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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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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ewtDrag..
그림/삽화
침묵소녀
작품등록일 :
2019.11.28 00:52
최근연재일 :
0000.00.00 00:00
연재수 :
1 회
조회수 :
6,342
추천수 :
232
글자수 :
150,738

작성
19.11.28 01:05
조회
759
추천
12
글자
10쪽

prologue - 울 타란의 도시 이아기스만

DUMMY

0.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어느 시인의 그러한 무구가 문득 떠오른 것은, 지은 죄 많은 삶 때문일 것이다.


노인의 삶은 남들이 보기에 아름다워 보였을지 몰라도,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 수치스러운 삶이었다.


‘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지.’


죽고 보니 이렇게 부질없는 것이 또 없었다. 왜 놓지를 못해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선의 관점에서 노인이 한 행동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옳지 못한 일을 많이도 저질렀기에 그는 말년에 이르러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실제로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으나 죽음 이후에 받게 될 형벌을 상상하면 저도 모르게 두려워지고 말았다.


업보라고 했던가? 자신에게 주어진 업보가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이다.


‘정말로 지옥이 있을까.’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다. 꾸준히 건강관리를 한 덕에 천수를 누리기까지 그 흔한 병치레 한 번 겪은 적이 없다.


‘지옥에 간다면······ 싫을 것 같네.’


유황불에 산채로 불타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쉬이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만약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선한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가벼운 다짐을 새기며 유구한 어둠 속에 잠시 눈을 감는다.




어둠으로 빚어낸 듯 물컹물컹하고 새까맣던 세상이 밝자, 흐릿한 시야 너머로 온갖 것이 일렁였다.


차가운 쇠창살 안에서, 어미 고블린은 둘째를 출산하기 위해 힘을 주던 중, 그대로 요절하고 말았다.


어미 고블린의 이름 없는 첫째가 따뜻한 품을 찾아 목이 터져라 울어봤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없었다.


몇 분을 그리 울고 있는데 쇠창살문이 열리더니 첫째의 조그마한 몸을 우악스러운 손길이 붙들었다.


인간 노예상이 자신의 주먹보다도 작은 고블린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리며 히죽 웃는다.


“수컷인데? 살려둘 가치는 있겠어.”


뒤에 서서 지켜보던 동료가 일을 보챘다.


“그보다 빨리 배를 갈라봐. 안에 몇 마리 더 있을 거야.”


“그래. 얘는 니가 데리고 있어.”


어미의 죽음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상품가치 있는 새끼를 몇 마리나 배었는가가 중요할 뿐이지.


둘째는 산로에 끼어 이미 죽은 지 오래고, 셋째, 넷째가 갑자기 들이닥친 차가운 바람에 놀라 울기 시작했다. 첫째보다 조금 작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셋 다 수컷이네. 자, 여기 강보.”


두 사람은 세 마리 고블린을 강보에 싸서 안고는 따뜻하게 데워 온 우유를 먹였다.


그 하는 양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던 첫째는 생각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마저 생각을 이어가려 했지만, 갓난아기의 몸은 포근한 천의 감촉과 따뜻한 우유의 맛에 빠져 금방 잠에 들고 말았다.


그는 죽은 노인의 환생이었다.




세 살이 된 가름은 열심히 손을 놀렸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통통한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인지 오래다. 더 이상 껍질이 벗겨지는 일도 없지만 부족한 근력은 늘 생각을 안 해 일이 항상 고되다. 고블린은 인간에 비해 성장이 빠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 살 아기의 몸은 여린 것이다.


땀을 바가지로 쏟아내며 한참을 빻으니 개다래 말린 것이 고운 가루가 되었다.


‘이만하면 됐겠지?’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로 오종종 걸어갔다. 책상에 앉아 여러 시약으로 실험을 하고 있던 그의 주인이, 느껴지는 인기척에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주인님, 개다래열매는 이 정도면 될까요?”


마법사는 손가락으로 가루를 살살 비볐다. 색만 다를 뿐 방앗간에서 정제한 밀가루 못지않게 곱다.


“음, 충분해. 가름, 조금 쉬게 해주고 싶다만 나는 아직 실험할 게 많이 남아 있구나. 오늘은 저녁 준비를 해다오. 할 수 있겠지?”


“그럼요. 그라탱을 만들 거예요! 주인님이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자, 여기 돈이다. 두 개에 두 개를 더하면?”


“네 개요!”


“항상 얘기하지만 너는 머리가 참 좋아. 오늘도 믿고 맡기마.”


“헤헤.”


가름은 돈 주머니를 들고 공방을 나섰다. 3년 전, 노예상 소유의 암컷 고블린에게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노예의 낙인이 찍히고, 노예로서 교육을 받았다.


노예상을 따라 정처 없이 떠돌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마법사가 그를 사들였고, 번호로 불리던 그에게 가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공방에 데려와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시켰다.


‘처음엔 정말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평생을 한국의 자본가로 살아온 이에게 노예제도라는 건 연이 없는 이야기였다. 링컨 대통령의 해방령 선언 이후 백 수십 년이 지났으니 그것은 가끔 미디어에서나 접할 수 있는 오래된 악습에 지나지 않았다.


인권 없는 노예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도구일 뿐. 존중과 존엄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자신도 그런 혹사를 당하다 죽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루하루 불안을 삼키던 그에게 지금의 주인을 만난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3살 어린애에게 고된 노동을 시키면 한국에서야 잡혀갈 테지만, 그 정도로 유복한 삶을 바라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그는 고블린. 만 2세가 되던 날에는 인간 나이로 10살 정도의 성장을 보였고, 이 세계에서 10살이라 하면 부모의 일을 도와 이것저것 경험을 쌓을 나이다.


그것이 울 타란 왕국의 상식이고 삶의 방식이니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되레 노예의 똑똑함을 눈 여겨 보고 다양한 지식을 쌓게 해준 것은 감사해 마지않을 일이다.


지난 일 년 사이, 글 쓰는 법을 배웠고, 마법의 기초를 습득했다. 조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지식의 값으로 궂은 잡일을 도맡아 해결해줬다고 했을지 모르나 기술의 전수에 있어서 까다로운 이 세계에서, 지망생도 아닌 노예에게 가르침을 내려준 것은 누가 봐도 파격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가름은 주인의 결단 아닌 결단에 감사했다. 인체실험을 위한 실험체로 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야 충분했으니까.


“어우~”


자신의 팔 다리가 키메라(다양한 생물의 인자를 조합해 만든 인공생명체)의 재료가 된 상상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린다.




마법사의 공방이 자리한 울 타란 왕국은 고대 멕시코와 유럽의 지중해 인근 문명을 합쳐놓은 듯했다.


신흥 문물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물건들이 정확히 백 년 전을 기점으로 해서 해로를 타고 유입된 덕에 이런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 왕국의 남부 중추 도시 중 하나인 이아기스만은 수도에 비하면 오지나 다름없지만 수많은 촌락이 모여 도시를 이뤘고, 열대우림을 중심으로 한 상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물적 자원이, 이곳 자연에는 넘치듯 흐른다. 마법의 주재료가 되는 것도 많았기에 마법사는 제국을 벗어나 왕국 최남단에 자리 잡았다.


장을 보러 가는 길. 기암괴석을 깎고, 쌓고, 파서 만든 이 나라 특유의 건축방식은 보는 맛이 있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지구에서도 이 세계 그 어디에서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없었다.


발전된 문명을 가진 대한민국과 비교하자면 당연히 편한 것보다도 불편한 게 더 많다. 무엇보다도 위생 개념이 희박해 어딜 가도 더럽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기껏 정비해놓은 수로에 분뇨를 버리질 않나, 식수라 할 수 있는 우물물에는 석회가 가득해 마시기도 껄끄럽고 잘 씻기지도 않으면서 비누조차 발명되지 않았다.


장점이 더 많으냐 물으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 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높지 않은 건물 덕에 확 트인 시야와 미세먼지 하나 없이 푸른 하늘,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독특한 생활양식과 온갖 종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각별한 기분을 느낀다.


그 선명한 감각은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강하게 인식시켜주었다.


그는 비록 노예이지만 거기서 자유를 느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을 테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보다도 마음이 풍요로운 삶이 더욱 살만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국에 살던 시절, 풍족할지언정 결여돼 있던 그때. 행복의 직관적인 목표인 돈을 쫓아 힘겹게 달리던 나날. 쌓으면 쌓을수록 부족해 보이는 욕심은 한도에 끝이 없었고,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불안을 끌어안고 살았다.


그러나 이 세계에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얽매는 것도 강박으로 이끄는 것도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삶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목표가 없지만 부족함 없이 그냥 그런대로 흘러가는 삶도 분명히 살만하다고 생각했고, 그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했다.


작가의말

 가름의 일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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