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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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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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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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화 - 그런데 말입니다

DUMMY

우선 통화를 마친다. 그리고는 서둘러 신보솜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별님이랑 단아 성씨, 최대한 빨리 알아서 메시지로 보내주세요’ 부디 신보솜씨가 빠르게 움직여주기만을 빌자.


“무언가 중요한 일이셨나 봅니다”


다시 남자 앞에 앉으니, 남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왜 그렇게 묻지? 아, 지금 내가 표정 관리가 안 되나 보다.


“아하하,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조용히 내 말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덕분에 아무 말 없이 한참 있다가 이 사람이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린다는 걸 알아챘다.


“지금 무슨 얘기 중이었죠?”

“아이들의 성씨를 기재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넘어가 주질 않는군.

후우우, 한숨을 쉬며 남자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람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면서 눈을 감는 건 물론 실례라는 건 알지만, 더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미안해요. 3초만 생각해볼게요.

1초.

거짓말을 하지 않은 채로 이 사람에게 내가 별님이와 단아의 성씨를 모른다는 걸 설득해야 한다.

2초.

그 설득 과정에서 이 사람이 나의 사정에 호기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3초.

잠깐만 시간 너무 짧은데요.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아서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다. 후우우우우. 조금 전보다 더 길게 숨이 나온다. 남자는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사실은 말입니다”


나는 힐끗, 별님이가 있는 곳을 눈치 보고는 입을 연다.


“별님이는, 그, 빛과 함께 온 아이입니다”

“빚...이요?”

“네, 빛”


빛 뒤에 ㅇ이 붙지 않게 최대한 주의한다. 부디 ‘빚’이라고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빛과 함께 저에게 내려온 아이죠”

“그 말은...”

“쉿”


나는 별님이 쪽을 보면서 쉿, 하는 손동작을 한다.


“사실 그 빛... 그렇게 큰 건 아닙니다”

“허허...”

“하지만 별님이는 그녀의 부모가 보낸 빚... 거기에 휩싸여서 저에게 왔죠”


남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눈동자를 돌리면서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려고 노력한다.

말을 잘 들어주는 분이라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느 날 저녁, 그렇게 갑자기 저에게 온 아이를 맞이했을 때 제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그렇겠군요”

“아이 이름만 달랑 알려주고는 가버린 그 부모에게 욕을 할 틈도 없었습니다”

“야반도주였...”

“쉿”


다시 별님이를 가리키며 쉿, 하고 남자의 말을 막는다. 남자는 알겠다는 눈치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엇을 알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별님이를 저에게 넘긴 사람과는 오랜 지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믿었나 봅니다”

“그런 것 아닐까요? 잘해 줄 거라고 믿었던 거겠죠... 그 사람은 제가 육아를 잘할 거로 생각했으니깐요”

“그래서...?”

“네, 그래서일 겁니다. 그는 저에게 별님이를 맡아달라는 얘기를 꺼냈고 제가 그 말을 수락하자마자, 그는 저에게 별님이를 넘긴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저도 그 사람을 위해서 별님이를 맡아주기로 했으니깐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는 별님이를 돌아보았다. 별님이는 내 눈길을 눈치채고는 이쪽을 향해 웃어주었다. 응. 귀엽다.

하지만 남자는 내 의도대로 속아준 것인지, 아무 말 없이 내가 그러는 모습을 지켜봐 주었다. 그렇습니다. 괜히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슬픈 마음에 잠겨 잠시 여운을 즐기는 모습이라고 착각해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그리고 말입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페이즈 1이 끝났으니 페이즈 2로 넘어갈 차례다.


“단아 말입니다만...”

“단아라고 하면”

“저기 머리가 긴 아이 보이시죠? 활발하고”

“네”

“저 아이가 단아입니다”

“아하”

“그리고 저 아이, 사실 여기 아이가 아닙니다”


정령들이 따로 사는 동네가 있겠지.


“헛“


남자는 놀라서 숨을 삼킨다.


“사실 저 아이의 본명은 다누입니다”

“영어 이름인가요?”

“여기 아이가 아니니깐요”

“그런 거였군요”


잠시 정적.


“하지만 완벽히 현지화가 되어 있는 아이입니다”

“무슨 뜻인지요?”

“우리랑 같고, 우리 말이나 생각을 하는 아이라는 거죠”

“여기서 자란 아이였던 거군요?”

“그건 모릅니다...”


진짜로 몰라요.


“하지만 저 아이도...”

“저 아이도...?”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눈빛은 매섭고 기가 세고 항상 명령투로 말을 하는... 그런 여자였죠”


남자는 내 말을 따라오지 못하고 의아해한다. 그러라고 한 말이에요.


“그 여자... 하지만 참 매력적이었지요”


잘 모르지만 앞으로 그런 거로 할게요. 그러니 거짓말 아닌 거로 해주세요, 신님.


“지금 말씀하시는 게 단아 어머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잘 모릅니다”


태화씨가 단아 어머니는 아니겠지?


“네?”

“하지만 그 여자가 저에게 단아를 데리고 온 건 맞습니다”


남자의 눈빛이 이상해진다. 불장난으로 태어난 아이라든가, 남의 아이를 옛 연인에게 데려왔다거나, 무언가 아침드라마적인 내용을 상상하는 것이리라.

부디 그래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중인 거니깐.


“다짜고짜 저에게 맡으라고 하고는 가버렸어요”

“그건 무슨”

“저도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그러면 저에게 어쩌라는 건가요?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다. 아주 잠깐의 여운을 억지로 만들어낸다.


“단아는 처음부터 저를 아빠라고 불렀어요”


남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세 개 정도는 보이는 듯싶다.


“그런 아이를 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 그건 그렇지요”

“이해해 주시는군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우선 이름부터 단아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네...”

“이곳 아이가 아닌 걸 괜히 남들이 알아봤자 좋은 일 없지 않겠습니까? 이 학교에 혹시 외국인 아이가 있나요?”

“아마 있을 겁니다”


남자가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꺼낸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군요. 외국인 아이도 포용해줄 수 있는 학교라니, 이 학교에 애들을 다니게 할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그 아이는 차별 같은 건 받지 않겠죠?”

“아 그럼요, 물론이죠, 우리 학교에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나는 기뻐하는 척하며 잠시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알림도 안 울렸고 너무 당연하게도 아무런 메시지도 와 있지 않다.


“......”

“......”


둘 다 침묵한다.

남자로서도 뭐라고 말을 꺼내기 곤란할 것이다. 이쪽의 사정이랍시고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으니깐.

나도 더 꺼낼 말이 없다.


“그래서 말입니다”

“네”


나는 곁눈질로 별님이랑 단아를 가리켰다. 남자는 내 눈길을 따라 아이들을 잠시 살펴본다.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저를 위해서 지금은 이름만으로 기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저 아이들, 성씨 때문에 현재의 처지에 대해서 놀림이라도 받거나 하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짐작도 안 갑니다":

“하지만”

“제가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성씨를 아예 얘기하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제발 내 추측이 맞기를 바라며 나는 말을 이었다.


“여기에 성씨까지 쓰면 앞으로 애들에 대한 공식 이름은 그 성씨까지 붙는 거겠죠?”

“어... 아마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만 빈칸으로 해주십시오, 그다음에 교장 선생님에게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남자는 여전히 곤란해한다. 알고 있다. 사무직이니깐 이런 데서 괜히 위험부담을 지고 싶지 않겠지.

나는 남자의 어깨에 내 팔을 올린다.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저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부탁이라고 하셔도 말입니다”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이랑도 제가 얘기를 따로 할 거고... 혹시 이 서류를 참고로 하시는 분이 또 따로 계살까요?”

“담당 선생님도 이 서류를 보실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담당 선생님께도 제가 바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결코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남자, 왜 이리 질겨!


“저 애들을 보십시오”

“네?”

“별님이나 단아에게 성씨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잘 대답을 못 합니다. 옛날얘기에 관해 물어보면 잘 떠올리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기억이 닫혀 있는 거예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아니 얼마나 힘들면 옛날 일을 잊고 그럴까요? 방어기제라는 말, 아십니까?”

“아니오...”

“정신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는 걸 말해요. 자, 생각해보세요, 정말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우리는 그걸 미화한단 말입니다. 군대에서 겪었던 일 기억하세요?”

“합니다만”

“분명히 군대에 들어가서 고생할 때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제대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제법 괜찮았다는 식으로 말하고 그런단 말입니다. 어른도 그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작동 시켜 기억을 왜곡시키는데!”


별님이랑 단아를 가리킨다. 타이밍 좋게도, 별님이랑 단아는 나한테 반응해주었다. 웃어주는 별님이, 손을 흔드는 단아.


“저 어린 애들이 만약 큰 고통을 겪었다면... 얼마나 방어기제를 작동시킬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저 아이들이 방어기제를 작동시킬 정도라면”


잠깐의 정적, 잠깐의 정적. 연출을 잘해야 한다.


“얼마나 큰 고통이겠습니까”

“네...”

“아이들에게 다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 여기는 일단 넘어가 주십시오. 대신에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랑은 제가 바로 면담을 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말없이 남자를 쳐다본다. 부디 지금 내 표정이 진지하고 화가 난 듯하면서도 큰 슬픔을 품에 안고 협상을 시도하는 사람의 표정이기를.


“...알겠습니다”


아싸! 통했다.

나는 해냈다는 기쁨을 얼굴에 떠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알아주시는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남자는 별님이랑 단아를 슬쩍 바라본다. 아이들을 생각해주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깐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거겠지? 이 학교는 이런 분들부터 아이들을 생각해주고, 참 좋은 학교인 거 같아. 믿을 수 있겠어.


“감사합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한다. 진심이 담긴 악수 신청이었다. 당연하지. 얼마나 감사한 데.

남자는 엉겁결에 내 악수를 받아들인다. 셰킷셰킷,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쎼쎼.


“이 외에 다른 문제가 있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남자는 다시 한번 서류를 살펴보고는 없다고 확인해준다.


“그러면 서류처리는 이대로 끝났고... 근시일 내로 안내가 다시 갈 겁니다. 그때 그 안내를 따라주세요”

“네, 그럼요”

“개학은 3월 2일이니... 혹시 그때까지 연락이 없다면 그날 등교하면서 직접 와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죠”


남자는 서류를 챙기고는 다시 우리를 안내해준다. 원래 친절한 것인지 아니면 특별히 더 신경을 써준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건물 1층까지 우리를 바래다준다.


“그러면 저는 이만”

“네,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그... 말씀은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나는 바로 근처에 있는 운동장 관람 자리로 가서 주저앉았다.

지친다. 내가 어떻게 넘긴 거래.

자신의 임기응변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정도다.


“아빠!”


단아가 나를 보며 눈을 빛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단아가 운동장을 향해 신나게 뛰어간다.

그래, 단아를 조금 놀게 하고, 잠깐만 쉬자.

나는 그대로 앉아 단아를 지켜보며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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