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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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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트텔러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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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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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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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 목격, 두 번째

DUMMY

가로등 불빛의 경계선을 구분해본 적이 있나? 깜깜한 와중에도 혼자만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 그 빛을 눈으로 따라가 보라. 명백히 밝은 빛 속에서 어둠과 구분되는 부분을 솎아내기 위해 눈을 움직여보라.

그러면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 구분되지 않는다. 빛은 어느새 어둠으로, 어둠은 어느새 빛으로 바뀐다. 분명히 어둡고 밝고 구별되는데, 경계선만이 모호하다.

갑자기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 이유는, 내가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솜씨와 단둘이 앉은 벤치가 어색한 나머지 딴짓을 하고 있거든. 차마 보솜씨를 볼 수는 없어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쓸모없는 생각이나 한다.

어색하다.

당혹스럽다.

그런데 그럴 이유는 없잖아?

그런 변명이 나오면서도 그 변명이 당치도 않은 건 또 알고 있다. 변명의 이유도, 또 변명이 당치않은 이유도 모른다. 그런 주제에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

“......”


혹시 보솜씨도 그래서일까? 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다. 보솜씨가 입을 연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시간상으로는 5분 정도나 지났겠지만.


“저기”

“네”

“제가 간섭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어, 아니, 네, 아녜요, 그럴 거 없어요”


보솜씨가 간섭하지 않을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조금 전까지 혼란스러워하면서 그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무엇을...?”


급작스럽게 보솜씨의 말을 끊고 대답한 덕분에, 보솜씨는 당황한다.


“아뇨, 그, 그러니깐... 그... 제가 소연씨랑 있는 거 봐서 그러는 거 아니세요?”

“소연씨... 그, 여자분 말씀이시군요?”

“네, 직장 동료예요. 회사가 작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다는 얘기는 했었죠?”

“그 한 분이 그 여자분이시군요”

“네, 네, 그, 맞습니다”


괜한 대답이 덧붙여지면서 마치 추임새 같은 모양새를 띈다.


“그렇군요...”

“네...”

“......”

“......”


다시 조용해진다. 둘 다 숨을 한 번 돌린다.


“그... 역시 제가 간섭할 건 아닌 것 같지만”

“아뇨, 맞다고 생각해요”

“...여성분이랑 계신 것을 추궁하는 것이, 말인가요?”


정제된 말로 들으니 양심이 더 크게 찔린다.


“어, 그, 네...”


바보 같은 추임새를 계속한다. 마치 탈춤에서 바보 탈을 쓰고 추임새를 넣는 놈이 된 것만 같다.


“어째서죠?”


아니, 여기서 역으로 질문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


“어... 그러니깐... 같이 애들을 키우고 있으니깐요?”

“아이들을 키우는 건 유광님이시지, 저는 그저 보조일 뿐입니다만...”


씨가 다시님으로 바뀌었다.


“아뇨, 보조든 보모든 뭐든 같이 키우는 건 맞습니다”

“......”

“아니아니 그게, 그, 그러니깐! 그게, 뭐 책임져, 이러는 건 아니고! 그러니깐! 그...”


머리를 긁적인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진 않네요. 하지만...!”

“하지만?”

“아무튼 보솜씨도 저랑 같이 살고 계시기도 하고, 애들을 맡고 계시니, 저한테 아무리 간섭하셔도 되죠, 그럼요!”

“게임도 그러던가요?”

“네?”

“유광님이 종종 말해주신 게임에서도, 그... 집사가 유광님에게 간섭하고 그러셨나요?”


NPC가 플레이어에게 간섭했냐고 묻는 건가?


“그... 렇죠? 뭐라고 하고, 충고도 하고 조언도 하고...”

“그러면 게임에서도, 새엄마를 구하거나 그랬나요?“


어... 어? 딴 이야기로 산을 타려던 것이, 순식간에 본질적인 부분으로 진행된다.


“그게... 아뇨...”

“그렇군요...”


그래서 양심에 좀 찔리는 게 있었죠.


“어... 음... 일단 신님이 이렇게 말씀했어요”

“그랬죠, 저도 기억합니다. 뭐라고 하셨더라... 아무튼, 유광님이 즐길 수 있게 마련한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싫지만요”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뜻인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 제가 즐길 수 있게 마련된 사람, 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에요”

“거부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뇨, 그러니깐...”


긁적긁적. 말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어휘를 고르느라 자꾸 말이 끊긴다. 덕분에 타이밍이 어긋나고, 박자를 놓친 말들은 지금 상황에 미스를 유발한다. 형편없는 리듬 게임 같다.


“그... 소연씨도 자신의 삶을 살던 사람이니깐, 제 게임을 위해서 마련되었다는 취급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군요...”

“보솜씨도 소연씨도 둘 다 저랑 어쩌다 연이 이어졌고 어쩌다 이 게임에 휘말렸지만... 원래 생활이 있던 사람이잖아요?”

“......”

“그러니깐 두 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군요”

“별님이도 수애도 단아도 마찬가지예요. 신님이 내린 아이라지만 별님이는 어쨌든 별님이고, 수애도 원래 자신의 삶을 살아오던 아이고, 단아도 정령이었던 아이고... 아무튼! 지금은 제가 맡고 있지만, 각자의 삶이 있는 아이니깐!”

“네”

“그러니깐 지금 보솜씨도 저에게 할 말이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저, 마음 한쪽으로 자꾸 찝찝했어요. 내가 소연씨랑 썸을 타고 해도 되나? 그런데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었거든요. 연애하는데 괜히 양심에 찔릴 필요는 없는 건데. 하지만...”


꽉 막힌 것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면 그건 또 당연한 거였어요. 지금 애들을 키우고 있는데, 아빠 역할을 하는 제가 연애를 하고 있으면 그게 마치... 새엄마를 찾는 그런 모습 같단 말이죠”

“그건 문제가 될 게 없지 않나요?”

“새엄마를 찾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만약에 애들이 새엄마를 받고 싶지 않아 한다면요?”

“아이들이 거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왜냐하면, 그게...”


답답하다. 말을 해야 하는데 힘들다. 하지만 입을 연다.


“보솜씨가 있으니깐요”

“......”

“애들한테 이미 보솜씨는 엄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애들이 볼 때는 보솜씨가 그냥 엄마일 거예요”

“......”

“이런 말을 하는 건 죄송해요. 갑자기 엄마가 되거나 그러고 싶지도 않겠죠, 하지만... 아마도 애들에게는 그럴 거다, 그런 말이에요”


그러니깐 보솜씨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도 돼요. 괜한 말을 뒤에 덧붙인다.


“아무튼, 그러니깐, 제가 밖에서 연애하는 건, 아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거죠. 어쩌면 배신하는 걸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적어도 보솜씨한테는 그런 거 같아요”


인제야 보솜씨를 바라본다. 말하는 것조차 버거워 조금 전까지는 앉은 채 앞을 보고 말했다. 하지만 시선을 더 돌릴 수는 없다. 나는 보솜씨를 보고, 보솜씨는 나를 본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그러니깐, 그, 아무튼, 그... 보솜씨도 저한테 휘말려서 이런 역할을 하게 되신 거고...”


말하고 보니 지나치게 부끄러워졌다.


“물론 보솜씨가 싫어할 수도 있고, 아니, 그건 당연한 거지만”


아무튼 말이에요.


“같이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저는 바람을 피운다니, 보솜씨에게는 잘못한 거죠”

“...그런가요”


보솜씨는 조용해진다. 둘 사이에는 다시 밤바람만이 지나간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니 갑자기 후회된다. 마치 보솜씨랑 부부가 된 듯한 뉘앙스 아닌가? 내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마음가짐이 너무 바람둥이 마음인 건 알지만, 보솜씨도 아주 좋아하니깐. 다만 보솜씨가 싫어하는데 내가 이렇게 밀어붙인 것 아닐까, 그 점이 걱정될 뿐이다.


“그러면...”

“네?!”


긴장하고 있었던 덕분에 목소리가 엇나간다. 삑사리난 목소리가 멀리 퍼진다.


“왜 그러신 건가요?”

“네?”


조금 전에는 보솜씨가 대답하는 역할이었는데 이젠 내가 그 역할이 되었다. 보솜씨가 그랬듯이, 대답하고는 다시 의문형의 대답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왜 바람을 피운 건가요?”

“어...”


제가 저 자신을 옭아매는 말을 해버렸군요.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래요?”

“변명처럼 들리지만 정말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원래 첫날부터 묘하게 잘 풀렸고...”

“잘 풀려요?”

“그게, 그러니깐... 첫날부터 소연씨랑 뭔가... 해프닝도 생기고... 괜히 계속 서로 신경쓰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러다보니?”


보솜씨, 무서워요.


“자연스럽게 서로 사이가 좋아지다가 지금은 소연씨가 저를 자연스럽게 초대하는 사이까지 발전한 거라서...”

“유광님, 지금 하시는 말씀은 마치 바람둥이의 변명 같습니다만...”

“네, 맞네요”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람을 피우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건 믿어주세요”

“네...”


대답은 ‘네’라고 하지만 그 말투는 전혀 아니다.


“보솜씨, 소연씨랑 상관없이 보솜씨는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보모니깐요?”

“아뇨, 제 옆에 있어 주니깐요”


만약 사람을 죽이고 고해성사를 한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심장이 터질 듯이 긴장되고 답답하다.


“신님에게 휘말린 지금, 이 상황의 시작부터 제 옆에 있어 주었으니깐요”

“......”

“처음부터 제 옆에서 저를 위해 많은 걸 해주시고, 또 저랑 함께 많은 걸 헤쳐나갔으니깐요”


조용히 나를 보기만 하는 보솜씨의 눈길이 무겁다.


“그러니깐, 당신은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아이들을 맡아주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소연씨랑 제 관계가 어떻든지 상관없어요. 당신은 이미 저한테도 중요하고 소중한 그런 사람이에요”


자연스럽게 말 한마디가 더 이어지려다가 말았다. 왠지 망설여진 탓이다.


“왜 그런 거죠?”

“지금까지 설명해드렸는데...”

“아니, 정리해주세요.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보는 보솜씨.


“그러니깐...”

“네”

“당신은 처음부터...”

“단지 처음이라서요?”

“그게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요”


나는 단지 쩔쩔맨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요? 제가 애들을 맡아서요?”

“그건 진즉에 아니라고 했는데요”

“네, 그렇다면요?”


보솜씨가 나를 추궁하는 게, 마치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알겠다. 방금 망설였던 말을 꺼내야 하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네”

“...제 아내와 같아서요”

“뭐라고요?“


보솜씨가 괜히 한 번 더 말하라고 재촉한다. 이건 명백히 투정이다.


“잘 안 들렸어요, 유광씨”

“제 아내니깐요!”


투정을 더 부릴 수 없도록, 목소리 높여 외쳐준다.


“당신은 이미 제 아내나 마찬가지예요, 같이 생활하고 같이 지내고 같이 애들을 키우고...!”

“그건 그냥 가족 아닌가요?”

“네, 가족이죠! 아내도 가족이고요! 그리고요...”


이 말을 기다렸구나, 싶었다.


“당신을 제가 좋아하니깐...”

“......”


아, 답답한 게 겨우 풀린다. 결국 말해버렸다.


“그래요...?”

“네... 그, 뭔가 이런 상황에 휘말린 다음에 이러면 강요하는 거 같아서 말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는 보솜씨.


“뭐랄까, 마치 선보고 난 뒤에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 같은 꼴이지만...”

“선... 그렇네요, 선 같네요”

“데이트가 아니라 고백이군요, 아무튼, 그, 보솜씨는... 저를...”

“글쎄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보솜씨.


“유광씨, 지금 대답은 유보해주세요”

“네?”

“저야말로 당신에게 선택을 강요한 거 같아서 그래요”


그건 무슨 뜻이세요?


“저야말로, 유광씨가 저에게 휘말려서 저를 특별하게 여기게 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깐...”


저도 제 생각을 잘 모르겠네요. 부끄러운 듯이 웃는 보솜씨.


“지금은 그냥 하던 대로 해주세요? 소연씨에게도요?”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차인 건가?


“결혼하고 나서나 데이트를 하고 서로 알아가는 커플도 있겠죠?”

“어, 네”


갑자기 보솜씨의 질문이 바뀐다.


“그러면 우리도 시간을 좀 들여보죠”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보솜씨는 앞장서 걸어갔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서둘러 보솜씨를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 광경을, 음소연은 멀리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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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 다 같이(완) +2 20.03.10 308 3 13쪽
61 61화 - 대면 20.03.09 173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1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3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52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37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35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34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155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48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196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4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48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58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56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2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3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05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77 5 12쪽
»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193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3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2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26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28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2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29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42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44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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