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강림 이계싹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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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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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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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9. 산맥을 뚫고(3)

DUMMY

“단심가 말인가?”

“그렇소.”


아이라는 시조의 이름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반문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도 태연스러워 라이센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연이은 그녀의 말에 라이센은 더욱 할 말을 잃었다.


“그거 아즈나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시 아냐?”

“아니, 그게 아니라 대부분 모를 텐데···”

“그렇게 들었는데?”

“누구한테 말이오?”


아이라가 말고삐를 올리며 말했다.


“예전에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아즈나인이 있었어.”

“성기사였소?”

“아니, 그자는 포샤트의 자경단이었어. 어떤 일로 내 선임단장의 눈에 띄어 우리와 임무를 함께 수행했지.”

“그자는 지금 어디 있소?”


아즈나인이라고 하여가와 단심가를 알 리는 없다. 누군가 그 시를 아이라에게 알려줬다고 한다면, 그자는 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아이라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그자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듯했다.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내 다음 목표가 바로 그자라는 거야.”

“그자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소?”

“그자는 악마야.”

“또 악마란 말이오? 그자도 악마를 섬긴 거요?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사람처럼?”


아이라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섬기는 수준이 아니야. 그자는 악마 그 자체니까.”

“어째 악마를 섬기는 놈이나 악마나 죄다 교단 내부에 있는 것 같소."

“···”


아이라가 라이센을 살짝 노려봤다.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자는 늘 이 시를 읊곤 했어. 덕분에 나도 그냥 외워버리게 됐지.”

“시는 마음에 들었나 보오.”

“그래, 특히 단심가가.”


하여가와 단심가 둘 중이라면, 단심가 쪽이 아이라에게 훨씬 어울려 보이긴 했다. 그나저나 그자는 대체 누구지.


“혹시 이름이라도 알려줄 수 있소?”

“아스람. 원래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우린 그냥 그 비슷하게 아스람이라고 불렀어.”

“아 스람이라··· 성이 아씨고, 이름이 스람이오?”

“뭐?”

“아, 아니오.”


아스람.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인의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인이 아니고서야 하여가와 단심가를 알 리가 없다.


아스람이란 자는 그 시를 아즈나인들이 아는 시라고 둘러댔을 것이 뻔했다. 이름도 지어낸 이름이겠지.


이 세계와 전생의 세계는 뭔가 통로가 있는 건가. 아니면 전생의 기억이 돌아온 것과 그자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게다가 하필이면 악마라니.


라이센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도 이상해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자를 만나봐야겠어.’


하지만 아이라는 그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지금은 그저 그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라의 다음 목표는 그자라고 했다. 그럼 그녀와 함께 다니다 보면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거겠지.’



그때, 벽면을 살피며 말을 몰던 스칼이 말했다.


“단장님, 여길 보세요. 벽면에 뭔가 긁힌 자국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


아이라와 라이센은 벽면으로 다가갔다. 그의 말대로 벽면에는 짐승이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다.


만약 이것이 손톱자국이 확실하다면 그것은 실로 거대한 크기일 것 같았다.


“쉬르바나산에 용이 산다는 게 사실 아닐까요? 이 자국은 마치···”

“스칼. 그건 다 지어낸 얘기야.”


쉬르바나산 꼭대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고, 그 구멍은 산의 맨 밑바닥까지 뚫려있다는 전설.


그리고 그 구멍 안에는 임모르탈리탈스라 불리는 거대한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었다.


“하지만 쉬르바나산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이어진 구멍이 있다는 것도 지금껏 가짜로만 알았다고요.”

“그래도 용이라니, 그건 말이 안 돼.”


전설 속 임모르탈리탈스는 지독한 악룡이었다. 쉬르바나 산맥 주변의 마을을 급습해 가축들을 물어가고 수많은 학살을 자행했다고 전해졌다.


스칼의 말에 라이센은 스토밀이 들려준 투프카네의 일대기가 떠올랐다.


한 많은 삶과 영웅적인 업적.


투프카네는 순수한 드워프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인간이었다.


보기 드문 인간과 드워프의 혼혈.


그가 살았던 시절엔 인간과 드워프의 사이가 극도로 나빴다. 그랬기 때문에 투프카네는 인간에게도, 드워프에게도 배척받는 삶을 살았다.


투프카네의 어머니조차 도 그를 증오했다. 그녀는 노예상인에게 금화 1개를 받고 그를 팔 정도였으니까.


이후 투프카네는 극적으로 탈출해 두스카름에 다다랐다. 하지만 두스카름에서도 그를 반기는 자는 없었다. 결국, 박해를 견디지 못한 투프카네는 그곳에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떠난 뒤 두스카름에는 악룡 임모르탈리탈스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드워프가 죽거나 다쳤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은 불탔다.


모두가 그렇게 두스카름을 포기하기 직전, 투프카네가 철포를 메고 홀연히 다시 나타났다.


돌아온 투프카네는 두스카름에서 받은 박해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


그는 드워프들을 이끌고 맨 앞에서 용과 싸웠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불가능해 보이는 쉬르바나 산맥의 통로를 만들었다.


투프카네는 통로를 통해 임모르탈리탈스의 거처에 도달했다. 그리고 처절한 사투 끝에 임모르탈리탈스를 물리쳤다 전해진다.


일개 드워프 하나가 철포 하나 달랑 들고 어떻게 용을 잡았을까.



일행은 그렇게 한참을 더 지났다. 모두가 말이 없는 와중에 갑자기 스칼이 소리를 질렀다.


“다, 단장님! 라이센. 저기!”


라이센과 아이라는 스칼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거대한 용이 있었다.




***




“세상에···”



실로 거대한 용의 뼈였다.


군데군데가 부서져 있긴 했지만 두툼한 파충류의 머리뼈와 긴 꼬리뼈, 그리고 두 장의 커다란 날개까지. 틀림없는 용의 모습이었다.


용은 그간의 세월이 고단한 듯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엎드려 있었다.


벽면을 따라 뻗은 몸체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아치형의 수많은 갈비뼈가 길고도 육중한 척추를 떠받들고 있었다.


일행은 그 거대한 모습에 압도된 채 말에서 내렸다.


아이라는 말없이 뼈의 이곳저곳을 살폈고, 스칼은 용과 겨뤄보려는 듯 검을 이리저리 들이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라이센이 작은 비석을 하나 발견했다. 먼지를 털자 비석에는 짤막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 투프카네와 고귀한 33인의 전사들, 여기서 악룡 임모르탈리탈스를 쓰러뜨리다. 수많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다들 여기 이 글귀를 좀 보시오.”

“어디?”


용은 라이센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컸다. 아무리 긴 창으로 찔러도 심장엔 절대로 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대로 투프카네는 진짜 용을 쓰러뜨렸단 말인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용을 죽일 수 있었을까?’


전설 속의 투프카네는 용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커다란 업적을 세웠기에 죽어서 신이 됐다고 했다.


투프카네가 진짜 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용을 죽인 것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센이 아이라에게 말했다.


“용도, 투프카네의 신화도 어쩌면 모두 진실일지 모르겠소. 이만한 용을 잡았다면 죽어서 진짜로 신이 될 수도 있지 않겠소?”

“글쎄, 용을 잡았다고 인간이 신이 될 순 없는 거야.”

“하지만 지금껏 전설일 줄로만 알았던 것이 다 진짜로 판명 나지 않았소?”

“그것도 실제 그 시대로 가서 보지 않았으면 모르는 거야.”


아이라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광경을 보고도 그다지 감흥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 출구 쪽을 보더니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자그니스라는 자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나침반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아이라가 말했다.


“지침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어.”

“그자가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이오?”

“아니, 이거보다 더 흔들려야 해. 출구로 나가면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출구로 나가면 대체 어떤 땅이 나오는 거요?”


아이라는 새삼스레 라이센이 성기사도, 유명한 사냥꾼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는 이 세계의 지리를 전혀 몰랐다.


아이라가 지도를 펼치고 설명했다.


“쉬르바나 산맥은 대륙의 남북을 가르는 커다란 산맥이야. 아우로라 대륙의 구분선이라 불리는 산맥이지.”

“구분선?”

“쉬르바나 산맥 남쪽은 우리 같은 인간들이 사는 곳, 그 북쪽은 인간이 살기 힘든 초원과 사막.”

“그럼 저 출구로 나가면 초원이나 사막이 나오는 거요?”


아이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산맥을 통과하면 바로 나오는 지역은 바하크탈이야, 거기서 더 북쪽으로 가야 완전한 초원과 사막이 나와. 그러니까 바하크탈은 인간이 살 수 있는 마지막 땅이란 얘기지.”

“바하크탈 보다 더 북쪽으로 가면 인간이 아예 살지 않소?”

“소수의 이교도와 오크족이 살지. 어쨌거나 우리 목적지는 바하크탈이니 그건 신경 꺼도 돼.”


라이센은 아이라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언젠간 바하크탈 이북의 초원에도 가보리라 생각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평범한 영지민으로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쉬르바나 산맥, 초원, 이교도, 오크족··· 모두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숲의 짐승들과 싸웠다. 흙정령, 드워프, 용. 말로만 듣던 것들을 실제로 접했다. 불과 몇 달 사이의 변화라 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도 컸다.


그리고 지금은 대륙을 남북으로 가른다는 쉬르바나 산맥을 통과하고 있다. 거기엔 또 초원과 사막이라니.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다. 이제는 전생의 자유로웠던 삶에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라이센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




통로를 빠져나가자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그 풍경이 어찌나 좋았는지 일행은 말 위에서 한참 동안 감상에 빠져있었다.


아이라가 침묵을 깼다.


“여기가 바하크탈이야. 경작과 초원의 완충지대.”

“단장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반절은 농사를 짓고 반절은 유목을 한다는 뜻이야. 대개 농사를 짓는 건 인간이고, 유목을 하는 건 오크족이지만.”

“그렇군요.”


그녀는 어떻게 보면 선생님 기질이 있었다. 라이센은 그녀가 수도원에서 애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도 꽤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라는 이제 아예 나침반을 꺼내두고 방향을 잡았고, 일행은 그런 그녀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더 이동했을까.


아이라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의 표정은 꽤 심각해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지침이 위로 솟았어. 자그니스가 이 근방에 있어.”

“근방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포함되는 거요?”

“대략 이만 보 이내.”


아이라가 나침반을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이만 보라면 꽤 넓은 범위다. 이제 나침반을 보기보다는 직접 눈으로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때, 스칼이 말했다.


“단장님, 저기 마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설마 저런 곳에 그자가 있겠소?”

“하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봐야 해. 그자가 없더라도 어떤 정보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일단 마을로 들어간다.”


라이센은 과연 저렇게 뻔히 보이는 마을에 자그니스가 숨어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자그니스는 추격자까지 보내 일행을 뿌리치려고 했다. 은신처에 숨었으면 숨었지 저런 곳에 있을 리는 없다고 봤다. 정보를 흘리고 다녔을 리도 만무하고.


잠시 뒤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라이센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들이 도착한 마을에는 싸늘한 시체만이 즐비했다.


작가의말

지리한 편수 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부터는 달려요오옷.

피위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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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p10. 명예 혹은 실리(2) +17 20.01.17 5,225 144 13쪽
35 Ep10. 명예 혹은 실리(1) +16 20.01.16 5,438 136 13쪽
» Ep9. 산맥을 뚫고(3) +17 20.01.15 5,615 134 12쪽
33 Ep9. 산맥을 뚫고(2) +8 20.01.15 5,702 142 13쪽
32 Ep9. 산맥을 뚫고(1) +10 20.01.14 6,084 146 14쪽
31 Ep8. 잊혀진 옛 신의 집(6) +17 20.01.13 6,083 154 13쪽
30 Ep8. 잊혀진 옛 신의 집(5) +12 20.01.12 6,187 149 12쪽
29 Ep8. 잊혀진 옛 신의 집(4) +11 20.01.12 6,168 137 14쪽
28 Ep8. 잊혀진 옛 신의 집(3) +6 20.01.11 6,137 139 12쪽
27 Ep8. 잊혀진 옛 신의 집(2) +6 20.01.10 6,183 137 12쪽
26 Ep8. 잊혀진 옛 신의 집(1) +10 20.01.09 6,468 146 13쪽
25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3) +12 20.01.08 6,503 151 13쪽
24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2) +8 20.01.07 6,826 158 14쪽
23 Ep7. 하늘을 나는 난쟁이(1) +13 20.01.06 6,968 17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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