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판도라의 상자. (1)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Ⅰ
황제가 급보를 받은 곳은 귀환 도중, 아직 우주였다.
“...그 자식이...!”
비록 날뛰거나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제의 탄식에는 마치 영구 낙인처럼 깊은 분노가 찍혀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황후도 더는 말을 찾지 못했다.
화면 속, 고개 숙인 이영에게 황제는 목젖을 울리며,
“...네 아내의 상태는 어때?”
“그다지 좋지 않... 사실 심각합니다...”
그녀가 전력으로 보호한 탓에 유산은 간신히 면했다. 하지만 뇌진탕과 전신 타박상은 물론 갈비뼈가 여섯 대 부러지고 왼쪽 다리는 탈골. 두개골은 이리저리 금이 가 뇌출혈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그 때 이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세리사오르를 탈출한 그들은 세 시간을 날아, 화성항로의 중규모 자원기지 중 하나인 리프3에 도착했다.
뜻밖의 방문과 험한 모습에 경악한 이들이 급히 병실로 옮겼지만, 중상에는 오히려 약한 황족이니 일반적인 치료는 큰 의미가 없다. 결국 기댈 것은 본인의 회복력이지만, 충격이 워낙 커 장담하기 힘들다.
“...그리고, 세리사오르와 주둔함대 및 그 병력. 휴가와 출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임직원과 그 가족. 도합 약... 12만 명이 인질로 잡혔습니다. ...보고는 이상이니, 모두를 버리고 살아온... 염치없는 제 처분을 바랍니다.”
무릎을 꿇은 이영에게 황제는 재차 한숨지으며,
“판단은 옳았다. 다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하지만... 미리 눈치 챌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너 혼자만 속은 게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마라. 그리고, 응급처치를 마치면 즉시 아파켄으로 가도록 해.”
“아파켄으로요...?”
한때 지구 침공의 근거지로 쓰였던 이 거대모함은, 예전처럼 L3 포인트에 머물러 있다.
“그래. 그 기지로는 아무래도 불안해. 왜냐하면...”
탈취당한 세리사오르는 강력한 병기다. 비록 기존 모함들에 비해 작고 공방능력은 떨어진다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병기는 압도할 수 있는데다 기동성까지 좋다.
주둔함대까지 포함된다면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니, 이를 손에 넣은 가디언즈가 단순한 농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추가 파괴를 노려 현재 우주개발로 분산되어 있는 여러 거점에 순회공연을 돌 수도, 또는 세력권 확대를 위해 인근기지를 더 점령하려 들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움직여라, 또한 군령본부에 명해, 해당 지역의 봉쇄 및 인근의 철수를 행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은 어찌하실 것인지...”
“...본국으로 귀환한다. 우주에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베라는 지금 주인이 필요해.”
통신을 끊은 후, 어둡다 못해 울상이 된 아내에게 황제는 조금 웃어 보이며,
“그래도 루이코의 소식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어떻게 하죠...? 다들 구해야 할 텐데... 그런데 아무 생각도 안 나요...”
황후는 괴로움에 물들었다.
하필 자신의 이름을 딴 곳이 악당의 본거지로 전락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칫 거대한 관이 될지도 모른다.
“그건 앞으로 생각해야지. ...일단 식사나 해 둘까.”
저녁식사 직전에 받은 보고였다. 황제가 눈짓했지만,
“전 입맛이 없어요...”
이 시국에 식사 타령이라니? 완곡한 항의에도 황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 일단 말이야, 루이코와 유키나 그 두 녀석들이, 자기들 때문에 내가 무려 끼니를 걸렀다면 나중에 정말 크게 비웃을 걸.”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아 식탁으로 이끌며,
“...먹고 힘내자고. ...할 일이 많으니까.”
그들은 산조차 뽑아 옮길 힘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그 수저질은 젓가락을 갓 잡은 아이처럼 몹시도 힘겨웠다.
25일 당일 사건에서 아샤르의 피해는 몹시 컸다.
그들의 기나긴 역사 이래로도 이만한 피해는 손에 꼽는다. 저 내전조차도 사망자는 군인이 대다수였지만 이번은 달라 피해자가 모두 민간인. 그것도 남녀노소를 전혀 가리지 않은 무차별 테러다.
민간 사망자만 7천을 웃돌았고, 대부분 중상인 부상자는 그 3배에 달했다. 무참한 시신을 수습하고 처참한 부상자를 구원하며 혹시나 있을 생존자를 찾아 헤매는 이들. 무사를 빌며 서로를 찾는 울부짖음이 천지사방에 따갑도록 울리고 있었다.
치안을 위해 총재 주도의 임시계엄령이 떨어진 가운데, 여느 때라면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던 거리가 겨울 골목길처럼 한산해졌다. 또한 로사 주도하에 평소의 몇 배나 강력한 경계가 아샤르 전역을 덮는 사이, 군에서도 속속 동원령이 내려져 상당수가 우주로 나갔다.
지구의 대기권은 16년 만에 거의 대부분을 동원한 아샤르 우주함대로 메워졌으며, 기능의 대부분을 봉인하던 아파켄도 완전 재기동에 들어갔다.
12월 27일 새벽에 황제가 귀환했다. 이어 급히 어전 회의가 열렸고, 그동안 수습에 힘쓴 총재가 굳은 얼굴로 서두를 떼었다.
“신민들이 입은 상처는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아샤르의 중심부인 황궁이 하필이면 지상인, 또한 능력자에게 침탈... 그렇듯 안 좋은 요소는 다 몰아서 공격당한, 곧 자존심과 두려움의 상처죠.”
정보통제가 상당히 이루어짐에도 지드팃은 북적였다. 모두 한결같은 슬픔과 그를 뛰어넘는 분노와 공포였다.
총재의 한탄에 황제도 신음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음이 다행일까....”
“이 사태를 막지 못한, 폐하와 조정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계엄령이 떨어져 있고, 황실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선도 다수 있어 지금까진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모르지만요.”
“...다들 아플 텐데도 짐의 걱정을 해줌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군. 그에 보답할 겸, 되도록 빨리 저 녀석들을 잡아 죄를 물어야지.”
그와 그의 나라는 최강자.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를 보면서도 자주 온정을 베풀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허용범위를 까마득하게 초월해, 앞으로 싫어도 강경론을 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이것으로 이영과 한 판 벌이기로 한 연극도 무산되어 버렸다고 봐도 좋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품은 꿈에는 분명 악영향이다. 그 긴 생애동안 마음에 품은 의지. 심복들과 머리를 맞댄 여러 방책. 그리고 이제껏 들인 시간이 전부 허공으로 날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 분노와 상실감은 컸다.
“네. 그래야죠. 반드시 죄를 물어야죠...”
총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조금 울먹였다.
파괴된 구역은 황궁에 가깝고, 이는 곧 관료나 그 인척이 많이 산다는 뜻도 된다.
총재에게도 슬픔의 밤으로, 하필 막내딸의 남편이자 자신의 사위가 희생자 명단에 올랐다. 오열하고 있을 귀여운 딸과, 아버지를 잃고 침울할 손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역시 가족이 납치당한 황제는 물론, 자신만큼 슬플 다른 이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다.
총재는 관료 생활 35년에 무척 자부심이 깊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처지를 후회하고 있었다.
괴로움이 조금 가라앉길 기다린 황제가 위로했다.
“...모든 것은 짐의 불찰이다.”
재빨리 눈가를 닦은 케르트는 깊이 고개를 숙여,
“...아닙니다. 폐하의 슬픔도 크실 텐데 감히 불충을 범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저들을 잡아 죄를 물어야겠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최고의 인질이 최악의 장소에 잡혔지...”
“저들의 역량도 예상을 완전히 초월했고요.”
아무래도 우월감을 지울 수 없었던 상대가, 막상 당하고 나니 버거울 만큼 강력한 존재임은 모두 절감했다.
저 로라를 거짓 항복시켜 중추에 박아두고, 그것으로 본국의 최고 전력이었을 로이엘을 적시에 끌어내어 쉽게 인질을 잡았다.
그 뿐이랴. 이 사태를 통해 황제 부부를 급히 귀환시켜 이번엔 세리사오르를 비우고, 다시 로버트가 유키나를 노려 결국 모함까지 탈취했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동쪽을 울리고 서쪽을 치고, 흩어진 적을 각개격파하고, 손해 없이 우두머리를 노려 그 아래를 무력화시켰다.
또한 행동은 신속했고 철저히 유리한 전장을 선택했으며, 원하는 결과를 얻은 후는 과욕을 부리지도 않았다.
...참으로 엄청난 전술역량이자 치밀한 사전포석이다.
가디언즈, 특히 베아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또한 끝없는 인내심으로 준비했을지...
피아를 떼어놓고 본다면 오히려 감탄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드넓은 회의실은 공기가 아니라 물이 채워진 듯, 사람들의 호흡은 괴로웠고 몸짓은 굼떴다. 가라앉은 좌중을 바라보던 황제는 천천히 입을 열어,
“저들이 무언가 요구를 할 거라고 부왕이 말했으니, 일단 들어나 보고 결정하지. 당장 필요한 군사적 조치는 취했으니 저들이 더 움직이진 못할 것이고, 아샤르에는 짐이 있으니 같은 공격을 다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건에 대한 타국의 반응은?”
외무상서 테일러가 대답했다.
“각국 정부는 큰 예외 없이, 가디언즈에 대한 지탄 성명이나 논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그 자체로 심각한 폭거. 또한 세리사오르는 지구에도 중요한 시설임이 주요 논지다.
물론 천벌을 논하거나 가가대소 웃는 쪽도 있었지만 아직은 민간 레벨에 그쳤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죠. 그 불레즈를 추천한 곳은 프랑스에다, 지구권 국가들이 모처럼 합심하고 찬성하여 올린 자입니다. 그런데 가디언즈 간부라고요? ...모종의 협의의 증거는 아닐까요?”
“자기들도 몰랐다고 발뺌하면?”
로버트의 이력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짐을 우주로 끌어올리려 다들 바득바득 떼를 썼던, 그 이유도 이것으로 추측되지만 다 정황 증거 뿐이다.”
“향후의 불순한 행동에 대비한, 그런 외교적 압박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앗어. 지금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다. 적을 더 늘릴 이유는 없어. 과실이 있다면 나중에 확실하게...”
문득 온케르가 물었다.
“...황태녀 전하는 어떻게 되신 겁니까?”
금기의 질문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로이엘은 대리청정 중이었다. 그동안은 엄연히 정부의 수반으로, 이 사태를 예방은 못했어도 수습에는 앞장서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행방이 묘연함은 무슨 뜻인가?
모두의 예상대로 황제는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차비궁 시녀장의 증언으로는, 폭거에 저항하다 중과부적...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뒤를 쫓은 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는가?”
“...이 늙은 모가지를 걸고 말씀드립니다만... 혹시...”
“그 모가지는 너무 자주 걸리는군. 그리 싸구려인가?”
입을 다문 온케르. 반면 황제는 입술을 씹으며,
“혹시 모종의 연극 가능성을 말하고 싶다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아버지가 딸을 의심해야 한다고 더 주장한다면, 그 모가지를 반드시 베어 불충의 본보기로 삼겠다. ...더 말하겠는가...?!”
보기 드문 격노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다만 온케르는 담대하게도 조금 웃더니,
“...일단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짐은 딸아이를 믿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해둬야 할 이야기가 있네.”
오랜 시간을 들여 황제는 모든 것을 밝혔다.
가디언즈 총수가 사실은 친위기사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로이엘을 납치해서 키운 장본인이자 아샤르에 대한 끊임없는 증오를 품고 있다는 것도 전부.
다만 한 번 놓아준 일, 그리고 세리사에 얽힌 것은 빼놓았다.
이젠 숨조차 쉬이 삼키지 못하는 일동에게 황제가,
“이제야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큰 혼란을 노리고 저들이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세.”
“...미리 밝히셨다면 엄청난 혼란이 있었겠지요.”
케르트가 어이없이 웃으며,
“선조들은 일생 한 번도 겪기 힘들었던 일을 연달아... 제 인생은 참 다채롭군요.”
“그러게. 덕분에 심심하진 않군.”
한탄의 웃음으로 군신은 빠르게 감정을 정리했다.
케르트트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 친위기사는 무척 강대한 적수. 국력을 집중하여 공격할 가치가 있어요. 마침 녀석이 우주에 있으니, 다시 지상에 내려오게 해서는 안 될 겁니다.”
“지상에서의 능력전은 짐도 피하고 싶군.”
“그런데... 대체 저들은 어떻게 그만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일까요? 1억 오드에 가까운 힘이 둘이나 있습니다. 그 로버트는 우현왕 전하까지 완패시켰고요. 아무리 세월을 들인다고 해서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러니 알아야 문제는 두 가지. 첫째. 그만한 능력자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인가. 둘째. 과연 어떻게 그만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일까.”
탐지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광체를 부쉈었다는 로버트는 물론, 황제에게 당한 베아르도 재수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힘을 되찾은 것도 모자라 그 능력이 몹시도 대단하니, 유키나가 일시나마 현실도피를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술상서 데카트가 거수하며,
“그런데 말입니다.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수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보고는 드렸습니다만.”
“그래... 지금도 로사 문의가 쏟아진다지?”
세계구급 혼란이 뜻밖의 방향에서 닥쳐왔었다.
아샤르 시간으로 12월 25일 2시 16분. 황궁이 공격받기 불과 5분 전 즈음, 너무나 상식 밖의 한 사건이 터졌다.
전 세계 동시다발적일 뿐더러 그 규모가 몹시 대단하여, 백도 천도 심지어는 만 단위도 아니다.
비상식적인 것이나 모르는 것은 아샤르에 물어보는 것이 최고다. 따라서 의료와 보건을 담당하는 복지성과 그 뒷받침인 기술성은, 이미 세계에서 폭주하는 문의에 혼란스러웠다.
팔찌를 살핀 황제가 머리를 흔들었다.
“갑자기 기절하듯 쓰러져 지금까지 잠만 자는, 그런 의식불명이 ...4억 명 이상이라.”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숫자다.
“상세한 증상은 어떤가?”
“신진대사가 극도로 느려져, 비유하자면 짐승의 동면과 가장 흡사합니다. 그 대부분은 당장은 뚜렷한 생명적인 위협은 없었지만...”
데카트는 아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불행히도 잠든 그 순간, 운전이나 공사 등의 위험한 작업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던, 그런 사망자가 이미 수만 명에 이른답니다...”
짧게 눈을 감아 묵념한 황제가 물었다.
“그리고... 잡아둔 능력자 전원도 같이...?”
“그렇습니다.”
안전보장원장 스즈키의 대답이었다.
같은 시기, 잡아둔 능력자이자 특별심 대기자였던 오천 칠백 일십 이 명이 일거에 잠들어버렸다.
깨워도 두들겨도 요지부동으로, 로사의 지원을 받는 의학적 처치로도 ‘원인 불명, 분석 필요함.’ 이라는 답밖에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로사가 이미 분석에 들어갔다.
이른바 수퍼 코마(Super Coma)라 할 수 있는 이 사태에, 데카트가 숨을 삼키며 말했다.
“숫자가 너무 범상치 않습니다. 충분한 병상이나 지원 체계를 갖춘 나라는 아직까지 많지도 않고요. 의료 대란, 더불어 국가 기능의 일부 마비가 예상되는지라...”
“조만간 지원 요청이 들어올 수 있겠군. ...이에 대한 대비를 하자. 로사 분석 결과는 나왔는가?”
“여전히 분석중입니다만, 기초조사 결과는 조금 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합니다.”
기술상서는 한 번 황제의 눈치를 살핀 후,
“수면에 빠진 이들은 모두, 예의 그 영자각인이 발동되고 있습니다.”
황제가 느닷없이 외쳤다.
“...뭐야? ...그럴 리가...!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 단정하는가. 데카트는 더욱 의혹의 시선으로,
“...로사도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외람되오나, 영자역학 영역에 예의 기밀 건입니다. 저희는 알 수 없으나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
놀라움을 거두고 생각에 빠졌던 황제가 문득 웃었다.
“그래. 그런 거였나. 그랬던 거였어. 자식이...”
웃음이라기보다 낮은 신음. 뜻 모를 중얼거림에 이어 용안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당혹한 신하들이 무언으로 대답을 구하던 찰나,
“정무 중 죄송하지만...”
화색과 걱정이 뒤섞인 황후가 화면에 나타났다.
“...급히 오셔야겠어요. 부디...”
더 말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알았어. ...잠시 쉬겠다. 다들 휴식하라.”
일어나는 그 모습이 묘하게 쪼그라들었다.
어두운 조명에 유독 두드러지는 밝은 화면 속. 그 안에 나타난 이는, 그녀를 경계하는 이들조차 인정하는 미모조차 흐려질 정도로 초췌했다.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딸을 보며, 입술만 물던 황제는 비로소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냐?”
“우주... 어디쯤이겠죠. ...이미 지구는 보이지 않아요.”
그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은, 조르프의 좁은 좌석에서 비상식과 쪽잠으로 사흘을 보낸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방송은 보았지만, 라피스의 다른 소식은요?”
“딱히 더 있지는 않다. 그런데 너, 그동안 연락도 끊고 지금은 우주라...? 혹시 르샤르를 추적한 거냐?”
침묵의 긍정을 읽은 그는 다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오랜 침묵 끝. 대답대신 들린 것은 흐느낌이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말해 보거라. 어서...!”
연이은 재촉에 딸은 더듬거리며 사정을 말했다.
“명을 어기고 함부로 자리를 비웠어요. 그 덕에...”
아버지는 살짝 혀를 차면서도 딸을 위로했다.
“그랬구나. ...그래도 그건 네 탓만은 아니다. ...설령 네가 있었더라도 베아르를 상대할 수는 없었을 테니.”
“그건 아니잖아요.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지도, 라피스들이 도망치거나 숨을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을지도...”
“아니야. 거기서 네가 끝까지 저항했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거다. 게다가 네가 끌려간 것보다는 훨씬 나아.”
황제는 꽤나 일그러진 얼굴로도,
“그랬다간 네가 가디언즈에 붙어버렸다는 의혹을 받을 수도 있어. 사람들이 민감해진 탓에 이미 약간은 받고 있었지만, 모처럼 호통을 쳐서 막은 상황이라고.”
“제가... 그리도 모두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던가요.”
“...이해해라.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에 정보까지 부족하다면, 설령 거짓이라도 얻으려 하고 또한 괜히 믿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상처까지 입었다면 아픔을 잊게 할, 그저 증오할 대상 역시 구하려 하지.”
살짝 한숨지은 그는 다시 은근하게,
“...네가 그 대상이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구나. 사람들에겐 아빠가 잘 설명할 테니 돌아오렴.”
약하지만 명백한 딸의 도리질이 돌아왔다.
“안 가요... 아니, 못 가요...”
“...대체 무슨 생각이냐. 안 돌아온다니?”
잠시 망설였지만 마침내, 어둠의 표정 속에서도 빛나는 눈동자로 그녀는 외쳤다.
“...세리사오르로... 갈 거에요.”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한동안은 당하는, 그런 답답 스토리가 되겠습니다.
등짝 스메싱을 당한 것에 이어 주변도 불안. 딸아이는 무슨 속셈인지...
그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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