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프롤로그
“조총이란 거··· 소리만 요란했지 별거 없네.”
김인홍이 파악한 조총의 사거리는 고작 백 보 정도였다. 반면 조선 활의 사거리는 백오십 보 정도.
총알은 눈에 안 보인다고는 하나, 활도 애기살을 쓰면 안 보이는 건 매한가지. 게다가 활은 소리도 나지 않고 더 빨리 쏠 수 있다.
“쿨럭.”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인홍은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움켜쥔 배에서도 쉴 새 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인홍은 오늘 마을 선비 몇몇과 의기투합하여 의병에 가담하러 가던 길이었다.
역적놈 하나가 왜놈들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이렇게 다 죽게 생겼지만.
그는 옆에 떨어진 자신의 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위 줄을 얹지 않고 나선 게 실수였어···”
조선 활은 쓰지 않을 때 시위 줄을 풀어두어야만 오래 쓸 수 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활을 아끼려고 그랬던 건데.
시위 줄을 연결할 틈도 없이 왜병에게 쫓길 줄은 전혀 몰랐다.
조선 팔도에 활 못 쏘는 선비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인홍은 특히 활쏘기에 자신이 있었다. 공자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지는 못 맞춰도 날아가는 꿩은 맞출 수 있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지나온 삶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쳤다.
남부럽지 않았던 양반가의 장손.
하지만 인홍은 글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유교 경전이 사람 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겼다.
그래서 하릴없이 조선 팔도를 유랑하는 한량으로 살았다. 멋진 경치를 구경하고, 오래된 유적지도 둘러보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생의 낙이었다.
자유롭게 떠돌았던 삶에 후회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건 왜란이 발생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였다. 의병에 가담해 이제 큰일 한번 해보는가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은 조금 아쉬웠다.
눈앞이 까매지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다른 세계에서, 다른 몸뚱이를 가지고서.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근데 여기는 칼 든 놈이 활 든 놈한테 그냥 막 달려오네. 제정신인가? 그러면 오다가 죽어, 이놈아.’
- 작가의말
새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호작 등록 및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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