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물로 태어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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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KY
작품등록일 :
2019.11.21 12:10
최근연재일 :
2019.12.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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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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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4. 프로릴루스의 가장 현명한 레위아

DUMMY

어떻게 된거지?


분명 다시 잠든 것 같았는데 내 손은 아직 하얀색이었다. 게다가 바닥을 비출정도로 투명했다.


이 곳은 어쩐지 코르가 있던 공터인 것 같은데, 위압감까지 뿜어내던 거대한 코르가 존재하지 않았다. 코르를 지탱하던 40개의 단상만이 그것이 있던 자리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 많던 골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단상 앞에 쓰러져 있는 연둣빛 물체가 보였다.


‘캬캬?’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까.

엎어진 물체는 캬캬가 확실했고, 투명한 손은 그것을 만지지 못하고 통과해버렸다. 숨이 끊기기 전까지 회복되려고 애썼지만 무리수였는지, 녹색 몸은 엉망이 된 상태였다. 골렘의 뾰족한 손톱에 찔리고, 찔리고, 찔리고······. 결국 그 주변은 이제 청록색이 되어버린 트롤의 피로 가득했다. 캬캬의 감기지 않은 눈에서는 녹색 눈물이 흐른 자국조차 명확한데, 나는 그 눈을 감겨줄 수 없었다.


- 챙그랑!


침울해진 내 뒤로 들린 거친 쇳소리는 나에게 더 충격적인 장면을 선사했다.


골렘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치던 벽면. 그리고 그 곳에 박제라도 된 듯, 카이가 매달려 있었다. 사지가 꺾인 채로 단단한 흙벽에 파묻혀 이제야 숨이 모두 사그라든 걸까. 그의 엉망이 된 몸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발끝으로 떨어지며 만들어놓은 웅덩이 옆에 그의 검은색 검이 꽂혀 있었다. ‘검사는 검을 품고 죽는다’고 했던 것처럼 그는 숨이 사그라들기 전까지 검을 손에서 놓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날개까지 꺼내 발버둥치며 최후의 최후까지 발악한게 분명한데도, 고개 숙인 그 또한 분함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지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나 때문이다.


내가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서 카이가 죽었다. 조각상을 제대로 끼워넣었다면 이 정도로 잔혹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교수의 제안을 수락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야, 아카데미를 오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 그 때, 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도 함께 죽었어야 했어······.


『첫번째 꿈』


1.


“키헥······!”


멈췄던 숨이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눈가가 축축했다. 눈가를 쓸어내린 손에 투명한 눈물이 묻어나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연두빛의 손이 보였다. 그래, 꿈이었구나. 그 소름끼치는 장면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주변이 소란스럽다는 것이 느껴졌다.


“캬캬? 울어?”


바르작거리며 일어나는 나에게 칼리가 제일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끼에······.”


온 몸에 힘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에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봐서 이것은 결국 정신적인 피로인 듯했다.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멍한 정신으로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이 그 상태를 칼리가 먼저 알아줬다.


“단상에 조각상을 넣자마자 골렘이 모두 멈췄대. 카이씨가 정말 아슬아슬했다더라. 그리고나서 바로 푸시르 마을하고 거울을 연결했고- 그래서 좀 북적북적해. 너는 괜찮니?”


“끼이······.”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칼리의 말대로 주변은 거의 정리가 다 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무너진 골렘의 잔해가 보였고, 마을에서 온 푸시르들은 그것들을 정리해서 옮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이가 보이지 않았다. 푸시르의 두 배는 되는 몸집이 숨긴다고 숨겨지는게 아닐텐데······?


“카이씨는 코르의 파편을 가지고 아이움으로 돌아갔어. 작업을 시켜야 된다나? 곧 돌아 올거야.”


그러고 보니 나는 카이의 옷자락 위에 누워있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일단 벌떡 일어나자 그걸 어떻게 생각했는지 칼리가 물었다.


“배고프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배가 시끄럽게 울었다.


“밥 먹으러 가자.”


칼리가 앞장을 섰고, 나는 카이의 옷자락을 갈무리해 들고서 그 뒤를 따랐다.

돌아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다시 돌아본 곳에는 거대한 코르가 스러져가는 검은 빛을 내며 일렁이고 있었다. 물론 곧 다른 색으로 바꼈지만. 왜 였을까? 그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더 화려하게 치장한 촛불처럼······.


피폐해진 정신은 생각외로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칼리가 차려준 밥을 다 먹은 다음에도 정신이 몽롱했다. 너무 리얼한 꿈이라서 였을까? 아니면 원래의 몸으로 꾼 꿈이라? 아, 아니었다. 그저 이 몸으로 처음 꾼 꿈이기 때문이겠지.


환하게 금빛으로 일렁이는 코르를 바라본다.


설마 이것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일까.


“캬캬.”


칼리가 뒷정리를 해야한다며 멀어진 후 또 다른 푸시르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재키였다. 그의 어깨 위에 있던 은빛 에키 로가 내 무릎 위로 쪼르르 달려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반가운 모양이었다.


“로도 네게 익숙해진 모양이로군.”


“끼이이······.”


로의 바늘털을 쓰다듬으며 재키를 바라봤다. 일 없이는 말을 걸 푸시르가 아닌데, 무슨 일이지?


“몸은 괜찮나?”


아아, 사소한 일인가보다.


“끼에!”


나름 힘찬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번에는 재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흘동안 같이 지내면서 지지고 볶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칼을 들고 다가오기도 했고, 온 몸을 주물럭거리기도 했······. 아니, 이건 재미있는게 아닌데?


어쨌든, 카이가 오면 나는 여기를 떠나야 겠지. 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섭섭해졌다. 말이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았다면 이런 사소한 대화도 쉽게 끊기지 않았을 거고,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텐데······.


“카이와의 여행이 끝나면 언제든 찾아와. 그때야말로 그 가죽을 제대로 연구할테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재키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해대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빼자 재키가 농담이라며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른 푸시르의 부름에 그도 곧 자리를 옮겼다. 로도 어느새 그의 어깨에 얌전히 올라 앉아 있었다.


다른 푸시르들은 나에게 일정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가끔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는 걸 보면 칼리나 재키처럼 나를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지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래라도 했을까? 아니면 다른 명령이라도 받은 걸까? 그러고 보니 코코도 보이지 않았다. 음- 뭐,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겠지?


재키가 일을 하러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카이가 돌아왔다.


“가자.”


골렘을 상대한 후에도 전혀 휴식을 취하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끼······?”


그런데 오자마자 가자니, 어디를?


“해야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움직이도록 하자. 레이 쪽도 거의 준비가 끝났더군.”


해야할 일?


그의 말에 의문을 표했지만, 그는 그걸 설명해줄 정도의 여유도 없어보였다. 이럴 바에야 저들의 마을에서라도 쉬어가면 좋을텐데. 물론, 그는 그럴 생각도 없어보였지만. 아니다, 여기서 쉬다가 시달리는게 싫은 것 같았다.

그는 품에서 거울을 꺼냈다. 그의 손바닥에 쏙 들어갈만한 작은 크기의 거울이었다. 그것을 바닥에 툭, 내던지자 마치 이 사막에 다다르게 했던 거울과 같은 모습으로 커졌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는 않았다. 카이가 몇 번이나 저것을 통해 아이움까지 왔다갔다 했었으니까. 물론 내가 직접 통과하는 건 두 번째였지만.


첫번째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거울 안으로 들어간 것은 카이였다.


아아······. 재키나 칼리하고 인사할 시간이라도 주지. 뭐가 저리 급해서.


툴툴거린 나도 카이가 통과한 영향으로 흔들리는 표면이 잔잔해지기 전에 재빨리 거울 안으로 들어갔다. 이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솔직히 기대는 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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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Chapter 06. 피스트리스의 비행 E. 19.12.28 39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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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 06. 피스트리스의 비행 19.12.15 43 0 10쪽
26 Chapter 06. 피스트리스의 비행 19.12.14 47 0 7쪽
25 Chapter 05. 바다와 진주 E. 19.12.13 55 1 6쪽
24 Chapter 05. 바다와 진주 19.12.12 47 0 13쪽
23 Chapter 05. 바다와 진주 19.12.09 58 0 13쪽
22 Chapter 05. 바다와 진주 19.12.08 49 0 9쪽
21 Chapter 05. 바다와 진주 19.12.07 46 1 4쪽
20 Chapter 04. 프로릴루스의 가장 현명한 레위아 E. 19.12.06 52 1 7쪽
19 Chapter 04. 프로릴루스의 가장 현명한 레위아 19.12.05 53 1 10쪽
18 Chapter 04. 프로릴루스의 가장 현명한 레위아 19.12.04 56 1 9쪽
» Chapter 04. 프로릴루스의 가장 현명한 레위아 19.12.03 55 1 8쪽
16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E. 19.12.02 52 1 5쪽
15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19.11.29 54 1 10쪽
14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19.11.28 57 1 10쪽
13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19.11.27 125 1 10쪽
12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2 19.11.26 71 1 11쪽
11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19.11.25 79 1 11쪽
10 Chapter 03. 붉은 사막의 심장(cor) 19.11.24 83 1 5쪽
9 Chapter 02. 하나의 태양이 있는 곳으로, 괴상한 몸을 가지고 E. 19.11.24 88 2 4쪽
8 Chapter 02. 하나의 태양이 있는 곳으로, 괴상한 몸을 가지고 19.11.23 113 2 11쪽
7 Chapter 02. 하나의 태양이 있는 곳으로, 괴상한 몸을 가지고 19.11.22 129 1 10쪽
6 Chapter 02. 하나의 태양이 있는 곳으로, 괴상한 몸을 가지고 19.11.22 180 1 10쪽
5 Chapter 02. 하나의 태양이 있는 곳으로, 괴상한 몸을 가지고 19.11.21 197 4 6쪽
4 Chapter 01. 두 개의 태양이 빛나는 세계 E. 19.11.21 188 2 5쪽
3 Chapter 01. 두 개의 태양이 빛나는 세계 19.11.21 215 2 11쪽
2 Chapter 01. 두 개의 태양이 빛나는 세계 19.11.21 29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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