아리칸의 책봉을 거두고 좌현왕을 짐의 양자로 황태자로 삼아 다음 제위를 약속해도 좋다. 세리사의 처우는 그 다음이겠지만...”
“폐하!!”
칼스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다.
“절대 불가합니다. 그게 무슨...!”
“싫거든 너도 노력해라.”
칼스는 신음했다. 아직 망설임은 컸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는 대부분의 제약을 벗어던졌다. 복수도 스스로 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을 굳혔다.
“만인의 걱정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참람한 마음을 품었다면, 폐하도 아리칸도 이미 이 자리에 안 계시겠죠.”
“그렇겠지. 허나 넌 짐을 치지 않았다.”
“네. 그러니, 앞으로의 충성도 성과로 증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소신을 믿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칼스는 이번에는 복례를 행했다. 마치 스스로 죄를 지은 듯 정중했다.
“삼가 칙명을 받들겠습니다.”
“짐도 그대를 최후의 최후까지 믿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휩쓸고, 모두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세리사와 칼스, 유키나만 남았다.
“네 짓이구나. 이건...”
다가온 세리사에게 칼스는 다그치듯 말했다.
“나도 최소 함대사령관, 잘하면 대장군 중 한 자리 정도는 예상했어. 하지만 이건 개인이 쥐기에는 너무 파격적인 권리야. 아니, 실제로는 황제의 군권도 넘어선다. 받아는 들였지만 이건 네게도 의미가 커.”
“맞아. 당신이 이기고 나면, 그 지위와 영향력은 나를... 어쩌면 부황조차 넘을지 몰라.”
“알면서도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그녀는 담담히 웃었다.
“전쟁에 지면 어차피 난 죽어. 그렇다면 당신이 이기는 게 낫지 않아?”
“이기기만 해서 끝날 문제야, 이게?”
“할 수 없잖아. 이겨놓고 나서 생각할 문제를 벌써부터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러니 칼스가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군권을 몰아주기로 한 거야. 이건 아바마마께서도 동의한 거야.”
“양자 건이나 황태자 책봉 건까지 말이야?”
“맞아. ...이제 내 목숨도 당신 손에 달렸어. 당신 손에는 죽어도 좋지만 저들 죽기는 싫어. 그러니...”
침묵해버린 그를 향해 그녀가 미소 지었다.
“힘내... 칼스... 절대 죽지 마.”
칼스의 예상은 맞았다.
지난 17일을 지나 18일로 접어든 깊은 밤, 칼스가 다시 아미에의 곁에 돌아간 이후 황제가 딸에게 물었다.
“세리사. 혹시 유키나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느냐? 두 사람에 대해서...”
유키나는 순순히 답했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냐. ...너까지 짐을 속이다니.”
“송구합니다.”
세리사가 급히 변호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다 제 책임...”
“알아. 너도 말 못할 일이었잖아. 괜찮아.”
헛웃음을 마친 황제가 다시 말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자꾸나. 유키나는 옷을 갈아입고 와라. 그 차림은 좀 그렇지.”
유키나가 돌아온 다음, 의자를 당겨서 그의 침상 곁에 붙은 세리사가 물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라고요...?”
“그 전에 묻겠다. 세리사 너는, 아직 그에 대한 마음이 변함없느냐...?”
이미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에요. 이미 늦었지만...”
“그러면 유키나, 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어찌 생각했느냐?”
“저는... 두 분이 이어지길 원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대단한 불경이 됩니다.”
“상관없다. 행위도 아니고 생각일 뿐인데.”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세리사 언니를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정치적 자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본심을 말씀드리자면, 순수 자질로는 칼스 오라버니가 제위에 보다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유키나...!”
세리사는 당황했지만, 의외로 황제는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하냐...”
“하지만 지금은 이미 때가 늦었어요. 오라버니는 임자가 있고, 또 언니도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강해지셨죠. 이제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알았다, 내가 물어본 것은, 너희 둘이 아직 칼스에게 거는 기대가 낮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디 너희 둘도 협조를 아끼지 말거라.”
“당연하지요.”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앞으로가 문젠데...”
고민을 미간에 드리운 황제가 다시 말했다.
“함대를, 군을 지휘할 사람이 없어. 어느 인물을 승진시켜 맡긴대도 문제가 생기지. 그래서 말인데... 칼스에게 왕위를 잇게 하고, 그 권위에 덧붙여 군권을 주어 토벌을 위임하려고 한다. 여기까진 이야기했지만, 그 지위와 권한은 모두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 될 게다.”
“어느 정도의 권한입니까? 아바마마.”
“삼대장군 전부. 그리고 제국군 최고사령관.”
세리사와 유키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칼스를 믿지만 다른 이들이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유키나가 물었다.
“상당한 반발이 있을 텐데요.”
“안다. 하지만 짐과 칼스가 나누어 감당하면 되지 않겠느냐. 이미 현왕까지 둘이나 죽은 마당이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래도 모자란다면...”
세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 직위를 거두어 그를 후계로 삼으시면 되겠죠.”
“언니...!”
유키나는 눈을 크게 떴고 황제는 양미간을 좁혔다.
“그건 과하지 않느냐. 대체 무슨 생각을...”
“명분이 모자란다면 사용하셔도 좋은 수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차기 황제입니다. 훨씬 모양새가 날 겁니다.”
“불가하다. 내 비록 그를 아들처럼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비 역시 내 직계에게 제위를 물려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야. 너도 다음대로 이어줄 책무가 있는 것이고.”
유키나는 잠시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아직 황제는 모른다.
마찬가지 착잡함으로 세리사가 말했다.
“어차피 이 전쟁을 이겨도 저는, 전쟁의 발단이었던 결함투성이 황태녀가 됩니다. 전쟁 전이라면 몰라도 전후의 복구와 국민의 통합, 이어지는 정치적인 모든 문제는,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 커요...”
“아직 애비는 죽지 않았어. 죽기 전에 네게 짐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부족하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염두에 두시고, 최악에는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신하들에게도, 왕조 교체의 불충을 택하느니 칼스를 도우라 명하신다면, 그게 훨씬 도움이 되실 거에요,”
황제가 황태자에게 직접 제위를 넘겨주려 해도, 이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다.
황제도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지 못했다.
“알았다. 여차하면 사용해 보마. 그러나... 그러면 네가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 사랑하는 남자를 잃었는데 제위까지 잃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 부디 마음을 강하게 먹도록 해라. 알았느냐?”
“네... 아바마마...”
“모두 돌아가서 자거라.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 좋은 꿈은 힘들어도 악몽만은 더 꾸지 않기를...”
이 지경이 되어서 따뜻한 말을 잊지 않은 아버지가 보지 않게, 세리사는 괴로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죄송해요. 아직 감춘 것을 아시게 되면 너무 실망하시겠죠. 그렇게 무리를 하시면서 제게 힘을 실어주시려 했지만, 이 황실도 결국 제 대에서 끝인 걸요. 진작 말씀드렸으면 이런 일이 있었을지... 아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결정을 후회할 순 없어요.
저는 엄청난 불효자식에 모자란 후계자.
하지만 저 때문에, 제 결정 때문에 전화에 휩싸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길을 걸을 겁니다.
이는 속죄도 되겠지만, 사실은 다른 것도 있답니다.
...저 반란자들에게 직접 묻고 싶어요.
아무 죄 없는 라피스와 쟈카, 그 어린 것들의 목숨.
그리고 그 지상인 아기의 천진한 웃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세상에 과연 있었는지를...
정녕 그리 생각했는지를...
...꼭 묻고 싶어요...!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희대의 낙하산. 하지만 ‘그럼 니들이 할래?’ 에 모두 데꿀멍. 뭐 왕님이 지휘한다는데 까라면 까는 거죠.
돌아왔습니다. ...원래 해변에 가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비키니 입은 언니들의 엉덩짝을 구경하며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건만(이 문장은 나중에 반드시 써먹을 거야...)... 비가 오고 애들은 보채고 밥은 맛없고 아아, 즐거웠습니다.(정신승리중;;;)
...그렇다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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