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전설 #04-대만도착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비행기는 하늘 사이를 날고 있다.
아니 하늘 사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늘과 땅 사이를 날고 있다.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는 의외로 사람이 많다.
TV에서 많이 광고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가격 대 성능 비가 좋아서 그런 것인지.
비행기 푯값을 빼고 나면 아시아에서 가장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
더군다나 중국에서는 영어가 안 되지만 대만은 영어가 가능하다.
일본인들로서도 중국이나 한국처럼 조심할 필요도 없다.
대만은 일본사람에겐 천국.
한국 사람 중 여자에겐 천국.
중국인에게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곳.
그 정도로 동북 아시아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진다..
3시간여 가는 동안.
연희는 창밖을 쳐다보면서 음악을 듣다가 잠들었다.
고도리 선생은 처음에 잠들었다가 내릴 즈음에 깨었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본다.
왠지 개 쥐새끼(?) 사건 이후 예전처럼 지내지 않고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주 친했는데···.
연희는 어이가 없게도, 고 선생에게 질투까지 하던 여자였다.
중국에서는 키스는 아니지만, 뽀뽀 정도까지 했던 사이인데.
최근엔 같이 담배도 안 피운다.
일부러 고도리 선생을 피하는 느낌이다.
눈썹이 너무 예쁘게 잘 붙어 있다.
오뚝한 코도 참 예쁘다.
이 아이 참 예쁘구나.
고도리 선생은 연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커피나 콜라 한잔 드릴까요?"
스튜어디스의 말에 깜짝 놀란 고도리 선생.
"커···. 커피 주세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튜어디스는 멍하니 그를 쳐다본다.
"그냥 맥주 한 캔 드릴까요?"
"아···. 네. 그걸로 주세요."
스튜어디스는 한 번 미소지으며 캔 맥주를 가져다준다..
고도리 선생은 못된 짓을 하던 아이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비행기는 이제 곧 대만에 도착한다.
***
대만의 4월은 덥다.
한국의 좋은 4월보다는 좀 더 더운 4월.
대만 날씨는 거의 동남아 분위기.
"와. 왠지 더운데 기분이 안 나빠요."
"난 이런 날씨 별로야. 더운데 기분 나빠."
"아이고. 고도리 선생님. 너무 그러지 말아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때도 아빠와 딸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했다.
"연희 님. 안녕하세요."
귀엽게 생긴 여자분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다른 검은 옷을 입은 신사분은 약간 멀리 떨어져 있다.
"오늘 기자 회견이 있는 날이니 조금 늦었네요."
"기자 회견은 잘하셨어요?"
"네. 그때 할머니가 이야기를 잘 해주셔서 저희도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어요. 안녕하세요. 고도리 선생님."
그 귀여운 여자분은 고 선생을 보고 눈인사를 한다.
중국 여자와는 좀 다른 느낌이지만.
일본이나 한국 여자보다는 중국 여자에 좀 더 가까워 보였다.
웃으면서 보여주는 밝은 느낌.
묘하게 다른 동북아시아 여자들과는 다른 묘한 밝음이 있다.
심우를 처음 볼 때의 느낌보다 좀 더 밝다.
"아. 안녕하세요. 고생하셨습니다."
고도리 선생은 얼떨결에 인사했다.
그러자 저기 검은색 옷을 입은 신사분도 묵례했다.
검은 차가 공항으로 들어온다.
일본 외교관의 차였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숨기기 위한 느낌?)
다른 차들을 대만 경찰들이 막아서면서 외교관의 차는 내 앞에 섰다.
외교관의 차에는 국기가 붙어 있는데···.
일본 국기가 붙어 있다.
한국과 대만은 정식 외교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고도리 선생이 이런저런 생각도 하기 전에 차 문이 열렸다.
"타요. 얼른. 여기서 있으면 민폐거든요."
"응. 알았어."
연희는 고도리 선생의 팔을 끌었다.
예전처럼 친근감 있게 끄는 게 아니라 좀 더 차가운 느낌.
고도리 선생은 좀 속상한 표정이었다.
보통 이럴 때 가슴도 좀 닿아주고 해야 하는데.
차는 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길을 벗어나서 대만의 중심으로 출발했다.
하필이면 일본 외교관의 차라니.
고도리 선생은 좀 당황스러웠다.
***
고도리 선생은 깜짝 놀랐다.
차 안에서 받은 서류를 보다가 그 서류 속의 사진에 놀랐다.
모자이크되지 않은 목이 잘린 사진.
아니 머리가 없어진 사진이라는 게 맞겠지.
그들의 옷만 보면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머리가 없다는 걸 빼면 그냥 길거리에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복장.
"그 사진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두 머리를 먹였어요."
"이미 영상으로 대충 봤어요."
"음. 그 영상도 우리가 다 내리긴 했지만, 너무 유명해져 버렸네요."
"사람이 한 짓은 아니란 건 알겠어요. 저렇게 깨끗하게 절단될 리 없으니까."
"맞아요. 고도리 선생님. 그냥 쓱 하고 누가 한입에 먹어 버린 느낌입니다."
난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봤다.
누군가 남의 머리를 먹어 버린다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다니.
그 사람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역시 남들은 그냥 남일 뿐이다.
고통은 본인이 받는 것이다.
누구도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게 인생이다.
"모두 남자군요."
고도리 선생의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모두 남자인 것 같네요. 그리고 나이대도 거의 30~40대인 것 같고."
고도리 선생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말로 정리하고 있었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지자,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만 당한다는 게 이번 일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예전 사건을 확인했는데 그동안 거의 남녀 비율이 비슷했거든요. 근데 이번 사건은 유독 남자만 먹히고 있어요."
귀여운 여자분이 나의 말에 혼자 대답해주었다.
"아 그리고 저는 엔젤라입니다. 앞으로 엔젤라로 불러주세요."
"반가워요. 엔젤라 씨."
나는 사진을 계속 보면서 건성건성 대답했다.
피.
내 눈엔 피가 보였다.
목에서 뿜어져 나온 거치고는 피가 너무 작다.
"피가 너무 작아요. 머리를 먹은 다음 목의 피를 한 번 쭉 빨아들인 건가···."
여전히 혼자 사진에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고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병원 의사님들이 그랬어요. 몸 안의 피를 좍 빨아버린 것 같다고···. 피의 양의 20%가 사라졌데요."
"피를 빨아들이다니 묘한 사건이네요. 할머니가 말한 대로 예전엔 그냥 머리만 먹었다고 했잖아요."
연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요. 그 당시 이야기 드리진 못 했네요. 그 당시만 해도 저희도 그걸 확인 못 했거든요. 이번 발표 하기 전에 의사들과의 토론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걸 이 고도리 선생님이 사진만 보고 찾아내셨네요. 오···. 고 선생님. 대단해요."
"그만해. 연희야. 놀리는 거 그만하자."
고도리 선생은 연희를 보고 슬쩍 웃었다.
그는 다시 연희가 농담도 해주고 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여튼 이 아저씨는 조금만 잘 해주면 이렇게 좋아해."
연희는 한숨을 쉬면서 혼잣말인지 들으란 건지 모를 소리를 했다.
뭔가 연희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는데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실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까?"
"지금은 호텔로 가시고 내일 마지막 죽은 루이 씨의 시신을 볼 수 있게 해드릴게요."
"만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고도리 선생은 엔젤라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엔젤라는 앞에 앉은 검은 양복의 신사에게 중국어로 이야기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케이 신호였다.
고도리 선생은 그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아까부터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중국어도 아주 작게 이야기한다.
경찰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 인사도 아니다.
자신의 소개를 아직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 사람 분명 "무당".
즉, 귀신을 모시는 사람일 것이다.'
고도리 선생은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천사라 에게 물었다.
"저 사람 귀신을 잡는 사람인가요?"
엔젤라는 좀 놀라는 눈치다.
연희도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도리 선생님. 그게 느껴지시나요?"
"아니. 그냥 생각해본 가설이야."
고도리 선생은 여전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뒤로 돌아보지 않는다.
선글라스를 낀 채 여전히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ABBA호텔이라고 적인 작은 호텔.
아래쪽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새로 지은 호텔이라 그런지 작고 아담하지만, 너무 깔끔해 보인다.
대만의 호텔은 아주 큰 것 말고는 깔끔하지 않다.
이 호텔은 대만 호텔치고 아주 깔끔하다.
"그럼 먼저 들어가시고 내일 뵐게요."
안젤라는 우리를 내려주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지금까지와 달리 그들은 그냥 사라졌다.
보통 로비에서 결제까지 해주고 키를 주고 사라졌는데···.
고도리 선생은 입이 삐죽 나와서 연희에게 투덜댄다.
"뭐야. 여기 등록은 우리가 하는 건가?"
"여기 아바 호텔이 누굴 건지 아세요?"
"응? 누구건대?"
"음. 비밀인데요. 사실이 ABBA 호텔은 김석구 아저씨 거에요."
연희는 나와 같이 올라가면서 아주 작게 말했다.
"그래서 여기 호텔은 한국말로 하면 다 통한답니다."
"우와. 석구 아저씨!! 부···. 부자였구나."
로비에 내려서 우리는 한국말로 쉽게 우리 방 열쇠를 받았다.
"오늘 그냥 우리 나중에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7시쯤 여기서 봐요."
연희는 간단히 인사하고 자신의 방인 바로 옆 3층으로 가버렸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호텔.
난 5총으로 올라가서 512호의 문을 열었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강가 쪽의 창가가 너무 아름다웠다.
노을이 지는 강가.
난 창가로 바짝 붙어서 서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창가 우측의 작은 창을 열었다.
연기는 그 작은 창으로 흘러나간다..
"시발. 김석구 아저씨. 호텔 뒷부분이었다니···."
혼자 중얼거리며 대만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대만은 참 묘한 나라에요.
중국 같으면서도 다르고
일본 같으면서도 다르고.
그냥 대만 그 자체로 받아주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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