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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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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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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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24_더 깊은 내부에서(13)

DUMMY

날 보내준다고?


사라는 심지어 그 놀라운 소식을 한번 더 입으로 읇조리기까지 했다.


“날 보내준다고?”


이에 돌아오는 대답은 아까보다 두배 더 놀라운 소식이다.


“보내주는게 다가 아니다. 작은 선물도 하나 딸려보낼테니, 잘 해보지 그래.”


이 새끼 틀림없이 반어법으로 말하는 것이 분명한데. 사라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속 안보이는 애들이 이렇게 남좋은 일을 해줄리가 있나?


“...무슨 속셈이 있어서?”


의혹을 떨쳐내지 못한 사라가 묻자,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마귀는 질문의 본질을 멋대로 흐려버렸다.


“푸흐흐··· 미안하지만, 엄연한 외지인인데다 사람인 너한테 우리의 사연을 늘어놓기는 싫거든. 호의는 얌전히 받고 꺼져라. 싫다면 우리와 영원히 여기서 썩어볼테냐? 그것도 나쁘진 않아.”


그건··· 싫다. 사실 그녀가 맘에 들건 의심이 가건 뭐 어쩔 방도가 없는것도 또한 사실이다. 비록 아무리 이 마귀란 이들의 언행이 수상하다고 해도,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이 자들의 도움은 필요불가결이었다.


대체 어떤 속셈으로 그녀를 도로 임무에 복귀시키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선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야 한다.


그 순간 주변의 바닥이 점점 출렁이더니 가시형태로 뻗어오른다. 이제껏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던 허공과 같은 공간이 갑작스레 검은 빛 실체를 가지더니 사라의 가슴을 정면에서 꿰뚫었다.


“허억!?”


심장을 관통해 엄습하는 날카롭고 서늘한 감각, 짧은 숨을 토해내며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몰아치는 것은 고통이 아닌 막대한 양의 공허감이다.


꿰뚫은 가시가 꿈틀대며 형태를 변화시키더니 가지를 뻗어 다섯 갈래로 나눠진다. 그리고 점차 정교한 형상을 띄게 된다. 매우 친숙한 형상, 다름아닌 사라의 은창과 정확히 같은 모양새로 다듬어진다.


그 표면을 가슴의 구멍에서 흐르는 피가 덮는다. 혈액이 창을 타고 흐르며 가시 전체를 붉게 물들인다. 그러더니 곧 말라붙어 검게 변하더니 바스라진다. 창 모양의 가시를 코팅한 피막이 벗겨지면서 그 안의 어느새 은빛 광택을 내뿜는 표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시는 이제 바닥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온전한 창의 형상이 되었다. 이를 사라는 고통스레 제 심장에서 뽑아내려 했지만,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창날은 점점 더 길어져 되려 아까보다도 더욱 깊숙히 박히는 것이다.

124.png

점차 흐려지는 의식,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둥둥 떠올라 현실에 가까워진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창을 밀어내던 사라의 두 손은 그 양 옆에 달린 다른 두 창끝에 꿰뚫려 십자가에 매달린 듯 고정된다.


공허 속으로 휘말려 자아가 사라져가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마귀는 작별을 고하며 말한다. 마지막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장을 늘어놓으며.


“그러나 기억해라. 받은 만큼만 돌려줘야 한다. 허락하는건 오직 이것 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명심해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이상도 이하도 용납치 않겠다!”


사라의 눈이 감긴다. 의식은 끊어진다. 점점 떠올라 마침내, 수면 위로 부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의 몸을 울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있다. 점차 그 말의 형태가 명확해진다. 들으면 따뜻하면서 편안하지만, 너무나 애처로이 울부짖는 목소리. 그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



“사라—···!!”


그 외마디 비명은 하온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이를 마지막으로 하온은 완전히 힘이 다하여 힘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감각이 없는 발은 피를 다 흘려 조금의 기력도 남아있지 않아서, 나뭇가지를 세워둔 것처럼 금방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코가 깨졌지만, 이정도는 문제 축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밀려오는 발소리,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망할, 창칼이 번쩍이는 빛이 눈을 간지럽힌다. 그래서 아예 꽉 감아버렸다. 차라리 무엇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단번에 죽고 말지.


그리고 적의 무기가 날아든 순간, 철과 철이 부딪히는 통쾌한 쇳소리가 하온의 머리 위에서 사방을 진동시켰다.


그럴리가 없는데. 지금 들렸어야 하는 소리는 분명 그의 목이 잘리며 뼈를 긁고 고기가 썰리는 소리다. 하온의 두개골이 쇠로 되어있지 않은 한 말이다. 그 말은 앞에서 그를 향하는 공격을 막아준 또다른 무기가 있다는 뜻.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위로 향해 올려다보자, 하온을 수호하는 눈부신 은빛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꽃을 튀기며 적의 무기와 마찰하는 소름끼치는 소음이 섬광을 일으키며 그 빛깔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리고 그 옆에, 옷깃을 휘날리며 그 창으로 적의 철퇴를 쳐내는 붉은 머리 전사가 우뚝 서있었다. 하온을 돌아보며, 슬쩍 웃어보인다.


“잠시 혼자 둬서 미안했어.”


그리고 다시 앞을 돌아보며 크게 창을 휘두른다. 달군 철을 두들기듯 다시 불똥이 터져나오며 쇠가 찌그러지는 굉음이 연속으로 울린다. 세 명의 인간이 그 한번의 강타로 뒤로 날아갔다. 그 몸뚱이는 다른 병졸들에게 부딪쳐서 도미노처럼 그들을 밀쳐낸다.


그 순간 사라는 자신이 창을 놀리는데 있어 무척 낮선 감각을 느꼈다. 전에 없던 부자연스럽고 미묘한 차이가 있어, 기분 탓이거니 하고 일단 넘기긴 했지만 조금씩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적들은 그딴 것으로 고민할 틈을 주지 않는다. 우선은 이 밀려들어오는 공세를 뚫고 포위망을 빠져나갈 방법으로만 머리를 가득 채워야 한다.


사라는 옆에 쓰러진 하온을 들쳐메어 튕겨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제 몸에 고정시켰다. 이제부턴 아주 격하게 움직일테니 어쩔 수 없다.


“꽉 잡아, 엄청나게 흔들릴거야!”


하온은 말은 못해도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의 목에 팔을 둘러 꽈악 끌어안았다. 키가 더 큰 그가 사라에게 매달려 질질 끌리는 꼴은 그리 폼이 나진 못했으나, 전쟁터에서 폼 타령하는 놈 치고 제 명을 다한 자는 없을 것이다.


하온과 접촉하며 즉시 사라에게 흘려들어오는 치유의 힘이 그녀의 출혈과 남은 상처를 복구시켜주었다. 이제 고행을 치를 준비가 된 셈이다.


내 안의 야성인지 뭔지야, 제발 눈을 떠다오. 이번 일만 끝나면 아주 오래오래 쉬게 해줄테니, 지금만은 늑장부리지 말고 빠릿빠릿 행동해야 한다!


“후—욱!”


더 지체할 것 없이 즉시 앞으로 튀어나간다. 단숨에 병사들 사이로 파고들어 일차 포위망을 돌파했다. 그 뒤 앞에서 날아드는 손을 사라 자신의 손으로 쳐낸 뒤, 날아드는 칼날과 화살을 놀라운 동체시력으로 파악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해냈다.


그 순간 그녀의 앞을 한가득 메우는 종이로 만든 야수의 입, 사라는 이를 상대도 하지 않고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멀찍이 뛰어넘었다.


그 후 착지와 함께 뒤에서 수작을 부리던 암살단원 하나의 목을 창대로 쳐 기절시킨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착지한 충격을 잠시 수복하는 동안,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또다른 적들이 몰려와 그녀를 감쌌다.


재빨리 적의 공격에 맞춰 창을 들이대 내친다.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사방에서 공격해대는 냉병기를 모조리 상대하려니, 그녀에게 매달린 하온은 가뜩이나 다친 몸에 전신이 흔들려 피를 토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토하고 싶은건 사라도 마찬가지, 수천 수백의 참격과 급습이 그녀 하나를 향해 쏟아지니 그 하나하나를 튕겨내고 반격을 가할때마다 섬광과 불똥이 사방에 튀며 그 충격으로 손이 떨린다.


적들은 끝없이 몰려와 그들을 압박했고 병사들의 공세를 당해내느라 사라의 팔은 죽도록 부지런하게 이리저리 휘둘러졌다. 오만가지의 무기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날아오는데 막을 방법은 손 안의 은창 하나 뿐이니, 단 한번의 공격에도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최선을 다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이목을 끈 반역자들에게 돌가죽도 인간도 점점 더 모여들어서 숨 쉴 틈도 없이 포위해 들어온다. 빽빽히 몰려오는 적들의 파도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창과 방패를 앞장세워 돌진해오니 더욱 더 정신이 아득해진다.


허나 그 와중에도, 아까의 그 이전과 미묘하게 다른 감각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는다. 되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현상이 더욱 명확해지고 뚜렷한 형세를 띄었다. 그제서야 사라는 이 기이한 감의 원인을 알아챘다.


창과 칼이, 창과 철퇴가 부딪칠 때마다 언제나 진동이 울려댔는데, 이번에는 그 진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 창 깊숙히에 머무는 듯 했다. 부르르 떨리는 창자루가 사라의 몸 구석구석에 그 떨림을 전달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듯한 감각을 일궈낸다.


다시 부딪치고, 또 맞닿을 때마다, 창 내부에 쌓여가는 떨림은 점점 강해지며 그녀의 심장까지 울리는 듯 했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정말 뜨거워서 체감 상으론 살이 익을 것만 같았는데도 어째선지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뗄 필요도 없었다. 사라의 손바닥은 멀쩡했으니까 말이다.


더 많은 적이 반역자들을 덮쳐왔고, 사라와 하온의 결사항전도 이제 그 끝이 도래한 듯 했다. 물 샐 틈도 없이 그들을 감싼 적들의 포위진은 해일에도 무너지지 않을 기세로 굳건히 짜여져 두 남녀를 린치했다.


훨씬 더 많은 무기와 훨씬 더 많은 공격이 사라에게 빗발치고, 그 절반이라도 쳐내느라 이젠 빠져버릴 것 같은 팔뚝을 사력을 다해 휘둘러야 했다. 그렇게 또다른 진동을 견뎌냈다. 이젠 기절할 것만 같다. 정신이 아득한 저편까지 날아가기 직전이다.


그리고 더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몰린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손아귀에 쥐인 창이 띈 열기와 진동이 극한까지 올랐다고 느껴졌을 때.


사라의 혼미한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수수께끼의 괴물들이 남긴 마지막 말—또는 조언. 그들은 말했다. 작은 선물도 주겠노라고. 또한 말했다—


“받은만큼만 돌려줘야 한다, 명심해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만큼은 돌려준다. 받아낸 모든 충격, 마찰열, 사방에 튀기는 불똥, 아픔, 전부 다 이 창 안에 기억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을 단 한 순간에 모조리 돌려준다면, 그것은...

123.png

사라가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창을 찔러넣었다. 그와 함께 터져나오는 눈부신 섬광, 화려하게 흩날리는 황금빛 스파크가 번갯불처럼 번쩍이고, 동시에 뿜어져나온 열풍이 이를 앞으로 밀어낸다. 그러자 그 섬광은 곧 다섯 갈래 벼락이 되어 사방에 뻗어나갔으며, 뒤이어 몰려오는 고압의 충격파가 그 궤적을 타고 대기를 찢으며 굉음을 내지른다.


땅이 갈라지고 뒤엎어지며 조각과 파편을 흩뿌린다. 제 앞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힘의 진격을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덮쳐 부수고 밀쳐내며 난장판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고 돌가죽이고 무생물이고 사라와 하온의 앞길을 막는 것은 전부, 전부 다 쓸어버린다.


단번에 축적된 것을 모조리 해방한 은창은 본래대로 차갑게 식어 고요히 정체된다. 사라는 생각했다. 대체 이게 뭐가 ‘작은 선물’이냐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귀들이 무슨 속셈이 있어서 이런 힘을 주었는지는 몰라도,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하나 고민하는 사라였다.


작가의말

필살기를 124화 지나서 습득하는 주인공이 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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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3 2 8쪽
275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1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5 2 9쪽
273 Episode272_추락 +2 22.07.04 27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0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4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6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5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39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3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3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7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3 3 8쪽
262 Episode261_고요한 역습 22.04.20 89 2 9쪽
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59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6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1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7 4 9쪽
257 Episode256_최후의 전쟁(5) 22.03.29 33 3 7쪽
256 Episode255_최후의 전쟁(4) +2 22.03.26 52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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