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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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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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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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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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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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5화 - 꼬이는 단판

DUMMY

"응?"


어색한 단어에 소연씨가 반응한다. 아니, 그녀는 단어를 보고 반응한 게 아니다. 이 메시지를 보고 이상해진 내 분위기에 반응한 거다.


"왜 그러..."

"잠시만요"


11시 30분이었으니 1시간 뒤까지 컨테이너로 가야한다. 아직 시간에는 여유가 있다.


"소연씨, 그 죄송한데..."


지금 타이밍에 소연씨의 말을 또 끊으면 썩 좋지 않다. 간단하게 설명하고 출발하면 될 것이다.

뚜뚜뚜루뚜뚜뚜뚜-.뚜뚜루

그 순간이었다. 일은 한 번에 몰려온다더니, 전화도 온다. 잠시 소연씨 눈치를 살핀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라는 듯 조용히 해준다.


"여보세요"


모르는 번호라서 무시할까 싶었지만,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별님이 보호자분 되시죠?"

"네, 맞습니다만"

"여기 성판 병원인데요!"


별님이가 입원해있는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무슨 일이죠?"

"지금 별님이가 위독합니다!"


뭐?


"보호자분께서 최대한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긴다. 전화를 건 상대도 정신없이 바쁜 와중인 모양이었다.

소연씨의 표정을 잠깐 살펴본다.


"왜 그러세요?"

"아니..."


소연씨에게 지금 사정을 설명하기도 그렇다. 별님이가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이걸 설명하기 위해 덧붙여야 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


“죄송합니다 소연씨, 조금 급한 일이... 반드시 설명해줄 테니...”

“네?”


나는 행설수설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소연씨가 뒤에서 뭐라고 하는 말은 모두 흘려들으며, 택시를 잡는다.

왜 일은 갑자기 몰려서 들이닥치는 건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급한 일이 이미 끝난 뒤였다.


“위기는 넘겼습니다만...”


며칠 전에 나에게 별님이의 상태에 관해 설명해주던 의사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피곤한 눈빛을 하고 있는 채였다. 복장만 수술복으로 바뀌었을 뿐.


“또 이런 위기가 언제 올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인 거죠?”

“어... 설명은 나중에 간호사가 해줄 것입니다만”


병에 관해 설명하는 건 의사의 몫 아닙니까?


“병이라기보다는 상태에 대한 설명이 될 겁니다. 병에 걸린 건 아니고, 저번에 설명해 드렸듯이 항체가 너무 약해서...”

“그냥 아프다 이런 건가요?”

“네, 사실 환자분이 언제 어떤 상태에 빠질지 저로서도 짐작하기 힘듭니다”

“아니, 그러면 그, 뭐 무균실이라거나 뭐라던가 좀...”


뭐든지 대책을 좀 강구해보란 말입니다. 그렇게 따지려던 찰나였다.


“죄송합니다”


의사는 내 항의가 무색할 정도로 쉽게 사과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은, 나중에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말 같은데요.


“아무튼, 지금은 보호자께서 환자분과 좀 같이 있어 주십시오”

“항체가 없다면서요? 제가 별님이에게 가도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지금까지 보호자분과 함께 했을 때 별일이 없었으니... 보호자분은 괜찮을 겁니다”

"정말요?"

"항체보다는 정신적인 문제일지도 몰라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의사는 가버렸다. 믿음이 가지 않는 의사의 말에 더 따져 들고 싶었지만, 중요한 건 별님이다. 따지고 드는 건 별 의미가 없겠지. 저 의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거고.




누워있는 별님이를 보고 나온다. 이름을 불러보지만, 반응이 없다.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오래 있어서 도움 될 건 없겠지.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듣는다. 무언가 복잡해서 기억하기도 힘들다. 간호사도 현 상태는 병의 원인보다는 환자의 상태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보솜씨의 연락처도 가르쳐주고 병원을 나섰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보솜씨 상태가 안 좋았기에 내 연락처만 알려주었지만, 이젠 괜찮아지셨으니깐... 여차하면 나 대신 별님이를 보러 와주실 수 있을 거다.

시계를 본다. 12시 28분.

지금부터 아무리 서둘러도 제시간에 태화씨에게 가는 건 힘들다. 태화씨에게 연락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해보자.


‘별님이가 아파서 병원에 급하게 들렸습니다. 지금 곧 가겠습니다. 30분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 정도면 사정을 봐주겠지. 송신. 문자로 연락을 하니, 상대가 내 메시지를 봤는지 안 봤는지 확인할 수가 없는 게 불편하다.

12시 29분.

잠깐만 쉬자. 갑자기 지쳐버린 덕분에 의자에 앉는 것만으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하나씩 처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몰아치니 지친단 말이지.


‘보솜씨 연락처도 병원에 알려줬어요. 혹시 별님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좀 부탁드려요’


보솜씨에게도 연락해둔다. 이러면 병원에서 급한 일이 있을 때, 집에 있는 보솜씨가 금방 도착할 거다. ...여차하면 무슨 사정이 생겨서 내가 없어져도, 보솜씨가 별님이를 챙길 수 있겠지.

머리를 긁고, 하품하고, 고개를 숙인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정신 차리고 바로 움직이자. 30분 뒤까지 태화씨에게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병원이니깐 바로 앞에 택시들이 많다. 바로 타면 늦지 않을 거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에 올라타자 중후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인사한다. 모범택시라는 건 기사님부터 분위기가 다르구만. ...모범택시 밖에 없어서 이걸 탄 거지만, 꽤 좋네.


“지금 말씀드리는 주소로 좀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입을 열고 핸드폰을 켠다. 12시 31분. 도착한 1건의 메시지.


‘단아님보다 다른 걸 먼저 챙기고, 마지막 기회마저 버렸다. 세 번 이후로는 없다. 끝이다’


태화씨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를 보고 멈춰버렸다. 세 번 이후로 기회가 없다니? 끝이라니? 무슨 소리야?


“손님?”


택시 기사는 멈추어버린 나를 보고 당황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굳어서, 이 불길한 단어들의 의미를 추측하느라 기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혹시나 한 마음에 다시 가 본 태화씨의 집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저번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짐들도 없어진 것이다.

침낭, 테이블, 서류. 그 얼마 없던 짐조차 없어진 컨테이너는 완벽히 빈 곳이었다. 어디로 간 건지 찾아보고 싶어도, 쓸만한 힌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연락은 당연히 되지도 않고.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거나...”


혹시나 해 다시 전화를 걸어보나, 역시 없는 전화번호라는 대답이 들린다. 7번 해봐도 없는 전화번호면, 8번을 해봐도 없는 전화번호겠지.

사라졌다. 그렇다. 태화씨는 단아랑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보솜씨에게는 수애랑 함께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했는데, 그래서 둘이 외식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혼자 방 안에 들어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실패했다는 기분이 이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별님이는 아프다. 병원이니 낫게 해주겠지 믿었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게임이라면서, 병원에서 병 정도는 치료해주란 말이야.

수애는 별 이상 없지만... 이대로 할아버지, 할머니랑 친해지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단아는 사라졌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우선 그렇다.

보솜씨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직 스스로 살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시간과 의지가 해결해줄 거다. 그녀에게 재산이 좀 생기면, 시간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거다.

내 명의로 된 빚은 있지만, 보솜씨와 나는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아니다. 현금을 인출한 다음에 이걸 그녀에게 주면... 아무 문제 없겠지.

소연씨는... 가능한 범주 내에서 설명을 해드려야겠지. 아니면 그냥 도망치든가.

태화씨는 단아를 데리고 사라졌다. 가능한 한 찾아봐야겠다. ...가능한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이거, 다시 정리해보니 성공한 게 없구먼.

별님이는 다시 신님에게 돌려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받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적어도 지금은 신님에게 그럴 의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보솜씨랑 함께 지내게 하는 건데...

이건 보솜씨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다. 지금 그녀는 그녀 자기 일만으로도 힘들다. 그녀에게 내 돈을 주는 것 정도가 내 최선이지, 별님이를 맡기면 안 된다. 그 전에 그 아이를 낫게 하는 게 우선이지만...

실패다. 별님이를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과정은 계속 실패 중이다.

단아는... 잘 모르겠다. 태화씨랑 함께 사라진 거니깐, 어쩌면 성공일까? 적절한 보호자에게 돌려보내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태화씨에 대한 것도 성공이겠지.

남은 건 소연씨인데... 다시 연락을 받지 않는다. 이건... 두 번이나 이렇게 실망하게 했으면, 끝인 거지.

하... 게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가. 최대한 잘 정리해서, 나 빼고 휘말린 모든 사람을 원래 생활로 되돌려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리 잘 안 되는 거지.

아니, 포기하지 말고. 지금 가능한 걸 처리하자. 아직 수애와 소연씨의 일은 남아있는 셈이다. 나는 우선 수애의 일을 처리하자고 정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반겨주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들은 수애의 보호자인 나 또한 수애마냥 환영해주었다.


“미안해요.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서 할머니가 내 앞에 찻잔을 가져다주셨다.


“이 늙은이가 어린 애를 보니 너무 기쁜 마음에, 폐를 끼쳤구먼”


할아버지도 할머니의 사과에 맞장구를 치며 맞은 편에 앉는다.


“폐라뇨, 오히려 제가 폐를 끼쳤죠...”

“에헤이~”


할머니도 할아버지 옆에 앉는다.


“수애가 참 착한 아이야~”

“그렇더라고~”

“그쵸?”

“응응~ 마음씨가 너무 고와”

“그래서 걱정이 좀 되어서 그만, 오지랖을 떨었구먼~”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착하구먼. 말과 분위기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앞으로도... 수애를 돌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돌려 말할 기운도, 생각도 없다.


“아 물론이지~ 수애라면 언제든지 놀러 와도 환영이야!”

“오히려 이런 늙은이들이랑 어울리는 게 수애한테 안 좋은 게 아닐지 걱정되는구먼~”

“애들은 애들이랑 어울려야 하니깐 말이지!”

“들어보니 별님이랑 단아? 라는 아이도 형제인 모양이던데!”

“셋 다 같이 놀러 와도 좋아~”

“아하하, 별님이랑 단아는...”


굳이 현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있겠지.


“...사실, 말입니다”

“응?”

“왜 그러는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가능한 범주 내에서 설명하자. 맡길 거면, 사정을 알려야 한다.


“수애랑 별님이, 단아 모두... 제 아이가 아닙니다”

“그렇구만~”

“응응, 알고 있었네~”


저번에 수애랑 처음으로 대화할 때, 내가 수애의 친아버지가 아닌 건 눈치챘을 터다.


“그래도 세 아이 다 그렇다니~”

“자네도 참 기구하구먼~”

“부모가 고생이 많아”

“둘 다 참 착해~ 복 받을 거야~”

“그래서 말입니다만...”


노인들의 칭찬을 멋대로 끊는다.


“혹시, 수애를 맡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꺼내기 어려운 말이지만 의외로 쉽게 나왔다. 이 말에 노인들은 아무 대답하지 못하고 내 얼굴을 뻔히 쳐다본다. 종종 놀아달라는 말이 아니다. 맡아서 키워달라는 말이다.

내 의중을 바로 파악한 듯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도 이들이 말할 때까지 입을 다문다.

우리 셋은 그렇게 조용히 차를 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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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 다 같이(완) +2 20.03.10 321 3 13쪽
61 61화 - 대면 20.03.09 180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59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3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2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5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0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5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8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0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4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3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6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6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1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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