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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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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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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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 태화씨

DUMMY

놀이공원, 엄청나게 지치는구나. 집 앞 공원에 앉아 혼자 소감을 되뇐다. 힘들다. 지친다. 졸려.

별님이랑 수애는 신보솜씨와 같이 집에 들어갔지만, 단아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단아를 데리고 집 앞 공원에 나와있다.

앞에서 혼자 놀고 있는 단아를 본다. 기다랗고 꼬불꼬불한 미끄럼틀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단아.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모양이다. 수영 스킬 랭크가 B였지? 그거, ‘어마무시한 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는 뜻이었나?

미끄러지면서도 계속 거슬러 올라가기를 반복하던 단아. 이윽고 위에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정상까지 오르고는 나를 향해 브이, 를 펼치며 웃는 단아. 나는 손을 흔들며 대답해준다.

그래도 다행이야.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라서. 미끄럼틀을 정복한 단아는 다른 정복할 걸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체력은 끝내줘...”

“저 정도는 너무 시시한 것 아닌가?"

“시시하긴 해도... 애들용이니깐...”

“나이에 따라 차별을 하는군”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야. 애한테도 어른이 하는 걸 주면 오히려 그게 차별을 하는 거지”

“설득력 있군”

“그치? 가 아니라, 뭡니까 당신...”


어느새 태화씨가 내 옆에 와 있었다. 솔직히 놀랐다. 나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갑자기 옆에 와 있단 말이다. 그것도 단아랑 놀아주고 있을 때 말이지.

...아니, 단아가 놀도록 방치해두고 있을 때 오니 괜히 쫀 건가, 나.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이랑 상관없이 몸은 너무 느긋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놀라기에는 몸이 너무 지쳐있다.


“언제 옆에 온 거예요?”

“방금이다”

“오면 왔다고 먼저 인사를 하세요”

“온 걸 몰랐나?”

“몰랐어요”

“대답을 잘 하지 않았나?”

“그거야 나도 모르게...”

“문제가 있는가?”


그렇게 말하며 내 항의를 넘기는 태화씨.


“네 놈, 다누님이랑 좀 더 적극적으로 어울려드려라”

“지쳤어요...”

“지쳤어?”

“네, 종일 놀이공원에서 놀다가 온 길이라고요...”

“놀이공원?”

“놀이기구들이 가득한 공원이 있습니다...”


이 사람, 인간사회 잘 모르지.


“놀이기구라는 건 그... 기계들을 말하는 건가?”

“아시는군요?”

“지식은 있다. 인간이 되면서 기본적인 지식은 익혔으니깐 말이지"


“약하군”

“네?”

“겨우 기계에 탔다고 지치다니”

“아... 네...”


뭐라고 항의할 마음도 안 생긴다. 단아가 저렇게 멀쩡하면, 이 사람도 놀이기구 따위 타봤자 멀쩡할 거다. 정령이었다가 인간이 된 사람들은 다들 체력이 어마무시한 모양이다.


“네가 지치는 건 상관없다. 어서 어울려드려라”

“태화씨가 좀 놀아주면 어때요?”

“뭐?”

“원래 태화씨가 보호자였잖아요”


그 말에 나를 노려보는 태화씨.


“아니 그 다시 데려가라 그런 소리는 아니고요... 지금 좀 힘드니깐... 도와달라고요”

“흥”


콧방귀를 끼며 태화씨가 일어난다. 그리고는 단아에게 다가갔다.


“화!”


단아는 태화씨를 화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평안하십니까?”

“응!”


어려운 말도 잘 알아듣는 단아, 똑똑해.


“오랜만이야!”

“네”


그렇게 말하며 멀뚱멀뚱 단아를 쳐다보는 태화씨. 단아도 화를 보고 있다. 그렇게 잠시 둘이 마주 보다가, 태화씨가 나를 부른다.


“야!”

“네”

“어떻게 노는 거냐?”


...네?


“인간은 어떻게 노나?”

“어... 음...”


머리가 아프다. 정령들은 놀지도 않나요.


“노는 걸 몰라요?”

“인간의 몸으로는 불을 일으키는 것도 바람을 부르는 것도 안 된다”

“아...”


정령들은 무섭게 노는구먼.

아무튼... 인간의 몸이라서 ‘정령처럼 노는걸’ 할 수 없으니깐, 노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거군. 그러면 가르쳐드려야지.


“하나 일단 가르쳐드리자면 음...”


그렇게 말하면서 단아를 내려다본다. 미끄럼틀에서 순식간에 내려온 단아가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산책을 마친 뒤에 아직 흥분이 남아서 좀 더 놀자고 보채는 강아지의 눈빛이다. 역시 얘는 비글 같아.


“이런 게 있겠네요... 자, 단아야, 손”

“응!?”

“빙글빙글해줄게”

“빙글빙글!!”


신나서 외치던 단아가 내 손을 잡는다. 난 단아의 손을 잡고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붕붕붕. 빙글빙글. 회전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윽고, 나는 단아를 잡고 회전목마처럼 돌았다. 10바퀴 정도 돌고 멈춘다.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단 말이지.


“야”


순간 흠칫했다. 아차, 위험하다고 뭐라 하면 어쩌지. 단아가 내 손을 잡는 악력이 어마어마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나야 안다지만... 태화씨는 모를 텐데.


“약하다”

“네?”

“하지만 방법은 잘 알겠군”


그렇게 말하면서 태화가 단아에게 다가간다.


“다누님”

“응!”

“이번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진짜!?”


눈빛이 한층 더 빛나는 단아. 눈동자를 한 단계 더 빛낼 수 있을 줄이야. 오늘 롤러코스터 타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있었고... 나는 아직 단아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나 보다.


“어이”

“네”

“잘 봐라”


그렇게 말하며 단아의 손을 잡은 태화씨. 이윽고, 태화씨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평범하게 잘하시잖아.

하지만 이 감상은 금세 무색해졌다. 빙글빙글 도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손끝에 달려있는 단아가 잔상이 보일 정도까지 된다. 곁에 있으니 바람이 일어나는 것마저 느껴진다.


“으아...”


뭐라고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경탄과 경악의 신음만이 입에서 새어나온다.


“꺄하하하!”


단아가 신나서 비명을 지른다. 지금까지 내가 해준 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었구먼. 그걸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신나하고 있었다.

이윽고 팽이처럼 빨라진 둘. 붕붕, 거리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을까? 새어 나오던 신음이 자연스럽게 끊기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움직임이 멈춘다.


“꺄하하...”


단아가 신나서 웃는다. 그러면서 비틀거린다. 저렇게나 강렬하게 회전했으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세 발자국 정도 비틀거리던 단아는 금세 균형을 잡는다. 이 아이의 육체 능력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야.

더 놀라운 건 태화씨였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렇게나 많이 돌았는데, 멈추고 아무런 지장이 없는 듯싶었다. 그대로 서서 나를 본다.


“알겠나?”

“...뭐, 뭘요?”

“그런 육체 놀이를 할 거라면 이 정도 속도는 내야 한다”

“무리에요”

“적당히 돌아준 것도 못 따라 하겠다는 건가?”

“그게... 적당히셨어요...?”


인간 팽이 수준이셨는데요.


“하여튼 인간이란... 허약하군”

“아, 네...”


정령이 괴물인 거 같은데요.

태화씨가 계속해서 나한테 뭐라고 하려던 순간이었다.


“태화씨!”

“뭔가?”


웬 아저씨가 태화씨를 부르며 뛰어왔다. 대머리가 되어가는 머리에는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이 겨우 붙어있었고, 뛰어오는 속도를 보아 체력도 부족한, 허약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아이고, 여기 있었나?”

“그렇다”

“시간이 됐는데도 안 오면 어쩌자는 겨?”

“시간?”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태화씨. 이윽고 공원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시계를 발견한다.


“6시 31분이군”

“근무 6시부터잖어!”


...이 사람, 시계 안 가지고 다니는 건가.


“그렇다”

“그러면 5시 50분까지는 와야지! 이렇게 지각하고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그...”


태화씨의 말에 쫄아버린 아저씨. 이 아저씨가 듣기에는 태화씨가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다. 태화씨의 말투 자체가 딱딱하니 그렇게 들리긴 한다. 나야 그걸 안다지만.


“아니 그...”

“문제가 있는 건가?”

“문제지!”

“뭐가?”

“뭐...”

“뭐가 말인가?”


사극 같은 말투도 태화씨의 말투를 무섭게 들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거다.


“으.. 아닐세...”

“그렇군”

“아, 아무튼! 빨리 근무 들어오게! 자네 때문에 내가 가질 못하고 있어!”

“알았다”


태화씨가 그렇게 대답하자 먼저 가버리는 아저씨. 태화씨는 나에게 온다.


“시간이 되었으니 나는 가겠다”

“네... 그, 조금 전은?”

“대화를 나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방금 전은 누구입니까?”

“인간이다”


그건 저도 아는데요.


“이름은 모른다”

“아니 이름이 아니라 그... 무슨 관계인 거냐고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저 사람이요?”

“그래. 내가 근무하러 오면 퇴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지”


아니 이 사람, 그러면 근무 교대하는 사람 그대로 두고 여기에 온 거야?


“얼른 가셔야겠네요”

“상관없다”

“뭐가 상관없어요!”

“다누님이 더 중요하다”

“아이고, 그러다가 잘려요”

“잘려? 검사가 근처에 있는 건가?”


웃으라고 한 소리 아니죠?


“그게 아니라, 아르바이트에서 쫓겨난다고요”

“그런가”

“저거 쫓겨나면 큰일 아니세요?”

“귀찮아지겠지”


다누님을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지. 그렇게 중얼거린 태화씨는 다누에게 인사를 한다.


“다누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응!”


바이바이~!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는 단아. 태화씨는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가 버린다.


“하...”


지쳤다. 이번에는 마음까지 지쳤다. 저 사람, 괜찮은 걸까? 정령이라니까, 왠지 인간계에서 적응하는 걸 내가 도와주어야만 할 거 같단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 게 하나 생겼다. 태화씨랑 다누는 무슨 관계지? 모녀 관계는 아닐 거다. 형제 관계도 아닐 거고. 관찰해보면 주종관계에 가까운 거 같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다누는 분명 ‘물의 정령’이라고 했다. 하지만 저번에 보석을 쥐여주면서 봤던 태화씨의 힘은 ‘불’이었다. 정령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는 내가 모른다만, 불의 정령이 물의 정령을 모신다라. 그것도 나이가 어린 애를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이지.

아니, 나이는 사람 모습을 빌렸을 뿐 다르려나?


“단아야”

“응”

“태화씨랑 무슨 사이야?”

“화?“

“응”

“화는...”


말을 하다가 멈추는 단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는데, 뭘 고민하는 걸까.


“몰라!”

“몰라?”

“응!”

“어...”


그런데 그렇게 친하다고?


“기억 안 나!”

“기억...이?”

“응! 알았는데 몰라!”


기억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즉, 알고 있었지만 까먹었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면 별님이도 ‘이전’에 대해서는 까먹은 게 많다고 했다. 어쩌면 단아도 인간이 되면서 정령일 때의 기억을 많이 잊은 걸지도 모르지.

만약 태화씨가 다누의 엄마였다거나 그랬다면, 도움을 받을 게 좀 있었을지도 모른다. 육아에 대한 힌트라거나, 스킬에 대한 힌트라거나. 하지만 크게 기대할 수는 없겠군.

생각을 마치고 난 단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태화씨에게 물어보았지만, 태화씨는 알 필요 없다는 말로 일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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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 대면 20.03.09 180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59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2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2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5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0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5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8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0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4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3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5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6 6 13쪽
» 35화 - 태화씨 +1 20.01.31 251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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