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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세계를 정복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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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명가
작품등록일 :
2019.12.03 22:32
최근연재일 :
2019.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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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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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 인간 (3)

DUMMY

찾아온 아침.

누렁이와의 약속이 생각났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제법 멋드러진 정장을 갖추어 입었다. 평소라면 만져보지도 못했을 행커치프까지 합쳐서. 입은 것만 보아서는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 입을만한 의상을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았다.


“이래도 괜찮은 거야?”

“응!”


검은 드레스를 입은 냥이의 눈이 빛난다.

확실히 왕급 인물은 애완 인간도 뭐가 다르긴 하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워 질 텐데 굳이 이런 꼴을 왜하는 건지 궁금증이 들었지만 일단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부탁할 게 있어.”

“뭔데?”

“······좀 집사같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해.”


집사.

중의적 표현인가?


“정말 집사 말이야. 시중을 들어주는 그런 집사.”


어려울 것도 없기에 가볍게 승낙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냥이는 내 목에 걸려있는 목줄에 쇠사슬을 걸었다.

쇠사슬을 쥔 냥이는 문 앞으로 걸어 나가고, 나는 한 발자국씩 사슬에 끌려 나가듯 움직였다.


“고개 숙여.”


말이 차갑다.

나는 그게 연기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말을 받들어 고개를 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갇혀있기만 했던 문이 벌컥 열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실비아님. 준비는 다 되셨는지요?”

“그래.”


단답식 대답과 함께 냥이는 레드 카펫을 밟으며 걸어나갔다.

냥이를 뒤로한 시종이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경멸이 가득 담긴 눈초리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찮은 녀석”


계속해서 들려오는 다양한 욕설을 뒤로 하고.

나는 꾸준히 냥이를 따랐다.

수개의 문을 넘어서 마침내 다다른 바깥의 새벽 공기에 나는 줄곧 내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씩 해가 떠오르고 있는 이른 아침의 주홍색 세상.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도 그리 길지는 못했다.


-철컥


왜냐하면 나를 동여맨 쇠사슬이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으니까.

냥이와 나, 그리고 몇 명의 시종은 건물 옥상에 배치된 거대한 헬기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헬기의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동한 시간은 1시간 정도.

처음 보는 거대한 건물의 정문 앞에서 헬기를 내렸다.

나는 모든 라미나들이 내린 후에 그들을 따라 내렸다.


“어서 오세요, 실비아님···뒤에 있는 그 인간은?”

“애완 인간이다. 김시현을 잘 알지?”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거대한 문이 열린다.

문 안은 커다란 연회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수십 개의 탁자마다 향초가 놓여있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잔뜩 달려 있었다.

라미나들은 그곳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서로 시끌벅적하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평범했다.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 앞에 드러난 광경에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


왜냐하면 그곳에는 수백 명의 인간이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닥을 기고 있었으니까.


“아, 드디어 오셨군요 실비아님. 저희 테이블에 합석하시겠습니까?”

“좋네.”


방금 합석을 권유한 그 남자의 발 옆에도 누더기를 뒤집어쓴 여성 인간이 바닥에 엎드려 있다.

동공에 빛이 없다.

찢어진 누더기 사이사이로 보이는 각종 폭행의 증거들이 눈에 띈다.


-철컥


그걸 잠자코 보고 있으니 냥이가 슬쩍 쇠사슬을 강하게 잡아 당겼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보내온다.

조금만 참아달라.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인간이다. 김시현. 너도 잘 알겠지?”


냥이의 말에 순간 남성이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따지는 어투로 냥이에게 말했다.


“실비아님. 대체 왜 이 자가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겁니까? 이 자는 인간입니다!”


인간.

그 말에 주위에 몰려 있던 라미나들이 순간 우리들을 향해 시선을 보내온다.

바닥을 기던 인간 몇몇도 나를 바라본다.

마치 배신당한 것 마냥 지어오는 시선들에 나는 고개를 숙여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맞지. 네 말대로 이 자는 인간이다.”


냥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너무도 냉정한 탓에 오히려 차갑게 느껴졌다.

냥이가 뚜벅뚜벅 식탁 위로 걸어간다. 그곳에서 곧장 와인 잔 하나를 들어 올렸다.


-촤악!


그리고 아무 망설임 없이 그 와인을 자신의 왼 손에 쏟았다.


“대체 무슨 짓을······?”


경악하는 라미나들을 뒤로하고.

냥이는 아무런 색도 가지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닦거라.”


닦아라.

집사처럼 행동하라.

대충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레지스탕스의 대장으로서 모든 의지가 꺾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한 채 집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애완 인간의 모습을 보여라.

이제야 알겠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그대로 냥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손을 뻗어 냥이의 손목을 쥐고. 무릎을 꿇어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와인으로 젖어있는 손가락을 핥았다.


“······무슨.”

“세상에.”

“대체 어떻게?”


레지스탕스의 대장.

라미나들이 공포에 떨던 복수에 찬 원귀.


그 인간이 무릎을 꿇었다.

손을 핥는다.

굴복했다.


‘이거면 충분하냐.’


닦아주는 방법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게 가장 냥이의 의도에 적합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행위를 지속하는 2분간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냥이의 손에서 얼굴을 떼었고. 이내 다시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인 자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슬쩍 냥이와 눈을 맞추었다.

어쩐지 무언가 나사가 빠진 듯 동공이 탁했다. 얼굴은 붉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아 보였다.


“······앗 크흠. 큼.”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냥이는 헛기침을 한 후 쇠사슬을 이용해 나를 바로 자신의 옆으로 끌고 왔다.

한쪽 팔로 내 허리를 감싸며 냥이는 말했다.


“내가 키우는 애완 인간이다. 다른 녀석들과 같으면 재미가 없지.”


라미나들은 장고(長考)하는 표정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하나 둘 씩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애완 인간은 자신의 부유함을 나타내는 증표.

아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간도 그랬으니까.’


중세 귀족이 자신의 시종을 꾸미듯.

기형의 아이들을 수집하여 자신을 뽐내듯.

과거 갑부들이 비싸기만 한 명품으로 치장하여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듯.

라미나들의 지식과 감정은 인간과 매우 흡사했고. 자신을 뽐내기를 좋아하는 증후군은 이곳에서도 역시나 힘을 발휘했다.


“잘 알겠습니다. 실비아님. 레지스탕스의 대장을 저렇게 만들다니······과연 실비아님이십니다.”

“별 거 아니다. 그나저나, 너희의 인간들은 아직 길들여지지 못한 듯하구나?”


살짝 비웃는다.

그에 모든 라미나들의 얼굴에 수치심이 서렸다.

무언가 다짐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지략에 감탄을 표했다.


“그럼 파티를 시작하지요.”


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했다.

수많은 라미나들이 냥이에게 달라붙어 어떻게 나를 굴복시켰는지를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냥이는 음식을 주거나 상냥하게 대해주다가도 거칠게 다루라는 등 이런저런 해법을 제시했다.

태도가 너무 태연해서 지금까지 내가 당해왔던 것이 사실 길들이기 위함이었던 것인가 햇갈릴 정도였다.


“그럼 김시현도 그렇게 했단 소립니까?”

“그렇지, 어지간한 인간은 음식이면 넘어온다네. 김시현은 다른 이들보다 더 거셌지만 오랜 기간 동안 길들이니 금세 넘어 오더군”


왜일까.

뭔가 괘씸했다.

어젯밤만 해도 내 배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던 녀석이 저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는 게 배가 아팠다.

그런 마음을 품으며 묵묵히 서있자니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던 냥이가 나에게 고개를 돌려 왔다.


“시현?”


장단은 맞춰 주마.


“네 주인님 무슨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습니까?”

“무릎을 꿇어라.”

“옙.”


내 행동에 주위에서 탄성이 울려 퍼진다.

마치 손을 내미는 걸 훈련받은 강아지를 받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무서워하지 않는군요.”

“고문을 하지 않고도 인간을 굴복시킬 방법이 있을 줄이야.”

“놀랍네요.”


에라이.

니들 알아서 생각해라.


“가 봐도 좋다.”


내 표정이 굳은 걸 눈치 챈 냥이가 쇠사슬에서 손을 떼었다.

나는 일시적으로 자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테이블에 있는 음식들을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저 멍하니 주위를 걷거나 기어 다니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나는 주위를 묵묵히 걸어 다녔다.

그리고 여러 라미나들을 바라보았다.

“우와!”


뒤에서 감탄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새파란 꼬마가 눈을 반짝 거리고 있다.

갈색의 머리에 제 몸집만한 풍성한 꼬리가 눈에 띈다.


‘다람쥐?’


아이의 종에 대해 물음을 품을 쯤.

그 아이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자신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인간이야?”

“응~그렇단다.”


사이좋은 모녀의 모습.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달려와서 나에게 조그마한 스틱 과자를 내밀었다.


“먹어!”


인간이 신기한가보다.

생각해보니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너나 나나 귀랑 꼬리 말고는 별 차이 없다고 다그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에휴’


손을 뻗어 그 과자를 집고는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오드득 오드득 씹히는 곡물 스틱 과자는 맛있었다.


“우와아아!”


대체 뭐가 즐거운지 꺄르륵 웃는 아이.

또 다시 과자 봉지에서 과자들을 꺼내 나에게 내밀어 왔다.


-오도독


주니까 먹었다.

왠지 거절하면 울 것만 같았으니까.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괜찮아요.”

“헉! 엄마, 인간이 말했어!”


깜짝 놀라는 아이.

대체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인간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을 한 게 신기하다.


“이름이 뭐야?”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자신의 궁금증만을 물어 왔다.


“시현”

“그렇구나! 나는 메리야 메리!”


그리 말하며 작은 손을 내밀어 온다.

그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에 메리가 꺄륵 웃었다.


“너 뭐해?”


그런 메리에게 한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조금 더 성숙해 보이지만 기껏해야 7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너 내가 이런 놈들하고 놀지 말랬지?”

“힉! 그래도······.”


나와 메리를 몇 번 둘러보던 아이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메리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래 뭐. 이해한다. 그런 사람이 가끔씩 있다. 좋아하는 아이가 다른 사람과 노는 걸 보면 질투나서 다그치는 타입.

왜인지 어린 아이들의 투쟁을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몇 번을 말해! 인간들은 더럽다고.”


근데 이 새끼 말버릇이 좀 마음에 안 든다.


“아니야! 안 더러워, 이렇게 깨끗한걸!”

“다른 인간들을 봐. 저게 안 더러워?”


소년이 다른 인간들을 가리켰다. 누더기를 뒤집어쓴 수많은 인간들을 바라본 메리는 머뭇거렸다.

메리의 안색이 나빠질수록 남자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소리쳤다.


“거 봐!”


흥, 하고 콧바람을 내뿜었다.

메리는 상처를 입은 얼굴로 반쯤 울먹였다.


“마스 미워!”


그리고 소리쳤다.

마스라 불린 아이는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는지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똥고집이라면 어디가지 않는 게 남자 아이.

마스는 더더욱 기가 차서 나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이것 봐.”


그리고는 손을 들어 올린 채.


-짜악!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더욱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말했다.


“이렇게 때려도 반응을 못하잖아. 약해!”


얼얼한 뺨의 감각.

나는 얌전히 내 뺨을 후려친 당사자를 바라보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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