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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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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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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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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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 행상인 등장

DUMMY

주말 오전,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해보지만 별 소득은 없다. 근처를 돌아다녀도 학원은 보이질 않고, 그 외에 게임 플레이를 위한 힌트가 될 만한 게 보이지도 않았다.

으으음... 아파트 근처니, 학원들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멀리 있나? 애들을 데리고 멀리 돌아다니기는 싫고, 나중에 혼자 돌아다녀 봐야겠다.

그렇게 소득 없이 토요일 낮을 보내고 난 다음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신나게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딩-동.

뭐지? 이 집을 방문할 사람은 없는데? 신보솜씨를 힐끗 본다. 하지만 그녀도 누군지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누구세요?"


인터폰을 들고 상대를 확인한다. 화면에는 뚱뚱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부풀어있는 볼에 심하게 째진 눈, 그리고 변발 머리.

...네? 변발이요? 요즘 시대에요?


“안녕하셔, 주인어른! 먼~나라 귀한 보물 있다해!”

“네?”


변발의 남자는 비현실적인 말투로 인사하며, 인터폰 화면 앞에 보따리를 흔들어댔다.


“싸게 사라 해~”


...이상한 사람이다. 쫓아내야지. 좋은 아파트에 사니 아예 현관에서부터 잡상인을 차단할 수 있는 게 참 좋군.

비현실적인 외모와 말투를 가진 주제에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지닌 상인을 무시하고 인터폰을 내려놓... 잠깐만. 나는 내가 한 생각에 의문이 생겼다. 어디서 본 듯한 인상? 인터폰 너머를 다시 보면 어디서 본 듯한 얼굴과 변발이다.

어디서 봤지?

게임에서 봤다.

그렇다. 이 이상한 사람은... 프크에서 자주 나오던 행상인이다.

행상인.

프린세스 크리에이터를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에게 돈이 많으면 종종 찾아오는 상인 NPC. 일반적으론 구할 수 없는 이상한 아이템들을 판매하는 상인이지만, 파는 상품들은 그 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이거나 이벤트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상품들뿐이다.

즉,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상인이라는 소리다. 게임에서는 재산이 많아지면 등장하곤 하는데... 지금 내가 재산이 많으니까 등장한 거구나.


“왜 그러시나요?”

“아니에요, 저 잠시만 내려갔다 올게요”


걱정하는 신보솜씨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서둘러 건물 현관으로 향했다. 이 사람이 파는 아이템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역시 주인어른, 안목이 탁월하다해!”


내려가자 행상인은 나를 열렬히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그... 무얼 파는 건지...”

“바로바로 보여주겠다 해!”


그렇게 말하며 행상인은 자신이 매고 있던 더플백을 풀고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더플백이요?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저걸 보니 기분이 나쁜데. 왜 군대에서나 쓰는 가방을 행상인이 메고 다녀? 거기에 물건 넣고 다녀도 괜찮은 거야? 부서지지 않아?


“이런 물건들이다해!”


그렇게 말하며 행상인이 쫙 깔아놓은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물건들은 친절하게도 겉면에 다 이름이 적혀있었다. ... 돌아가서 확인해봐야겠지만, 이 사람은 100% NPC 목록에 있겠구먼.

생각은 접어두고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뉵그뉵 전신 보호대’

‘급속 다이어트 쉐이크’

‘음이온 미인 생성기’


우리나라에서 음이온 마케팅은 금지되어있는 거 아니었나. 이름만 보면 영락없이 사기 아이템들인데. 효과가 사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 효과도 없다는 의미로 말이지.


“주인어른 안목 참 탁월하다 탁월해! 방금 보신 것들은 저어어엉말 좋은 것들이다해!”


행상인의 말은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다음 물건들로 눈을 돌린다.


‘엘릭서’

‘요정의 눈물’

‘소원의 편지’

‘정령의 반지’

‘거유환’

‘일각수 뿔피리’

‘아프로디테 목걸이’

‘미의 드레스’


... 세 개 이후로는 현대 시대처럼 아이템을 꾸밀 생각조차 포기했구먼. 물론 게임을 만들다 보면 자잘한 부분들은 귀찮아지긴 한다지만... 신님이니깐 욕할 수도 없고.


“주인어른 안목 참 탁월하다 탁월해! 지금 보신 것들도 정말 좋은 것들이다해!”

“이 아이템들, 효과는 어떤 건가요”

“모른다해”

“...써본 적 없어요?”

“모른다해“

“만약 샀는데 아무 효과 없으면요?”

“모른다해”

“환불 안 되요?”

“모른다해”


...이건 100%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다. 그냥 행상인으로 만들어낸 기계 같은 거다.


“아는 게 뭐에요?”

“이 물건들이 정말 굉장하다는 건 알고있다해!”

“......”


앞에서 한 말 취소. 이 행상인은 기계가 아니라 그냥 사기꾼인 것 같다. 자기가 불리한 질문만 회피하는 거 보니깐.


“물건들 설명 좀 해봐요”

“어떤 게 궁금하다해?”

“...급속 다이어트 쉐이크는 뭡니까?”

“이건 다이어트용 쉐이크다해, 마시기만 해도 살이 쭉쭉 빠진다해!”

“얼마나요?”

“모른다해”


이 사람이 게임 속 행상인처럼 생기지 않았으면 200% 사기라고 생각할 만한 대화다.


“그러면 그뉵그뉵 전신 보호대는요?”

“이건 운동용 보조기구다해! 끼고 있기만 해도 근육이 빵빵! 근력이 아주 강해진다해!”

“......”


잠깐 물건을 살펴본다. 요상한 형태다. 가죽끈처럼 생겼지어떻게 끼는지 추측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요... 음이온 미인 생성기는요?”

“이건 미인으로 만들어주는 기구다해! 이걸 얼굴에 끼고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음이온의 힘으로 아주 예뻐진다해!”

“......”


게임이다, 이건 게임이다. 현실이 아니야, 그러니깐 저런 대사도 사기가 아니야. 으윽, 내 안의 유사과학탄압 영혼이 날뛰는구만...!


“좋습니다... 얼마에요?”

“1억이다해”

“아니 이것들 다 해서 1억이라고요?”

“아니, 각각 1억이다해”


왜 가격만 현실적인데 비현실적이지. 보통 게임에서는 비현실적 가격이면서 게임 내로서는 현실적인 가격이었잖아.


“이렇게 확실한 효과를 가진 것들이 또 없다해!”


내 표정을 보고 무언가 읽었는지, 행상인이 열심히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격을 들은 순간 내 마음의 문이 너무 굳게 닫혔단 말이지. 물론 지금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부자가 되었다고 해도 내 금전 감각은 여전히 옛날 같은 구석이 남아 있다고. 억 단위의 돈은 함부로 쓸 생각이 들지가 않아.


“...좋아요, 일단 다른 것들도 설명해주세요”

“뭐가 또 궁금하다해?”

“엘릭서는 뭡니까?”

“이건 영약이다해! 마시기만 하면 모든 병이 싹 낫는 무안단...”

“거기까지”


더 들으면 살 마음이 사라질 거 같네요.


“그... 일각수 뿔피리는...?”

“이건 일각수의 뿔로 만든 피리다해! 정말 희귀한 동물인 일각수에게서 얻어낸 뿔로 만들어낸 거라, 아주 멋진 소리가 난다해! 한 번 들어보라해!”


그렇게 말한 뒤 상인은 바로 일각수 뿔피리를 불었다. 부우우우... 낮고 맑은 음소리가 주위에 깔린다.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꽤 좋은 소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행상인이 제 입으로 분 덕분에 사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고 말이지.


“그다음에 저 거... 아닙니다”


저건 뭔지 딱 알겠구먼.


“아프로디테 목걸이는 뭔가요?”

“저건 여신 아프로디테가 쓰던 목걸이다해! 저걸 차고 있는 것만으로 반짝반짝, 얼굴이 아주 빛나보일 거다해!”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목걸이를 끼는 행상인. 행상인이 목걸이를 끼자마자, 그 작은 눈이 조금은 더 커 보이면서 얼굴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로 빛나요?


“어떠냐해?”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벗으세요!”


당신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묘하게 예뻐지니 더 기분 나쁘단 말이에요!


“또 설명이 필요하냐해?”

“아닙니다... 이것들은 얼마인가요”

“천 만 원이다해!”


처음 본 세 개는 1억, 그리고 나머지는 천 만 원. 엄청 비싸다. 거기다가 일각수나 아프로디테는 그 효능조차 확실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지.

아이템들을 다시 살펴본다. 분명히 효능은 있을 테니, 테스트해볼 필요는 있다. 지출이 뼈아프지만, 초반에 손해를 보더라도 빠르게 확인하는 게 공략에는 더 좋을 터.

어떻게 한다...




“어서오... 너인가”

“손님에게는 인사를 해줘야지”

“너는 됐다”

“너무하는구먼”


편의점에 들어가서 태화씨랑 시시한 대화를 나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냐”


나는 태화씨에게 방금 산 물건을 보여준다.


“당신, 정령이랬지”

“인간이다”

“옛날에 말이야“

“그렇다”

“이거, 뭔지 알아보겠어?”


정령의 반지. 행상인에게 천 만 원이나 주고 산 반지를 그녀에게 건넨다.


“이건... 반지로군”

“그거 외에는?”

“흠...”


태화씨는 잠시 반지를 만져보다가 껴본다. 그 순간, 태화씨의 몸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우왓!”

“이건...”


태화씨로부터 나오는 불이었다. 그녀가 반지를 낀 순간, 그녀의 몸에서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태화씨는 반지를 벗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이걸 어디서 구했지?”

“샀어”

“샀다고?”

“어... 행상인이 정령의 반지라고 하길래 샀는데... 정말인가 보네”

“인간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


흥. 태화씨는 코웃음을 친다.


“이 반지는 경계의 반지다”

“경계의 반지?”

“정령계와 인간계를 이어주는 반지지. 이걸 끼면 인간은 정령계로, 정령은 인간계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왜 조금 전에는 불꽃이 일어난 거야?”

“정령계의 내 힘이 나에게 돌아왔기 때문이지. 내가 정령계와 인간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다는 건, 정령계의 내 힘을 인간계에서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몇백 년도 전에 다 없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보는 건 처음 보는 거야?”

“그렇다”


그렇게 말하더니 태화씨는 나에게 반지를 돌려주었다.


“그 행상인, 위험한 인물일지도 모르겠군”

“아니지 않을까...”


신님이 대충 만든 NPC 같았거든.


“경고 하나 해두지. 함부로 끼지 마라”

“어째서?”

“위험하다”

“왜?”

“......”


태화씨는 말을 멈춘다. 나한테 말할 게 아니라는 건가?


“아니, 네놈은 인간이지만... 이미 정령이랑 연관이 있으니 알아도 괜찮겠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을 내리는 태화씨.


“인간이 그 반지를 끼면 정령계로 갈 수 있게 된다”

“어“

“그러면 죽는다”

“어?”


난데없이 죽어?


“정령계는 영혼의 세계, 육신을 가진 인간이 그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육신은 거부당하고 영혼만이 입장하게 되지”

“그 말은...”

“육신과 영혼의 분리, 인간들이 말하는 ‘죽는다’가 되는 거다”

“다시 돌아올 순 없고?”

“돌아올 수도 있겠지. 실력 좋은 강령술사가 있다거나 무녀나 사제가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태화씨는 한층 더 진지한 말투가 된다.


“정령계에서 인간의 영혼은 견딜 수 없어”

“무슨 소리야?”

“정령계는 화염과 냉기, 폭풍과 대지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곳. 약한 영혼은 순식간에 찢겨나가지”

“아...”


천재지변이 항상 일어나는 환경이라 그런 건가.


“경고는 했다”

“고마워, 생각해줘서”

“헛소리마라”


태화씨가 정색한다.


“네놈은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다나님을 맡은 놈이 함부로 죽거나 하면”


순간 태화씨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어나는 걸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죽은 뒤에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게요... 이 말을 입 밖으로 냈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태화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1+1 음료수를 하나 사서는 한 개 건네주고 편의점을 나왔다. 나머지 하나를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좋아, 아이템은 정말로 효과가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그 효과가 어떤 건지 정확히 확인해봐야겠지만... 아이템이 효과가 있다면, 한 달 뒤의 교내대회 우승, 쉽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생각해본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1주일 만에 아이들의 성장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나는 계획을 정리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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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 대면 20.03.09 180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59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2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2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5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0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5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8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0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4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3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6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6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1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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