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의 증명은 모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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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량
작품등록일 :
2019.11.22 09:24
최근연재일 :
2019.12.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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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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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DUMMY

“이건 진짜 위험한데.”


아르윈 식으로 설명하자면, 숙박비를 세 달 정도 밀린 후, 여관집 아주머니에게 잡혀 두 손 두 발 다 묶인 상태보다 3배는 더 위험했다.


금화 100냥이 눈앞에 굴러들어온 상황이다. 어찌 수박이 넝쿨째 들어왔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가 하면, 바로 그 수박 안에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의뢰라는 것은 무언가를 습득한 시점에서 끝이 아니다. 그 습득물을 의뢰인에게 가져다주어야 비로소 의뢰를 완수하게 된다.


지금 소녀에게 걸려있는 돈은 무려 금화 100냥. 검소하게 살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거기다가 그 의뢰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다. 그렇다. 말하자면 거리의 모든 인간이 ‘적’인 상태였다.


의뢰를 받으려던 소위 한 실력 하는 기사나 모험자든, 뒷골목의 깡패든 금화를 차지하기 위해 주저 없이 덤벼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싸움에는 강하지 않은 아르윈이라면 아마 엉망진창으로 당하고 소녀도 뺏길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건 다 괜찮아도 아픈 건 질색이다.


아르윈은 이내 결단을 내리고 산뜻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못 본 걸로 하자.”


아르윈은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금화 100냥은 매우 아깝긴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목숨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한번 마음을 먹으니 포기하기도 참 편했다.

그럼 이만 소녀여. 너의 앞길은 니가 개척하도록 해라. 아기 사자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어미의 마음으로 나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노라.


아르윈은 마지막으로 두 손을 바르게 모으고 소녀에게 인사했다.


“그럼 좋은 여행되시길.”

“잠깐 기다려주세요!”


숙였던 고개를 드니 그 곳에는 방금까지는 누워있던 소녀가 언제 기절했냐는 듯이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선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상태가 심상치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앞에 멈춰서 소녀가 발그레 한 얼굴로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쉿, 감사 인사는 필요 없어.”


아르윈은 검지손가락으로 소녀의 입을 막았다. 으으음, 하는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 건 서비스다. 소녀의 얼굴에 홍조가 더욱 더 짙어진다.


나도 참 죄 깊은 남자구나. 아르윈은 살짝 눈을 감았다.


“그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 거울을 봐도 나도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걸. 하지만 미안해, 오빠는 지금 중요한 볼일이......음? 뽀각?”


말을 마치기도 전에 느껴지는 둔탁한 느낌에 아르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무언가 싶어 소리의 근원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소녀의 발과.......그 발에 힘껏 걷어차인 자신의 사타구니가 보였다. 그리고 몰려오는 후폭풍.


“으아아악!!!!!!”


커다란 절규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아랫배를 부여잡고 꼴사납게 뒹구는 아르윈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소녀는 더럽다는 듯 입술을 쓱쓱 닦더니 그래도 못 참겠는지 길바닥에 침을 뱉었다.


“으그극......”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준이 되려면 좀 더 회복해야할 아르윈씨는 여전히 바닥을 구르고 있었어도 고개를 들어 소녀를 노려봤다. 처음의 천사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껏 찌푸린 표정이 마치 악마를 연상케 했다.


“뭐하는.....짓이야......”


겨우 회복된 아르윈이 가까스로 말을 꺼내자 소녀는 기가 차다는 듯이 역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건 제가 할 말이죠! 이런 어둡고 깊숙한 곳에 연약하고 아름다운 소녀 혼자 놔두고 가려 하다니! 인간이 할 짓인가요!”

“어라 실은 깨있었어?”

“예, 당신이 제 몸을 음란하고 끈적한 시선으로 쳐다보셨을 때부터 말이죠.”

“볼 것도 없더만......”

“뭐요?!”

“죄송합니다.”


슬슬 남자가 한번쯤 겪는 무시무시한 통증도 가라앉았겠다 자신을 변태로 몰아가는 화제도 불편하겠다, 아르윈은 일어나서 먼지를 털며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어째서 하늘에서 떨어진 건데? 요즘 도시에선 그런류의 소설이 유행하고 있나?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와 ‘boy meets girl~’하는 소설은 한 물 갔는데?”

“겨우 소설 따위를 따라하자고 목숨 걸고 뛰어내리겠어요?”


소녀는 끝이 없는 경멸을 담아 아르윈을 쳐다보았다. 아직 어린 소녀가 지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새디스틱한 표정이었다.


비록 M은 아니지만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다. 이대로 날카로운 시선을 즐겨도 나쁘진 않다만 그러기엔 다른 시선들이 방해다.


“거기 세 명, 훔쳐보지 말고 나오지 그래?”


아르윈의 말에 소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느껴지던 끈적한 시선의 정체에 짐작 가는 곳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아무도 없던 골목길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몸을 드러냈다. 왼쪽의 골목에서 비교적 마른 남자가 한명, 그리고 오른쪽의 골목에서 통통한 한 명. 그리고......


“......어라? 두 명인데요? 아까 세 명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바....바보같긴! 다른 한명은 기회를 엿보면서 숨어있는 게 당연하잖아! 서, 설마 내가 쪽팔리게 숫자를 트,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지, 아르윈은 속으로 불안한 마음을 삼키며 남성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아르윈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죽이고 싶다! 시간을 되돌려서 1분 전의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다!”

웅크린 채 바닥을 쿵쿵 치는 아르윈을 자리의 모두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남성 중 큰 덩치의 사람이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게 말을 꺼냈다.


“저기, 한창 죄송한데, 실은 저희가 용무 있는 건 거기 여자애 뿐이라서요. 그쪽은 그냥 가셔도 괜찮은데요.”

“하하, 그렇게 해주실래요? 친절하신 분이시네. 그럼 이만. 좋은 시간 보내세요......켁!”

“그럼 이만이 아니잖아요!”


아무 일 없었던 듯 부드럽게 옆을 지나가려던 아르윈의 목덜미가 소녀에게 덜컥 잡혔다.


“위기상황에 놓인 소녀를 못 본 체 하는 건 남자로써, 아니 인간으로써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걱정 마, 이제 와서 그런 거에 연연할 인간은 아니니까. 무엇을 숨기랴, 고향에서는 내 이름이 욕 대신에 쓰였어.”

“그거, 자랑 아닌 건 알고 계시죠......?”

“농담은 이쯤하고, 너는 뭐하시는 분인데 이렇게 장정 두 명을 달고 다니니? 어디 높으신 분이라도 되냐?”

“그, 그건......”


소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눈을 맞추려고 하고 있지도 않다.


눈에 띄게 망설이며 옷가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소녀다. 물어본다고 한들 간단하게 알려줄만한 사정은 아닐 거다.

그리고 역시나 대답은 남자들 쪽에서 들려왔다.


“들으시면 더 이상 외부인 취급을 해드릴 순 없습니다만.”

“흥미로운 얘기네. 그럼 무슨 취급을 해주실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살짝 미소 지은 남자들은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댔다. 반짝이는 금속이 그들의 허리춤에서 빛났다. 상당히 손질이 잘 된 듯 보이는 검이었다.


“시체 취급을 해드리죠. 자, 이제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은 없습니다. 혼자 못 본 체 도망가시던가, 아니면 덤벼보시겠습니까?”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태세였다.

아르윈도 지지 않고 허리춤에 숨겨둔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댔다.


모두의 시선이 꽂힌 가운데, 그가 꺼낸 것은 하나의 기다란 은색 바늘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능숙한 듯 바늘을 몇 바퀴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이런 건 어때?”


그리고선 그 날카로운 바늘을 소녀의 하얀 목덜미로 가져다댔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 섬뜩한 기분, 온몸에 돋은 소름은 그것만으로 설명할 순 없었다.


목 가죽 하나를 통해 느껴지는 선명한 죽음의 기운이 소녀를 덮쳐왔다.


“현상금을 선불로 준다면 넘겨줄 수도 있는데......금화 100냥 중 50냥, 어때?”


아르윈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남자들은 혀를 찼다. 소녀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라도 났다간 달아나는 건 자신들의 목이었다.


통통한 남자가 시선을 보내자 비쩍 마른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돈을 아끼지 않고 소녀를 확보해야만 할 때다.


다행히도 수중에는 임무에 착수하기 전에 상사에게 받은 50냥이 존재했다. 커다란 돈이라도 소녀의 신병을 확보하는 쪽이 더 현명하리라.


마른 남자는 옷을 뒤적거리고는 작은 보따리를 아르윈쪽으로 던졌다.


정확히 발치에 떨어진 보따리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보따리의 묵직함을 보자면 아르윈의 요구를 들어주려 한다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정확히 50냥이다. 확인해보도록.”


아르윈은 휘파람을 불며 재주 좋게 발로 보따리를 올려 찼다. 물론 한 손은 소녀의 목덜미에 고정시킨 채였다.


“까놓고 아저씨 둘 다 한 솜씨 할 것 같지. 거기다가 애초에 나는 만나자마자 사타구니를 발로 차는 이 여자를 지켜줄 의무도 호의도 없거든.”

“현명한 선택이다.”

“큭.”


콧노래를 부르며 밉살맞게 돈을 세고 있는 아르윈에게 꼼짝없이 잡혀있는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노뿐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 남자에게 기댄 것?

이 마을로 들어온 것?

그 이전에 집을 박차고 나와 버린 것?


아니면 없었으면 좋겠다며 몇 천번, 아니 몇 만번을 생각한 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버린 것?


소녀는 눈을 감았다.

필사적으로 힘을 주어 작은 틈새 사이로 삐져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아직이야......”

“오케이, 확인 완료. 응 뭐라구?”

“북쪽, 조력자, 빨간 광대.”


무슨 말을 하느냐는 아르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는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얼굴을 돌려 아르윈을 쳐다보았다.


소녀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얼빠진 얼굴의 동태 같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이 내가 찾는 빨간 광대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할게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있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루어야 하는 일이 있어.”

“헤에, 그 일이 뭔데?”


아르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기분 탓인지 상대를 비웃는 불쾌한 듯한 웃음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똑바로 들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상 말하지 마십쇼!!! 민간인을 끌어들일 생각이십니까!!”


마른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뚱뚱한 남자도 허둥지둥 당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소녀는 무시하듯 살짝 눈을 감았다. 마른 남자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 그러나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애써왔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입을 막아! 말하지 못하게 해! 너도 듣는 순간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고!!”


소녀는 눈을 떴다. 아르윈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그들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소녀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처음부터 그의 눈엔 존재 했고 자신에게는 없었다. 무언가를 드러내는 각오가 말이다.


“저는 아이르펜 왕국 제 6 공주 체리 드 아이르펜.”

“그만!!”

“이 나라를 무너뜨리는데 협력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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