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마음의 끈. (3)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Ⅲ
우주를 개방할 것이다. 황제의 말은 오늘의 가장 큰 폭탄이었다. 웅성거림이 거세다.
“우주... 개방요?”
캠퍼는 신음했다. 반면 황제는 여유가 있었다.
“네. 달은 우리 영토로 유지하겠지만, 그 외의 태양계 전 영역은 개발권의 절반을 지구 지분으로 떼어드리죠. 또한 우리가 설정한 공용 항로도, 군사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완전 개방합니다. 여러분도 우주함대와 기지를 갖출 수 있고, 핵심 기술은 전수하지 않지만 독자적으로 우주를 개발하는 것에는 군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이건 귀국 국민들도 용납하는 겁니까?”
“지금까지는 기밀이었지만 정부협의안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1차 개방으로, 우선 위성궤도 제한 완화와 성계 내부 항해용 발사체 기술 전수가 있겠네요. 2차로는 우주항 완전 양도에 샤파른을 제외한 우주선용 소재 기술 등... 저희 계획으로는 총 7차까지 있습니다. 70년 후엔 완전 개방에 이를 수 있도록 말이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주 봉쇄는 실익이 없다. 하늘이 막힌 지구인들의 원한은 무척 깊을 것이다. 자칫 아샤르는 나치를 능가하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개발, 그리고 자격 없는 자가 우주에 발을 들이는 것을 경계하여 지구 침공 당시에 이 조건을 걸긴 했지만, 언제까지나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그렇다면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좋을 판이다.
“그리고 저희 의회와 국민도 거부하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왜 지상을 지배하지 않고, 접촉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발전을 제어하고 또한 동족간의 내전이라는... 그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동면까지 택했는지를 생각하면요.”
물론 반대는 있겠지만, 우주를 개방한다고 해도 아샤르는 여전히 압도적인 강국일 것이다.
또한 우주라는 더 넓은 세계를 위해서, 지구 인류 스스로가 폭력을 어떤 형식으로든 제어한 미래를 생각하면, 이 도박은 해볼 만하다.
“가장 중요한 건 1차 개방이죠.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요. 따라서 다소 가혹한 조건이 붙을 겁니다.”
“가혹한...? 그 조건이... 뭡니까?”
바라는 것이 대체 뭘까. 후궁으로 미녀라도 바치라면 제일 쉽겠다.
만인의 의문 속에 황제의 입에서 뱉어진 그 말은, 모두 순간적인 신음에 헛웃음까지 뱉게 했다.
“첫 조건은 향후 10년간, 전 세계가 국가 단위의 전쟁을 멈춰보는 겁니다. 지금 수행중인 국지전이나 국경분쟁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죠.”
모두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 녀석, 제정신인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입니까?”
황제는 웃지만 캠퍼는 짙은 불신을 보였다.
“전쟁을 멈추겠다... 그게 가능합니까?”
당장 아샤르조차도 전쟁으로 국토를 손에 넣었다. 게다가 단 한 나라라도 따르지 않는다면, 마지막 10년차에 한 건이라도 터진다면...
“힘들 겁니다. 아마도...”
황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노력할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호랑이를 그리겠다 마음을 먹어야 최소한 고양이라도 그려내듯이, 이 정도는 잡아야 여러분도 당당히 우주에 가죠. 아니면, 그렇게 여러분들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저희의 신뢰를 바라시나요?”
다소 힐난조로 말한 황제는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왜 이런 조건을 걸었느냐면, 여러분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만큼 우리의 일각에서도 그런 점은 있습니다. 그러니 엄연히 같은 인간인 여러분이 보다 큰 세계를 노릴 자격이 된다는 것을, 이미 선점하고 있는 우리에게 보여 달라는 겁니다. 비록 우리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긍지 높은 단독 역사와 문명을 쌓아온 여러분의 역량, 그것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겁니다.”
사상 최대의 난제 앞에 침울한 캠퍼, 그리고 모두와는 달리, 황제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7차에 이르는 완전개방, 그 70년간 세계에 포성이 멎는다면 여러분을 우리의 동반자로 인정, 기꺼이 우리의 터전을 공유할 것이며, 반면 여러분은 바라던 우주의 절반을 얻습니다. ...한 번 잘못된 길을 걸어봤던 우리, 희망보다 절망이 많았던 여러분. 서로의 미래에의 지표로 서로가 존재할 수 있다면, 고작 우주공간이나 행성 몇 개, 자원 정도야 하찮은 것에 불과하죠.”
“다른...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황제는 딱 잘라 말했다.
“인류 공통의 목표로도 이만한 것은 없을 겁니다. 가장 큰 악덕이지만 당연하게 이루어져 왔던 것. 그러니 이걸 해결할 수 있다면 다른 것도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 서로 자신감도 붙을 겁니다.”
황제는 조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하는 부탁입니다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부디 후세 역사에, 이제껏 있어왔던 그런 지도자들과는 다른... 상생과 협력의 길을 밟는 동지로 기록되길 바랍니다. 또한 오늘 밝힌 아샤르의 수단, 저의 본의가 부디 지구인 이성인이 아닌 같은 인간끼리의, 마음의 끈을 잇는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자식, 스케일이 너무 커. 그리고... 지금껏 경쟁 관계에 당연한 듯 살아왔던 우리를 너무도 모른다.
특히 몇몇 국가들은 가슴이 서늘했다. 가디언즈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걸고넘어질 건수는 얼마든지 있을 것... 다 믿을 수는 없지.
일단 주는 기술. 그것을 어떻게 제어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속셈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수장으로 느끼는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사람이니 느끼는 마음의 감정. 지금 그 양자가 묘하게 충돌하는 이는 많았다.
지난 세기부터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에서 파생된 하나의 현상일 뿐. 뉴욕과 베이징이 항공편으로 연결되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이어졌다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마음의 끈을 이야기한다.
매번 묘한 녀석이다...
캠퍼가 급히 말했다.
“이건 장차 각 정부의 협의 하에...”
“굳이 다른 이와의 협의가 필요할 정도의 이야기입니까? 전쟁은 동의 없이 할 수 있으면서, 평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까? 저희는 선의로 내거는 조건입니다.”
결국 ‘이것도 자신 없느냐?’ 라는, 자존심을 긁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망설이는 캠퍼를 향해 황제는 다시 권했다.
“물론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얽히는 부분이 있겠죠. 그런 부분은 국제사법재판소나 아샤르의 중재를 요청하세요. 저희는 그 어느 나라와도 관련이 없었고, 따라서 그나마 가장 객관적일 겁니다. 또한 지금 몇몇 분쟁 지역에 파견된 평화유지군처럼, 국제연합 총회를 거친 군사력 투입이라면 별개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가혹하기만 한 조건은 아닐 겁니다. ...어떻습니까?”
즉답을 요구하는 시선에 모두가 움츠렸다.
결국 한숨을 내뱉은 황제가 다시금 웃었다.
“역시 불가능하다... 그리 말씀하시려면, 그 답을 들어야 할 이는 제가 아니겠죠.”
캠퍼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와 저의 나라는 사실, 여러분이 싸우든 말든 손해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불가능하다는 그 답변은, 그로 인해 가장 상처 입을 이들이 들어야겠지요.”
황제는 입구 너머, 자신을 따라온 아비에르 리비에게 눈짓했다.
“데리고 와라.”
잠시 로비로 나갔다 들어온 리비의 두 손. 그에 주목한 많은 이가 낮은 탄성과 신음을 삼켰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어린 아이 둘이었다. 지금껏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마 황제가 대기했던 작은 방에 미리 숨겨두었으리라.
하지만 아이들의 몰골은 탄식이 절로 나올 만 했다.
둘 다 4,5세. 하지만 남자아이는 한쪽 팔이 없었고 여자아이는 화상으로 얼굴 반쪽이 일그러져 있다.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아이들 쪽으로 걸어간 황제는, 이내 리비의 손에서 그들을 건네받아 이끌었다.
“앉거라.”
워낙 어려 둘이서 앉을 수 있다. 무려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황제가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며칠 전, 어느 전장에서 건져온 아이들이죠. 어느 곳인지는 묻지 마십시오. 책임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다만... 답변을 들어야 할, 가장 상처 입을 대상이 여기 있으니, 어느 분이 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이건 비겁하다. 많은 이가 그리 생각했다.
무언의 압박을 등 뒤로 받은 캠퍼가 즉시 이의를 제기했다.
“이건 곤란하군요.”
“아, 물론 곤란하겠지요. 세계 정상이 모인 이 곳. 가장 냉철한 이성이 지배해야 할 장소에 감정을 들이민다, 그리 생각하는 분이 없진 않겠지요. 허나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가장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 아이들을 데려온 것이거든요.”
눈썹도 까딱하지 않는 황제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비록 아샤르엔 못 미쳐도, 여러분은 나름 장구한 역사와 문명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문명은, 역사는, 그 삶은... 무엇을 위해 쌓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움직이는 겁니까? 사람은, 문명은 미래를 기대하고 그리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니 한 번은 묻고 싶은 겁니다.”
목소리가 차츰 날카로워졌다.
“물론 국가의 이익, 민족의 자존심, 풀어야 할 증오의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살아야 할 인간을 지키지 못한다면, 바라만 봐도 아까운 애들을 아프게 한다면, 우리가 쌓아나가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겁니까? 저는 그것을, 앞으로도 이어질 우리의 문명과 역사, 그 방향성을... 이 자리에 계신 세계의 지도자와 석학, 언론인에게 묻고 싶은 겁니다. ...물론 저도 그리 떳떳한 인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침묵할 수 없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 아이들에게 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서로가 시선을 피했으며, 침 삼키는 소리와 불편한 신음과 헛기침이 간간이 울렸다.
결국 낮은 한숨을 내뱉은 황제는 자신의 자리, 두 아이에게 몸을 숙였다.
천천히, 마침내 무릎을 꿇어 그들과 눈을 맞춘 황제는 이내 조금 고개를 숙였다.
“못난 어른이라... 미안하구나.”
아직 너무 어리다. 자신에게 닥쳤던 현실도, 이 자리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도 고통의 흔적,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그저 눈을 깜빡거렸고 때로는 조금 웃었고 주변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자리의 모두는 똑똑했고 노련했으며 언변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다들 석상 같았다.
“...저희는, 동참하겠습니다.”
마침내 손을 들며 일어난 이는 중년의 여자였다. 살짝 젖은 눈과 일그러진 표정의 그녀는 호주 총리 아델하이드 로번이었다.
“여자라서 정에 약하다... 그리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또 저와 제 조국이 그리 잘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감히 자신할 수는 없지만...”
살짝 메이면서도 그녀는 또렷이 말했다.
“허락하신다면 같이 가겠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설득하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천천히 일어난 황제는 로번 총리를 향해 길게 읍했다.
“지금 그 말씀으로, 귀국과 아샤르는 형제가 될 겁니다. 귀국의 눈물보다 우리 눈물이 적을 일은 없을 것이며, 귀국의 즐거움은 곧 우리의 기쁨이 될 겁니다.”
작은 구멍부터 홍수가 시작된다. 스페인 총리 페레즈가 이어 일어났다.
“저희도 동참하겠습니다. 물론 저희도 진행 중인 분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먼저 총을 쏘지 않는 정도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각하께 감사를... 그리고, 귀국에 총을 겨누는 자가 있다면, 그 앞과 옆에는 항상 우리가 있을 겁니다.”
싸우는 자는 적. 싸우지 않는 자는 아군. 그렇다면...!
대부분은 이성으로, 극히 일부는 감성으로. 그렇게 수많은 자가 거수하자 캠퍼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이래서는 마지막 주도권을 잃는다. 그는 외쳤다.
“그러면... 결의안 상정을 위한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겠죠.”
태세 전환이 빠르다. 황제는 내심 웃었지만 비웃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엔 도움이 되었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2일 간의 토의 끝에 정전 결의안의 초안이 채택되었다.
향후 10년간 유엔 등록국은 교전을 기피한다. 내전 및 명백한 테러에 의해 필요한 무력수단은 유엔 총회 결의에 따른 평화유지군에 한정하며, 이 군은 유엔 탈퇴 후 전쟁 등의 꼼수도 같이 제압한다.
10년간 이 조건이 지켜진다면 우주의 1차 개방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본 골자로, 자국 의회의 비준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나라가 다수 있지만, 서로에 대한 설득 역시 이 자리의 모든 외교 인사들이 진행할 것이다.
유엔 가입국인 194개국 모두의 승인을 얻는 즉시 이 결의안은 조약으로 바뀐다. 승인 시한은 3개월이며, 만약 그 시한까지 전 국가가 승인하지 않을 경우 무효가 된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압력을 가하는 이 현실에, 거부하는 이는 바로 인류의 적으로 찍힐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조차 거부하기 힘든 마당에 감히 거부할 이는 없으리라. 그만큼 상대의 강력함과 명분은 압도적이다.
결의안이 채택된 그 자리의 황제는,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10년 후, 이 자리에 다시 모입시다. 유혈이 줄었음을 서로 축하하며, 또한 오늘처럼 다시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의지와 노력을 기대하겠습니다.”
후세에 호놀룰루 선언으로 명명된 이 정전 결의안은, 만인의 충격 속에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분명히 남았다.
헤어지는 마당에서도 스스로와 타인들에게 불안감과 불신을 보내는, 만인의 교차하는 난감한 시선에 황제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회를 줘도 난리지만, 또 물론 어렵겠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또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이야기다.
내 백성이 살아갈 세상, 내 아이가 거닐 세상.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서...
한편 유키나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꼭 그래야겠어?”
“네.”
이영이 끄덕였다. 만남 장소는 역시 그의 집이다.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안전보장원에 자리를 좀 주십사... 그렇게 요청해보려고요. 사실은 절 끼워주실 줄 알았는데, 막상 쏙 빼놓으시더라고요...?”
“너는 첩보 전문가는 아니잖아. 그리고 비서성에서 겨우 좀 자리와 눈치를 잡아가는데...”
“제가 비서성에 있었던 것은 폐하의 감시, 옵서버입니다. 떼쓰는 아이에게 자리를 주신 거죠.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고...”
그녀와 나란히 소파에 앉은 그는 지긋이 웃었다.
“하지만 가디언즈 관련 일은 다릅니다. 아무래도 제가 있어야 할 장소는 그곳 같네요.”
“역시 예전 조직이라 마음에 걸려?”
“그것보다는 말이죠. 숨어버린 자들을 힘으로 색출하느니, 하부 조직원들의 이탈을 노려 내부 붕괴를 노리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그게 정석이긴 하지만... 어떻게?”
“제가 안전보장원에 있어서 얻는 장점 몇 가지. 일단 배신자지만 우대받는다는 선전효과에, 한번 공을 세운 이가 배신한 이유는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도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저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저니까...”
“일리는 충분히 있지만 위험할 텐데... 그럼 가디언즈의 증오가 네게로 많이 집중될 거야.”
배신자는 즉결처분. 사냥개는 어디서든지 키운다.
“저, 이제는 그렇게 약하지 않잖아요. ...혹시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당연... 하잖아.”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걱정하지 말까?”
“실언했네요.”
“주의하도록.”
낮은 웃음이 서로에게 지어졌다. 이영이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정도 수는 폐하께서도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저를 빼놓으신 것인지... 혹시 전 조직에 칼을 들이대는 일을 제가 하지 않도록... 그런 배려일까요?”
“그보다... 네 위험을 원하지 않으실 공산이 커서...”
“혹시 황후마마 때문에요?”
“아니... 아마 나 때문에... ...사실은... 이미 들켰어...”
“...뭐라고요?!”
유키나의 두 손가락이 마주쳐 배배 꼬였다.
“출국 전에 물어 오시더라. ...이미 눈치를 잡은 터라 도망도 못 쳤어.”
역시 그 눈치 귀신...! 하지만 그는 허탈한 웃음으로,
“...발뺌할 생각도 못한 겁니까. 아니, 그 전에... 입 다물라고 하신 분이 누구더라...?”
“미안...”
“할 수 없죠. 언제까지 숨기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고...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요.”
“...반대는 안 하시는 것 같아.”
반대할 처지는 아니겠지. 권한 것이 있으니... 음?
“가만... 그렇다면... 제가 덜컥 죽기라도 하면 당신이 슬퍼하니까... 그래서 빼주신 겁니까?”
“...그런 것 같아.”
“...뭔가 보호받고 있네요.”
“그건 알지만... 너도 사람이야. 예전 동료가 자칫 피 흘리며 죽어간다면 마음 약해질 수 있잖아. 그러니...”
“이제는 거기로 안 넘어가요. 그곳에는 제게 바라는, 그런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뒤통수를 긁었다.
“여기에 당신도 있고...”
이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눈앞의 커진 눈동자에, 확실한 기쁨을 감추려 드는 이 표정 앞에서는 그리 억울하지는 않다.
“카츠...”
그녀는 기뻐하지 않으려 애써 노력했지만...
“뭔가 아부 같은데?”“
“좀 순수하게 평가해줘요.”
에이, 여우. 좀 솔직하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이제껏 큰 불평 없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이번에는 모처럼 간지러운 말도 해 드렸는데... 야박해요.”
“그럼...”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문득 웃음으로 곁눈질했다.
“...조금 전 가디언즈 분석... 아무래도 열심히 생각했고... 다소 늦었지만 바보는 벗어났으니, 음... 10점 추가해 줄게.”
“에, 그럼...”
“...기뻐?”
물어오는 목소리는 조금 기어들어간다. 아무래도 점수를 한 번에 너무 후하게 줬다는 후회일지 모르지만, 또 이건 그녀도 기대한다는 뜻일까.
아무튼 이걸로 최초 퀘스트 완료에 포상 획득인가.
굉장히 가슴이 뛴다. 그동안 죽을 고생을 했던 노력의 결과이니 뿌듯함도 있지만, 그 이전에 그녀와의 장벽이 하나씩 사라져 간다.
이 역시 몹시 기쁘다.
“그러면, 지금... 도전해 볼까요?”
황제는 세계에 도전하지만, 지금의 내 도전도 과히 난이도가 낮진 않겠지. 그는 자부하며 팔을 뻗어 다가갔지만, 역시 그녀는 조금 움츠렸다.
“안 돼.”
“왜요?”
뺨을 붉힌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번 2점 잃었잖아. 아직 28점이라고...”
변명은...!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엄청난 바보다...!
“...그렇다면, 가불...!”
“...뻔뻔해!”
낮게 소리친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좀 밀고, 당기기도 하라고 그랬는데...”
“...대체 뭘 읽고 온 거에요?”
어딘가의 쓸데없는 연애지침서 따위는 개나 줘버려, 라기 보다...
서류나 받아보기 바빴던 그녀가 남몰래 그런 걸 뒤적거렸다는 사실이 참...
역시 하루하루 변해간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겠지.
그는 여전히 기대감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알았어...”
마침내 여왕이 끄덕였다. 바로 소파에 쓰러뜨리고 덮어간 입술의 감촉과 껴안은 체온을, 그는 오래도록 만끽했다.
“...좋아요?”
노골적이지만 꼭 묻고 싶었던 질문에, 그녀는 수줍은 눈을 감고 끄덕였다.
좀 더 솔직해지기까진 시간이 걸리려나.
뭐, 최상의 원두는 보장되었으니, 천천히 우려 나온 커피는 훨씬 향이 좋을 거라 믿고 있다.
“저녁 만들게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그는 팔을 풀어주었다. 아니, 풀어주려 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잡혀 있다.
“한 번으로는 모자라요?”
반쯤 감은 눈 아래, 오늘 유난히 붉은 뺨과 입술이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
그 때 그 섬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끓는점이 높은 것인가.
하지만 모처럼 우위를 잡았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고, 그날 저녁밥은 여느 때보다 조금 늦었다.
그렇게 한 쪽에서는 황제의 장대한 포부를 담은 행진곡과, 아직 어설픈 연인의 달콤한 꿈의 왈츠가 은은히 흐르는 사이,
다른 쪽에서는 여전한 의심의 콧노래와 차가운 피를 부르는 우울한 랩소디가 낮게 울렸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한 원한을 음표로 삼고 증오라는 오선지에 그린,
거대하고 잔혹한 음모의 전주곡이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오늘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사에 있어서의 변환점 중 하나를 다루기 때문에 무지하게 깁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많이 풀게, 너무 쫄지들 말어. 니들 앞으로 먹고 사는 건 나아질 거여. -> 그럼 뭐해, 코딱지만한 별에 갖혀서 사육당할 신세 아녀, 바로 니들 때문에... -> 그럼 우주 열어줄 테니 대신 전쟁 함 멈춰볼텨...? -> ...가능하겠냐 시바... -> 해봐. 떡밥이 크잖여. -> ...그건 그랴...
...대충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3부(3권 아님)의 대제목이 왜 ‘미래에의 지표’ 인지... 여기서 밝힙니다. 긴 역사를 지닌 발전된 문명이 미개 문명을 교화해야 한다는 백인의 의무삘 나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노쇠한 문명은 신생 세력의 활력과 다른 길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죠. 이 작품은 양자를 모두 혼합하는 구성을 취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표가 되는 상황... 앞으로 또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못 이루어봤던, 본인도 무지하게 힘들다 생각하는 완전평화와 더불어... 그의 또다른 구상은 권 말미에 한 번 더 언급할 겁니다.
마지막은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본편에 기름칠을 하는 용도의... 이 커플이 등장하면 어쩔 수 없이 펼쳐지는 느끼한 장면이죠. ...역시 인생은 저놈처럼 살아야 해요. (우잉;)
3장. 음모의 시작 편에서는 모처럼 가디언즈 관련이 되겠네요. 1부 1권에 등장시켰는데 이제야 등장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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