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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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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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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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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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화 - 보솜씨와 쇼핑

DUMMY

“이건 어떠세요?”

“예쁘네요”

“입어볼래요?”

“음...”


다시 한번 내미는 옷을 보고 신보솜씨는 고민한다. 예뻐 보이는 옷이지만 딱히 입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왠지 부끄럽네요”

“그래도 한 번 입어보세요”

“다른 걸 입어볼게요”


결국 신보솜씨는 거절한다. 이번으로 네 번째였나? 힘이 빠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럼 이거는요? 심플하고 제법 괜찮은 거 같은데”

“음...”


이번에 내민 옷은 심플한 원피스다. 파스텔 단색으로 수수하면서도 하이라이트로 맺어진 리본이 제법 멋도 살려준다.


“괜찮네요...”

“자, 한 번 입어보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반쯤 강요해버렸다. 그래도 이러지 않으면 이 사람, 절대로 새 옷을 입어보지 않을 거다.

결국 내 말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받아들고 탈의실로 향하는 보솜씨.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보솜씨를 데리고 옷집에 들어와 30분. 드디어 한 벌 입히는 데 성공했다.

함께 신님에게 휘말린 입장에서라도 당신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그 말로 보솜씨를 꼬드기는 데 성공했지만, 그 뒤는 힘들었다. 아무리 물어봐도 좋아하는 게 딱히 없다는 보솜씨. 이것저것 물어봐도 철벽이었다.




“취미는 없어요?”

“네”

“어... 정말요?”

“네... 신님이 시키시는 걸 할 뿐이어서...”

“어... 음... 그럼 뭐 하고 노셨어요?”

“그냥 책을 읽거나...”

“그러면 서점에 갈까요”

“하지만 책은 지금 너무 많지 않나요?”


사재기를 마구 해댔던 덕분에 집에 책이 넘치긴 하지.


“지금 있는 책들도 다 못 읽었습니다”

“그거... 1년 동안 내내 읽어도 힘들겠죠”

“네”

“아, 그러면 영화는 어때요?”

“영화, 말씀이신가요?”

“네, 저번에 ‘겨울왕좌’도 같이 재밌게 봤잖아요”

“그랬지요...”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하는 눈치다.


“왜 그러세요?”

“사실... 영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보고 있으면 금방 피곤해지고, 몰입이 남들처럼은 잘 안 되더군요”

“저녁에 드라마 보면서 저를 기다린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잠시 보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말씀드린 드라마만 보면 끄지요”


그러고 보면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TV가 켜져 있던 걸 보지는 못했다.


“어... 그러면 게임은요?”

“잘 모르겠습니다... 해보질 않아서”


전형적인, ‘게임이랑 연 없이 사는 사람’이다.


“핸드폰은요?”

“잘 안 씁니다... 스마트폰은 작년에 샀습니다”


요즘 시대에 스마트폰을 작년에 샀다고요? 그전까지는 대체 어떻게 산 거지?


“혹시 운동 좋아하세요?”

“아니요”

“어...”

“죄송합니다, 이래서 취미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아니아니, 지금 예시로 꺼낸 거야 수많은 취미 중에 극히 일부분일 뿐이잖아요.


“옷이라도 보러 갈까요?”

“옷 말인가요?”

“네, 예쁜 옷이라거나, 마음에 드는 옷을 사러 가시죠”

“없습니다만...”

“그러지 마시고 갑시다!”


더 이상 없다는 말에 휘둘리면 정말 답도 없겠다. 그런 생각에 그녀를 억지로 옷가게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결과... 삼십 분 넘게 내가 옷을 권하고, 그녀가 거절하기를 반복했다.




드르륵.

커튼이 열리며 탈의실에서 보솜씨가 나온다.


“어떤가요?”

“괜찮네요”


부끄러운 듯이 묻지만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미인이시니깐 어떤 옷을 입으셔도 어울리고, 말이죠. 청바지에 셔츠만 입으셔도 미인인 걸 알겠는데, 원피스라면 당연히 어울리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유~ 아주 이쁘셔요”


어느새 온 직원이 우리 사이에 난입한다.


“그런가요?”

“네 고객님, 지금 입으신 게 여기서 잘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어울려요”

“맞아요 맞아! 톤 색이 무난해서 누구와도 어울리기도 하는데, 손님께서는 워낙 미인이셔서 옷이 딱 맞네요”

“이게 아니라 다른 옷이라도 어울릴 거 같긴 한데...”

“다른 옷 가져다드릴까요?”

“아뇨, 잠시만요...”


나와 직원의 협공을 보솜씨가 잠시 말린다.


“보고 싶은 옷이 딱히 없어서...”

“그러면 지금 입고 있는 옷 딱이네요. 언제 입어도 무난하고 오래 입으실 수 있으세요”

“하긴, 무난한 패션이 하나 있으면 좋죠”

“그럼요, 아유 남자분이 패션 잘 아시네요~”


잘 모르는데요. 그냥 주워들은 말 마구 던지는 중입니다만.


“그렇게 플레인한 옷 한 벌 있으시면, 다른 거 코디하기도 쉬우세요~”

“그렇군요”

“그럼요~ 거기다가 그 옷 빨래도 하기 편하고 말이죠”

“그것도 참 좋군요”

“그렇죠~?”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직원은 신나서 권한다. 보통 직원의 말에 반박하거나 질문하는 게 손님인데, 이렇게 편들어주는 건 드물겠지.


“아유 남자분이 너무 잘 아셔서~ 기분이다, 지금 구입하시면 이건 특별히 15% 할인해드릴게요”

“어, 진짜요?”

“네~”


아무튼 말은 좋게 하고 볼 모양인가. 혹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동시에, 하지만 다른 대답을 꺼내려고 한 나와 보솜씨.


“그렇지만, 이 아니에요 보솜씨”

“하지만, 제 옷은 딱히...”

“아휴, 남자친구분이 사주신다는데 한 벌 사세요”

“남자친구...”

“어머, 부부셨나 보네”


태세 전환이 자유로운 점원. 할인까지 자기 역량으로 해준다는 걸 보면, 짬밥을 좀 먹은 점원인 듯싶다.


“이럴 때 한 벌 사는 거예요~ 그리고 옷을 사면 남자분한테도 좋은 거죠~”

“왜죠?”

“그야 자기 여자가 예쁘면 남자가 얼마나 기뻐지는데요~”


그 말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고 애한테도 얼마나 중요한데요~?”

“그런가요?”

“그럼요~ 자기 엄마가 이쁘면 애들이 신난다고요?”


직원으로서야 마구 칭찬을 던지고 있던 셈이겠지만, 적절한 칭찬이 나와버렸다. 애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라. 난 저렇게 생각하진 못했는데.


“맞아요, 애들도 좋아할 거에요”

“그렇죠? 남편분이 참 잘 아시네, 오호호”


호칭 자연스럽게 남편으로 바꾸시네.

나와 점원의 협공에 계속 거부하던 보솜씨도, 애들이라는 말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에게 옷을 사게 만드는 게 미안했던 모양인데... 미안할 거 없다고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 하지 않았을 뿐이지.


“...알겠습니다”


겨우 허락을 얻어낸다. 그 말에 점원은 바로 구매를 위한 절차를 밟아준다. 휴, 겨우 옷 한 벌을 사는구먼.




그다음에 들린 가게들도 소득은 크게 없었다. 옷은 겨우 한 벌 사게 했지만, 다른 걸 사게 만드는 건 힘들었다는 소리다.

그냥 싫어하는 거면 문제가 차라리 없다. 싫어하는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뿐이니깐. 그리고 싫어하는 게 있다면 좋아하는 것도 있을 거란 뜻이니깐. 하지만, 뭘 봐도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거면 힘들다.

싫지는 않지만, 관심도 가지 않네요. 이런 걸 억지로 사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도 그렇고... 혹시 아는가? 알고 보니 좋아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가게들에 들려 희망 고문을 당하길 반복한다.

내 생각이 틀린 걸까?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같이 쇼핑하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뭐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지 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도 좀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보솜씨는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사고 싶은 것이 애매한 덕분에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애매하다. 좋아하는 게 애매하니, 이 사람에 대한 것도 애매해진다. 뭘 좋아하지? 이 질문에 대답을 얻기가 어렵다.

그렇게 보솜씨랑 애매한 쇼핑을 하다가 결국 도착한 곳은 식자재 마트였다. 소득은 직원과의 협공으로 겨우 사게 만든 원피스 한 벌이 다다.


“장보고 집에 가죠”

“네”


나도 지쳤다. 더 같이 돌 곳도 없고, 애들을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 두기도 했고. 장이나 봐서 집에 가자. 보솜씨에 대한 파악은... 시간을 들여서 할 수밖에 없겠지.


“유광님은”

“씨, 라고 해주세요”

“둘 뿐인데요”

“둘 뿐일 때도요”

“음...”


잠시 망설이는 보솜씨.


“아무튼, 좋아하는 게 있으신가요?”

“저요? 저야 뭐 게임이라든가”

“식사는요?”


아아, 밥 얘기였구나.


“그냥 아무거나요”

“그렇군요...”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아무거나 좋다는 말이 얼마나 귀찮은지 조금 전까지 실컷 겪은 주제에, 나도 그렇게 대답하다니.


“아니, 그, 보솜씨가 해주는 밥은 항상 너무 맛있어요”

“그런가요?”

“네, 애들도 잘 먹죠? 맛있는 거예요, 그거. 뭘 차려주셔도 맛있으니깐, 그런 의미로 아무거나 라고 한 거예요!”

“다행이군요...”


진심 어린 칭찬이다. 이 사람의 밥을 얻어먹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났지만, 매번 감탄하고 있다. 요리, 잘하시네.

응? 잠깐만.


“보솜씨, 요리 좋아하세요?”

“네, 조금...?”


드디어 이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나 찾았다.


“그럼 좋아하는 게 있으시네요”

“요리, 말인가요?”

“네!”


요리를 취미로 하는 사람도 많고 말이죠. 요즘은 TV에서도 요리 관련 프로그램 많잖아요? 비단 TV가 아니더래도 미튜브를 보면 요리 영상도 엄청 많고요.


“그렇군요, 요리가 취미... 였군요”

“뭐에요, 있으셨으면서”

“아닙니다, 그냥 요리는... 항상 저에게 당연하였기에 그렇게 생각해보질 못했습니다”

“자취하셨나 보네요?”

“자취... 그런 셈이지요”


잠시 말을 머뭇거리던 보솜씨. 나는 계속 공세를 유지한다.


“그럼 좋아하는 요리는 뭐에요?”

“좋아하는 요리요?“

“네, 저한테도 물어보셨잖아요”

“저는...”


다시 말을 머뭇거리던 보솜씨.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는 모른다, 이런 건가?


“사실은 그...”

“그...?”

“매운 걸 좋아합니다만...”


의외네.


“좋아, 그러면 매운 걸 좀 사가죠”

“아닙니다”


바로 거절하는 보솜씨.


“너무 자극적인 건 아이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얼마나 매운 걸 좋아하시는 거야.


“가끔은 괜찮아요”

“안 됩니다, 건강에 안 좋아요”

“건강에 좋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잖아요”

“하지만 파이어 치킨 같은 건 잘못하면 위가 상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별님님이라면 그런 자극적인 것에 대한 면역력도 약할 거고요”


파이어 치킨 정도로 매운 걸 좋아하는구나. 입에 넣는 순간 느낌이 오고, 먹으면서 눈물과 땀을 흘리고, 다 먹고 나면 다음 날 똥구멍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정도의 매운맛.


“그럼 애들은 안 주면 되죠”

“하지만...”

“하지만?”

“제가 먹는 걸 보거나 하면, 세 분 다 드시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요?”


이미 사고방식이 어머니셨다.


“그렇겠지만... 그러면”

“그러면?”

“몰래 먹어요”

“네?”

“몰래요. 애들 학교 보내고 먹어도 되겠죠. 점심은 혼자 드실 거 아니에요?”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점심때 드세요!”

“하지만...”


계속 망설이는 보솜씨. 아직도 걸리는 게 남아있어?


“그... 몰래...”


보솜씨는 힘겹게 이야기를 꺼낸다.


“먹는 게... 들키면...”

“애들이 없을 때 먹는데요?”

“아뇨, 세 분 말고... 그... 신님에게...”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보솜씨.


“신님에게요?”

“...네...”

“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매운 걸 먹는 거랑 신님이랑 뭔 상관이죠?


“저도 이게 참... 유치한 얘기인 건 압니다만...”

“네”

“그... 무언가 몰래 하는 거 자체가... 왠지... 신님이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그러면... 몰래 하는 거 자체가 그... 되게... 부끄러워져서 그만...”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보솜씨.


“알고 있습니다, 이게 그... 좀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매운 걸 먹는 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 그리고 신님도 항상 저를 보는 건 아니지만... 다 알지만 그... 선생님 몰래 불량식품을 먹는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 말에 왠지 웃어버렸다.


“아하하”

“역시 이상한가요?”

“아뇨, 아니에요!”


겨우 웃음을 참으면서 대답한다.


“그게 아니라... 보솜씨가 너무 귀여워서요”


나는 신보솜씨에게 활짝 웃어 보인다.

이 사람은 정말로, 순수하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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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 대면 20.03.09 180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59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2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2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5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0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5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8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0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4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3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6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6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1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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