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급 파이터 독심술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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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ob002
작품등록일 :
2019.12.09 16:12
최근연재일 :
2020.03.0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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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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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그래플링 바보

DUMMY

톰 크랭클 교수의 체육관은 신촌에 있었다.


크랭클 교수의 학교가 바로 신촌에 있었기 때문이다.


크랭클 교수는 진짜 ‘교수’였다.


미국인임에도 불구, 재미있게도 그가 가르치는 과목은 ‘한국사’였다.


“나는 고종이야말로 정말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잘할 수 있는 임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죠. 물론 이건 가정일 뿐이고, 당시 상황으로선 차라리 대원군이 집권하는 게 결론적으론 한국에 도움이 됐을 거라 봐요”


특히 한국의 근대사에서는 여느 한국인 교수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분이 어떻게 주짓수를···.”


영상을 보고도 선수들은 믿지 못했다.


특히 타격에 특화된 인계석은 더욱 그랬다.


“취미로 주짓수를 했고, 계속했고. 파고든 거지. 너희는 취미로 하다가 저 수준에까지 오른 거 없어?”


정 관장의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때 심동연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전 격투기가 그래요”


문득 칠수도 처음 슈퍼 멀티 짐을 찾았을 때가 생각났다.


지금이 아닌 회귀 전의 2007년. 펀치의 ‘펀’ 자도 모르고 격투기의 ‘격’ 자도 모르는 초짜였다.


6개월 만에 아마 경기에 나섰지만, 쓰러진 상대에게 사커킥을 날려 실격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히 묘연을 만나 펜던트를 얻고, 또 알약을 먹어 이런 위치에 와 있다니.


아직도 가끔은 이 모든 게 꿈이 아닌지 따귀를 때리곤 한다.


크랭클 교수의 코칭은 화요일과 금요일 낮마다 열렸다. 슈퍼멀티짐을 위한 특별 강좌였다.


“일단 뭐라도 보여줘야겠죠?”


살짝 미소 지은 크랭클 교수가 선수들에게 차례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처음 달려든 사람은 인계석.


하지만 특기가 특기니만큼 잡은 지 30초도 안 돼 하체를 내줬다.


두 번째는 심동연이었다.


최고의 베테랑답게 심동연은 아주 조심스럽게 교수에게 다가섰다.


교수는 앉은 자세로 심동연을 맞이했다. 따로 쓰러트릴 것도 없이 그냥 잡기만 하면 끝난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번에도 교수가 노린 건 하체였다. 손을 맞잡고 잠시 힘 싸움을 벌이던 교수가 심동연의 두 다리를 감쌌다.


심동연이 빠져나가려 온몸을 던졌으나 어느새 크랭클 교수는 심동연의 등을 타고 있었다.


“탭! 탭!”


심동연이 목을 내준 시간도 채 40초가 안 됐다.


이언규는 그래플링 특기답게 처음부터 압박에 나섰다.


내준 건지 따낸 건지, 여하튼 상위 포지션을 잡았다.


하지만 크랭클 교수는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교수가 이언규의 몸을 잡고 있는데 움직이질 못했다.


“숨 막···. 혀요..”


이언규의 말과 동시에 크랭클은 마치 미꾸라지가 된 듯 몸을 옆으로 빼냈다.


이어서 이언규의 왼팔을 다리로 잡더니 등 쪽으로 돌아섰다.


어깨에 타격을 주는 기술, 오모플라타였다.


“탭! 탭!”


마지막은 주인공 조칠수 차례였다.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도 나오키 신야 때문이다.


“칠수 선수 잠시만 기다려요”


갑자기 크랭클 교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나타난 교수는 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바지에 타이즈를 입은 것.


나오키 신야가 타이즈를 입고 경기를 하기에 그대로 따라 한 거다.


몸을 섞으며 칠수는 타이즈의 위력을 알게 됐다.


땀이 묻지 않아 미끄러지지 않는다.


미끄러지지 않으면 상대도 좋을 것 같지만, 기량 차가 심할 경우 유리한 사람이 두 배로 유리해진다.


칠수는 하체를 내주지 않기 위해 크랭클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교수는 귀신같이 몸을 정면으로 돌렸다.


잠시 중심 잃은 칠수의 팔을 당기자 앞으로 ‘철푸덕’ 주저앉고 말았다. 크랭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겨드랑이 쪽으로 해서 목을 껴안았다.


팔과 목이 동시에 위험한 상황. 스파링에선 펜던트를 차지 않아 교수의 속셈이 뭔지 확실치 않았다.


일단은 팔을 교수 몸쪽으로 바짝 붙인 채 다음 움직임을 준비했다.


“침착해요, 침착해. 좋은 자세야”


순간 교수가 팔을 다리로 감싸 쥐려 했다. 움직임에 온 신경을 쓰고 있던 칠수는 어깨를 돌려 비틀어가며 한 발로 교수를 밀었다.


“부라보!”


칠수를 놓친 교수가 박수를 쳤다.


“야, 너 1분 넘겼어!”


정 관장이 엄지를 들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블랙 벨트는 당할 수가 없었다.


주저앉아 있는 칠수를 위에서 압박한 톰 크랭클 교수.


어느새 두 손으로 칠수의 목을 껴안더니 발을 사이드로 뺐다.


“탭! 으윽!!”


크랭클 교수 최대한 나오키의 스타일을 따라 하며 선수들을 가르쳤다.


“다른 선수들도 이 스타일에 대한 대응법을 알아 두면 아주 좋을 거예요”


처음에 따라 한 포지션은 낮은 자세로 오는 거였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몸을 상대 하체 이하로 낮춘 채 걸으며 기어온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놓고 상대 하체 다리를 노리는 기술이지만, 4점 포지션 제한 때문에 킥을 날리기도 힘들다.


4점 포지션이란 크라이드는 물론 대부분 종합격투기에서 제한을 두는 자세다.


몸의 네 군데 포인트 이상이 닿았을 때를 말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 얼굴에 킥과 무릎 공격이 불가능하다.


“위에서 펀치를 내리꽂으면 되지 않을까요?”


심동연이 묻자 교수가 순식간에 그의 다리를 잡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체가 비죠”


순간 칠수가 해답을 알 것 같았다.


2015년쯤 나오키가 당한 패배가 생각났다.


“함께 자세를 기어가듯 낮추고, 그 상태에서 펀치를 먹이면 되지 않을까요?”


“오호···? 계속 말해 봐요”


“똑같이 바닥에 엎드린 상태에서 다리는 뒤쪽으로 뺀 다음에, 태클에 주의하며 펀치를 먹이는 거죠”


“맞아요, 맞아. 칠수 선수가 토마스 트리그랑 싸우던 장면과 비슷하죠”


당시도 칠수는 엉덩이를 뒤로 뺀 채 트리그에게 한 발씩 꽂으며 승부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크랭클 교수가 집중한 건 하체관절기 탈출법이었다.


나오키 신야가 다름 아닌 ‘빠가라카’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빠가라카’는 ‘주짓수 바보’를 주장하는 그래플링 기반의 일본 체육관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퍼플 벨트 이상이고, 특히나 하체 관절기를 고집하는 면이 있다.


“칠수 선수의 실력은 갈색 띠 정도 같아요. 그 정도면 같이 굴렀을 때 그냥 서브미션 당합니다”


그래서 톰 크랭클은 누누이 강조했다.


“절대, 절대. 넘어져선 안 돼요. 넘어지면 100% 집니다”


크랭클과의 훈련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여자 관원들 때문이었다.


선수들이 훈련을 거의 마치는 금요일 3시경, 클랭클의 여제자 서너 명이 주짓수를 배우러 왔다.


특히 그중 금발을 가진 파란 눈의 서양 아가씨가 칠수를 번뜩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칠수 선수, 사인해주세요”


“아, 사인요...”


사인 요청이 최근 부쩍 늘어 하나 만들어둔 칠수였다.


“성함이 어떻게···?”


“마샤요. 마샤 크랭클”


“마샤 크랭······. 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때 존 크랭클이 그녀를 불렀다.


“마샤, 컴온. 방해하지 마라, 선수들”


“어, 설마······.”


칠수가 마샤와 교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내 외동딸이라네”


마샤는 21살로 대학교 2학년생이었다. 2008년 23살이 된 칠수보다 두 살 어렸다. 막내인 인계석과 동갑이었다.


“마샤 너무 예뻐, 어떻게 해”


“아, 커피 마시자고 해볼까···?”


이언규와 인계석은 둘이 모일 때마다 ‘마샤, 마샤’ 거리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 마샤의 타겟은 칠수였다.


“끝나고 뭐 하세요?”


어느 날 옷을 갈아입는 칠수에게 마샤가 다가왔다.


“아, 끝나고요? 음, 체육관 돌아가서 정리 좀 하고, 일반 관원 맞이할 준비 해야 돼요”


“그렇구나, 그럼 주말엔 뭐 하세요?”


“아, 주말요? 내일은 체육관 나오고요. 일요일은 부모님들이랑 할아버지 성묘 가요”


“아, 그렇구나”


체육관으로 넘어오는 길에 칠수는 정 관장과 이언규, 심동연과 인계석 모두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칠수는 고추가 없니?”


심동연의 손이 사타구니로 들어왔다.


“뭐하는 거야, 미친놈아”


“저 형 고추 없는 거 확실해요”


이언규가 눈을 흘겼다.


“아, 왜 그러는 건데?”


이해 가지 않는 칠수였다.


“내가 보기에도 답답하더라”


운전하는 정 관장의 말이었다.


“아까 마샤가 너한테 스케줄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잖아”


심동연이 말했다.


“어, 그래서 잘 말해줬어. 친절하게”


그러자 심동연이 답답한 듯 가슴을 내리쳤다.


“아오, 이 빙추야.... 데이트하자는 거잖아!”


데이트···.


순간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회귀를 하고 2007년으로 돌아오고 2008년이 되는 동안 칠수는 연애의 ‘연’ 자도 쳐다보지 않고 살았다.


실제 2019년의 본 모습도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저 격투기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일어나면 격투기, 잠잘 때도 격투기 생각이었다.


그런 격투기에 대한 집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체육관으로 돌아간 칠수는 나오키 신야의 영상을 찾아 틀었다.


나오키의 1부터 100까지 샅샅이 알고 싶었다.


“쟤는 진짜 격투 바보다”


정 관장이 카운터 쪽에서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덕분에, 체육관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있죠”


심동연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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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새 기술의 장착 20.02.19 337 7 8쪽
69 명불허전, 플라잉 더치맨 20.02.18 330 7 7쪽
68 생자베르 파헤치기 20.02.17 350 7 8쪽
67 부산 MT 20.02.14 363 8 8쪽
66 도발의 결과 20.02.13 349 8 7쪽
65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20.02.12 364 7 7쪽
64 파란 눈의 영양사 20.02.11 368 7 8쪽
63 폭군 호세 자르도 20.02.10 390 7 8쪽
62 새로운 도전 20.02.09 398 8 10쪽
61 스피닝 엘보 20.02.08 398 8 8쪽
60 UFL 체육관 20.02.07 442 7 10쪽
59 다윗과 골리앗 20.02.06 429 6 8쪽
58 미친개와의 혈전 +2 20.02.05 428 6 9쪽
57 죽이기 위해 태어난 파이터 +2 20.02.04 448 7 7쪽
56 겹경사, 그리고 +2 20.02.03 449 8 7쪽
55 이게 바로 농락이다 20.02.02 459 8 8쪽
54 두 수를 내다보다 20.02.01 452 8 8쪽
53 DJ켄의 본 모습 20.01.31 450 8 7쪽
52 옥타곤홀릭 20.01.30 443 8 8쪽
51 DJ에 반하다 20.01.29 459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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